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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승 칼럼] 당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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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독자가 되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거리 이름은 그들의 종교에서 가져왔다. 길이 곧 기도가 되는 걸음의 끝, 가장 높은 지대에 사원이 있다. 작년부터 사원과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자주 시간을 보낸다. 종교이자 길의 이름은 정류장 이름이기도 했다. 버스가 지나가고, 버스 안에 탄 사람들도 지나가고, 그들 입장에서는 내가 지나가는 것일 테고. 어쨌든 지나가리라는 믿음이 필요했다. 그렇게 한참 있다가 지나가는 공통의 눈들을 보며 알게 되었다. 종교와 길의 이름이 정류장 이름이자 특정 인종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걸. 

그도 그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할랄 푸드점 앞에서 몇 번 영상통화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새벽 3시쯤 편의점에 가던 길이었는데, 그의 가족이 사는 곳과 이곳의 시차가 잠깐 궁금했던 기억이 있다. 버스 기다려요? 내가 묻자 그가 또박또박 팔, 일, 오, 육이라고 말했다. 8156번 버스는 이 정류장에 서지 않을 텐데요. 그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를 보는 내 표정도 비슷했을 것이다. 8156번 버스는 물론이고 정류장에 정차하던 다른 번호의 버스들도 오지 않은 채 한참 시간이 흘렀다. 그의 얼굴이 처음보다 어두워졌다. 그가 기다리는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정류장에 있기로 마음먹은 건 그 얼굴 때문이었다. 멀리서 번쩍, 빛이 허공에 날카로운 선을 긋는 게 보였다. 구름의 방향이 일순 바뀌었다. 무언가 그와 나의 위치 사이에서 동요하는 게 느껴졌다.  

버스는 오지 않는다. 서쪽 40km가 바다와 인접해 있고, 서남쪽으로 다른 땅의 경계와 인접하며, 남쪽과 동북쪽으로는 침입자들이 지키고 있는 곳이 버스의 종착지다. 그와 나는 기다린다. 기다리다가 안다. 그가 아부 파디를 찾으러 간다는 것과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 말할 수 없어서 종종 쓰기도 하는 나는 그에게 종이와 연필을 건넨다. 잠시 망설이던 그가 종이를 내려놓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나는 내 등을 내준다. 사람은 아주 조금씩, 부분적으로 죽을 때도 빛을 낸다. 등을 세로에서 가로로 눕히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등이 간지럽다가 묵직해질 때쯤 그는 멈춘다.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기를 낯선 이의 손에 맡기고 끌려가던 여자의 두 눈

집집마다 불을 붙이고 환호하던 군인의 동공

팔과 다리를 흙으로 덮지 않고 가버린 굴착기 기사의 외눈에 대해 절대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붉은 흙을…


그는 그의 언어로 쓰고 나는 나의 언어로 읽는다. 준 조던1 의 ‘집으로 향하며’를 떠올린다. 그가 삽으로 떴지만 내려놓을 곳을 찾지 못한 것 같은 “붉은 흙”을 떠올리려 애쓴다. 그는 자신이 쓴 글을 내가 가져도 좋다고 했다. “붉은 흙”을 갖기에 나는 너무 파랗다. 대신 남은 종이와 연필을 돌려받지 않기로 했다. 그가 종이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미안하다고 말했다. 왜, 하고 그가 물을까 봐 겁이 났지만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모든 문장은 누군가에게 진실한 말을 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시작된다. 그렇게 시작되지 않은 모든 말들은 사과해야 한다. 말하고 싶지 않다는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어제 폐허를 뒤로하고 재스민을 심는 한 여자의 사진을 보았어요. 그는 자신이 아는 여자일 거라고 했다. 여자를 위해서 물을 가져가야겠다고 했다. 금방 오겠다고도 했다. 몇 발 걷다 돌아서 그가 물었다. “당신, 있습니까?” 갑작스런 굉음이 그 말의 가운데 부분을 가져가버렸다. 질문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하고 나는 어중간하게 웃었다. 나를 따라 그가 처음 웃었다. 빠른 걸음으로 경사진 길을 내려가는 그의 등에 그 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그가 오지 않는다. 어쩌면 기다림은 헤어짐의 단위. 기다림 하나, 기다림 둘. 가만히 서서 자꾸 헤어진다. 그가 사라진 길 쪽에서 개 한 마리가 느릿느릿 다가온다. 개는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그건 개의 잘못이 아니다. 인간은 무엇이든 파괴할 수 있다. 그건 인간의 잘못이다. 개가 이빨을 보이지 않고 지나간다. 맞은편에서 아이들이 팔을 머리 위로 높이 들고 길을 건너온다. 십 분마다 한 명씩 살해되는 아이들, 만 명의 아이들이 팔을 들고 길을 건너는 일을 배우지도 못한 채 떠났다. 그는 왜 오지 않을까. 기다리면서 후회한다. “당신, 있습니까?” 그가 물었을 때 당신은 버스를 기다리라고, 물은 내가 구해오겠다고 왜 말하지 않았을까. 

그가 내 몫의 물까지 구하느라 아직 돌아오지 못하는 걸까 봐 점점 애가 탄다. 그가 없는 사이 버스가 올까봐, 그가 아부 파디를 만나지 못할까봐 재스민을 심는 여자에게 물을 전하지 못하게 될까봐 불쑥 눈물이 난다. 그가 두고 간 “붉은 흙”에 얼굴을 묻고 마음을 진정시킨 후 버스가 먼저 도착하는 경우 그에게 남길 메모를 쓰기 시작한다. 


당신과 당신의 아부 파디와 재스민을 심는 여자와 물을 모두 기억하는 나를 8156번 버스에 실을 게요. 내 몸이 기억을 옮길게요. 당신의 불면이 내 불면으로 이어진다는 증거를 찾을게요. 


쓰면서 간절해진다. 쓰는 일은 연쇄를 믿는 일, 연쇄를 의심하는 일. 연쇄하는 일, 연쇄하지 않는 일. 그 모든 진동의 자리에 취약하게 있는 일. 구름의 방향이 다시 바뀌었다. 기억의 예리한 궤도가 정수리를 스쳤다. 아, 시차. 생각났다. 이곳이 6시간 더 빠르다. 여기에서 6시간 빨리 하루를 구해낼 수 있다. 붉은 흙으로 팔과 다리를 모두 덮어줄 수 있다. 물을 줄 수 있다. 내 앞을 지났던 개가 다시 그가 사라진 길을 향해 걷는다. 아지랑이가 걷히고 얼마 전까지 보이지 않던 이정표가 보인다. 멀다. 갈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어쩌면 있다. 준 조던이 도착한 방식. 나는 흑인 여성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이제/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다.2 

8156번 버스는 없지만 그는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다 주려고 떠났다. 요즘도 종종 버스 정류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결국 지나가리라 믿고 싶은 것들이 아직 많다. 물을 마시다가 그가 남긴 “붉은 흙”을 떠올린다. 그 아래 놓인 문장도. 나는 팔레스타인 사람이다. 


가자 지구까지 8,156km, 6시간 시차. 당신, 있습니까? 

그동안 독자가 되어주신 분들, 고맙습니다. 


1 준 조던(June Jordan, 1936-2002) 뉴욕 서인도계 이민자 가정에서 출생. 흑인 퀴어 페미니스트, 시인, 에세이스트, 교수, 활동가로 특히 긴 시간 팔레스타인의 권리 인정을 촉구하며 연대에 앞장섰다. 이 문제로 오드리 로드, 에이드리언 리치와의 우정이 위기를 맞게 된 일화는 당시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새롭게 회자되며 현재 가자에서 일어나는 학살 사건이 우리의 무엇을 위협하는지 거듭 돌아보게 한다. 대표작 ‘집으로 향하며’의 출처는 다음과 같다. June Jordan, ‘Moving Toward Home’, 『In Living Room』, New York: Thunder's Mouth Press, 1993.

2 “I was born a Black woman / and now / I am become a Palestinian.”,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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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승

읽고 쓰고 연결한다. 『100세 수업』, 『아무튼, 연필』, 『짐승일기』, 『술래 바꾸기』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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