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리스트 특집] 우리가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것들
구현우 특집 칼럼
시 쓰기와 가사 쓰기가 얼마나 비슷하냐 누군가 묻는다면 대답해줄 수 있다. DNA 검사를 해야 겨우 일치하는 항목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일 거라고. 유전자 레벨까지 가야 한다고. (2024.07.22)
오리지널 트랙을 갖고 싶었다. 세상 유명한 노래들을 카피하는 일에 질렸을 즈음이었다. 우리 밴드만을 위한 노래라니, 로망일 수밖에. 멜로디는 제법 괜찮게 나온 것 같았다. 이상한 자신감이 생겼다. 가사 금방 쓸 수 있을 거 같아! 내일 바로 써서 가져올게! 내일은 무슨. 정말, 해보지도 않고, 근거도 없이 어디서 기인한 자신감이었을까. 밖은 어둡고 커피는 식었고 가운데에 줄을 죽죽 그어놓은 되다 만 첫 문장만 여럿이었다. 노트 귀퉁이에 그린 삐뚤빼뚤한 탐앤탐스 로고가 제일 나아 보였다. 결국 그날 오랜 시간을 들여 적은 것은 미리 정해둔 <Holiday>라는 제목과 온갖 낙서뿐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글’이란 걸 써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한 소절도 완성하지 못했다니.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핸드폰 매장 앞에서 흘러나오는 그런 노랫말들은 다 쉽게 느껴졌으니까. 대체 뭐가 문제지? 막연했다. 아이디어에도 운지법이 있나. 있다고 해도 어디서 배울 수나 있기는 한가. 순간 머릿속에 음유시인(吟遊詩人)이란 네 글자가 떠올랐다. 시가 곧 노래가 될 수 있는 거 아니야? 시집을 읽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겠지. 그것이 내가 시를 만나게 된 계기였다.
이렇게 말하면 농담인 줄 아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이다. 윤동주나 이상의 시에 감명을 받아 시인이 된 줄 알았다면 사람을 잘못 봤다. 난 보기보다 더 단순하다. 물론 지금이야 시는 시대로 음악은 음악대로 사랑하지만, 시작은 단지 궁금증이었다.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이 의문 하나. 쉽게 생각한 가사 쓰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아서 일이 늘어난 것이다. 이제는 시 쓰기와 가사 쓰기가 얼마나 비슷하냐 누군가 묻는다면 대답해 줄 수 있다. DNA 검사를 해야 겨우 일치하는 항목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일 거라고. 유전자 레벨까지 가야 한다고. 그 정도로 작업에 있어서는 공유하게 되는 부분이 없다. 언어의 폭을 넓힐 순 있으니 시 쓰기와 가사 쓰기가 아예 무관하다고는 하지 않겠다. 리듬이라는 것은 시에도, 음악에도 있는 거니까.
다만 아무래도 시를 쓸 때보다 음악을 할 때 입과 귀를 압도적으로 많이 쓰게 된다. 보통은 가사 또한 텍스트이기 때문에 눈으로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나도 시각에 자주 현혹되곤 했다. 그게 바로 내가 <Holiday>를 쓰지 못했던 이유라는 걸 멀고도 먼 훗날 알게 되었다. 보는 게 아니라 부르는 게 먼저다. 부르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입 밖으로 꺼낸 말과 혀끝에서 맴도는 마음은 같은 단어라고 해도 다른 의미다. 소리가 중요하다. “안녕”이라는 짧은 인사말조차도 가수의 목소리에 따라 정해진 리듬에 따라 메이저 또는 마이너인 곡의 분위기에 따라 달라진다. 설렘이 담긴 안녕도, 마지막의 슬픔이 담긴 안녕도, 치정극의 끝에 분노만 남은 안녕도, 그리운 대상을 홀로 그리며 부르는 안녕도 될 수 있다. 음과 함께 표현되는 것이다. 가사는 이러나저러나 결국,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이다.
몸 안에서 몸 밖으로 소리를 꺼내는 일이다.
처음 가사 쓰기를 공부할 때 어려웠던 점 중 하나는 멜로디 라인과 리듬에 맞춰 ‘정해진 글자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에스파(aespa)의 히트곡 <Supernova> 안에서 “Su su su Supernova” 부분은 “수—수—수 수퍼노바”로 가창되므로 당장 다른 가사로 바꿔서 써야 한다고 해도 “0—0—0 0000”로 이루어져 있는 이 구조를 벗어날 수는 없다. 어, 나는 ‘수퍼노바’ 자리에 다섯 글자를 쓰고 싶은데 어떡하지? 어떻게 할 수 없다. 네 글자로 써야 한다. 작곡가나 싱어송라이터는 가능할 수 있다. 음표만 하나 더 그리면 될 일이다. 그러나 정해진 틀 안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 작사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 부분의 멜로디가 딱 4음절로 만들어진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므로, 4음절보다 적지도 많지도 않게, 정확히 4음절의 키워드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발음 또한 고려해야 한다. 받침이 있는가, 파열음이 있는가, 끝음절의 모음이 ‘ㅏ’와 같이 열리는가 하는 것 등.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가사 쓰기가 틀에 갇히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띄는 단어만이 펀치 라인(Punchline)이 되는 것도 아니다. 클리셰를 벗어난다고 해서 꼭 특별해지지도 않는다. 은유적으로 써야 하는 순간이 있고 쉽게 써야 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때로 가창을 하는 가수의 음색(音色)은, 그 모든 기술을 무용하게 만든다.
오늘도 나는 음악이 주는 시적 순간과 시가 주는 음악적 순간에 매료된다. 나만의 시 세계 안에서 노는 것은 아무래도 즐겁고, 가수의 입을 빌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말을 해보는 것은 언제나 흥미롭다. 두 장르 모두 나의 오감을 엉키게 하고 예민하게 한다. 감각은 원래 그런 것일지 모른다. 코끝에 닿은 떡볶이 냄새가 학창 시절의 한 여름날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어떤 말은 종이 위에 있다. 어떤 말은 소리 안에 있다. 전해지는 형태가 다를 뿐이다. 어느 날 아주 우연히, 눈으로 듣거나 귀로 본 그 어떤 말이 입속으로 들어와 우리 마음 한가운데에 박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구현우
2014년 『문학동네』 신인상. 시집 『나의 9월은 너의 3월』, 『모든 에필로그가 나를 본다』 등이 있다. 구태우라는 이름으로 케이팝 작사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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