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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소설에서라도 잊히지 않게 남기겠다는 마음"

『아콰마린』 백가흠 소설가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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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어떤 사적 복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국가 폭력에 의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좀 다른 방법을 한번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2024.08.01)

2001년 단편소설 「광어」로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20년이 넘게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해온 소설가 백가흠이 장편소설 『아콰마린』으로 돌아왔다. 2014년 『마담뺑덕』 이후 10년 만의 장편소설인 이번 작품에서는 청계천에서 절단된 손이 발견된 사건을 시작으로 기이하고 하드보일드한 서사가 이어진다. 무탈한 정년퇴직을 꿈꾸는 반장을 중심으로 좌천되어 떠밀리듯 합류한 선배 형사, 자신의 아버지를 찾기 위해 경찰이 된 신입 등 자신만의 이유로 ‘미스터리사건 전담반’에 모이게 된 사람들은 이 사건을 통해 숨기고 있던, 혹은 가려졌던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조금씩 밝혀지는 진실들 앞에 떳떳해질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백가흠 소설가와 서면 인터뷰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아콰마린』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마담뺑덕』 출간 이후 10년 만의 장편소설인데요. 그간 단편이나 산문은 꾸준히 집필하셨는데 장편으로는 오랜만이에요. 이 소설을 쓰시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요? 

안녕하세요.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이렇게 빨리 시간이 지났다는 게 잘 믿기지 않아요. 장편소설이 오랜만에 나온 가장 큰 이유는 게을러서였겠지만 변명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그간 정말 많이 바빴고 나름 성실하게 살았거든요. 지난 10년을 돌아보니 많은 일들이 잘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출간한 책만 보면 소설집 두 권, 짧은 여행소설집 한 권, 산문집 두 권을 냈으니 마냥 게으르기만 했던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학교에서 지내다 보니 일의 우선순위가 바뀐 것도 이유이겠고, 틈틈이 단편소설 작업을 하느라 시간을 분할하기가 어렵기도 했습니다. 장편으로 다루고 싶은 주제나 이야기는 큰 모양새여서 준비할 시간도 많이 필요하기도 했고요.

『아콰마린』의 원고를 받자마자 순식간에 빨려들어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청계천에서 아콰마린 색 네일아트가 칠해진 손이 발견되면서 소설이 시작되는데요. ‘전형적인 수사물인가?’ 싶었지만 차차 밝혀지는 진실과 함께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 이끌려 갑니다. 그런 점에서 집필하실 때도 순식간에 결말에 다다르게 되셨는지 궁금했습니다.

처음 이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지는 꽤 오래전이에요. 2020년에 연재를 시작해서 1년 넘게 했는데, 당시에 결말은 연재하지 않았습니다. 소설 구상의 시작은 지금의 결말 부분이 모티프로 작동한 것은 분명한데 완결하는 데에는 애를 좀 먹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지금의 결말은 최종적인 『아콰마린』의 결말은 아니라는 것 정도만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도입부가 끝난 느낌인데 그렇게 결말지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연재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전부터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해 관심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예컨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서평집 『왜 글은 쓴다고 해가지고』에는 ‘오송회 사건’과 함께 이광웅 시인의 시집 『목숨을 걸고』에 대한 언급도 있었는데요. 『아콰마린』을 쓰게 된 계기와 함께 국가 폭력을 다루는 작가로서의 마음은 어떤지 듣고 싶습니다.

오송회 사건은 제 고향에서 있었던 일이니 아주 어렸을 적부터 내막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건이 많은 모티브 중 하나가 되겠지만 특정한 사건이나 간첩 조작 사건에 특별히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더 넓은 시각에서 근현대사에 대해 다루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볼 때 작가의 마음이라고 특별하지 않을 겁니다. 보편적인 국민과 다르지 않겠지요. 우리 근현대사는 국민에게 가해진 권위주의적 폭력, 그리고 책임은 뒤로한 채 용서와 화해에 대한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갈등이 있어야 권위를 지키기 쉽고 편안한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하고요. 진실은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것은 아닐 테지요. 그저 그 사실을 믿는 것뿐입니다. 잊히면, 세상에서 사라지니까. 소설에서라도 잊히지 않게 남겨야겠다, 그런 마음에서 소설을 시작했습니다.

미스터리전담 수사반(이하 ‘미담반’)의 인물들이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있다는 게 이 소설의 여러 재미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인물을 구상하실 때 참고한 자료가 있으실까요? 또 유독 신경이 쓰이거나 마음에 오래 남은 인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인물을 구상하는 데 참고한 자료는 없습니다. 대부분은 저, 자신으로부터 분화된 인물이에요.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각자 가진 사연이 다 해소되지 않은 채로 소설이 마치는데 그것은 다음 소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아예 해결할 여지가 없는 인물도 몇 있는데 그것은 과거의 전력을 숨긴 채 우리 사회 안에서 이웃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가해자에 대한 은유적 시도라고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케이와 K, 차세영과 김세영처럼 이름이 같은 인물이 나오는데 같은 이유기도 하고요. 처음 『아콰마린』을 구상하고 기획했을 때 두세 권 분량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기회가 된다면 남겨놓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음 장편소설에 쓸 예정입니다. 모티브가 된 실제 사건은 이미 많이 알려진 것이니 소설적 배경으로 변형해서 언급한 정도고요. 여러 인물이 비슷한 비중으로 나와서 주인공이 선뜻 누구라고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꼽자면 ‘김세영’, ‘김현원’이라는 인물에게 애틋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미담반 반장 케이는 간첩 조작 사건이 언급될 때마다 “무죄를 받지 않았나요?” “재심 청구해서 다 엎어졌는데” “보상도 꽤 받았을 텐데”라는 식으로 소통의 가능성을 끊어트립니다. 무죄를 받았어도 현실로 돌아오지 못한 채 방치된 피해자들은 결국 직접 복수를 하기로 결심하고요.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케이의 태도를 통해 독자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꼭 전해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케이가 취하는 태도는 가해의 기억과 양심에 대한 가책에 무심해지는 가장 일반적인 인물로 설정했습니다. 그가 하는 말은 대개 자기변명의 일환일 뿐이고요, 이는 나중 정훈석과의 취조 과정을 염두에 두고 썼는데, 취조 장면이나 서로 주고받는 대화 안에서 역사에 대한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사유를 담고 싶었습니다. 이 소설은 어떤 사적 복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국가 폭력에 의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좀 다른 방법을 한번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저는 현재가 하나의 권위주의적인 권력이 사라지면 또 다른 모양새의 권력이 그 자리를 차지해 국민을 핍박하는 어수선한 시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우리 국가의 현재는 근대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조선의 봉건주의 몰락 후, 동학혁명 실패 후로부터 지금까지 130년여 흘렀지만, 인문학적인 시간으로 보면 정말 찰나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소설은 그 시간 동안 반복되고 있는 수상한 시절의 한 지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소설 안에서 무너진 공적 시스템에 대응하는 어떤 연대를 꿈꾸어보았습니다.

작가님의 작품들을 읽을 때면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평소 글감은 어떻게 찾는 편이신지, 이야기를 서술할 때 특히 주의하는 지점이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소설을 쓸 때마다 쓰기 위해 글감을 찾진 않는 것 같습니다. 뭘 쓸까, 하는 것보다 왜 써야만 하는가? 하는 물음이 제게는 더 중요한 일 같습니다. 저는 제가 써야만 하는 문학적 주제가 있고 그에 알맞은 구성을 할 뿐입니다. 주제를 발현하려다 보니 현실감 있게 그려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요, 이야기를 서술할 때 주의하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잘 읽히게 쓰자, 하는 것입니다. 문장과 상황에 속도감을 주어 이 소설을 읽고 있는 사람을 소설에서 도망가지 못하도록 붙잡고 싶은 마음으로 씁니다. 매번 잘되지 않지만, 마음은 그렇다는.

마지막으로 차기작 등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책이 자주 나오는 것도 좀 민망하고 부끄럽더라고요. 책이 많이 팔리지 않으니까, 출판사에 미안한 마음도 크고요. 그래도 마냥 원고를 묵힐 수만도 없으니 출간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어요. 내년 봄에 2021년 이후 쓴 단편소설을 묶은 책이 출간 예정이에요. 그 소설은 모두 대구에서 쓴 작품들인데 개인적으로는 그간 출간했던 단편과는 좀 다른 색깔의 책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쓰면서 편안했고 많이 슬펐던 기억이 납니다. 작가는 좀 냉정해야 하는데 저도 이제 젊지 않다는 것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많지 않지만 잊지 않고 제 소설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사랑과 존경을 담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문학으로 맺은 인연 소중하고 아름답게 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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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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