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키건의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읽다
이치석의 『전쟁과 학교』를 읽는 도중에 서점에서 존 키건의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발견했다. 두서없이 책갈피를 넘겨 가며 읽다가 프랑스혁명 이후 “의무교육이 도입되면서 신병으로 충원될 자원[학생]들은 규율과 징계에 익숙해졌고, 군사훈련에 적합하도록 훈육되었다”라는 구절을 보고 책을 샀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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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0. 존 키건의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지호, 2004)을 읽다.

이치석의 『전쟁과 학교』를 읽는 도중에 서점에서 존 키건의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발견했다. 두서없이 책갈피를 넘겨 가며 읽다가 프랑스혁명 이후 “의무교육이 도입되면서 신병으로 충원될 자원[학생]들은 규율과 징계에 익숙해졌고, 군사훈련에 적합하도록 훈육되었다”라는 구절을 보고 책을 샀다. 인용된 대목은 이미 반쯤 읽은 『전쟁과 학교』의 주장과 부합했다. 프랑스혁명이 점화해 놓은 민족주의적 열정은 내부의 질서를 유지하고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방어하기 위해 상비군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근대적 공교육을 떠맡은 학교가 ‘국민 만들기’와 ‘병사 만들기’를 동시에 수행했다.

집으로 돌아와 단번에 읽어 치운 이 책에 대한 소감은, ‘분糞 밟았다’고밖에 더 할 말이 없다.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서구식 민주주의가 정착된 국가에만 부여하면서 그들만이 평화의 일꾼으로서 전쟁을 할 자격이 있다는 어조와, 민중이 주체가 된 모든 투쟁을 ‘페어플레이’가 실종된 공명정대하지 못한 “방해 행위?암살?학살”로 몰아붙이는 논리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정부)에게만 부여하는 것은, 원래 유럽 제국주의자들이 만든 악법이다. 근대 이전의 전쟁은 왕이 항복하는 것으로 종전이 됐다. 하지만 민족 단위의 국민국가가 생겨나면서, 왕은 항복을 해도 민중이 계속해서 저항하는 일이 생겨났다. 게릴라 혹은 파르티잔이 탄생한 것이다. 유럽 공법은 그런 귀찮은 일을 막기 위해,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에 한정했고 정규군만이 교전의 주체라고 못 박았다. 흔히 전쟁 포로에 대한 인도적 보호 장치라고 알려진 제네바협약은, 이를테면 정식으로 군복을 입고 견장을 갖춘 정규군만을 전쟁 포로로 예우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부당한 외세의 무력에 굴복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민중 투쟁이 모조리 범죄자에 의한 범죄행위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강대국들끼리 정해 놓은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약소국가의 민중 투쟁은 한낱 불량배의 그것으로 격하된다.

2003년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군이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전쟁에서 개전 초기에 미군의 포로가 된 이라크군은 현재 UN이 정한 국제전쟁포로재판소가 아닌 쿠바에 있는 관타나모 미군 기지에 구금되어 있다. 미 국방성에 의하면 이들은 전쟁 포로가 아니라 범죄자이다. 까닭은 교전 당사국이었던 미국에 의해, 이라크가 ‘국가’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국의 편의주의는 이라크를 국가가 아닌 범죄 집단, 즉 ‘악의 축’이라고 명명했던 바,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인권 침해가 끊이지 않는 것은 애초부터 이들이 포로의 지위를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제 협약을 통해 우주는 비군사화되었”다, “미국과 구소련은 핵무기 수를 줄여 왔고 계속해서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또는 거의 모든 국가가 “대인지뢰 사용을 금지”하는 데 서명했다, 와 같은 언명은 지나치게 설명이 부족하다. 저자는 미국이 방금 거론된 세 가지 국제 협약을 지속적으로 어겨 왔으며 준수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전혀 지적하지 않는다. 영국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한 번도 추악한 전쟁에 가담한 적이 없었다고 공표하는 이 책은, 아주 놀랍게도 영국이 자랑한다는 BBC 라디오의 강연물이라고 한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다”라는 말을 비틀어 “국민교육은 정치의 연장이요, 전쟁은 국민교육의 연장”이라는 것을 증명한 『전쟁과 학교』를 읽다가, 갑자기 분憤이 치밀어 쓴 이 독후감은 “내가 말했던 것은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다”라던 푸코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25년간 영국 육군사관학교에서 강의를 했던 존 키건은 영미 제국주의 담론에 사로잡힌 가엾은 복화술사일 뿐이다. 존 키건의 담론화된 제국주의 또는 제국주의화된 담론이 불러온 재앙이 7?7 런던 폭탄 테러였다고 믿는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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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의 독서일기 7
장정일 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07월
‘독서일기’라는 제목으로 1993년부터 꾸준히 출간되어온 『장정일의 독서일기』 그 일곱 번째 권. 이번에는 2003년 4월부터 2007년 3월까지 87편의 독서일기를 추려 담았다. 일곱 번째 독서일기에서 장정일은 에세이를 포함한 문학 분야 40권과, 사회 비평을 비롯해 예술과 동서양의 역사,정치,인물을 포함한 인문 분 44권, 과학과 실용 분야로 분류되는 3권 등 총 87권의 도서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랜덤하우스 코리아와의 제휴에 의해 연재되는 것이며, 매주 수요일 총 2개월 간(총 8편) 연재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존키건 #전쟁과 우리가 사는 세상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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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05.14

포로를 존중하는 협약은 아는데 그게 이라크 포로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데다가 그 이유가 정규 군복을 입은 군인이 아니기 때문에라니. 역시 법은 강자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것같네요. 강국이 만든 법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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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일

어린 시절의 꿈은 '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면서 아침 아홉 시에 출근하여 다섯 시면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 시까지 책을 읽는 것'이었다 한다. 책읽기는 그가 그토록 무서워하고 미워했던 아버지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학교를 싫어했던 그는 삼중당문고를 교과서 삼아 열심히 외국 소설을 독파했고, 군입대와 교련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핑계로 드디어 1977년 성서중학을 끝으로 학교와의 인연을 끊는다. 그러나 1979년 폭력범으로 소년원에 수감되면서 그는 학교와 군대의 나쁜 점만 모아놓은, 세상에서 가장 몹쓸 지옥인 교도소 생활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의 경험은 「하얀몸」을 비롯한 그의 시의 바탕이 된다. 오랜 정신적 방황을 겪은 그는 박기영을 스승으로 삼아 시를 배우기 시작하여 마침내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강정 간다」외 4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시운동』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왕성한 시작 활동을 하였고, 1987년에는 희곡 「실내극」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극작활동도 시작한다. 그리고 같은 해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고 연이어 시집 『길안에서의 택시잡기』를 발표하면서, 지금껏 문단에서 경험해본 적이 없던 '장정일'이라는 '불온한 문학'이 드디어 '중앙'에 입성했음을 알린다. 1988년 『세계의 문학』 봄호에 단편 「펠리칸」을 발표하면서 소설가를 겸업하기 시작한 그는 소설집 『아담이 눈뜰 때』(1990), 장편 『너에게 나를 보낸다』(1992), 『너희가 재즈를 믿느냐』(1994)를 연이어 발표하고 이 소설들이 모두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며 '장정일'은 드디어 우리 문화의 뚜렷한 코드 상징으로 자리잡는다. 그러나 1996년 『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발간한 후 그가 파리에 있는 그의 아내인 소설가 신이현을 만나러 출국한 사이, 한국에서는 외설시비가 일어나고 자신의 소설이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포르노로 규정받고 있던 그해의 마지막날, 장정일은 파리에서 자진 귀국하여 당당히 자신의 작품에 대해 변론한다. 그러나 영화 <거짓말>이 무죄판결을 받은 것과 대조적으로, 법원의 최종판결은 유죄. 그리고 또 한번의 구속으로 이어진다. 당시 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 강금실은 후에, 『장정일 화두, 혹은 코드』라는 책에서 당시의 장정일과 재판에 대한 글 <장정일을 위한 변명>을 썼다. 그 사이 한국에서의 평가와는 달리 『내게 거짓말을 해봐』는 일본에서 발간되는 등 해외에서 더 호평을 받고, 그는 스스로 대표작으로 꼽는 『중국에서 온 편지』(1999)와 자전적 소설 『보트하우스』(2000)를 펴낸다. 그의 '독자 후기'를 모은 『장정일의 독서일기』도 5권까지 펴내며 그는 지금 대구에서 평생 소원인 책읽기와 재즈듣기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머리같이 쓸데 없는 데서는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노모가 바리깡으로 직접 깎아주는 빡빡 머리와 헐렁한 골덴 바지 그리고 청색 면 티 차림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