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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플레이리스트]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은 다른 사람일 때

김중일 「정반대의 카스텔라와 우유식빵」 X Ludovico Einaudi ‘Indian Yel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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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웬만큼 알았다 싶었을 때, 사람은 어김없이 우리를 어느 정도 실망시키죠. 나는 카스텔라 같은 사람이고 너는 우유식빵 같은 사람이라서, 내가 인간관계를 솜씨 좋게 구워내는 사람이 아니라서, 너 또한 원하는 방식대로 나를 조율할 수 없어서. (2024.07.18)

식탁 위에 나란히 놓인

카스텔라와 우유식빵이 오늘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보자


내가 오늘 만든 카스텔라는 우유식빵 같고

네가 오늘 만든 우유식빵은 카스텔라 같다


작은 착오가 있어도

우리는 카스텔라와 우유식빵이 꼭 필요했으니 이 결과는

최대한 실패하지 않는 방향으로 함께 가려는

보이지 않는 의지의 힘일지도


오늘 우리, 정반대의 결과가

결과적으로 같은 것 같다는 것에 대해

같은 것 같다는 것은 얼마나 정반대로 다른 것인지에 대해

대화해보는 시간을 갖자 배고프니 빵을 먹으며

빵을 자르고 굽는 것에서부터, 먼저

카스텔라를 우유식빵처럼 자르고

우유식빵을 카스텔라처럼 잘라보자

카스텔라를 구워 딸기잼을 바르고

우유식빵을 우유와 함께 삼켜보자


그 맛을 천천히 음미해보면

익숙한 것이 섞여 얼마나 낯설어지는지

낯설지만 그럭저럭 견디고 먹을 만한

위장을 채우고 살로 오르는

우리의 카스텔라와 우유식빵은

우리의 과거와 미래 같다

카스텔라와 미래, 우유식빵과 과거 또는 그 정반대

현재로서 어떻게 작대기를 연결할지

착오로 주어진 오늘의 빵을 먹으며 생각해보자


너무 오래 뒤척여서 누렇고 푹 꺼진

카스텔라에 누워 희이흰 우유식빵을 덮고

둘 중 하나가 죽는 날까지

상대의 미래를 나의 과거로 또는 그 정반대로

바꾸어보자

- 김중일 「정반대의 카스텔라와 우유식빵」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 문학과 지성사)


한 사람을 웬만큼 알았다 싶었을 때, 사람은 어김없이 우리를 어느 정도 실망시키죠. 나는 카스텔라 같은 사람이고 너는 우유식빵 같은 사람이라서, 내가 인간관계를 솜씨 좋게 구워내는 사람이 아니라서, 너 또한 원하는 방식대로 나를 조율할 수 없어서.

한 사람을 웬만큼 알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필요해요. 같이 밥도 먹고 빵도 먹어가면서, 너는 왜 우유식빵이고 나는 왜 카스텔라인지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 부분은 서로를 닮아갈 수도 있죠. 여전히 왜 네가 카스텔라를 닮은 우유식빵인지, 왜 나는 우유식빵을 닮은 카스텔라인지, 그렇게 긴 시간을 보내도 낯설 때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어요. ‘누렇고 푹 꺼진’ 이불을 같이 덮고 사는 사람이라도 오해는 생기고.

그래도 같이 있다 보면 가끔은 쫄깃하고 가끔은 달콤하고 우리의 위장은 채워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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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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