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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를 떠나지 못한 물귀신과 상처를 가진 사람이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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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는 사람 중 아직 우리 곁에 머무는 존재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들이 이 세계를 떠날 수 없게 된 사연은 뭘까. 원한이나 미련 때문일까. 부족했던 사랑 때문이 아닐까. 껍데기를 벗는 날에 나는 훌훌 잘 떠날 수 있을까……

세심한 시선으로 감상적이고 서정적인 호러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정지혜 작가의 연작소설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는 해안선 곳곳이 바위와 절벽으로 절경을 이루는 경이로운 섬 ‘목야’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을 담은 소설이다. 잔잔해 보이지만 거센 파도를 품고 있는 바다를 닮은 세 편의 이야기를 만나 볼 수 있다. 기이한 일 속에서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인물들이 서로에게 내민 목적 없는 손길과 향하는 마음이 서로를 살리고 구한다.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 제목부터 시선이 집중됩니다. 어떠한 이유로 곁에 없는 것일까 궁금해지는데요.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 작품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귀신이 있다고 믿으세요? 저는 귀신의 존재에 대해 조금의 의심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귀신도 한때는 우리 곁에 머물렀던 사람이었을 거예요. 지금은 없는 사람 중 하나가 되어버렸지만.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는 이 세계를 떠나지 못한 귀신들과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얽히고설켜 생긴 일을 다룬 소설이에요. 여름날 더위를 식히는 데에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는 작가님의 첫 연작소설입니다, 이전 작품은 SF소설을 보여주셨는데, 이번 소설은 미스터리적 구성이 돋보이는 기담이에요. 특히 소설 후반부에서 비디오를 되감듯이 머릿속에서 장면들과 인물이 뒤섞이며 스쳐 지나가는 경험이 강렬한 소설인데요. 흩어진 퍼즐 조각을 하나하나 맞춰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이야기를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소설을 구상할 때마다 꽂힌 단어가 하나씩 있었어요. 이번엔 물귀신이었고요. 물귀신은 사람을 잘 홀린다고 합니다. 사람 한 명을 빠트려 죽여야 물 밖으로 나올 수 있다고도 해요. 아무나 귀신의 표적이 될 것 같진 않았어요. 귀신은 마음에 그늘이 깊거나 어둠이 짙은 사람을 노리고 있을 것 같았어요.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목야라는 섬을 만들어놓으니 인물들이 하나씩 찾아와주었습니다. 악한 사람이나 귀신이 찾아올 줄 알았는데 상처 입은 사람들만 가득해서 슬펐습니다. 상처의 원인도, 그 상처를 덮을 방법도 사람밖에 없으니 각각의 이야기가 서로에게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좋았습니다. 

소설의 문을 열어주는 이야기죠. 1장에서는 학교에 놀이처럼 퍼진 강령술을 친구 미우의 제안으로 지은도 함께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강령술의 방법은 위험하므로 따라 할 수 없게 알려주지 않아요. 이 부분에서 학창 시절에 괴담처럼 소문이 난무했던 ‘분신사바’, ‘빨간 마스크’ 등 미신이 떠오르더라고요. 원래도 강령술이나 미신에 관한 것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학창 시절에 ‘분신사바’라는 강령술이 유행한 적이 있었죠. 몇 명이 연필을 함께 쥔 채 종이 위에서 손을 빙글빙글 돌리며 귀신을 부르는 놀이였어요. 저는 늘 구경꾼의 자리에서 연필을 붙잡은 친구들의 손이 저절로 움직이길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습니다. 오래전 일이라 결말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 반응도 없이 시시하게 끝난 것 같기도 하고요. 학교에서의 일과가 끝나자마자 무리에 섞여 우르르 교실을 빠져나갔던 기억만은 선명합니다. 교실 어딘가에 귀신이 있을 것 같고 같이 놀자고 불러놓고 왜 놀아주지 않느냐고 화를 낼 것 같아서요. 무서운 이야기에 심장이 가장 뜨겁게 반응합니다. 특히 직접 겪었다고 하는 일엔 귀가 쫑긋 섭니다. 그래서 강령술이나 귀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끼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무서운 상황에 처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습니다. 심장은 무서운 소설이나 영화로 뛰게 만들면 되니까요. 

2장 「강과 구슬」에서는 학교에 퍼진 강령술과 소설의 배경이 되는 섬 ‘목야’의 수살귀가 많았던 이유가 드러납니다. 소설을 처음 읽을 때부터 섬 이름인 ‘목야’라는 이름이 독특해 머릿속에 깊게 남아서 이름을 정말 잘 지으셨다고 생각했어요. 섬 이름에 숨겨진 뜻이 있을까요? 어떻게 떠올리게 되신 것인지 궁금합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지명이나 이름을 지을 땐 주변에 있는 글자를 살펴봅니다. 입으로 말해보고 손으로 써보며 어색하지 않을 글자를 조합해 찾아냅니다. 의미가 필요할 땐 후에 끼워 맞추기도 합니다. 실망하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지명이나 이름을 짓는 일이 소설을 쓸 때 가장 피하고 싶은 과정이거든요. 목야도 다르진 않습니다. 눈 목(目)에 밤 야(夜)를 합쳐 밤만 되면 귀신들이 눈을 뜨는 섬이라고, 소설을 쓰는 중에 끼워 맞춰 만들었습니다.

3장 「이설의 목야」에서는 1장과 2장에 나왔던 인물들의 이후의 삶, 현재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저는 이 소설의 킥이 3장에 있다고 느꼈는데요. 「이설의 목야」에 나오는 인물들을 누구인지 추측하고 맞춰보게 되더라고요. 단서를 통해 누구인지 독자 스스로 찾아가는 이야기를 정말 오랜만에 읽어서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데에 속도가 붙더라고요. ‘치밀한 소설이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데, 이러한 구성을 처음부터 설계하고 집필하셨나요? 작가님의 작업 방식도 궁금합니다. 

소설을 쓸 때 결말은 따로 정해두지 않습니다. 이야기가 제 갈 길을 알아서 찾도록 내버려두는 편입니다. 결말을 정해두면 앞에서부터 막혀 끝은 볼 수도 없게 되어서요. 두서없이 시작된 이번 소설도 겨우겨우 이야기의 뒤를 쫓아가며 완성했습니다. 편집자님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승전결이 완벽한 이야기를 쓸 능력이 제게는 없는 것 같습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지만 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결말은 정해두지 않지만, 소설을 다 읽었고 나서 독자분들의 마음에 남게 될 감정에 대해선 생각하고 글을 쓰려 합니다. 제가 소설을 읽는 이유가 책장을 덮었을 때 마음에 밀려드는 감정 때문이거든요. 그 마음이 소설의 진짜 결말인 것 같습니다. 수고한 가족의 등을 쓰다듬듯 책의 뒷장을 가만히 문지르게 된다면 그 소설은 제 역할을 다한 것 같습니다. 『없는 사람들을 생각해』도 그런 소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 개의 이야기 중 저에게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를 꼽으라면 1장 「지은의 방」입니다. 강령술에 성공한 지은이 그것과 하나가 되어 그것이 나인지 분간하지 못하고, 자신을 집어삼키려는 그것에게 통제당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 아프면서도 섬뜩함을 느꼈어요. 또한 그것에게 따로 어떠한 명칭을 부여하지 않고 지시대명사 ‘그것’을 사용한 부분도 인상 깊었는데요. 이 부분에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작가님의 마음에 오래 남아 있는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저 또한 지은의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제가 지은의 행복을 끝까지 막은 것 같아 많이 미안합니다. 저 역시 지은을 집어삼킨 ‘그것’ 중 하나일 테지요. ‘그것’은 지은의 마음에 분노를 심어준 사람이라면 모두 해당될 수 있기에 ‘그것’이라고밖에 칭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지은의 부모이기도 하고 지은 자신이기도 하고 지은이 부른 귀신이기도 합니다. 

이야기 속에 토속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것 때문일까요. ‘무당’, ‘목야제’ ,‘강령술’ 등 소설에 등장하는 요소들이 실제로 어떤 섬에서 일어난 사건처럼 피부에 와닿았습니다. 촘촘하게 엮어둔 관계가 드러날 때는 무릎을 '탁' 치기도 했어요. 인물들의 유기적인 관계를 보여주며 목적 없이 내민 손길과 향하는 마음이 서로를 살리고 구하는 이야기구나 싶었어요. 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꼭 닿았으면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미움의 종착지는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인 것 같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내 마음에서 시작된 모든 감정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와 영향을 미칩니다. 마음은 우리의 영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몸이라는 껍데기를 벗으면 마음의 민낯이 드러나겠구나. 죽음의 문턱을 지났을 때 저 멀리 좋은 곳까지 훌훌 날아가는 힘은 이 세계에서 주고받은 사랑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조금 덜 미워하고 조금 더 사랑하며 살면 좋겠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아, 마지막으로 수영금지라는 경고 문구가 걸린 물가에 함부로 몸을 담그지 마세요. 그곳엔 사람을 노리는 물귀신이 눈만 내민 채 둥둥 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필자|정지혜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고 싶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세상을 다 녹일 만큼 따뜻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목표다. 책에도 온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오래오래 들려줄 수 있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 청소년 장편소설 『헤어살롱 그 남자애』와 장편소설 『망해버린 이번 생을 애도하며』  『다마논드호』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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