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끄 상뻬의 『뉴욕 스케치』와 입맛 다시기
뉴욕의 길거리 핫도그부터, 드레스를 입고 가야 할 정도로 고급 레스토랑까지 다양한 뉴욕의 맛에 대한 이야기를 스케치하듯 담아보고자 한다.
글ㆍ사진 김지원
200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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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가보지 않은 사람에게도 익숙한 도시다. TV 퀴즈 프로그램에서 미국의 수도를 물었을 때 모 연예인이 ‘뉴욕’으로 오답을 할 정도니 말이다. 시트콤의 고전인 <프렌즈>, 얼마 전 영화로도 개봉하여 큰 흥행을 거둔 , 로맨틱한 셰프의 사랑을 다룬 <사랑의 레시피> 등 숱한 드라마와 영화 속 배경으로 만나봤기 때문일 것이다. 에서는 주로 패션과 연애가 주제가 되지만 주인공들이 방문했던 레스토랑 또한 많은 주목을 받고 있으며, <사랑의 레시피>는 아예 뉴욕 시내의 레스토랑이 배경이다. 이처럼 패션과 연애뿐 아니라 음식과 요리는 뉴욕의 대표적인 매력 요소다.


<사랑의 레시피> 영화의 배경이 된 Bleeker St. 아쉽게도 그 자리에는 레스토랑은 없었다. 몇 블럭 떨어지지 않은 곳의 의 Magnolia Bakery처럼 실제 존재했다면 길게 줄이 늘어서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숱하게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이 되고, 우리가 보통 말하고 상상하는 뉴욕은, 실은 뉴욕 5개구의 가장 작은 맨하튼 부분이다. 뉴욕주는 맨하튼 이외에 브롱크스, 브루클린, 퀸즈 및 스태튼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유명한 음식점이나 관광지, 회사들은 맨하튼 안에 위치해 있거나, 맨하튼에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맨하튼의 땅값을 보면 얼마나 그 안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는데, 보통 우리나라에서 원룸이라고 부르는 “studio”는 한 달 렌트비가 적어도 2,000불에서 비싼 곳은 몇 배가 넘는다. 그에 비해 다리만 하나 건널 뿐인 브루클린에서는 1,000불도 안 되는 비용으로 studio를 구할 수 있다.

비싼 집값을 하려는 건지, 작은 섬 맨하튼에는 모든 것이, 세상 곳곳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고 프랑스 파리의 뒷골목에 있는 듯한 비스트로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으며, 점심에는 열정적인 일본인 요리사가 24시간도 넘게 우려낸 국물의 라면을 맛볼 수도 있다. 저녁에는 차이나타운에 들러, 미국 한가운데에서 살면서도 영어 한 마디 못 하는 중국인 아줌마에게서 과일을 사고, 뜨거운 소룡포를 한 입 베어 물며 입천장이 데일 수 있는 것이 바로 뉴욕이다. 단지 몇십 블럭, 지하철 카드 한 장이면 세계 어디라도 다녀올 수 있는 뉴욕은 1달러 50센트로 세계여행을 맛보게 해주는 곳이었다.

그런 뉴욕을 완벽하게 맛보기 위해서는 준비물이 필요하다. 뉴욕 레스토랑 가이드. 실제로 뉴욕에는 상상보다 더 많은 레스토랑과 바가 모여 있어 레스토랑을 찾아 헤맬 필요가 없었다. 어디를 가든지 식당이 없는 곳이라면 센트럴파크Central Park 한가운데 정도가 아닐까. (아마 그곳에도 핫도그 카트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무 음식점이나 들어가자니 맛에 대한 염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시간이 아까웠다. 만약 뉴욕에 평생을 산다면 고민 없이 아무 데나 갔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게 한정된 시간은 1년이었으므로 최대한 맛있고 유명한 음식점에 가고 싶었다. 다행히 뉴욕에는 어느 나라에 못지않을 정도로 많은 레스토랑과 관광 관련 책자가 있어 오히려 무얼 봐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였다. 물론 책을 100% 신용할 수는 없었지만, 여러 책을 바탕으로 레스토랑을 선택해 방문하는 것은 꽤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아무리 관광객이 많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레스토랑과 그에 관련된 서적이 발달해 있는 이유는 무엇일??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장 자끄 상뻬의 책 『뉴욕 스케치』에 나온 한 장면이다.

<파티가 아니라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저녁이나 먹자는 거예요. 8시까지 와주세요>라고 했네. 미국인들에게는 프랑스 인들이 갖고 있는 고약한 습관은 없어. 프랑스에서는 8시에 오세요, 라고 해놓고 8시 30분에 가도 일찍 왔다고 눈치를 주곤 하지. 공연히 이 술 저 술 내놓고 주전부리를 시킨 다음 한 시간도 식탁에 앉아있지 못하게 한 다 음 내쫓지 않나, 프랑스에선. 나는 정확히 8시에 메리의 집에 갔네. 모두들 와 있더군. 그런데 식탁 한가운데 촛대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 음식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거야. 접시 같은 것도 없었고. 부엌은 기가 막히게 설비가 되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리 냄새를 맡아 보아도 음식 준비하는 냄새가 나질 않았다네.

8시 1분이 되자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더니 웬 중국인이 들어와 음식이 가득 든 가벼운 중국식 접시들과 젓가락들과 작은 술병들을 꺼내 놓고 가더군. 그때서야 알았네. 아까부터 들려오던 낯선 음악이 중국 음악이었다는 것을.


프랑스 사람들은 시간 관념이 정확하지 못해 8시 반에 오는 것에 핀잔을 주기보다, 대접할 음식을 대부분 집에서 준비하기 때문에 생겨난 관례 같은 것이다. 안주인이 집안 청소를 하고 음식을 준비하다 보면 시간이 모자랄 수 있으니 예의상 조금 늦게 도착하는 것이 이제는 당연시되어 오히려 조금 일찍 도착하면 예의 없는 손님이 되어버린다. 반면 뉴욕에서는 집에서 요리를 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어 집에서 만든 요리를 대접하는 일은 정말 드물다고 한다. 뉴욕에 1년을 살면서 알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지만 실은 도착하자마자 집을 구하러 돌아다니며 맨 처음 느낀 사실이었다.



 

처음 뉴욕에 도착해 집을 구하러 20군데도 넘게 돌아다니며 구경을 다녔다. 내가 고집했던 조건은 단 두 가지. 학교와 가까울 것과 부엌이 좋을 것. 학교와 가까운 집은 학교 근처에서만 구하면 되었지만, 부엌이 좋은 집은 정말 드물었다. 20년도 더 된 오븐에, 간혹 Goldstar 마크라도 만나게 되면 반가워 웃음이 나면서도 한국에서조차 보기 드문 오래된 상표에 그 집에는 X자가 그어지고 말았다. 가격이 비싸고 좋은 아파트는 물론 부엌도 잘 되어 있었지만, 가격이 낮을수록 부엌 수준은 바닥을 쳤다. 요리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부엌은 집에 딸린 액세서리처럼 인식되는 것 같았다. 비싼 차에 비싼 휠이 장착되듯 부엌도 장식과 같았다.

그렇듯 뉴요커들은 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다. 물론 TAKE OUT한 음식을 집에서는 먹더라도 직접 요리책을 보고 요리를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상뻬는 프랑스인의 시간 관념을 꼬집는 척하면서 뉴요커들의 요리에 대한 게으름에 냉소를 던지며 다음 장에 한 번 더 못을 박아 준다.

그날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 간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나중에야 알았지. 전주에 나는 다른 친구로부터 초대를 받았는데 조금 늦는 바람에 그만 인도 음식과 함께 친구 집에 도착하고 말았네. 저녁 음식과 함께 초대받은 집에 도착하는 그 묘한 기분이 어떤 것인지 자네는 정말 모를 거야.


물론 그 덕에 뉴욕은 레스토랑이 발달하고 배달 문화도 발달하였다. 깔끔하게 배달이 되는 것은 우리나라 중국집보다 더 발달해 있으며 포장 용기 또퇇 매우 고급인 곳이 많다. 어떤 것은 질이 너무 좋아 버리기 아까워 씻어 반찬 통으로 쓸 정도라고 고백하게 될 정도다. 또한 대부분 음식점에서 포장 판매도 잘 되어 있으며, 어떤 곳은 아예 포장 판매 매장이 따로 있기까지 한다. 기회가 된다면 뉴욕 여행 중에 배달을 시키거나 포장해서 먹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뉴욕은 요리를 공부하기에는 오히려 힘들 수도 있는 곳이다. 렌트비가 비싸고, 부엌이 갖춰져 있는 곳이 드물고, 요리학교의 기간은 다른 나라에 비해 짧지만 그만큼 함축되어 있어 힘들고 고되다. 하지만 어디를 가도 맛있는 레스토랑이 많고, 전 세계의 음식이 모여 있으며 배달까지 된다. 겉보기에 화려하게 치장된 뉴욕이지만 천 가지 다른 색깔과 맛으로 단맛부터 쓴맛까지 모두 맛볼 수 있는, 음식의 백과사전과도 같은 곳이다. 그 백과사전을 모두 통독했다고 하면 나는 거짓말쟁이다. 하지만 백과사전의 굵은 글씨들이라도 모두 읽어보려 노력한 곳, 좋아하는 부분은 몇 번이고 외울 정도로 읽어보고자 한 그곳, 뉴욕 맛보기 준비를 시작해 본다. 뉴욕의 길거리 핫도그부터, 드레스를 입고 가야 할 정도로 고급인 레스토랑까지…… 다양한 뉴욕의 맛에 대한 이야기를 스케치하듯 담아보고자 한다.


만약 음식의 백과사전이 있다면, 무엇부터 맛보고 싶은가요?
#뉴욕 #맛집
50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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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ta2to

2012.11.22

뉴욕의 맛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 기대하면서 1편부터 꼼꼼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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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7.14

하긴 뉴욕하면 멋지게 빼입고 고급 레스토랑서 음식 먹는, 뭐 그런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죠. 드라마 상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실제 요리 좋아하는 사람이 그다지 없나보네요. 하지만 음식맛에 까다로운 사람은 많은가봐요. 과연 어떤 식당들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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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hoo

2011.05.19

장자끄상뻬를 좋아해서 뉴욕스케치 또한 읽은 적이 있는데,이런 내용이 있었군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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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스케치

<장 자끄 상뻬> 글그림/<정장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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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원

대학 시절 4년간 심리학을 공부하며 내 자신에 대해, 인생의 맛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 끝에 결정한 요리 유학은 가족과 친구들을 떠나, 홀로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며 뉴욕과 함께 농밀한 데이트를 보냈던 1년이었다. 객관적인 시간으로는 1년이라는 것은 결코 길지 않지만 주관적인 시간으로는 10년과도 같이 지냈던 그 해를, 함께 가지 못했던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욕심을 모자란 글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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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크 상페

가냘픈 선과 담담한 채색으로, 절대적인 고립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그리움과 아쉬움을 통해 인간의 고독한 모습을 표현하는 프랑스의 그림 작가. 1932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난 그는 데생 화가이다. 소년 시절 악단에서 연주하는 것을 꿈꾸며 재즈 음악가들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960년 르네 고시니와 함께 『꼬마 니꼴라』를 만들어 대성공을 거두었고, 1962년에 작품집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다』가 나올 무렵에는 그는 이미 프랑스에서 데생의 1인자가 되었다. 지금까지 30여 권의 작품집들이 발표되었고, 유수한 잡지들에 기고를 하고 있다. 1991년 상뻬가 1960년부터 30여 년간 그려 온 데생과 수채화가 빠삐용 데 자르에서 전시되었을 때 현대 사회에 대해서 사회학 논문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는 평을 들었다. 프랑스 그래픽 미술대상도 수상했다. 산뜻한 그림, 익살스런 유머, 간결한 글로 사랑을 받고 있는 장 자끄 상뻬는 92년 11월 초판이 발간돼 48쇄까지, 99년 신판이 10쇄까지 나오는 등 총 80만부가 팔린 『좀머씨 이야기』의 삽화를 그린 전세계적으로 사랑받고 있다. 정치니 성(性)을 소재로 삼지 않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삼지 않으면서도 성인층에까지 두터운 독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그의 기본적인 관심은 끊임없이 고독을 생산해 내는 인간과 사회의 모순을 하나의 유머러스하고 깊이 있는 장면으로 포착하는 것으로써 글과 그림이 잘 어울리는 그림 소설들은 아주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프랑스의 「렉스프레스」, 「빠리 마치」 같은 유수한 잡지에 기고할 뿐 아니라 미국 「뉴요커」의 가장 중요한 기고자이다. 그는 이 잡지의 표지만 53점을 그렸다(9년 간의 「뉴요커) 기고는 나중에 『쌍뻬의 뉴욕 기행』이라는 작품집으로 묶여 나왔다). 그는 파리 외에도 뮌헨, 뉴욕, 런던, 잘츠부르크 등 주요 도시에서 데생과 수채화 전시회를 열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랑베르씨』, 『얼굴 빨개지는 아이』, 『가벼운 일탈』, 『아침 일찍』, 『사치와 평온과 쾌락』, 『뉴욕 스케치』, 『여름 휴가』, 『속 깊은 이성 친구』, 『풀리지 않는 몇 개의 신지』, 『라울 따뷔랭』, 『까트린 이야기』, 『거창한 꿈들』, 『각별한 마음』,『상뻬의 어린 시절』 등이 있다. 2022년 8월 11일 목요일, 89세의 나이로 여름 별장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