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미식 탐정 소설 『식탐정 허균』
맛 좋은 음식이 있다면 조선 땅 어디든 쫓아가는 허균이 전대미문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나섰다.
글 : 출판사 제공
2025.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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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을 수상하고 ‘궁궐 기담’ 연작 등을 펴내며 역사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이들을 조명해 온 현찬양이 이번에는 조선 최고의 천재 허균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식탐정 허균』을 출간했다. 압도적인 식탐과 특출난 미각으로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식(食)탐정의 활약을 담은 이번 소설은 기발한 전개와 짜릿한 반전을 이어가며 박진감 넘치는 추리의 재미를 선사한다. 2021년 MBC 드라마 극본 공모에 당선된 〈식탐정 허균〉을 소설화한 이 작품은 현재 MBC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었다.



작가님께선 그간 희곡과 극본, 괴담, 로맨스판타지 소재까지 폭넓은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해 오셨어요. 『식탐정 허균』은 『홍길동전』의 저자로 잘 알려진 허균이 의문의 살인 사건을 해결하며 명탐정으로 거듭나는 이야기입니다. 허균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가 있으실까요?

대학교 다닐 때 '취재필드워크'라는 극작과 수업을 들었어요. 무슨 작품이 쓰고 싶은지 아직 명확하지 않을 때 신문 기사나 책이나 어떤 한 줄의 문장에서 출발해서 질문을 이어 나가고 결국은 취재를 통해 쓰고 싶은 작품을 구체화하는 수업이었어요. 그때 두 가지를 생각했는데 하나는 “궁녀들이 밤중에 괴담회를 연다”라는 문장이었고 하나는 조선 최초의 음식 비평서로 알려진 허균의 『도문대작』이었어요. 전자는 ‘궁궐 기담’ 시리즈가 되었지만 후자는 한동안 아이디어에 머물러만 있었어요. 탐식을 하는 양반 허균은 캐릭터적으로는 재밌지만 기승전결을 가진 서사로 풀기엔 부족하지요. 생각을 이어 나가다가 허균 정도의 천재라면 탐정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음식과 탐정을 결합했고 『식탐정 허균』이 탄생했습니다.

 

‘조선 최고의 천재’로 불리면서도 식탐 많고 허당기 가득한 허균도 매력적이지만,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하는 재영과 작은년도 색다른 재미를 주더라고요. 소설 속 인물들을 설정할 때 영감을 받거나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허균에 대한 기록을 보면 기록자들의 평가가 굉장히 박합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허균을 두고 “천지간의 괴물”이라고 하고 『어우야담』에서는 “허균은 사람이 아니다. 필시 여우, 뱀, 쥐 등의 정령일 것이다”라고 해요. 허균 스스로도 “저는 일찍이 엄한 훈계를 받지 못하고, 그래서 제멋대로 방탕하게 굴며, 저도 모르게 경박한데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고 자평할 정도입니다. 자신을 경박한 양반이라고 주제 파악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네요.


재영은 허균의 ‘그림자 친구’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실존 인물이에요. 하지만 서자 출신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알려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제가 상상할 여지가 많았습니다. 천재지만 경박한 허균과 평생 우정을 유지하려면 재영은 도덕심이 강하고 유학의 논리를 따르는 성인군자여야 했어요. 아무래도 나이도 몇 살 어려야겠고 잘생긴 것이 좋겠지요. 허균은 화려하고 예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니 나이 든 사람이 잔소리하는 것보다는 젊고 잘생긴 남자가 훈계하는 것을 좋아할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재영을 허균 옆에 그냥 붙여둘 수는 없으니 허균의 수사에 도움이 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으면 했어요. 그런데 마침 허준과 허균이 같은 시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 조사해 보니 역시 친인척 관계더군요. 재영이 허준에게 의술을 배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잘생긴 데다 장원 급제 할 정도로 공부도 잘하고 무술도 잘하는 재영이 뛰어난 의원이기까지 해서는 밸런스가 맞지 않기 때문에 능력치에 제한을 걸어야 했어요. 그래서 의술에 재능이 없는 의원, 죽은 사람만 진찰할 수 있는 의생 재영이 만들어졌습니다.


작은년의 경우에는 허균과 재영, 두 사람의 지나치게 완벽한 세상을 깨뜨릴 만한 사람이 필요했어요. 허균과 재영, 두 사람만 있다면 아마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소설에서 둘 다 입을 다물고 있다가는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지요. 그러니 두 사람을 어르고 달래고 꾸짖을 만한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기가 세고 옳은 말만 하면서도 허균까지 휘두를 수 있는 사람. 그것이 작은년입니다. 양반인 허균과 중간 지대에 있는 재영, 그리고 백성이자 여자, 이혼녀로서 조선 시대 가장 아래에 있는 작은년 세 사람이 균형을 맞춘다면 완벽한 삼각형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번 작품의 부제는 ‘화왕계 살인 사건’입니다. 소설 안에서 화왕계는 ‘꽃을 기본으로 하되 신분에 차등이 있는 조직적인 계’라고 표현이 되는데요, 화왕계를 중심 사건으로 설정한 계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우선 ‘계’라는 것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물론 요즘도 목돈을 모으기 위한 ‘계 모임’을 많이 하시죠. 하지만 조선 시대에 두레나 품앗이보다 성행했던 ‘계’는 계원의 상호 부조·친목·통합·공동 이익 등을 목적으로 일정한 규약을 가진 공동체였습니다. 촌락 단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향약계’도 있고 농민이나 어민이 공동 생산을 위해 조직한 계도 있었습니다. 사교적 기능을 목적으로 한 계도 있었고요. 서양의 ‘클럽’이나 ‘길드’ 같은 쓰임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반란 집단이 만들어진다면 ‘계’로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사교 집단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성격인 것이죠. 실제로 기축년에는 ‘대동계’가 반역을 했다는 혐의로 역당으로 몰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소설에서 확인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식탐정’이라는 제목답게 소설에는 다채로운 음식들이 등장합니다. 당시의 해장국 역할을 했던 ‘효종갱’이나 허균의 선조 허종이 술보다 더 훌륭한 음식이라며 이름 붙인 ‘승기악탕’까지 음식의 묘사나 유래가 구체적으로 등장해서 생소한 음식임에도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더라고요. 음식들을 고른 기준이나 소설엔 미처 담지 못했지만 흥미로웠던 음식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허균은 양반이고 양반 음식은 궁중 음식과도 연결되거든요. 그래서 허균은 제법 사치스러운 음식인 승기야기나 유밀과 등을 즐기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효종갱 역시 배달이 안 되는 시기에 하인을 직접 부리는 사람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죠. 반대로 작은년은 백성들이 먹는 음식을 주로 만들고 먹습니다. 명이나물을 알아보고 그 쓸모를 찾는 것은 작은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에요. 두 사람의 음식이 섞이게 하는 것이 이번 소설에서 제가 신경 쓴 부분입니다.


취재한 것들 중 재밌는 음식들이 많은데 ‘보리수단’이라는 음식이 있어요. 보리에 찹쌀가루를 묻혀 끓는 물에 넣으면 보리알이 탱글탱글하게 떡처럼 되는데 이것을 반복하면 버블티 안에 들어 있는 쩐주처럼 돼요. 여기에 차갑게 만든 오미자차를 붓고 꿀을 타면 새콤달콤한 것이 시원하고 맛이 좋아요. 조선식 버블티인 셈이죠. 카페에서 테이크아웃 잔에 넣어 판다면 인기 메뉴가 될 것 같습니다.

 

책에는 전라도 일대를 무대로 사건을 파헤치는 허균의 통쾌한 활약이 펼쳐집니다. 조선 시대 전라도를 중심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기 위해선 많은 자료 조사가 필요했겠다 싶더라고요. 전라도를 주요 배경으로 선택하신 이유나 참고하신 레퍼런스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유배지가 전라도여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요. 우선 음식이 맛있고 바다와 강, 평야에서 모두 식재료가 나오니 그곳에서 나오는 음식들을 모두 선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라도는 곡물 생산량이 많고 해상 교통이 발달함에 따라 상업도 발달하니 방납이 성행하게 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조금 스포일러를 드리자면 『식탐정 허균』 2권에서는 방납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역시 함열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은 제 선택이기보다는 허균의 선택이긴 합니다. 허균이 실제로 그 시기에 함열로 유배를 갔거든요. 유배지를 결정하는 것은 의금부 관원들의 소관인데 기록을 보면 당시 양반들은 유배를 갈 때에 뇌물을 주고 유배지를 고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 함열은 현재의 함열과 경계가 조금 다릅니다. 함열은 바닷가에 인접해 있고 금강과도 가까웠으며 농사도 지을 수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풍요로운 지방이었습니다. 그래서 허균이 그곳으로 가길 원했어요. 새우, 게, 방어, 준치 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런데 막상 함열로 갔더니 만족스럽지 않았던지 허균은 유배지에서 이런 편지도 보냅니다. “사람들이 이곳(함열)은 방어와 준치가 많이 난다고 하여 이곳으로 유배지를 원했던 것인데 금년 봄에는 전혀 없으니 운수가 기박합니다.” 편지를 받은 사람은 결국 연어알젓을 보내주었다고 합니다. 아무튼 먹을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긴 한 것 같습니다.

 

『식탐정 허균』은 2021년 드라마 극본 공모에 당선된 작품을 소설화한 작품으로 MBC 드라마 제작을 확정 지었습니다. 소설 집필과 함께 드라마 시나리오 작업도 진행 중이신데요, 소설 집필과 드라마 작업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드라마에서 선보일 허균의 모험은 어떤 모습일지 살짝 귀띔해 주신다면요?

형식적으로 보자면 소설과 드라마는 서사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이야기 구조도, 공식도, 만들어지는 방식도 완전히 달라서 늘 새롭습니다. 소설은 문장으로 이루어지고 드라마는 장면으로 이루어진다, 이 부분을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정말로 어렵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새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내용상으로 보자면 드라마 〈식탐정 허균〉과 소설 『식탐정 허균』은 사건의 뼈대는 같지만 디테일이 다릅니다. 그래서 소설의 독자분들과 드라마의 시청자분들이 제각기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미스터리와 괴력난신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현찬양입니다. 이번에는 실존 인물인 허균을 주인공으로 한 조선 시대 미스터리로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음식을 기반으로 사건을 추리합니다. 식욕을 잃은 더운 여름밤에 서늘한 오락거리가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허균과 재영, 작은년의 모험이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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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정 허균

<현찬양>

출판사 | 래빗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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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