청소년 인권 영화, 청소년의 눈에는 어려웠어요
매달 세 번째 주 목요일, 인문 카페 창비에서 열리는 인권 영화제 ‘인권이 머문 시선, 불편해도 괜찮아’. 이번 시간은 ‘떨어져도 다시, 날개를 펴고’라는 제목으로 청소년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201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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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인문 카페 창비에 생동감이 넘쳤다. 교복이 넘실거렸다. 인권 영화제 4회의 주제는 청소년이었다. 많은 학생이 영화제를 찾았다. 상영한 영화는 <시선 1318>에 실린 전계수 감독의
사회 : 창비와 국가 인권 위원회가 함께 하는 인권 영화제 오늘로 벌써 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보신
전계수 :
전계수, 자유로운 의사 결정권이 없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회 : 왜 운동하는 아이를 주인공으로 하셨나요?
전계수 : 중학교 다닐 때 생각해봤습니다. 부모님이 길을 정해줘서 의사결정권이 없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자유로운 의사 결정권이 없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혹독한 환경에 처해있는 건 운동을 하는 아이들입니다. 운동이라는 한 가지 길 밖에는 없고, 중고등학교 안에서 승부를 봐야 합니다. 운동하는 아이가 일반적인 청소년은 아니지만, 청소년 시기의 절박함을 잘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역도하는 여자 아이만 그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부모님이 결정한 대로 호주로 유학을 가야만 하는 남자 아이도 함께 그려보았습니다.
질문 :
전계수 : 처음 시나리오를 썼을 때는 소방관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을 찍었던 장소는 제부도입니다. 원래는 바닷가를 찾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는데, 바닷가에 소방서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거다 싶었습니다. 영화 중간에 시청각 수업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때 어린 바다 거북이 바다로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다로 가는 어린 바다 거북이 아이들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걸어 가는 마른 해변에 물을 뿌려주고 싶다는 일종의 시적 상징이랄까요?
질문 : 소방관이 물을 뿌리는 장면이 처음부터 기획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소방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장소를 상징하고, 마른 바다에 물을 뿌리는 소방관은 아이들 문제에 개입하는 어른이라고 보았습니다. 다음에 소방관은 사라지고 아이들만 나오는 장면에서는 바다에 물이 가득합니다. 그걸 보면서 아이들 문제에 어른이 지나치게 개입하기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해결된다는 걸 의미한다고 생각했는데, 시나리오에는 없는 장면이었군요.
전계수 : 멋진 해석 감사합니다. 영화를 만들어 놓으면 관객이 헐거운 연결 고리를 가지고 알아서 해석을 하곤 합니다.
사회 : 진짜 멋진 해석입니다. 이런 걸 꿈보다 해몽이라고 하나요?
질문 : 무언가 새로운 걸 시도하려고 하면 정해진 길을 벗어나야 합니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려고 하는 청소년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전계수 : 저는 철학과를 나왔습니다. 아들이 철학과를 간다고 하면 모든 부모님이 만류할 겁니다. 그래도 부모님에게 감사합니다. 많은 반대를 하셨지만, 결국 철학과도 갔고 연극도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 하니 IMF가 터졌습니다. 간신히 들어간 직장을 3개월 만에 그만두고 충무로 영화 판에 들어갔습니다. 거의 자살행위였습니다. 그래도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웬만하면 부모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부모님도 다 여러분을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을 때가 있을 겁니다. 그래도 요새 부모님은 탄력적으로 잘 대응하리라 생각됩니다. 같은 과도기를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윤성호, 온전한 청소년 드라마는 불가능하다
질문 :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에 등장인물들은 죽은 여학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 나름대로 사망 원인을 분석하는데, 진실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윤성호 :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는 시나리오를 제대로 쓰지 않고 시작한 영화입니다. 첫 장편 영화의 촬영과 편집을 막 마친 시점이라서 경황이 없었습니다. 우선 청소년을 인터뷰하면서 극본을 쓸 생각을 했습니다. 학생 30명 가량을 일주일 동안 벼락치기로 만났습니다. 인터뷰를 해보니 특별한 주제 없이 학생들의 말을 릴레이 하듯 이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핵심 소재는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논두렁에서 죽은 여학생이 등장합니다.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은 있지만 사람마다 진단이 다 다릅니다. 시각 장애인이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격으로 헛다리를 짚습니다. 근거나 대안 없이 쉽게 결론을 내는 분위기를 풍자해보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찍었던 시기에 마침 대통령 선거가 있었습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누가 대통령이 될까 호기심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후보가 좋은지 정교하게 따지고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대통령은 정치 시스템을 상징합니다. 정치가 좋아진다고 청소년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만, 정치가 나아지면 해결되는 청소년 문제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정치 이야기를 하면 거짓말 같으니깐 대통령 선거 이야기는 배경으로만 배치하고 죽은 여학생을 주요 소재로 삼았습니다.
질문 : 비트박스를 하는 여고생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셨나요?
윤성호 : 아무리 영화가 다큐멘터리나 UCC같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갈무리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청소년을 대신해 무언가를 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비트박스를 녹음해서 틀면 나중에 자막이라도 깔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편집이 끝나니 뭐라도 쓸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비트박스와 함께 나오는 자막은 김경주 시인의 시와 홍대에서 대안 음악을 하는 뮤지션의 노래 가사를 섞어서 만들었습니다.
질문 : 왜 영화 제목을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라고 했는지 궁금합니다.
윤성호 :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는 영상으로 보여주는 레포트입니다. 만약에 정극이었다면 희한한 제목을 붙이지는 않았을 겁니다. 제목으로 해석을 유도해야 했습니다. 영화를 다 찍고 나서 제게는 “온전한 청소년 드라마는 불가능하다”라는 명제가 생겨났습니다. 청소년 드라마에는 전통적인 구성이 있습니다. 문제아가 있고, 문제아가 생긴 이유가 분명하게 있고, 함께 농구 한 판 하면서 해결이 되는 그런 이야기 말입니다. 청소년 드라마는 안정적인 서사를 만들어 놓은 다음에 적당한 캐릭터를 고릅니다. 청소년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청소년을 캐스팅합니다. 치기 어린 마음에 그런 전통에 대한 조소를 보내고 싶어서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인권영화, 불편해도 괜찮아
질문 : 학교에서 <시선 1318>을 전교생이 함께 관람했습니다. 여러 작품 중에서 특히 전계수, 윤성호 감독님의 영화는 이상하고 어렵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는 청소년이 어떤 마음을 갖기를 원했는지 궁금합니다.
윤성호 : <청소년 드라마의 이해와 실제>를 청소년이 보라고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청소년에 대해서 천편일률적으로 사고하는 기성세대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레포트입니다. 영화를 보면 선생님들은 재미있어하고 나름의 독해를 하는 반면, 10대들은 뚜렷한 기승전결이나 매력적인 캐릭터가 없어서 그런지 이상해합니다. 그런 반응을 보면서 특정 대상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면 그 대상에 속한 사람들도 재미있어할 이야기를 만들면 좋으리란 생각을 했습니다.
전계수 : 처음부터 문제 의식을 가지고 인권 영화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인권 영화 제안이 들어오면 그 때부터 인권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윤성호 감독님은 청소년과 만나며 인터뷰도 하지만, 저처럼 게으른 감독은 제 자신을 취재합니다. 인권하면 왠지 아파야 할 것 같으니 그 당시에 뭐가 아팠는지를 떠올립니다. 그러면서 청소년에게는 자기 결정권이 없다는 걸 생각해냈습니다. 두 영화가 이상하게 느껴졌다면, 특별히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세 영화와 균형을 맞췄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을 바라보는 삐딱하고 이상한 시선에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사회 : 인권 영화 의뢰를 할 때에 인권에 대한 완벽한 이해나 해결책을 바라지 않습니다. 딱딱한 인권에 대해서 이슈만 던져도 성공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권은 정해진 답이 없고 계속 변화해가는 과정입니다. 인권 영화를 통해서 2007년에는 인권을 이렇게 보았고, 2009년에는 인권을 저렇게 보았다는 걸 보여줄 수 있다면, 비록 대중에게 고른 평가를 받지 못하더라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사적으로 완벽한 영화는 충무로에 이미 다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영화를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낯설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오랫동안 고민할 수 있는 영화라면 좋겠습니다.
질문 : 영화를 만들면서 청소년기를 다시 돌아보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전계수 : 중1 때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친구가 없는 아이였습니다. 너무 외로워서 전봇대에 머리를 쥐어박으며 한참을 울은 적도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은 제가 생각해도 좀 가여웠습니다. 그런 불쌍한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나 봅니다.
윤성호 : 청소년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습니다. 젊어지고 싶은 생각은 있습니다. 군대를 다시 간다고 하더라도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10대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의 10대 시절은 무난했습니다. 문제의식도 없었고, 애들을 때리지도 않았고, 선생님에게 혼나지도 않았습니다. 어른이 하지 말라는 걸 욕망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성인이 되어 욕망에 눈을 떴습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먹고 싶은 걸 먹습니다. 하지만 10대로 돌아가는 순간 모든 행동에 제재가 걸립니다.
진행 : <시선 1318>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영화지만 공감 가는 대사가 참 많았습니다. 제대로 된 결정을 못하고 빙빙 도는 모습이 마치 저의 이야기 같았습니다. 미숙한 어른도 있고 성숙한 청소년도 있듯이 세대를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는 없습니다. 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감수성이나 어려움은 세대마다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랜 기간 동안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권 영화제의 다음 주제는 성 소수자 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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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댓글
필자
정준민
어쩌다 보니 글을 쓰고 있는
뭐꼬
2013.06.30
리라
2013.06.02
sind1318
201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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