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술은 없다, 결국은 인간의 문제
『엑스트로피, 기술은 어떻게 비즈니스를 바꾸는가』 저자 김상윤 서면 인터뷰
디지털 기술로 인한 세상의 변화는 지금부터 매우 가파르게 펼쳐질 겁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나의 일상, 업무, 그리고 모든 영역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칩니다. (2024.09.23)
지금 현대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기술 발전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최근 챗GPT, 비트코인, 공간 컴퓨팅 등의 디지털 기술이 우리 삶에 깊이 파고든 탓이다. 어떻게 하면 기술 발전에 위협을 느끼지 않고 이를 기회로 삼을 수 있을까? 『엑스트로피, 기술은 어떻게 비즈니스를 바꾸는가』는 고민에 빠진 개인과 기업을 위해 기술 변화의 트렌드뿐만 아니라 기술 발전을 어떻게 바라볼지 관점을 제시한다. 이 책을 통해 시대의 변화를 잘 따라가고 싶은 개인이라면 미래에 대한 식견을, 미래를 준비하는 비즈니스 리더라면 지속가능하고 책임감 있는 기술 활용 방향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책 제목에 ‘엑스트로피’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엑스트로피’란 무엇일까요?
제가 강연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떤 변화가 올지에 관심을 갖고,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갈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만 바꾸어도 비즈니스의 흐름이 보이고 앞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기술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새로운 관점이 바로 ‘엑스트로피’입니다.
1980년대 캘리포니아에는 다소 급진적이고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연구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고민이 바로 기술의 긍정적 활용이었는데요. 인간 사회의 불평등, 환경 문제, 생명 연장 등 인간 세상의 보편적 가치 증대에 기술을 활용하자는 것이었죠. 그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철학을 ‘엑스트로피’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독특한 상상력을 가지고 매거진을 창간해 ‘엑스트로피’를 세상에 내놓고 미래 사회 모습을 예견해보기도 했습니다. 놀랍게도 그중에는 비트코인 내용도 있죠.
엑스트로피는 기술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 진화를 이끄는 데 활용되어야 한다는 진보적, 낙관적 관점입니다. 이 책은 이 새로운 관점으로 기술을 다시 바라보고 앞으로의 발전을 예견해보는 책입니다.
80년대 ‘엑스트로피’란 잡지에서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운데요. 이 기술 철학이 지금 현대에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최근 딥페이크 기술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죠. 여중, 여고생 피해자들도 있었습니다. 얼굴 사진을 도용당하고, 일부는 그것이 성착취물에까지 쓰이기도 하여 대중들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제 책의 ‘딥페이크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내용에서 언급한 것처럼, 딥페이크라는 기술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딥페이크 기술은 컴퓨터가 영상을 인식하고 가공하는 기술로 AI 시대의 산물입니다. 다만, 기술의 완성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인간의 욕망들이 얽혀 기술의 부정적 활용을 낳은 것입니다. 딥페이크도 청각 장애인을 돕거나 전 세계 언어 장벽을 해소하고, 교육용 실감 콘텐츠 등의 분야에서는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결국 인간의 문제죠.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진화시키냐는 건데요. 바로 여기에 기술 철학이 필요합니다.
딥페이크가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게 하려면 기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좋은 쪽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엑스트로피 기술 철학이 필요한 것이죠. AI 분야 외에도 책에서 언급한 비트코인, 공간 컴퓨팅 분야는 현재 인간의 욕망이 거대하게 충돌하고 있는 특이점에 도달하고 있는 기술들입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기술은 우리에게 해가 될 수도, 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 나쁜 기술은 없습니다. 그것을 잘못된 방향으로 활용하는 우리 인간들의 문제입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과 미래 예측이 담긴 이 책을 누가 읽으면 좋을까요?
앞으로의 미래 기술이 궁금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기업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찾으시는 기획자, 마케터 그리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임원분들께도 인사이트를 제공합니다.
또한 『AI 사피엔스』를 재밌게 읽으신 분들이라면 이 책도 잘 읽으실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는 『엑스트로피, 기술은 어떻게 비즈니스를 바꾸는가』에서 기술 발전을 앞둔 사람들의 태도를 파도를 대하는 태도에 비유했는데요. 거대한 파도를 눈앞에 마주할 경우, 보통 사람들은 멀리 도망가는 등 피하려고만 하죠. 그런데 일부는 파도를 잘 활용해서 재미를 얻거나 이동의 동력으로 삼기도 합니다. 파도를 우리의 용도에 맞게 활용할 생각을 하죠. 현재 디지털 기술 분야에서 펼쳐지고 있는 변화가 하나의 거대한 파도입니다. AI 역할 혁명, 비트코인 세계관 혁명, 공간 컴퓨팅 공간 혁명이 그것입니다. 저는 이를 특이점 혁명으로 언급했을 정도로 디지털 기술로 인한 세상의 변화는 지금부터 매우 가파르게 펼쳐질 겁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나의 일상, 업무, 그리고 모든 영역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끼칩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해 파도를 피하는 사람이 될지, 아니면 파도를 활용하는 사람, 혹은 이를 넘어 파도를 입맛에 맞게 주도적으로 만드는 사람이 될지, 독자분들과 그 관점과 방법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기술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어떠한가에 따라 정말 미래가 달라질까요? 구체적인 사례가 있을까요?
사람들의 인식과 기술의 발전 방향, 쓰임새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생성형 AI를 생각해봅시다. 같은 기술이지만 딥페이크 산업을 성장시켜 사회적 문제를 만들고 있기도 하고, 신약 개발을 통한 생명 연장을 이루고 있기도 합니다. 책에서 ‘십수 년 내에 인간은 150세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는 점을 언급 드렸는데요. 최근 생성형 AI 기술이 신약 개발에 접목되어, 항암제 등 치료약 분야의 난제를 극복해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앱사이(Absi)라는 미국의 기술 업체는 AI로 인간의 몸속 단백질의 구조를 빠르고 정확하게 밝혀내고, 신약 후보 물질 발굴 과정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켰습니다. 아스트라제네카, 알미랄, 머크와 같은 대형 제약사들은 앱사이와 수천억 규모의 항암제 개발을 이미 진행 중입니다. 이런 치료제 분야 외에도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다양한 신약, 의학 분야의 시도들이 AI로 인해 확대되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블록체인 기술, AI 기술, 공간 컴퓨팅 기술이 현시점의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들로 보고 있습니다. 세 가지 기술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를 앞두고 있는 기술은 무엇이고, 그 기술은 앞으로 비즈니스를 어떻게 바꿀까요?
최근 특이점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분야는 AI입니다. 대다수 전문가는 인류가 수년 내에 AGI(인공일반지능) 시대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AGI란 인간이 할 수 있는 어떠한 지적 업무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는 지능을 가진 AI를 말하는데요. 최근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는 ‘인간만이 창작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선입견을 깨고 있죠. 향후 인간은 AI와 일부 영역에서는 협력하고 일부 영역에서는 경쟁하는 관계가 될 것입니다.
이를 책에서 여러 업종의 사례들을 들어 다루고 있습니다. 책을 보시면 앞서 언급한 제약 산업뿐만이 아니라, 로봇, 마케팅, 디자인, 예술 등 인류의 모든 산업 영역에 해당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실 겁니다.
연 100회 이상, 트렌드에 민감한 많은 기업과 단체에서 작가님을 초청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작가님은 평소 현대 사회의 변화에 대한 인사이트를 어떻게 찾나요?
최근과 같이 변화의 속도가 빠르고 거대한 상황에서는 변화의 디테일에 집중하다 보면 방향을 놓칠 때가 많습니다. 내가 열심히 배우고 있는 툴이 사라지고, 금방 더 좋고 새로운 툴이 세상을 장악하기도 하고, 내가 열심히 노력하여 얻은 지식에 전혀 반대되는 현상이 등장하여 그 지식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도 있죠. 십수 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창작 능력만큼은 AI로부터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생성형 AI가 어느새 침범하게 되었죠. 연구자인 저도 역시나 마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결국 연구자들도 내가 연구하는 분야의 디테일과 함께 거대한 세상의 변화 흐름, 그 속에서 기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큰 시야를 갖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저도 제가 연구하는 기술이 수요 산업에서, 그리고 인간의 일상에서 어떤 용도가 있을지와 함께, 인간의 어떠한 욕구를 해소해 줄 수 있을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인간의 선택을 받게 될지 등에 대해 다각도로 연구하고 고민합니다. 기술은 기술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산물이니까요. 작은 예측은 틀릴 수 있더라도 내가 나아갈 방향이 틀리지 않다면 언제든 조정과 보완이 가능하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AI, 챗GPT 등 기술의 발전에 직업을 잃을까, 혹은 비즈니스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독자들, 급변하는 미래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물론, 향후 AI가 대부분의 영역에서 인간의 지식 노동을 대체하고, 인간의 일상과 직업 세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인간은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인간의 존재 가치와 역할을 스스로 부여하게 될 것으로 봅니다. 과거 기계 혁명이 육체노동을 대체하며 산업 사회가 구축되는 과정에도 이를 부정하며 인류의 종말을 예견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인간은 슬기롭게 변화를 받아들이고 오히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주 5일제와 같은 여가의 가치를 재정립하는 기회로 삼기도 했습니다. AI의 역할 혁명도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하게 될 것이며, 이는 새로운 가능성과 도전을 인간에게 던져줄 것입니다.
결국, 기술로 인해 인류가 더 나은 미래로 가려면 기술을 통한 효율성과 생산성 향상을 넘어 인간 삶의 질을 높이고, 더 공정하고 포용적인 사회를 구축하는 등의 근본적인 인간 욕구를 충족해주는 방향으로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곧 엑스트로피적 사고이자 기술 철학입니다. 주도적 미래와 수동적 미래는 한 끗 차이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고민과 머리를 맞댄 노력은 우리 인간이 원하는 미래로 기술을 이끌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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