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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렇게 뜨거운 공허 – 김지승 작가

『Y/N』 리뷰 ーM과 N 사이에 두 개의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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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는 욕망과 마찬가지로 욕망의 플롯 역시 통제할 수 없다. 그것은 은밀하게 전개되다가 걷잡을 수 없이 미궁에 빠지며 결코 통합되지 않는다. (2024.07.05)


한 조각 빛과 같은 욕망이 우리를 관통한다. 우리는 욕망하는 대상에 의해 이 세계 어딘가에 내려앉지만 우리의 ‘있음’은 항상 불안하다. 욕망의 속성 탓이다. 욕망으로 얻게 되는 세계의 자리와 관계가 우리를 연신 조각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을 시작할 생각은 아니었다. 읽기를 막 마쳤을 때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 않았다. 하루가 지나자 기표를 벗어난 비언어적 맥락이 조금씩 확연해지면서 이미지가 모였다. 리뷰를 위해 메모를 정리하는 동안 리듬이 생겼다. 작품 속 첨예한 기의들이 내 안에서 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글은 그 포착할 수 없는 움직임이 잠시 선명해진 순간을 기록해보려는 시도다.  


자아 서사의 작가, 욕망

‘나’는 베를린에 거주하는 29세 한국계 미국인 여성으로, 콘서트에서 케이팝 보이그룹의 멤버 문(Moon)을 보고 단박에 빠져들고(이야기 1), ‘Y/N(Your Name)’를 주어로 팬픽을(이야기 2) 쓰기 시작하면서 두 이야기는 욕망의 이중플롯 안으로 모였다가 흩어진다. 표면적으로 『Y/N』는 문에 빠진 여성 화자 ‘나’의 욕망과 팬픽, 우연한 인물들과 장소 등이 합심해 완성하는 카섹시스(cathexis: 대상에게 감정과 리비도를 집중시키는 상태)의 드라마다.

한국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 에스더 이의 데뷔작 『Y/N』는 제목부터 다락방과 지하실을 모두 담고 있다. ‘Y/N’이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읽을 수 있는 팬픽 속 ‘Your Name’을 의미한다는 걸 알게 된들 구획되면서도 분명한 경계 없는 세계가 안으로 침투하고 밖으로는 확장되는 감각을 외면하기 어렵다. 그런 이유로 작품을 읽는 동안 텐션의 피로감이 상당하다. 무엇보다 화자 ‘나’의 분열되고 아슬아슬한 욕망과 과잉된 자의식에 동일시하기 쉽지 않다. 당연하다. 나는 ‘나’처럼 문을 욕망하지 않는다. ‘나’의 욕망은 팽팽하다. “날카로운 안도감” 같은, 상반된 의미가 한 쌍으로 양쪽에서 힘을 쓰는 감각 묘사는 내 신경줄까지 팽팽하게 당긴다. 그러다 마치 욕망이 관통한 주체의 경계들처럼 신경은 곧 너덜너덜해진다. 아무려나 화자 ‘나’는 강박과 과잉의 방식으로 자기 욕망을 점점 더 고양시키는 데 성공한다. 

팬픽은 대상을 잘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것에 닿으려는 욕망이 추동하는 장르다. 에스더 이는 한 인터뷰에서 팬픽이 가진 문학의 특성에 대해 “초월적인 것과 같은 공간에 자신을 두려는 욕망,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닿으려는 욕망”을 언급한다. 욕망의 출현과 추동으로 자아는 어떤 서사가 가능해진다. 로런 벌랜트 식으로 말하면 “욕망의 대상을 향해 우리가 말을 거는 스타일이 바로 우리가 자아와 다시 조우하게 되는 드라마에 형태를 부여”1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욕망과 마찬가지로 욕망의 플롯 역시 통제할 수 없다. 그것은 은밀하게 전개되다가 걷잡을 수 없이 미궁에 빠지며 결코 통합되지 않는다. 


세계의 상처 한가운데 비어 있는 이름

케이팝 보이그룹과 팬덤 세계의 인물들이 등장하므로 『Y/N』은 세계적인 엔터 산업 내에서 순환하는 환상이라는 자본과 소비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욕망이나 애착을 우리의 실존조건으로서 이미 가지고 있음을 떠올리면 또, 그 대상의 자리를 되살리는 작업이 예술이기도 하다는 걸 상기하다보면 소설이 담지하는 여러 시공간의 문(gate)들을 굳이 하나로 통합할 이유는 사라진다. 문(Moon)에 대한 성적 환상과 최초의 삼각관계는 정신분석학적 욕망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보지 않기가 더 어렵고, 지속적인 이동하기가 지향하는 반(反)정체성(Antiidentität: 텅 빈 공백의 정체성 또는 정체성의 소멸)은 희박한 1인칭 디아스포라의 시공간성과 닿는다. 물론 우리는 그 이상의 문들을 감지할 수 있다. 문(question)과 문(literature)과 문(bite)과…

신성(神聖)과 형이상학적 요소들 사이의 긴장/해체가 예술로 구현되는 방식에 이 문‘들’이 연결된다. 이제 신성의 자리는 세계적인 보이그룹의 것이다. 작가는 이 새로운 신성과 형이상학적 요소들의 관계에서 오는 긴장과 그 재현에 몰두한다. 베드로의 부정처럼 ‘나’는 자신이 문의 팬은 아니라고 반복해 피력한다(아마도 세 번). 그럴 때마다 ‘Y/N’은 철학적 기표 ‘Yes/No’로서 우리에게 환기된다. 초월과 실재, 현존과 부재, 존재와 무, 유형과 무형, 장소와 비장소 등이 접촉하는 양가적 방식인 셈이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그래/아니’이자, ‘Passion’이 갖는 두 의미 ‘수난/열정’을 떠올릴 수도 있다.2 소설 속 현실의 한계가 환상의 가능성으로 전환될 즈음 ‘Y/N’은 물질적 실재와 환상적인 것 사이의 경계로 구성되는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s)3 와 닮아 있다. 

‘/(슬래시, slash)’가 쓰인 곳은 그 자체로 장소성을 갖는다. 장소를 칼로 베고 그어서 만든 분리와 구획의 상처다. DMZ다. 때로는 그것이 문의 투명한 피부 같은 막으로 작용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세계의 상처다. 상처가 문이다. 그 속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냐는 질문을 어쩐지 읽는 내내 들은 것도 같다. 대답하기 전에 시선을 문(Moon)에게로 돌려보자. 그는 “캐릭터가 아니”고, “하나의 주제, 보편적인 상수”로 거기 있다. 흡사 인적 드문 길을 걷다가 겁에 질리기 직전에 등장하는 표지판 같은 문장들에 의지해보자면 문(Moon)은 여성성을 아우르는 남성성일 수 있다. 알파벳 순서대로 M 다음의 N 사이에 O가 두 개(‘O’는 ‘나’의 화가 친구 이름이며 ‘나’가 빌려 쓰는 이름이기도) 놓이면서 지연되고 플롯이 바뀌는 이야기일 수도 있고, 두 개의 동그란 거울로 이루어진 경계의 장소일 수도 있다. 이건 또 어떤가. 메타포(Metaphor)와 내러티브(Narrative) 사이에 놓인 교란하는 주체의 비어 있는 이름이라면? 거대한 공허를 한가운데 둔 삶과 죽음의 이미지 역시 스쳐간다. 


비표상적 초상으로

그래서 ‘나’는 언제나 문과 함께 있다. 한계가 없는 세계의 정신적 공간과 환상 행위의 무의식적 공간에. 경계 없이 펼쳐지는 그곳에서 벗어나기 힘든 실존적 갈망 때문에 ‘나’가 있거나 있었던 공간은 모두 어느 순간 익숙한 신화적 공간으로 변모한다. 마침내 ‘나’가 문을 만난 공간도 생크추어리(Sanctuary: 위험에 처했다가 살아남은 생명의 피난처)다. 그곳에서 ‘나’는 가장하지 않은 욕망의 맨얼굴로 그 앞에 선다. 그게 무슨 의미일까. 영원히 기다리고 상상했던 순간, ‘나’는 문에게 관습적 내러티브의 폭력을 행사한다. 문을 좋아하는 다른 이들과 구별되고자 했던 ‘나’는 붕괴를 겪는다. 문과 ‘나’의 머리가 닿은 이중초상은 꿈의 속성을 승계한 영화 속에서만 가능하다. 

“이제 다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가 왔어. 왜 무릎 뒤를 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안 되는 거지? 얼굴과 얼굴이 아닌, 무릎과 무릎으로 서로를 바라볼 수는 없는 걸까?”(243쪽)

시간을 잃어버린 채 소설의 마지막에 이른다. 잠시 선명하게 보였던 것이 있었다고 기억한다. 주로 O와 함께 있을 때, ‘나’는 비교적 또렷해진다. 신화 속 퀘스트의 조력자 같기도 한 O는 화가이고 관찰하는 사람이니까. 관찰하는 사람 안에는 관찰되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이름을 바꾸고 유동하는 존재인 O가 그린 ‘나’의 초상이 미완성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노출된 주체는 상처투성이로, 비표상적 초상으로 남는다. 『Y/N』이 기존 정체성 서사의 공식에서 벗어나는 부분이다. 나는 미완성 초상을 상상하며 처음으로 돌아가 다른 몸으로 ‘나’를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매일 다른 몸을 가지고 꿈에서 깬다. 초상화는 영원히 다시 그려진다. 


1 캐서린 R. 스팀슨·길버트 허트 엮음, 캐럴 스미스-로젠버그·케이트 크레헌·로런 벌랜트 외 지음, 김보영·박미선 외 옮김, 『젠더 스터디: 주요 개념과 쟁점』, 후마니타스, 2024.

2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G.H.에 따른 수난(passion)』은 G.H에 따른 사랑, 열정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3 미셸 푸코가 처음 제시한 개념. 다양하게 정의되고 전유되지만 여기서는 모든 장소들과 절대적으로 다른 ‘반(反)공간(contre-espaces)’이자 ‘이의제기’의 장소로 지시된다.



*필자 | 김지승

읽고 쓰고 연결한다. 『100세 수업』, 『아무튼, 연필』, 『짐승일기』, 『술래 바꾸기』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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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지승

읽고 쓰고 연결한다. 『100세 수업』, 『아무튼, 연필』, 『짐승일기』, 『술래 바꾸기』 등을 썼다.

Y/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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