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교열전문기자, 우리 말을 바로잡다
사람의 품위는 말로 가려집니다. 누구나 곱고 바른 말을 쓰는 사람을 존경하고 따르잖아요. 그런 멋진 사람이 넘쳐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구성했어요.
SNS, 메신저, 이메일 등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 그만큼 쉽게 쓰고 쉽게 틀리는 우리말을, 29년간 언론사 교열기자를 지내며 기사 속 오류를 잡아내 온 노경아 작가가 생활 속 이야기와 함께 편안하게 바로잡는 책을 펴냈다. 그가 쓴 『어른을 위한 말 지식』은 어문 규칙이나 문법적 설명으로는 도통 익히기 어려웠던 우리말을 재미있는 어원과 생생한 사례를 들어 설명하여 쉽게 이해되고, 고운 우리말을 만나는 기쁨도 함께하는 책이다. 늘 쓰는 말 중에 헷갈리는 단어들의 구분, 잘못 쓰는 한자어의 예, 고운 우리말 소개, 사이시옷과 띄어쓰기에 대한 생각까지, 막연하고 모호했던 우리말 지식이 보다 분명해지는 즐거운 경험이 펼쳐진다. 또한, 각 장의 도입부에 마련된 쉬운 듯 어려운 맞춤법 퀴즈는 독서의 즐거움을 더한다. 우리말의 최전선에서 29년의 시간을 쏟아온 저자의 지식과 통찰을 누구나 알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써내려간 이 책은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하는 ‘어른’들을 깊고 넓은 교양의 세계로 이끌어줄 것이다.
“어의없다”, “문안하다” 같은 맞춤법 실수라든가 “심심한 사과”를 지루한 사과로, “금일”을 금요일로 오독한 일이 얼마 전 온라인상에서 크게 화제가 되었는데요. 어휘력, 문해력 등 최근 들어 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가 무엇일까요?
스마트폰만 켜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동영상을 보며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머릿속에 아는 건 많은데, 바르고 적절한 말과 글로 표현하는 능력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긴 문장을 읽고 이해하는 게 힘들어 스마트폰 대신 책을 잡았다는 청년들과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친구뿐만 아니라 가족과 소통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편리한 세상이지만, 가장 중요한 ‘소통’이 무너졌습니다.
문해력은 단순히 낱말을 많이 아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누구하고든 원활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힘이 곧 문해력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밑바탕이죠. 이제, 모든 연령대에서 우리말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달은 듯합니다.
이번에 펴내신 첫 책 『어른을 위한 말 지식』에서는 어떤 내용을 담고자 하셨나요?
지난해 여름, 독자들과 가까이 소통하고 싶어서 우리말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요즘 유행하는 ‘뉴스레터’ 형식입니다. 편지 이름을 지을 때 참 많이 고민했어요. 고운 우리말을 잘 표현하고 싶어서였죠. ‘달곰한 우리말’. 독자들과 오래 함께하고 싶은 마음에 달콤함보다 덜 단 달곰함을 선택했어요. 너무 달면 쉬이 질리는 법이니까요. 마음이 통했는지 1년 만에 독자가 2만 명 가까이 늘었어요. 독자가 알고 싶어 하는 글감으로 편지를 쓰고, 독자의 편지에 답장을 쓰며 마음을 전했죠. 독자와 함께 만든 ‘뉴스레터’인 셈입니다.
『어른을 위한 말 지식』은 그 편지들을 담았어요. 사람의 품위는 말로 가려집니다. 누구나 곱고 바른 말을 쓰는 사람을 존경하고 따르잖아요. 그런 멋진 사람이 넘쳐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구성했어요. 늘 쓰는 말 중에 헷갈리는 단어들의 구분, 잘못 쓰는 한자어의 예, 고운 우리말, 사이시옷과 띄어쓰기에 대한 생각을 담았어요. 독서의 즐거움을 느끼도록 각 장의 도입부엔 맞춤법 퀴즈도 넣었습니다.
본문 중에 “복날의 한자 복(伏)은 항복, 굴복할 때 쓰는 글자로, 더워서 사람도 개도 엎어진 날로 알려졌지만, 안을 부, 품을 부로도 읽으니 더위에 굴복하지 말고 품에 안고 건강하게 지내보자”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작가님의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졌어요. 여느 맞춤법 책과는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숨 한 번 크게 쉰 후 편안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힘든 시간은 길고 짧을 뿐, 어쨌든 다 지나가잖아요. (하하하~)
『어른을 위한 말 지식』은 남녀노소 누구나 편안하게 읽었으면 좋겠어요. 저를 소개할 때 “맞춤법 등 ‘법’을 싫어하는”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우리말을 딱딱한 틀에 맞춰 다루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단어에 이야기를 입혔어요. 누구나 편안하게 우리말을 마주 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울고 웃으며 책을 읽다 보니 우리말이 저절로 머릿속으로 들어왔다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고백하자면, 저도 글을 쓰면서 울기도, 웃기도 한답니다.
과도한 줄임말, 신조어 등을 방송에서도 여과 없이 남발하면서 점점 소통이 어려워진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작가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큰 인기를 끌었죠. 주인공 덕선이가 자주 쓰는 말 "웬열?"을 저도 예전엔 입에 달고 살았어요. "웬 일이래니?"의 줄임말로, 당시의 신조어예요. 이처럼 신조어와 줄임말은 요즘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닙니다. 늘 있어 왔고, 웃음을 불렀죠.
요즘엔 자고 일어나면 신조어가 생겨나 있을 정도로 생성 속도가 빠릅니다. 그중엔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담긴 말도 있어 무릎을 칠 때도 있어요. 그런데 대부분은 심하다 싶을 정도의 줄임말입니다. 언어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소통입니다. 내가 한 말을 상대가 못 알아들으면, 그 말은 생명을 잃은 것입니다. 너무 과한 줄임말,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신조어는 쓰지 않아야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방송입니다. 새로운 문화를 소개하는 양, 욕설에 근거한 신조어·줄임말까지도 자막으로 내보내고 있습니다. 신조어는 언어의 진화 과정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언론만큼은 신조어 사용에 앞서나가선 안 됩니다.
29년간 언론사 교열기자를 지내오셨습니다. 서문에서 “교열기자는 신문사에서 가장 예민하고 철저하게 우리말을 감시하는 사람”이라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인데요. 교열기자가 신문사에서 보내는 하루를 소개해주세요.
솔직히, 떨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하하하~) 전날 교열해 넘긴 기사와 제목 등에 오류가 있을까, 신문을 넘길 때마다 조마조마합니다. 마지막 면까지 확인한 후 이메일을 열어 오류 관련해 독자에게서 온 메일이 없으면 마음이 놓입니다. 그러고 나면 커피를 마시며 다른 매체들을 살핍니다. 교열기자는 시사에 능통해야 그날의 기사를 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살필 수 있거든요.
오전 11시, 팀회의를 한 후 그날 출고된 기사를 교열합니다. 온라인 기사는 실시간으로 독자를 만나기 때문에 빠르고 정확한 교열이 중요합니다. 가장 바쁜 시간은 오후 6시부터입니다. 이때부턴 온·오프라인 양쪽에서 일을 해야 합니다. 온라인 기사를 교열하는 동시에, 종이 신문에 담길 기사와 칼럼, 제목, 사진 설명, 그래픽 내용까지 철저히 봐서 넘깁니다. 8시, 다음 날 독자에게 갈 신문 제작이 마무리되면 하루 일과가 끝납니다. (야근자는 11시에 하루를 마감.)
자신이 쓴 글을 스스로 교정, 교열을 보려 할 때 가장 도움이 될 노하우가 있다면요?
컴퓨터 창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을 띄우는 겁니다. 국립국어원은 바른 언어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 기관입니다. 말과 글에 있어서 가장 믿을 수 있는 곳이죠. 이곳에선 어문 규정을 비롯한 우리말 표준을 현실에 맞게 제시합니다. 글을 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어른을 위한 말 지식』의 예비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말 칼럼 ‘달곰한 우리말’을 내년까지 연재할 예정입니다. 매주 글을 통해 고운 우리말을 널리 알리겠습니다.
『어른을 위한 말 지식』의 ‘어른’은 단순히 나이 든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바른 말을 쓰고, 남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는, 속 깊고 따뜻한 사람입니다. 이유 없이 남을 헐뜯는 사람은 절대 어른이 될 수 없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우리말이 얼마나 아름답고 재미있고 소중한지, 알 수 있을 거예요. 우리말을 사랑하는 마음이 윤슬처럼 빛나는 독자와 만나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 필자|노경아
현 한국일보 교열팀장. 1995년 경향신문에서 교열기자로 언론 생활을 시작해 29년째 기사 속 오류와 전쟁 중이다. 경제전문지 이투데이에서 우리말 칼럼 200여 편을 썼다. 지금은 한국일보에서 우리말 칼럼 ‘달곰한 우리말’을 연재하고 있다. 맞춤법 등 ‘법’ 중심의 딱딱한 글이 아닌, 살아가는 이야기에 우리말을 담아 편안하게 우리말을 익힐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어른을 위한 말 지식』은 그런 마음으로 쓴 첫 책이다. 늘 쓰는 말 중 헷갈리는 단어들의 차이를 알기 쉽게 풀이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올바른 표현을 살피며, 예쁘고 고운 우리말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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