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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이들의 그늘을 걷어주는 베스트셀러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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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 관심있는 것은 최종적인 비밀의 폭로가 아니라, “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과정이에요.

『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저 | 문학동네


나는 형제가 없다. 나는 오이를 싫어한다. 나는 열한 살 먹은 고양이와 함께 산다. 나는 올 여름 바다에서 수영했다. 나는 김애란의 모든 소설을 읽었다. 

김애란의 신작 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에 등장하는 자기소개 방식으로 나에 대해 소개해본 것이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두근두근 내 인생』 이후 13년 만에 나온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책의 제목이 된 ‘거짓말’을 중심으로 서로의 비밀을 엿본 세 아이들이 통과하는 한 시절을 그린다. 하나의 거짓말과 네 개의 진실 말하기는 소설 속 자기소개 게임에서 왔다. 새 학기 다른 친구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다섯 문장으로만 표현하되 그 중 하나에는 반드시 거짓말을 포함시키는 것이 룰이다.

서로의 비밀과 거짓말에 얽혀 들게 된 세 아이는 지우, 소리, 채운이다. 먼저 지우는 최근에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반려 도마뱀 용식에 의지하며 지내고 있다. 겨울방학 동안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어 독립할 계획을 세웠다. 그림을 그리는 소리는 손을 통해 타인의 죽음을 감지하는 능력을 갖고있다. 소리는 지우가 일을 하러 떠난 동안 도마뱀 용식을 맡아주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채운은 일 년 전 아빠가 병원에 실려가고 엄마는 교도소에 수감되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다. 채운은 그날 벌어진 일의 진실을 어쩐지 지우가 알고 있는 것 같다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어떤 때 아이들에게 비밀이 생겨나는가? 내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삶의 세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때다. 그 중에서도 나의 부모가 다른 아이들의 부모와 같지 않거나, 부재하거나, 미흡할 때. 지우는 엄마가 자살을 택했다고 믿고, 채운은 포악한 아빠를 증오했고, 소리는 오래 투병한 엄마를 버겁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나라는 존재가 아직 부모에 속해있는 시절에는 그런 것들이 정말로 큰 결함처럼 느껴지니까. 그런 순간에 아이들에게는 구멍이 생겨난다. 

내 구멍을 인식하고 있는 아이들일수록 타인의 구멍을 잘 발견할 수 있다. 세 아이가 서로의 비밀에 가까워지는 건 그 이유다. 채운은 자신의 비밀을 들킬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소리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감지해 달라 부탁하고, 지우는 그날 밤 자신이 목격한 채운의 비극적인 사건을 만화로 그려낸다. 세 아이는 의심하고 또 의지하면서 서로의 비밀을 들추고 동시에 자기 삶의 진실에도 점차 가까워진다. 

소설은 세 아이의 시점을 오가며 비밀이 서서히 드러나는 방식을 따른다. 하지만 소설이 관심있는 것은 최종적인 비밀의 폭로가 아니다. 대신 “하나의 비밀이 다른 비밀을 돕는”(『이중 하나는 거짓말』 , 135쪽)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어떤 이야기가 있으며 그 이야기가 자신을 왜 찾아왔는지”(같은 책, 106쪽)를 밝히는 것이다. 때론 영어 학습 앱의 마스코트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도 하고, 웹툰이나 그림으로 자신이 목격한 것을 그리며 아이들은 진실을 마주할 용기를 품는다. 

“지우는 그걸 이야기로 한번 풀어보고 싶었다. 한마디로 요약되지 않고, 직접 말했을 때보다 그림으로 그렸을 때 훼손되는 부분이 적은 어떤 마음을. 그러다 보면 자신도 그 과정에서 뭔가 답을 알게 될 것 같았다. 혹은 다른 질문을 발견하거나.”(같은 책, 82쪽)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당연히 ‘성장’한다. 작가가 출간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듯 성장이란 결국 “자기 이야기에 몰두하다 종래에는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되고 내 고통만큼 다른 사람의 슬픔도 상처도 이해하게 되는 과정”에 다름 아닐 테니까. 이 소설이 ‘성장소설’로 분류되는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성장소설은 ‘성장 중인 아이들이 등장하는 소설’일뿐만 아니라 ‘한 아이가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소설’이기도 할 것이기에, 나는 이 이야기를 써준 작가에게 무척 고마운 마음이 든다. 가족의 그늘이 내 미래 위로 드리운 것 같아 자꾸만 위축될 때, 이런 소설이 그 그늘을 걷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누구의 자식도 되지 마(...)가족과 꼭 잘 지내지 않아도 돼”(같은 책, 182쪽)라는 소설 속 당부가 정말로 누군가에겐 구원이 되기도 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드는,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선 안 될 것 같다는 조바심도 그렇기에 괜찮아진다. 이후의 이야기는 온전히 아이들의 몫이라고 믿으면 되기 때문에.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설 바깥에서 이어질 아이들의 현실을 느긋하게 낙관하는 것은 아니다. 어른이라고 해서 비밀과 거짓말을 온전히 매듭지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어른이 된 내가 아니까. 다만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에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내게는 그 시절을 해석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사실이다. 내게 그 힘을 길러준 것도 오래 전 김애란의 소설이었다. 그러니 그 힘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생겨나길, 이 소설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길, 나는 다만 바라게 된다. 그게  “뭔가 겪은 사람”(같은 책, 10쪽)로서, 그리고 끝내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내 몫일 것이다.  

아, 그리고 ‘오이를 싫어한다’는 건 거짓말이다. 나는 오이를 아주 좋아한다.


*필자 | 한소범

199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국문학과 영상학을 전공했다. 발표된 적 없는 소설과 상영되지 않은 영화를 쓰고 만들었다. 2016년부터 한국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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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한소범(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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