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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며들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시가 내 마음에 들어오면』 정신과 전문의 이영문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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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시간은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최대한 자기가 결정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결정해 보는 습관을 지녀 보세요. 처음에는 서툴지만, 자꾸 익숙해지면 회복탄력성이 높아집니다. (2024.07.02)

요즘 들어 정신과를 내원하는 사람들의 수가 전보다 월등히 많아졌다는 기사를 자주 접하곤 한다. 엔데믹에 들어서며 일상이 회복되었음에도 사람들이 느끼는 우울감은 여전하거나 오히려 더 커진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과거와 달리, 인간 존재의 본질적 통찰을 제시하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서나 삶의 고통을 응시하고 정신적으로 벗어나는 길을 안내하는 종교서들이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팬데믹 같은 불행을 겪고 난 후 생긴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삶의 불확실성에 관한 의심이 전보다 깊어지면서 우리는 현실을 담담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극복하는 방법에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에게는 트라우마나 아픔이 없었을까? 연세하늘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 이영문 원장이 진료실에서 다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책으로 엮었다. 다소 생뚱맞게 여겨지기도 하는 ‘시詩로 마음 치유하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에세이 『시가 내 마음에 들어오면』이 그것이다. 이 책은 시인 나태주 선생과 10년 동안 주고받은 인생의 대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관록 있는 유명 시인과 세간사의 경험이 풍부한 정신과 전문의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누구보다 예민한 감성을 지닌 시인과 현실을 객관적으로 응시하는 의사의 첫 만남이 궁금하다. 여러 해 동안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센터장으로 일하다 최근 퇴임하며 에세이를 펴낸 이영문 원장에게 물었다.


 

시인과 정신과 의사의 만남이 흥미롭습니다. 두 분은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나요? 

2013년 1월, 공주에 내려와 국립병원에서 일을 시작할 때였습니다. 그해 늦가을, 우리 동네에 한 시인이 살고 있다는 직원의 말을 무심코 듣다가 문득 낯익은 이름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광화문 글판에서나 보았던 이름, 바로 나태주 선생님이었지요. 그 길로 한달음에 선생님을 찾아가 뵙고 인사를 드렸습니다. 천진난만하게 웃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이후 자주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선생님께서 주관하시는 행사에 손님 자격으로 참가하기도 했고, 제가 주관하는 행사에 초청하기도 하면서요. 선생님께서는 저를 ‘사우(師友)’라고 하시며 서로가 스승이요, 벗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제게는 나태주 선생님이 ‘인생의 선물’이었습니다. 정신건강 전문의로 살아오면서 팍팍함을 느끼던 저에게 선생님은 시원한 생수 같은 존재였지요. 제 정신적 결핍을 채워주기에 충분했으니까요. 선생님이 시가 저를 살린 셈이죠. 

결핍이라는 단어는 꼭 있어야 할 무엇인가가 모자라거나 부족할 때 사용하는 단어인데요, 정신과 의사에게도 그런 결핍이 있었다니 다소 의외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결핍이 있습니다. 그 결핍을 메워주는 것이 타인의 작은 배려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뭔가가 부족해서 힘들 때 받는 선물은 나에게 큰 힘이 됩니다. 반드시 물질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듯한 말로 위로해 주고 나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도 선물입니다. 전화로 하든, 메시지로 하든, 이메일로 하든, 손 편지로 하든, 만나서 얘기를 나누든 상관없습니다. 현재 시점에 연결된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힘겨운 코로나 시대를 보내며 우리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배웠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움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직업상 여러 지역의 공공의료 현장에서 일하느라 가족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늘 사랑하는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있었습니다. 어떤 대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에게서 빠져나간 결핍을 보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어떤 것을 찾기 위한 무의식의 흐름이 사랑이기 때문이지요. 가족이 그리울 때마다 나태주 선생님의 ‘그리움’이라는 시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그리움으로부터 결핍이 나온다는 말이 어쩐지 역설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다른 말로 외롭다는 표현 같기도 한데요. 그렇다면 시가 외롭거나 슬플 때 또는 고통스러울 때 우리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 치유해 준다는 건가요?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을 암송할 때마다 저는 짜장면이 떠오르곤 합니다. 풀꽃에서 짜장면을 연상한다고 하면 좀 과장이 심한 것 같죠? 그런데 시 ‘풀꽃’을 읽어보면 시어들 사이사이에 그리운 얼굴이 떠오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러운 너’의 얼굴. 누구에게나 그 얼굴이 있습니다. 마치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공평한 짜장면처럼요. 봄날의 햇살처럼 짜장면을 먹는 음식점 안에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퍼져나가는 온기가 있습니다. 시 ‘풀꽃’처럼요. 하지만 내가 시 ‘풀꽃’을 떠올린 후 느끼는 짜장면 냄새는 분명 환각입니다. 나를 이롭게 하는 착한 환각이지요. 내 마음에 따뜻함과 온기의 기억을 먼저 데려오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풀꽃’이 지닌 치유의 힘입니다. 짤막한 시를 외우다 보면 또 저는 청년 시절로 돌아간 듯 힘이 납니다. 의사 가운 주머니에 넣어둔 시집을 꺼내, 피 묻은 손으로 책장을 넘기던 그 시간으로요.

팬데믹을 거쳐온 영향 탓인지 요즘 청년 세대 중에는 부쩍 은둔형 외톨이가 많습니다. 오랜 기간 집에 틀어박혀 사회와의 접촉을 피하는 유형으로 히키코모리라는 말이 흔히 사용되고 있는데요. 이런 고립과 은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얼마 전 미국의 CNN에서 홍콩과 일본, 한국에 150만 명 이상의 고립·은둔 젊은이들이 존재한다고 추정하는 방송을 보았습니다. 예일대학의 연구원들은 이 현상을 인터넷의 전파와 대면 활동의 감소가 원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작년 우리 복지부도 전국에 54만 명 수준의 은둔 청년들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영국에는 국민의 외로움을 줄이기 위한 행정 부서가 있습니다. 외로움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하루 담배 15개를 피우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독거 인구 비율의 증가와 더불어 외로움의 비율이 더 늘어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지요.  BBC 라디오와 맨체스터 Manchester 대학에서 오만 오천 명을 대상으로 외로움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놀랍게도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끼는 연령층은 노년층이 아닌 청년 세대였습니다. 

청년의 시간은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최대한 자기가 결정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결정해 보는 습관을 지녀 보세요. 처음에는 서툴지만, 자꾸 익숙해지면 회복탄력성이 높아집니다. 긍정적 감정이 스트레스를 줄여줍니다. 유머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야 진정한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내가 알지 못하는 성장과 회복을 향한 무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나 모성으로부터 배운 회복탄력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홀로 삶을 견디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결국 누구나 다 혼자이기 때문입니다.

혼자가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느끼는 감정 중 하나가 분리 불안입니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랑은 원한다고 얻어지는 대상이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 이상을 상대에게 바라지도 마세요. 우리는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분리 불안을 직면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용기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리고 조금씩 자신을 던져가며 배워가는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세요. 그것이 분리 불안을 헤쳐 나갈 첫 단추입니다.

시가 마음을 치유한다는 발상이 신선합니다. 앞으로 힘들 때마다 시집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인과 정신과 전문의, 왠지 이질감이 느껴지면서도 서로 닮은 존재 같기도 합니다. 

시인의 마음과 정신치료자의 마음은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치료라는 의학적 장르와 치유라는 시의 영토는 둘 다 공감을 바탕으로 하니까요. 한 편의 아름다운 시는 의학적 치료를 넘어서는 힘이 있습니다. 백 마디의 말보다 시 한 편이 치료에 더 효과적일 때가 있지요. 시인은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도 자연 그대로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자들입니다. 그들은 불안한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불안 너머 해탈의 경지를 이미 보고 있는 것이지요. 빛줄기가 만들어 낸 실루엣 속에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발견합니다.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집을 짓는다. 의. 식. 주. 인간을 살리는 기본 요소들만 짓는다는 표현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 번의 수고가 들어가야 짓는다는 표현을 쓸 수 있지요. 그래서 시를 짓는 것은 곧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나태주 선생의 시 철학이지요. 정신분석의 본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얼어붙은 땅에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심정처럼 고통을 함께 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할 때 자비가 생깁니다. 공감의 싹이 트는 것이죠.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매사 긍정적인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곤 합니다만 늘 웃고 살기엔 힘든 세상인데요. 이 시대의 청년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따뜻한 조언과 격려를 부탁드립니다.  

행복은 순간입니다. 행운이 깃든 순간이지요. 생존하기 위해 우리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느낍니다. 인간과 침팬지가 다른 점은 추상적인 상상을 할 수 있느냐입니다. 배고픔을 채운 후 포만감을 느끼는 것 외에 인간은 행복하다는 감정을 상상하며 진화해 왔습니다. 행복이라는 감정은 배고픔을 견디게 합니다. 생존하기 위해 행복 회로가 작동된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 인간은 행복해지려고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증도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우리 뇌는 경험이 축적된 거대한 저장 창고입니다. 좋은 순간이 많이 저장될수록 좋은 날이 많아지지요. 그러니 나태주 선생님이 쓰신 시처럼 오늘 하루도 좋은 날이라 생각하세요.

청년 시절 저는 여린 감성을 지닌 문학청년이었고, 미래학자들이 예견한 불확실성에 좌절했습니다. 욕망은 들끓었지만, 현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지요. 의과대학을 두 번이나 그만두려고 했고, 임상에서 환자들을 만나기 전까지 의학에 대한 불신이 가득했습니다. 선배들의 말도 잘 듣지 않았고, 의료계의 권위적 분위기에 적응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나 역시 흔들리는 청년의 시기를 보냈지요. 모든 것이 불안했고,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 세대에 딱히 이렇게 하라 말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가는 것이기에 누구의 조언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세요. 그것이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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