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9일, 광화문 KT올레스퀘어 드림홀에서 음악가가 아닌 작가 루시드폴의 신작 『무국적 요리』 출간을 기념하여 독자와의 만남이 열렸다. 이 만남은 문화평론가 김갑수씨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기존의 딱딱한 틀을 벗어나 독자가 사회자로 참여하는 기회를 가지며 자유롭게 대화하는 형식의 행사였다. 책에 관한 질문으로 작가 루시드폴을, 사적인 질문으로는 인간 루시드폴을 만날 수 있는 자리였다.
『무국적 요리』는 음악인이자 화학자인 루시드폴의 첫 번째 소설집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국적, 성별 등은 모두 무국적이다. 국적도 알 수 없고, 성별에도 구애받지 않고, 특정한 전통적 영향도 보이지 않는, 관계와 규범에서 자유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문화평론가 김갑수씨는 루시드폴의 『무국적 요리』를 본격문학이라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과정은 어떻게 됩니까?
작년에 공연이나 음반활동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한 출판사와 연이 닿아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번역하기로 했죠. 한국에 들어와서 너무 바빠 손을 놓았습니다. 쉬는 동안에 소설 번역을 끝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여름에 번역 작업을 계속 했어요. 첫 번역을 끝내고 생각이 달라졌어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음악적인 활동을 하지 않다보니 관심사나 하고 싶던 일이 다른 분야로 넘어갔어요. 생각날 때마다 메모해놓은 것을 바탕으로 글을 썼습니다.
매체에서 보여지는 루시드폴에 익숙한데요. 루시드폴이 말하는 루시드폴, 어떤 사람입니까?
요즘 자신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요. 나는 이중적인 혹은 양면적인 사람입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죠. 그런 성향이 심합니다. 소극적이면서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 해요. 비록 사람들이 웃지 않더라도요. (웃음) 머리 쓰는 것도 좋아합니다. 잔머리를 포함해서요. (웃음) 성스러움을 좋아하지만 세속적이기도 한 사람입니다.
책에서는 우리들 삶이 매우 일그러지고 비틀어져있고 기괴하게 엉켜있어요. 왜 그런 건가요?
번역하고 있던 소설이 초현실적이었어요. 현실이었는지 꿈이었는지, 기억 속에 있던 사실인지 아니면 없던 사실인지, 혹은 과거인지 미래인지가 뒤섞여 있는 소설이었어요. 그 부분이 매력적이었죠. 그 소설의 형식과 내용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가 생겨났어요. 예를 들어 하루 만에 할아버지의 키가 무릎까지 줄거나 동물이나 정수기가 말을 한다는 부분이 그래요.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참 편했어요.
이에 대해 김갑수씨는 “평론공간에서는 매우 반길 작품이에요. 세상이 경직되고 퇴행할 때는 말 그대로 있음직한 서사로 끝나는데 루시드폴의 ‘무국적 요리’는 변용을 사용해 이를 풍요롭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라고 평했다.
유학생활을 오래 해서 스위스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부산 이야기가 많이 나왔어요. 책 속의 이야기가 루시드폴의 어릴 적 이야기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이야기인지 궁금합니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7살까지 자랐어요. 좋지 않은 이유로 가족들이 흩어지게 되었어요. 7살 때 부산으로 가게 되었죠. 소설에 보증, 압류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나와요. 부산에서 처음 자랐을 때가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어요. 행복하지 않은 기억이 머릿속에 오래 남잖아요. 이런 게 기억으로 남아서 쓰고 싶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유년 시절이 부산이라는 지역에 섞여서 글로 나왔어요. 이 이야기는 사투리를 쓰지 않고는 써낼 수 없었어요.
“니가(_↗) 오빠가( ̄ ̄↘) 돼가꼬( ̄↘_) 동생을(_ ̄_) 갋아가( ̄↘_) 되겠나(_ ̄_)?” “문수야( ̄↘_). 밥 빨리 묵고(_ ̄↘ ̄↘), 아빠하고( ̄ ̄↘_) 엄마하고( ̄ ̄↘_) 온천 가까(_↗ ̄↘)?” -‘온.천.가.까?’ (p.193)
책 속의 단편 ‘탕’을 읽으면서 작가 조세희씨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생각이 났어요. 어둡고 암울한 회색 도시의 이면이 떠올랐습니다. 혹시 ‘난쏘공’에서 영감을 받았나요.
그 책을 읽지는 못했습니다. 생각은 비슷했을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배경이 공장이고 노동자의 이야기지만 노동자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냥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 중 한 명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사람들 대부분이 노동해서 수입을 얻잖아요. 물론 소설이다 보니 극적인 장치나 연결고리를 만들었죠.
인물들의 이름들이 매우 특이해요. 그런 이름들은 어디서 영감을 얻었어요?
웬만하면 다 제가 만들어낸 이름이거나 외국친구들 이름이에요. 이름으로 안 쓰일 법한 이름이죠. 이런 이름을 소설에 썼을 때 공간이나 시간이 더 모호해지지는 않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 덕분에 편하게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웃음)
아이돌이 연기를 한다던가 가수가 글을 쓰는 일과 같이 유명인이 다른 분야를 오가는 일이 많아지고 있어요. 조금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 도전 했을 때 가질 수 있는 특별대우가 있는데요. 혹시 이 책을 다른 분이 썼다고 생각한다면 어땠을까요.
음악을 해서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다면 루시드폴이 책을 내기 어려웠을 겁니다. 어떤 형태로든 어드밴티지는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혹은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제가 쓰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을 안 할 수는 없잖아요. 혹시라도 들을 수 있는 ‘유명인이 더 유명해지려고 책을 냈다.’라는 이야기는 듣지 않고 싶어요. 열심히 썼습니다. 이건 제 생각이기 때문에 책을 읽는 독자 분가 ‘형편없는 책’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형편없는 글이죠. 유명인이 책을 좀 더 쉽게 낼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작품이 유통되는 통로나 미디어의 체계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작품이라는 것이 소비되기 위해서는 소비자의 취향이 가장 중요하죠. 이 음악이, 이 책이 좋지 않으면 사람들은 소비하지 않아요.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작품을 찾아서 소비하는 시스템이 생기면 좋겠어요. 이것이 제 책이 되었든, 제 음악이 되었든 본인이 좋으면 거기에 취해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싫다면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됩니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가 사람을 미워하는 문제로는 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책을 내면서 뮤지션으로서의 자신과 경계를 두고 싶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왜 필명이나 본명을 쓰지 않고 ‘루시드폴’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냈나요.
조금이라도 책을 더 많이 알리고 싶었어요. 조윤석이라는 제 본명보다 루시드폴이라고 썼을 때 책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알려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따지지마, 이거 소설이야 소설” “그것도 음악 하는 애가 쓰는 소설이라고. 뭘 그리 따지니?” - 기적의 물
이 부분을 루시드폴의 자기 방어적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독자의 말에 루시드폴은 그저 자신의 유머로 받아들여주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그의 진실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소설 ‘무국적 요리’의 맛이 어떤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루시드폴은 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떠한 맛을 느끼기를 원하시나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이상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제가 표현하고 싶었던 점을 독자가 똑같이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불가능하겠죠. 최소한 8개의 단편 소설이 그 속에 무언가 루시드폴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이 있었다, 정도만 생각해주셔도 정말 감사할 것 같아요.
소설을 쓰고 나서 본인 자신만의 변화는 무엇인가요?
무엇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글을 쓰면서는 저 자신이 굉장히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저는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니고 글을 써온 사람도 아니에요. 노래를 만드는 사람인데 글을 쓰면서 굉장히 많은 것을 해소했어요. 글쓰기가 습관이 되면 생각이 정리됩니다. 단점이 있다면 말을 잘 못하게 되더라고요. 찬찬히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까 말하기가 불편해졌어요. 일기든, 소설이든 글 한편을 마무리짓고 나니 굉장히 의미있는 것을 만들어냈다는 기분이 듭니다. 이런 것들이 누군가가 인정하든 아니든 저에게는 즐거움이었고 행복이었습니다.
2시간의 대담에서 무국적 요리를 만든 루시드폴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책으로써 진실하게 담아내고 싶어 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가 그의 진실한 마음을 만나며 독자 개개인만의 무국적요리의 ‘맛’을 느껴보기를 기대해본다.
- 무국적 요리
- 루시드 폴 저 | 나무,나무
소설은 기존 소설문법에서는 읽을 수 없는 독특한 세계관과 스타일로 무장하고 있다. 한국문학에서 새로운 상상력이 출현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기존 문학적 전통과는 다른 독특한 소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국적, 성별 등은 모두 무국적이다. 국적도 알 수 없고, 성별에도 구애받지 않고, 특정한 전통적 영향도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모든 관계와 규범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소설을 먼저 읽어본 문학평론가 최재봉씨는 발문‘웰컴 투 루시드폴 월드’에서“책에 실린 여덟편의 단편은 그 소재와 주제, 문법이 우리가 익히 알던 소설들과는 판이하다”라고 말하며 “문단의 영향과 경향에서 자유로운, 독자적인 상상력과 스타일로 무장한 소설”이라고 평가한다.
이소은 (채사모 4기)
세상을 알아가고 싶은 20대 여대생.
자신을 소개할 때는 언제나 은근한 매력을 지닌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글로써 본인만의 은근한 매력을 은근하게 발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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