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뮤지컬] 신춘수 프로듀서, 매일 새로운 꿈을 꾸며
SPECIAL① 매일 새로운 꿈을 꾸는 오디컴퍼니 신춘수 프로듀서의 이야기
글ㆍ사진 이솔희
202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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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특집_<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사람들>


매일 밤, 무대 위에는 크고 작은 세계가 새롭게 태어납니다. 무대 위와 아래, 당신의 삶을 가득 채운 세계는 어떤 모습이었나요?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첫 번째 인터뷰이는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입니다.


신춘수 프로듀서는 올 한 해의 삼분의 일은 비행기 안에서, 또 다른 삼분의 일은 미국과 영국에서 보냈다. 뮤지컬 <위대한 개츠비>의 괄목할 만한 성공 덕분이다. <위대한 개츠비>는 한국인 최초의 브로드웨이 리그 정회원인 신춘수 프로듀서가 아시아 최초로 브로드웨이에서 단독 리드 프로듀서를 맡아 진두지휘한 작품이다. 2023년 10월 미국 뉴저지의 페이퍼밀 플레이하우스에서의 트라이아웃 공연을 발판 삼아 지난 4월 성공적으로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브로드웨이 내 41개 극장 중 두 번째로 규모가 큰 브로드웨이 씨어터에 자리를 잡은 <위대한 개츠비>는 개막과 동시에 매출액 100만 달러 이상을 기록해 ‘원 밀리언 클럽’에 입성했고, 토니어워즈에서 의상 디자인상을 수상하는 등 작품성을 인정 받아 흥행 중이다. 인기에 힘입어 2025년 4월 웨스트엔드 진출을 앞두고 있다. 동시에 한국에서는 박천휴&윌 애런슨 콤비의 창작 뮤지컬 <일 테노레>가 연장 공연까지 성사할 정도로 큰 사랑을 받았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뮤지컬로 꼽히는 <지킬앤하이드>는 국내 초연 20주년을 맞아 다시 한번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인터뷰를 위해 오디컴퍼니 사무실에 마주 앉은 신춘수 프로듀서의 손에는 답변이 빼곡하게 적힌 질문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매 질문 막힘없이 답했고, 상기된 얼굴로 꿈과 목표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길만을 걸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이루어 냈는지 설명하는 데 많은 말은 필요치 않았다. 오십대 중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총기가 어려 있는 그의 눈빛이 모든 것을 설명했기 때문이다. 변함없는 뮤지컬 계의 돈키호테, 풍차를 향해 달리는 듯 보였으나 결국에는 거인과 맞서 싸워 승리를 쟁취한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프로듀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 표기식

인터뷰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회의를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습니다.

정신이 없죠?(웃음) 요즘은 <위대한 개츠비> 영국 공연을 준비하느라 바빠요. 그간 <지킬앤하이드> 20주년 공연 준비에 집중하느라 다른 데에는 신경을 많이 못 썼거든요. <위대한 개츠비> 영국 공연은 한창 배우 오디션을 보는 중이에요. 브로드웨이 공연도 제레미 조던, 에바 노블자다 등 오리지널 캐스트의 마지막 공연 일이 정해져서, 그 빈 자리를 채울 수 있는 새로운 배우들의 오디션을 보고 있고요.


그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내셨습니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소회가 어떠신지요.

2024년은 제 삶에서 잊을 수 없는 해 중 하나가 될 거예요. <위대한 개츠비>를 개발해서 브로드웨이에 입성했고, 4월 개막 이후로 계속해서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토니어워즈의 의상 디자인상을 비롯해서 여러 상도 받았어요. 인기에 힘입어서 웨스트엔드 진출도 확정이 되었고요. 한국에서는 <일 테노레> <지킬앤하이드>가 성공적으로 공연됐죠. 한 마디로 제가 목표했던 모든 게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한 해였습니다.


2009년 <드림걸즈>, 2014년 <할러 이프 야 히어 미>, 2015년 <닥터 지바고>까지 꾸준히 브로드웨이의 문을 두드리다가, 드디어 2024년 <위대한 개츠비>로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 성공은 현재진행형이고요. ‘꿈을 이뤘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어느 정도요. (웃음) 물론 브로드웨이에 입성한 것은 10년 전이지만, 이번 <위대한 개츠비>의 경험이 새로운 깨달음을 줬어요. 단지 ‘공연을 올린 것’과 ‘나의 공연이 사랑받는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더라고요. 제가 체감하기에도 그렇지만, 특히 외부의 평가에 많은 변화가 생겼죠. 한국 사람이 리드 프로듀서로서 작품을 개발하고, 그 작품을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 입성시켰다는 사실을 굉장히 높이 평가해요. 굉장한 스토리라고요.


<위대한 개츠비>가 보여준 성과는 저에게도 뜻깊었습니다. 성공은 결국 지치지 않고 꿈을 꾸는 사람의 몫이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 같아서요. 

이전에는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올리는 것’ 자체가 목표였다면, 이제는 단순히 공연을 선보이는 것을 넘어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달려갈 때가 온 것 같아요. 젊은 시절부터 막연하게 꿈꿔왔어요. 브로드웨이에서 성공을 거두는 프로듀서가 되는 걸요. 여러 번의 시도가 곧바로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한결같이 걸어왔죠. 그런 실패의 과정을 통해 성장하면서 이번 성과를 낸 거고요. 지치지 않고 꾸준히 꿈꿔서 좋은 결과를 냈다는 사실이 보람찹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트라이아웃 공연을 준비할 때부터 ‘승부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여기서 무언가를 보여주면 본 공연으로 바로 이어질 수 있을 거라는 직감이 있었거든요. 감사하게도 브로드웨이에서 활약하는 배우인 제레미 조던과 에바 노블자다가 오디션을 통해 프로덕션에 합류했고, 좋은 배우들이 캐스팅 되었으니 제가 할 일은 완성도 높은 작품을 보여주는 거였어요. 보통 브로드웨이 트라이아웃 공연은 400만 달러 정도의 제작비를 들이는데, 저는 700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어요. 작품의 퀄리티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제 전략이 먹힌 건지, 브로드웨이에 빠르게 진출할 수 있었어요. 단독 리드 프로듀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마음 먹은 바를 빠르고 확실하게 실행할 수 있었죠. 지난 작품들에서는 단독 리드 프로듀서가 아니었기에 경험하지 못했던 점이에요.


여담이지만, <위대한 개츠비>는 배우와 창작진을 비롯해서 프로덕션 전체의 분위기가 정말 좋아요. 그 점도 공연이 성공하는 데에 중요한 몫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리지널 캐스트인 제레미 조던과 에바 노블자다가 프로덕션을 떠나는 게 참 아쉬워요. 요즘은 제레미 조던 차기작 현장에 커피 차를 보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정을, 문화를 보여줘야죠. (웃음)


사진: 표기식

과거 당신의 세계를 구성했던 존재는 무엇인가요?


저에게는 늘 ‘꿈’이 가장 큰 키워드였습니다. 처음 사회에 발을 디뎠을 때는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 뮤지컬 업계에 뛰어들었을 때는 세계적인 프로듀서가 되는 것이 제 꿈이자 저의 존재 이유였어요. 다른 어떤 것도 바라보지 않았죠. 꿈을 향해 달려오는 과정에서 저를 지탱해 주었던, 저의 세계를 구성했던 또 다른 존재는 책이에요. ‘독서는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말을 믿었습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 위에서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 때는 늘 책을 친구로 삼았어요. 꿈은 품고 있었지만 실행은 하지 않았던, 방황하던 어린 시절의 제가 중심을 잡을 수 있게 도와준 것도 책이었습니다. 꿈과 책, 제 젊은 시절을 돌아보면 이 두 가지가 가장 큰 존재였습니다.


단지 꿈을 꾸는 데서 머무르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실행력이 대표님의 자산 중 하나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계속해서 꿈을 꾸고 행동할 수 있는 건가요. 꿈을 꾸는 건 어렵고,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하는 건 쉬운 일인데요.

저는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에요. (웃음) 도전에 대한 용기가 내재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사람이 도전을 주저하는 이유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잖아요. 도전을 앞두고 두려운 마음이 들 때는 없으신가요.

긍정적인 면모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거든요. 도전하는 과정 속에 험난함이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실패가 두렵지 않아요. 물론 도전 후 실패로 인해 상처받을 때도 있긴 하지만, 도전하기 전 마주하는 걱정, 두려움은 그저 도전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빠르게 결과를 내려고 하는 편이 아니에요. 어떤 것을 목표로 삼으면 그 목표를 향해 끝까지 가려고 하되 짧게 보지는 않아요. 길고, 멀리 보죠. 또,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제 안에 존재하는 여러 결핍 때문이기도 해요. 어떤 목표를 이루더라도 늘 부족함을 느끼거든요. 그 부족함을 채워야 한다는 마음이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해요. 그래서 이번 <지킬앤하이드>도 균형감을 맞추기 위해 이런저런 변화를 주었고요.


제작 작품이 국내외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요즘에도 완벽함에 대한 결핍을 느끼시나요.

그럼요. 오히려 제게서 결핍이 없어지는 순간, 저 스스로가 평범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요? 저는 제 공연을 완벽하게 즐겨본 적이 손에 꼽아요. 늘 어떤 부분이 아쉬운지 계속해서 고민하고,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공연을 봐서 그런지 공연을 한 번 보고 나오면 기운이 쭉 빠져요.



사진: 표기식


제작자로서 당신의 현재를 구성하는 것 중, 과거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요.


앞서 말했듯이 작품에 대해 가지는 결핍, 그리고 그 결핍을 채워가며 작품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마음가짐. 이 두 가지는 지금까지 변함없었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길 바랍니다.


대표님의 ‘현재’를 장면으로 구성해 본다면 아마 <위대한 개츠비> 공연을 마치고 뉴욕의 한 호텔에 혼자 머무르고 있는 장면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 않을까요. 방문을 사이에 두고 성취감과 공허함이 공존하는 시기였겠죠.

공연이 끝나고 타임스퀘어를 빠져나오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어요. 사람으로 북적이던 공연장에 있다가, 홀로 호텔에 돌아오면 적막이 흘렀죠. 공허함, 외로움을 많이 느낀 동시에 그 외로움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은 시기예요. 호텔 방에서 홀로 느낀 적막함을 비롯한 여러 감정을 잘 견뎌내야 더욱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호텔 방에 홀로 앉아 또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미국에서는 꼭 새벽녘에 눈이 떠지더라고요. 해 뜨는 걸 보면서 생각을 많이 했는데, 대부분의 생각이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어요. 힘들 때도, 외로울 때도 있지만 결국 지금의 나는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꿈꿨던 길을 가고 있으니, 행복한 사람이 아닐 수 없죠.


사진: 표기식


앞으로 만들어 나갈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요.


우선 <위대한 개츠비>는 2025년 4월에 런던 콜리세움 극장에서 개막할 예정이고요. 독일, 호주, 일본, 중국 등 여러 국가와도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 내 투어 공연도 계획 중에 있고요. 2025년과 2026년에는 <위대한 개츠비>가 기세를 어떻게 펼쳐 나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거예요.


<위대한 개츠비>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니 이제 또 새로운 시작을 해야죠. 여러 작품을 개발 중입니다. 당분간은 개발 중인 작품의 리딩, 워크숍 공연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질 것 같아요. 기존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이는 것은 물론, 새로운 창작 작품을 발굴하면서 글로벌 컴퍼니로 도약하는 게 오디컴퍼니의 가장 중요한 목표입니다.


최근에 <지킬앤하이드> 20주년 공연을 준비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는 창작 뮤지컬을 꼭 만들어야겠다.’ 그게 <위대한 개츠비>일 수도, <일 테노레>일 수도, 혹은 또 다른 작품이 될 수도 있겠죠. 이제는 전 세계에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뮤지컬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품고 나아갈 계획입니다.


인간 신춘수의 삶은 앞으로 어떤 모습이길 바라나요.

저는 언제나 꿈을 향해 질주하는 사람이었어요. 이 세상이 하나의 공연이라면, 저는 언제나 제가 주인공이었죠. 내 일에 집중하고, 내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저로 인해 상처받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어요. 배우들에게는 늘 ‘서로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으면서, 막상 저는 그러지 못한 거죠. 그런데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문득 인생은 이렇게 혼자 달리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혼자 달려왔다고 생각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날 지탱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도 깨달았고요. 그래서 이제는 치열하게 일하기보다 행복하게 일하고 싶어요. 그 행복한 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잘 표현하고 싶고요. 내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사람, 즉 좋은 사람이 되는 게 궁극적인 목표예요. 아직은 부족하고 서툴지만요. 애쓰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새로운 세계’를 탄생시킨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매일 새로운 꿈을 꾼다는 것. 무대 위에서 매일 새롭게 펼쳐지는 세계를 보면서 저도 늘 새로운 꿈을 꿉니다. 관객들의 영혼을 울리는, 감동을 줄 수 있는 공연을 탄생시키는 꿈을요. 공연이 끝나고 행복하게 퇴장하는 관객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제게는 가장 행복한 일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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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희

더뮤지컬 에디터. 뮤지컬과 연극에 관한 모든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