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소방관이 소설로 쓴 생생한 구조 현장 이야기
캐릭터들의 표정, 말투, 움직임은 모두 내가 보고 겪은 동료들의 모습입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4.10.18
작게
크게


『거묵골 구조대 사람들』은 소방관으로 일하며 다양한 구조 현장에서 생명을 살리고자 최선을 다했던 작가의 실제 경험이 바탕이 된 소설이다. 이야기는 과거의 상처를 지닌 특수부대 출신 소방관 태우가 거묵골 시골 소방서로 좌천되면서 시작된다. 자존심 강한 무목, 차분한 베테랑 치우, 그리고 까칠한 태우에게 집착하는 태풍 등 거묵골이라는 가상의 탄광촌을 배경으로 고군분투하는 소방관들의 선택과 고뇌가 진솔하게 펼쳐진다.


삶의 끝자락에서 구조대는 언제나 최후의 희망이다. 거듭되는 위기 속에서 이들은 각자의 상처와 불안을 마주하며, 과연 서로를 구할 수 있을까? 생사의 경계가 모호한 현장에서 벌어지는 긴장감 넘치는 구조 장면과 소방관들의 복잡한 감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독자들은 긴장과 감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작가 김강윤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어지는 7개의 질문과 답에서 확인해 보자.



『거묵골 구조대 사람들』라는 소설을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 봤던 ‘분노의 역류(Back Draft)’라는 영화를 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 영화에 나오는 소방관들의 모습을 한 장면, 한 장면 가끔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어요. 세 권의 에세이를 쓰고 나니 허구의 이야기를 창작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고, 나아가 만약 내가 ‘분노의 역류’같은 이야기를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욕심을 내 봤습니다. 매우 단순했어요.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들을 글로 표현해 보고 싶었죠.


거묵골이라는 독특한 지명에도 나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제가 원래 정했던 제목은 『거북골 119구조대 사람들』이었습니다. 최초 시놉시스를 출판사에 보낼 때 그렇게 보냈어요. 고향이 경북 김천시 구성면인데 그 '구'가 거북 '구'였거든요. 소설 초반부에서 태우의 누나가 불타 죽는 곳의 배경이 바로 제 고향 동네입니다. 그런데 출판사 담당자와 계약을 위해 만났을 때 펼쳐 본 계약서에 『거묵골 구조대 사람들』이라고 되어 있는 거예요. 오타인지 아니면 담당자가 일부러 고쳤는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 ‘거묵골’이 더 좋아 보였습니다. 그렇게 계약서에 사인했고 돌아와 초고의 제목을 『거묵골 구조대 사람들』이라고 고쳤습니다. 이후 소설의 배경을 탄광촌으로 정했고 '흑산'이라는 행정지명에 '거묵골'이라는 전통지명을 더하니 그럴듯해 보였어요. 지금 다시 그때 담당자를 만나면 덕분에 좋은 제목이 만들어졌다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첫 소설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집필과정에서 유독 애정이 가는 캐릭터가 있나요?


모두가 쉽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사연이 있다는 전제를 두고 시작한 글이기에 표현하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애정이 가는 캐릭터는 주인공 김태우입니다. 어릴 적 트라우마의 형성부터 그가 가진 성격이나 인성을 세세하게 표현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습니다. 참 이 인간은 인생 힘들게 산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더 악랄하고 치졸한 인간으로 그리려 했습니다만 태우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이끌어가는 건 아직 제 능력 밖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했습니다. 태우에게 영웅적인 모습은 처음부터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도 자꾸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모습이 자꾸 그려져서 중간에 많이 고치기도 했습니다..


거묵골 구조대가 마주하는 다양한 구조 현장마다 묘사가 세밀해서 현장감이 느껴집니다. 소방관으로서의 현장 경험이 주는 현실적인 감각이 소설 속 캐릭터나 상황 설정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소방관이 되고 나서 정말 많은 출동을 다녔습니다. 근무하던 구조대의 관할 구역이 전국에서도 출동 많기로 유명했거든요. 현장에서 본 것들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지만 여운은 깊게 남아 언제든 꺼내볼 수 있을 정도로 마음속에 잘 저장되어 있습니다. 희한하게도 기억은 시각적으로만 남지 않습니다. 오래된 사체에서 나는 썩은 냄새나 피를 한 바가지 흘리면서 죽어가는 사람의 피비린내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후각적으로 기억이 되살릴 수 있습니다. 살갗이 타들어 갈 것 같은 화염의 위력이나 죽겠다고 절규하는 자살 기도자의 목소리같이 다른 감각도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그저 그런 감각을 글로 표현했을 뿐입니다.


캐릭터들의 표정, 말투, 움직임은 모두 내가 보고 겪은 동료들의 모습입니다. 다만 어느 한두 사람의 것은 아니에요. 여러 사람의 특징이 엉켜있습니다. 전체적인 상황, 가령 작중에 나오는 고속도로 교통사고 상황은 실제 제가 겪었던 출동이고 그곳에 있었던 나의 동료들이 직접 했던 행동들입니다. 매우 기계적인 움직임이었고, 믿기지 않을 만큼 프로페셔널했기에 잊히지 않습니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제3자의 시선으로 그려내려고 노력했는데 막힘없이 써 내려 갔던 것 같습니다.


긴급한 구조 현장에서 등장인물들이 겪는 선택과 갈등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러한 테마를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이고, 이를 통해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소방관들은 출동 가는 차 안에서부터 긴장합니다. 현장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그런 건데 그것을 상쇄시켜주는 것이 바로 올바른 판단입니다. 긴박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해야 하거든요.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판단은 팀장이 합니다. 하지만 판단 자체를 한 사람의 몫으로 두지 않습니다. 세부적이고 낮은 단계의 판단도 무시하지 않고 모여야 합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활동하는 구조대원 각자의 몫이 있는 겁니다. 그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팀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거묵골 구조대원들 각자를 영웅적으로 묘사하고 싶었지만 결국 그들도 ‘사람들’이라는 것도 말하고 싶었습니다. 불산 누출 현장에서 독단적이고 욕심 많은 태우의 거침없는 판단이나, 악인이지만 신 회장을 살리자고 울부짖던 만수의 선택 그리고 태풍의 눈물까지 매 순간 살아가며 겪어야 하는 선택과 갈등의 순간들은 결국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 일상이니까요. 나의 판단, 나의 선택만이 옳다고 여기기보다 ‘우리’ 또는 ‘팀’의 선택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글을 쓰며 했습니다.


작가로서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쓰면서 스스로 느낀 점이 있나요?


민망함과 부끄러움입니다. 에필로그에 언급했지만 소설을 쓰는 동안에도 젊은 소방관 둘이 순직했습니다. 먼저 간 동료들이나 크게 다쳐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동료들을 생각하면 내가 과연 글을 통해 나의 동료들을 말할 자격이 있나 고민됩니다.


징징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만 우리의 현실은 슬픈 것이 사실입니다. 여전히 1년에 10명 남짓한 동료들이 현장에서 목숨을 잃습니다. 같은 숫자의 동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 땅에 무수히 많은 직업 중에 우리 일만 힘들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기 작정하고 일하는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먹고 살려고 하는 것이 우선인 일인데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일에 매달려 있는 현실이 무서운 것이지요.


내가 겪은 것이 다가 아니므로 내가 쓴 소설에도 소방관의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습니다. 소방관이 아닌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소방관의 모습을 단편적으로만 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혹여라도 이 책을 읽는 분들이라면 이런 현실을 조금 알아만 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이 소설에서 동료의 의미를 강조하신 것 같아요. 작가님께 동료는 어떤 의미인가요?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것은 똑같습니다. 소방관들도 그렇습니다. 여느 직장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몸으로 부대끼는 일을 하다 보니 다투고, 반목하는 일도 허다합니다. 반대로 한 몸처럼 일하기도 합니다. 내 목숨 네가 지켜주고, 네 목숨 내가 지켜주는 일이니 네 몸, 내 몸이 없는 겁니다. 난 그런 동료들이 좋습니다. 계급이 존재하는 제복 공무원이지만 그냥 형, 동생들입니다. 시커멓고 덩치 큰 무뚝뚝한 남자들이 있는 직장이지만 삶 자체가 영화처럼 매 순간 치열합니다. 그렇게 십수 년 지내고 이제 와 동료들을 다시 보면 짠할 때도 있습니다. 지금은 소방학교에서 동료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종종 한창 출동 다닐 때 생각하면 ‘아, 그때 누구누구 아니었다면 나도 불귀의 객이 되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동료들은 그런 존재입니다. 그들이 있어 내가 살고, 나도 그들을 살리는 존재입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신가요? 차기작으로 준비하는 원고가 있다면 어떤 책이 될지 궁금합니다.


『거묵골 구조대 사람들』을 쓰면서 이야기가 자꾸 확장되어 가는 것을 스스로 느꼈는데 그럴 때마다 두 번째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무척이나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략의 줄거리를 이미 만들어 놨습니다. 특히 설한국과 박나리의 내면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둘의 이야기를 많이 서술해볼까 합니다. 출동의 형태도 좀 더 다양해지고,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인한 갈등도 생각해놨는데 앞으로 어찌 될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준비 중인데, 평생 일만 하다가 어느 날 시한부 선고를 받고 잃을 게 없는 한 남자가 모든 것을 걸고 가족을 지키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평소 문학, 영화, 인간관계, 가족, 자연 등에 대하여 끄적여 놓은 생각들을 정리해서 산문으로 써낼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1년에 두 권의 책을 계속해서 써낼 생각입니다.



0의 댓글
Writer Avatar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