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그리고 도시가 만든 문학
누구든 어떤 방식으로든 카프카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독자인 우리의 특권이니까요. 책 읽기 좋은 계절에, 더 많은 책을 탐구해 보시며, 글을 마음껏 오해하시면서 자신만의 독서를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소설가가 걸어 본 소설가의 도시. 2024년 서거 100주기를 맞은 카프카를 기리는 마음으로, 그가 태어나고 자란 애증의 도시 프라하를 소설가 최유안이 걸었습니다. 카프카를 안내자로 삼아 걸었다는 구석구석의 산책길에서 두 소설가는 어떤 만남을 가졌을까요. 그 소회를 들어 보고자 합니다.
『카프카의 프라하』는 소전서가의 문학 기행 에세이 『도시 산책』 시리즈의 첫 시작을 알리는 책입니다. 책을 쓰면서 소설가로서 소설가의 도시를 산책하는 일, 어떠셨어요?
뭔가 특별하기도 했고, 비장해지는 느낌이었어요. 저도 아무런 목적 없이 여행할 때가 있는데요. 이번엔 소설가라는 정체성으로, 카프카라는 아주 중요한 동행자와 함께, 프라하를 소개해야 한다는 목적을 안고 여행을 하게 되었잖아요. 그래서 프라하와 카프카를 한 몫에 더 잘 읽어야겠다는 욕심에 마음이 분주했어요. 카프카는 태어나서부터 죽는 순간까지 프라하를 떠나지 못했어요. 그러니 어린 시절부터 중장년이 된 카프카까지, 그의 발이 닿은 곳마다 내 발이 직접 닿을 수 있다는 점이 프라하 산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도 프라하에서 이 책을 쓰는 동안 유명 관광지라 하더라도 카프카와 연관된 장소가 아니라면 전혀 가지 않았고요. 그럼에도 충분히 마음이 꽉 찬 여행을 하고 올 수 있었던 것은 카프카 덕분이었겠죠.
이 책은 총 다섯 개의 산책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산책길에 대한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직업과 문학 사이의 고민이 보이는 『N잡러 카프카』의 산책길. 최유안 작가님도 다른 직업과 소설가를 겸하고 있으셔서 유난히 더 공감했으리라 추측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공감하셨는지, 그리고 이 산책길에서 했던 생각들이 궁금합니다.
얼마 전에 이 책에도 등장하는 노에미라는 체코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데, 그 친구가 최근에 체코에서 나온 카프카 관련련 기사의 한 구절을 읽어주었어요.
“그가 일하던 회사에서 승진했을 때,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터뜨렸다는 기록이 있다. 몇 분 동안 지속되었고, 카프카는 사무실 밖으로 끌려나가야 했으며, 그것은 그에게 끔찍한 수치였다.”
체코의 어느 역사학자가 한 말인데요. 저는 이 웃음이 정말 기뻐서 웃는 건지, 어이가 없어서 웃는 건지 헛갈렸어요. 일기에 보면 『변신』 을 쓴 후 카프카가 이런 말을 했거든요.
“밑바닥까지 완벽히 불완전하다. 그 당시에 출장으로 방해만 받지 않았어도 훨씬 더 잘 쓸 수 있었을 거다.”
이렇게 글 쓸 시간도 부족한데 승진이라뇨. 저도 회사 다닐 때는 새벽 5시 전에 일어나서 출근 전까지,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시간을 쪼개어 글을 썼어요. 근데 또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문학을 하기 위해서거든요. 그런 모순을 완벽히 공감했던 것 같아요.
두 번째 산책길은 사랑의 산책길 『애인들』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그것이 카프카의 문학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해지는 산책길입니다. 카프카에게 있어서 애인들, 사랑은 어떻게 작용했을까요?
누군가를 사랑하고 깊은 관계를 맺는 과정은 소중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저는 똑똑한 카프카가 관계라는 가시 울타리로 보호받는 것, 가둬지는 것, 상처받는 것, 버려지는 것을 모두 두려워했던 거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마누엘 칸트의 사례도 책에 썼는데요. 카프카 역시 상처를 주고 입히는 것을 무서워하다 보니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고, 그러니 나중에 밀레나 같은, 만나지도 못한 채 편지로 애정을 나누는 상대도 등장하게 되죠. 사람은 누구나 다른 이와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가 있잖아요. 잘 다져진 관계는 인간에게 안정감이라는 울타리가 되어 주고요. 하지만 그런 관계는 깊어질수록 상처도 깊어지는 법이죠. 문학과 직장만으로도 충분히 분주했던 카프카는 어떤 인연을 맺는 것에 굉장히 머뭇거렸던 것 같아요.
세 번째 산책길은 『가족』입니다. 카프카가 태어나고 자란 집, 초등학교가 있던 거리, 그리고 카프카와 가족이 묻힌 묘지까지. 한 가족의 삶이 담겨 있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독자의 입장에서 작가님이 아버지로 인해 힘들어했던 카프카를 보며 안쓰러워하는 말들이 유난히 더 눈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100년 전 한 가족의 시간이 담긴 산책길은 어땠나요?
카프카 묘지에 가면 가족들과 함께 잠든 카프카를 만날 수 있어요. 카프카의 가족 중에서도 아버지와의 관계가 가장 잘 알려져 있죠. 아버지가 먼저 죽은 아들을 보내며 적은 부고에는 학위를 받은 카프카만 남아 있어요. 저는 이런 아버지를 끝내 용서하지 못했던 카프카도, 아들을 완전한 객체로 인정하지 못한 아버지도 정말 안쓰러웠어요. 아버지가 자식에게 바라는 희망은 일종의 애정이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은 온전히 아버지 것이지 자식의 것은 아니니까요. 우리 주변에도 심심치 않게 자식의 일을 탐탁지 않아 하는 부모님들이 계시겠죠. 세 번째 산책길을 걸으며, 그렇다면 아버지의 생각은 아버지대로 두고, 카프카는 자신의 삶을 살았더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어요. 계속해서 아버지에게 나 여기 있다고, 봐달라고 하지도 않고요.
네 번째 산책길은 카프카가 가장 즐겁게 걸었던 길, 바로 『친구』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카프카는 대체로 어둡고, 우울하고, 불안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이 보고 오신 이 산책길 속 카프카는 우리가 가진 편견 속 카프카랑 다른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본 평범한 청년 카프카,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카프카에 대한 제 인상은 노에미의 아버지, 토마스 크라우스 씨를 만나면서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분은 1954년에 태어나셨고, 카프카처럼 카렐대 법대를 나왔고, 유대인 공동체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고 계시고 계신 분인데요. 그렇지 않아도 좁은 유대인 공동체에서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카프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다고 하셨어요. 제가 인터뷰 첫 질문으로, 카프카는 어느 정도로 우울한 사람이었냐고 물었는데요. 친구들하고 있을 때만큼은 마른 체구에 낄낄거리길 좋아했다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의 글만 보고 매우 어두운 인간일 거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았다고 했어요. 그때부터 카프카에 대한 제 태도가 좀 달라졌던 것 같아요. 아, 카프카도 그냥 인간이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마지막 산책길은 소설을 써 내려간 『카프카의 작업실들』입니다. 소설가에게 소설을 쓰는 장소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며 읽게 되는 산책길이었어요. 또 최유안 작가님이 상상하며 그린 카프카의 모습이 생생해서 더 잘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소설가 최유안으로서 카프카의 문학 세계가 탄생하고 자라난 장소를 따라 걸어본 경험은 어떠셨을까요?
『도시 산책』 시리즈의 첫 번째 소설가로, 첫 번째 탐구 작가인 카프카를 이렇게 대면하게 된 것이 개인적으로 참 즐겁고 감사했어요. 체코 사람이지만 카프카는 독일어로 소설을 썼고 다행히 저도 독일어를 해요. 그 덕분에 자료를 원서로 읽고 일부는 번역해서 책에 실었어요. 아마 이런 기회가 없었다면 평생 카프카를 이렇게 천천히 톺아 보지 않았을 거예요. 더군다나 100년 전의 카프카가 프라하 여행을 안내해 주는 기분이 들곤 했는데요. 어떤 날은 꽃을 들고 지나가는 카프카를, 어떤 날은 서류 가방을 들고 뛰어가는 카프카를 상상하는 건 정말 재밌었어요. 무엇보다 카프카가 그랬듯이, 저 역시 내가 쓰고 싶은 것을 쓰면서, 나만의 길을 닦아가자, 하는 다짐을 그와 약속처럼 하고 오게 되었어요. 아침마다 문을 열어 제 숙소 맞은 편에 있던 그의 작업실을 바라보면서요.
산책길 끝마다 카프카의 짧은 소설을 직접 옮기시고 소개하셨습니다. 특히 네 번째 산책길, 『가족』에 실린 아주 짧은 소설이자 산문 『나무들』에 대한 글이 유독 눈에 띕니다. 카프카가 뿌리를 내리고 있던 토양이 가족이었을까요?
카프카가 표현한 나무들은 한겨울, 척박한 곳에 묻혀있어요. 카프카에게 가족들이 그랬을 것 같아요. 카프카는 가족에게 의지했지만, 벗어나고 싶어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가족들을 떠나 작업실을 꾸렸지만, 결국 몸이 아파 견딜 수 없었을 때 자신의 집을 처분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오펠투프 하우스로 돌아가요. 뿌리, 근원,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카프카의 일생. 저는 그렇게 『나무들』을 읽었어요.
그런데 이런 해석은 제 독법에 따른 것이고, 누구든 어떤 방식으로든 카프카를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독자인 우리의 특권이니까요. 책 읽기 좋은 계절에, 더 많은 책을 탐구해 보시며, 글을 마음껏 오해하시면서 자신만의 독서를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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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최유안> 저/<최다니엘> 사진15,300원(10% + 5%)
「도시 산책」 시리즈 첫 책 카프카의 문학과 함께하는 프라하 여행서 다섯 개의 산책길을 따라 펼쳐지는 카프카의 삶과 문학 문학 출판사 [소전서가]는 「도시 산책」 시리즈 첫 책으로 최유안 소설가가 쓴 『카프카의 프라하』를 펴낸다. 가장 문학적으로 도시를 누리는 방식을 제안하는 「도시 산책」 시리즈는 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