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만남] “있어줘서 고마워요.” 6년 6개월의 기다림 끝에 돌아온 토이 유희열
나는 천성이 뮤지션이고 예술가가 아니에요. 나는 남들보다 예민한 감성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에요. 진짜 예술가는 보고 있으면 진짜 예술가 같아요. 돌아이 같기도 하고, 저렇게 살아서 인간 구실 할까 싶기도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죠. 저는 정반대예요. 굉장히 현실적인 면이 많고. 저는 일상이 주는 게 제 전부예요.
200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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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보내는 노래’를 빼고 뮤직비디오를 다 찍었어요. 수고해 준 스태프들을 위해서라도 이렇게 전편을 다 보는 행사를 꼭 마련해보고 싶었어요.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고, 신나네요. 평생에 이런 일이 또 있을까요?
사이트에 올라온 글 다 읽었어요. 천 분이 넘는 분들이 참가하셨더라고요. 그래서 더 미안해졌어요. 여러분을 오래 기다리게 한 내가 소심하고 무책임했다는 생각도 들었죠.
첫째 줄과 두 번째 줄에 앉은 분들이 뮤직 비디오에 참가하신 분들이에요. 박수 쳐주세요. 다, 제가 다 인덕이 있어서 이렇게 뮤직 비디오를 찍을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하하. 고마워요. 이렇게 멋진 뮤직 비디오를 찍어줘서.
아, 저쪽에 앉아계신 두 분 보이시죠? ‘인사’에 나온 분들인데, 이분들은 진짜 커플이세요.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분들이죠. 소개할 분이 너무 많네요.
최초로 공개하는 뮤직비디오 ‘Thank You’는 어땠어요? 마지막 포즈. 재밌죠? 이따 끝나고 다시 한 번 보여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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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 비디오를 보고 제 정체성을 찾았어요. 나만 나오면 다 웃더군요. 윤종신을 뛰어 넘을 날 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어색하게 연기하면서 왜 뮤직 비디오에 출연하냐고요? 기본적으로 뮤직 비디오에 나오는 거 귀찮아요. 나오라고 해서 나가는 거예요. 이번에는 한 3편 정도는 출연을 거절했다고요.
뮤직 비디오 연출이요? 내가 연출하면 그게 과연 뮤직 비디오일까요? 아수라장이 아니고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어요. 연기, 연출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에요.
‘딸에게 보내는 노래’는 욕심 낸 감독분이 계셨는데, 제가 만류했어요. 어떤 영상이라도 만족할 수 없을 거 같아서요. 내 딸이 안 나오는 한 말이죠. 그렇다고 딸 백일 사진을 내보낼 수도 없고. 안 찍겠다고 고집을 부렸어요.
중학교 때 마왕의 게스트로 마치 운명처럼 희열 님을 알게 되고 10여년. 그중 6년을 콘서트도 음반도 없이 보내던 중 희열 님이 무지 미운 적도 있었지만. 잊지 않고 돌아와줘서 고마워요. 한층 더 밝아져서 돌아와서 고마워요. 모두의 바람대로 자상한 아빠가 되어줘서 고마워요. 무작정 작가의 꿈을 꾸게 해줘서 고마워요. 이제는 그 꿈이 현실이 되어 방송국 한편에서 지켜 볼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 항상 외모에 대한 자신에 찬 발언 고마워요. 그 빛나는 외모, 눈물나는 감수성, 수려한 말솜씨, 똑 부러지는 지성. 이 모든 것을 가지고도 남루한 가창력으로 인간미를 보여줘서 고마워요. 그리고 항상 메마른 가슴을 적셔주는 뮤지션으로 남아줘서 고마워요. 늘 그렇게 한결같은 뮤지션으로 남아줘서 고마워요. 앞으로도 진정한 뮤지션으로 남아주길 바랄게요. 내 이 바람이 현실이 될 수 있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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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뒤를 돌아보라. 어머니께서 항상 하신 말씀이시죠. 뒤를 돌아보고 벗어나 있다면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된다고 하셨죠. 인생의 선이 있다면, 내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어디까지 와 있는지 항상 뒤를 돌아봐요. 난 과거지향적인 인간이고, 생각과 고민이 많은 인간이죠. 혈액형이요? A형이요. 예상대로인가요?
물리적으로 6년을, 거의 7년을 쉬었어요. 그래서 그런 경향이 더 심해졌죠. 뒤를 돌아보면서,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도 다시 돌아봤어요. 진심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7년 동안 아무 일을 안 하는 뮤지션 곁에 있어준 회사 대표, 돈을 안 벌어 와도 아무 말 안 하고 힘이 되어 준 아내, 그리고 딸아이. 특히, 아내는 단 한 번도 내게 재촉하지 않았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 힘으로 한 것은 별로 없었어요.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서 음악을 하고, 삶을 살 수 있었죠. 방황하는 시절 힘이 되어 주었다고 말하며 기다려준 팬들. 나에게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죠.
지금 굉장히 가슴이 두근거려요. 내 음악이 어떻게 들릴까, 굉장히 궁금해요.
6년의 갭이 음악을 듣는 사람과 나 사이에 있어요. 6년이라면 외모가 변할 수도 있을 만큼 긴 시간이죠. 나도 변했고, 팬도 변했고, 음악 시장도 변했고, 음악을 듣는 것도 변했다고 해요. 그런데 오히려 그런 변화를 못 느끼고 있어요.
옛날에는 내가 하는 것이 맞고 생각하면 좀 어렵다 싶어도 끌고 갔어요. 팬들과 함께 호흡했기 때문에 이건 이해할 수 있을 거야, 하는 자신이 있었어요. 현역 선수였으니까. 6년 전에는 팬들이 내 음악을 어떻게 느낄지 알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판단 기준은 하나밖에 없었어요. 내가 생각해서 옳다는 음악을 하자. 2007년 서른여덟 먹은 남자가 할 수 있는 음악을 하자고요. 예전에는 어떻게 들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희미해졌죠. 희미해지니까 조금은 고집을 부리고, 딴 데 신경을 쓰기도 하고. 또, 팬들의 반응을 들으면서 ‘아, 지금 내가 그렇구나.’ 하는 걸 깨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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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매여 있던 삶을 버리고 훌쩍 떠나고 싶었어요. 낯선 공기, 낯선 사람들 속에서 외롭고 공허한 맘에 위로를 받아보려는 욕심도 함께 떠났던 것 같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고 보고 듣고 느꼈지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깨달은 건, ‘떠난다는 건 돌아갈 곳이 있기에 가능한 일’. 현실이 무겁지만 그곳이 나 있을 곳이라는 사실이었어요. 여행 내내 걸어 다니며 토이 6집을 들었습니다. 참 고마웠어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희열 님 목소리에.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요.
6년 6개월. 나에겐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의외로 금방 지나가더군요. 그 사이에 연애도 하고.
음악 안 해서 심심하지 않았냐고요? 마음속으로 앨범을 3~4장을 냈어요. 냈다가 접고, 냈다가 접고.
나는 천성이 뮤지션이고 예술가가 아니에요. 나는 남들보다 예민한 감성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에요. 진짜 예술가는 보고 있으면 진짜 예술가 같아요. 돌아이 같기도 하고, 저렇게 살아서 인간 구실 할까 싶기도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죠. 저는 정반대예요. 굉장히 현실적인 면이 많고. 저는 일상이 주는 게 제 전부예요. 좋은 음악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그건 저와 같은 직업군의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에요. 정말 직접적인 영감은 예술적인 감흥이 아니라 하루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생활의 단편. 그게 다예요. 그게 없으면 음악을 못 해요. 저는 그걸 굉장히 잘 풀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행이 가지는 의미가 커요. 쉬면서 여행도 많이 했고, 생각도 많이 했고. 즐거웠어요.
여기를 떠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도록 좋아요. 여행 자체는 그리 즐겁지 않을 때도 있어요. 기대보다 못한 여행지도 있죠. 그런데 신기한 건, 돌아오면 그게 너무 좋은 추억이 되어 있단 말이죠. ‘몇 년 전에 산토리니, 그때, 거기서 이런 일이 있었지. 아, 맞아. 거기선 우리 뭘 먹었지, 무슨 이야기를 했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어요. 사진을 보기도 하고. 우리가 인생에서 같은 주제로 꾸준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 여행 외에는 의외로 없어요.
6년 동안 다닌 여행지 중에 기억나는 곳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모두 모여 있었던 남부 프랑스예요. 여의도 광장만 한 여름의 노천식당, 커피…… 천국 같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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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딱 11년이네요. 열일곱 꾸벅꾸벅 졸며 들었던 음악도시. 그대가 추천해준 노래 테이프에 녹음하고 열아홉 독서실에서 돌아오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와 교복 벗기 전에 라디오부터 켰던. 그때 그 시절 일기를 보면 날짜 옆에 항상 <음도중~ATM>이란 글이 꼭 있어요. 함박눈 내리던 스무 살 창밖 연인들 보며 부러운 마음 ‘구애’로 위로 받고 ‘고백’을 들으며 어린 맘에 설레어 잠 못 이루고 꿈을 꿨던 나를 좀 더 사랑하고 좀 더 멋진 사람이 되고픈 꿈을 꾸게 해줬어요. 거창하지 않은 진솔한 말들로 다독여 주고, 자학 개그로 웃게 해주고 좋은 노래로 꿈꾸게 해주고. 덕분에 좋은 음악도 많이 듣고 많이 알게 되었어요. 외로울 때 즐거울 때 슬플 때 웃고 싶을 때 언제나 나를 다독여 주고 설레게 해준 그대가 있었기에 정말 행복합니다.
쉬면서, 음악에 대해서, 내 존재에 대해서, 팬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이번 앨범은 개인적으로 토이의 마지막 앨범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고맙다는 말, 하기 참 쑥스럽잖아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하기에 특히 겸연쩍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말하고 싶었어요.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았죠. 그런데 앨범이 잘나가네요. 마지막이 아닐지도 몰라요. 하하하.
다시 진지하게 말해 보죠.
토이라는 이름, 토이라는 시스템을 이제 그만 해야 할 것 같아요. 음악을 같이하는 건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죠.
객원가수들과의 호흡이요? 저는 일단 선택한 사람을 믿어주는 편이에요. 어떤 갈등이 생겨도 제가 참는 편이죠. 일단 선택을 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하기 때문에, 선택한 후에는 별로 어려움이 없기도 하고요.
그런 어려움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토이에 기대하는 것들, 객원가수들과 버라이어티함. 그런 것이 내게 짐이 돼요. 시장에서 기대하는 것, 비용과 수익에 대한 기대가 운신의 폭을 좁게 만들어요. 기대 받는 건 좋죠. 그치만 마음이 움직이는 폭이 좁아져요.
인디 영화를 찍는 분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러나 투자를 많이 받으신 분들은 영화 찍으면서 투자자의 얼굴이 떠오르잖아요. 그것과 비슷해요.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싶다, 내가 이야기하는 상황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조금 더 편하게 음악 하고 싶어요.
요즘 들어 녹음실이 갖고 싶어졌어요. 처음에는 좋은 어쿠스틱 피아노를 갖고 싶었는데, 그래서 녹음실도 갖고 싶어졌어요. 그전에는 그런 생각 안했는데.
또, 팬들과의 만남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단지 ‘겸연쩍다’는 이유만으로 안 하기도 하고, 현실적인 문제로 못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하고 싶어요. 힘들더라도 모든 게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건 아내 때문에 바뀐 거예요. 아내와 외국에 나가서 하우스 콘서트 같은 걸 같이 볼 때, ‘왜 이거 안 하냐?’고 물으면 ‘이건 이래서 못하고, 뭐든 안 되고….’ 몇 달 전만 해도 피를 토하면서 말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들도 의미가 있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반응이 아무리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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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과 직장생활을 함께하던 시절, 리포트와 발표 준비로 까맣게 밤을 지새우며 건조하게 지내야만 했던 그 시절, 제 마음에 잠시나마 여유를 느끼게 해 줬던 음악도시 시장님. 소년적인 순수함과, 여성적인 감수성을 지닌 어린왕자 같은 희열 님. 음악이 이리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거구나 깨닫게 해주신 분. 토이의 음악은 언제나 제게 충만한 행복감을 안겨 주었어요. 또한 음악도시를 통해, 속닥속닥 바로 내 귀 옆에다 대고 시시콜콜 살아가는 얘기, 음악 얘기들을 풀어내는 당신을 알고부터, 까맣게 지새웠던 그 밤이 제겐 정말 소중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희열 님께서 음악도시 시장직을 그만두던 그날, 떨리는 목소리와 흐느낌으로 진행했던 그 막방을 들으며 따라서 같이 엉엉 울었던 게 정말 얼마 전의 일 같은데. 그땐 그랬어요. 희열 님의 나지막한 톤의 수다를 더 이상 못 듣는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었죠. “행복하세요.”라는 마지막 멘트를 듣고서야 행복한 잠을 잘 수 있었던 때였으니깐, 다신 행복한 꿈을 꾸지 못하리라, 그땐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다시 우리의 곁에 돌아와 줘서 고마워요. 제 인생에 가장 치열하면서도 힘들었지만, 열정과 꿈으로 가득 차 있던 20대를 다시 기억하게 해줘서. 그리고 다시 당신의 음악을 들으며 행복한 꿈을 꿀 수 있게 해 주셔서요. 토이는 나의 20대를 추억하는 가장 큰 아이콘입니다.
30대 후반이에요. 결혼도 했고, 아이도 태어났어요. 예전에는 이별과 사랑 노래를 쓸 때 솔직할 수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면 기억도 변하듯, 윤색하고 과장해서 가사를 쓰는 것 같아요. 지금, 내가 진심을 담아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역사 아내와 딸에게 전하는 말이 아닐까요?
이번 앨범에서 제일 솔직한 노래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딸에게 보내는 노래’. 가족이 있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만 해결하지 못하는 외로움은 있어요. 드러나지 않는 외로움. 그건 내 나이 때 사람들이 겪는 본질적인 외로움인 것 같아요. 뭔가 상실되었다는 외로움이죠.
20대 때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30대에는 벌어져요. 자신이 이렇게 살고 있으리라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 다들. 20대에는 꿈을 꾸잖아요. 인생에 꿈과 희망과 다양한 색깔의 기대가 있었는데 30대에는 희망이 꺾여지고, 삶은 더 구질구질해졌죠. ‘안녕 스무 살’ 같은 노래에 그런 외로움을 담았어요.
그리고 삶도 변해요. 예전에는 내 삶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80% 이상이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아내와 딸이 내 삶의 80% 음악은 20% 정도? 10, 20 정도를 가지게 되면서 처음에는 이래서 과연 될까, 창작으로 먹고 사는 사람으로 두려움도 있었어요. 한때 너무 고민했었어요. 지금은, 이런 게 다 사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해요. 아내가 있고, 딸이 있어서 생기는 행복감이 100이라면 분명 거기에서 상실되는 것이 20 정도는 있어요. 또, 아이에 대한 걱정, 가정에 대한 걱정이 생겨요. 행복하냐고요? 네. 행복해요.
고마운 일들이 많아서 깜짝깜짝 놀라는 요즘입니다. 10년 후에도 이렇게 깔깔 웃을 수 있게, 같이 재미있게 늙어가요. 와 준 모든 분들, 고마워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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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한참 방황하던 그 시절에,
밤마다 나에게 나지막한 음성으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다른 누군가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알려줘서 thank you, toy
감수성이 예민하던 그 시절에,
밤마다 나에게 나지막한 음성으로
내가 듣는 음악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그것보다 훨씬 다양한 음악이 있다고 알려줘서 thank you, toy
시디를 산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최근에,
여전히 나지막한 음성으로
6년 6개월 만에 6집이 나왔다고,
제대로 된 음질을 즐겨보라고 알려줘서 thank you, toy
내 학창 시절을 함께하던 토이가 나와서 행복한 요즘입니다.
‘안녕’은 만남의 인사이기도 하고, 이별의 인사이기도 하다. ‘안녕’에는 만남과 이별, 그리고 또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소망이 담겨 있다. 안녕, 토이. 안녕, 유희열. 다음에 또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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