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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승 칼럼] 거울을 깨버리면 안 되나?
김지승의 끔찍하게 예민한 질문들 5화 – 가능한 부재의 상(像)
우리가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 여전히 어떤 것은 알 수 없어서였다. (2024.07.02)
김지승 작가가 읽고 쓰기 위한 여성의 질문들을 던집니다.
격주 화요일 연재.
오늘은 비어 있는 방이다.
“앞에 보이는 폐가 1층과 2층에 총 여섯 개의 방이 있어요.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배정된 방에 가서 사진을 찍은 다음 정원에서 다시 모이는 걸로 해요.”
어차피 빈방들이면 다 똑같은 거 아닌가? 누군가의 말에 사진작가는 좌에서 우로 간단히 머리를 움직이더니 부드럽게 말했다.
“모두 비어있지만 모두 다르게 비어 있어요.”
처음부터 주변 대화를 무심히 흘리는 나와 달리 H는 연신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모두 다르게 비어 있다는 사진작가의 말에 이번에도 문장부호처럼 반응했다. 모두 다르게, 사람 몸처럼. 옆에서 듣기에도 작은 소리였는데 한참 떨어져 있던 사진작가가 용하게도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맞아요. 사람 몸처럼 모두 다르게.”
둘은 시선을 맞추고 웃었고, H의 팔에 두른 내 팔이 힘없이 풀렸다. 가자. 그 팔을 H가 다시 붙잡았다.
우리는 2층 오른쪽 방을 배정받았다. 2층까지 함께 올라온 다른 두 사람이 왼쪽 방에 들어서며 “옷방이었나봐!”하는 말이 들렸다. 비어 있는 방에서 어떻게 그런 걸 알 수 있나 의아한 것도 잠시, H가 방문을 열자 방이 스스로 말했다. 서재였구나. 우리는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호화롭지 않은, 1년 내내 2월의 모자란 볕이 가득했을 것 같은 공간. 언어의 한계와 도약이 결합하여 비와 안개를 만들었을 것 같은 그 방에는 사실 특별할 게 없었다. 사면의 벽, 작은 창문, 발에 밟히는 부스러기들이 전부였다. 서재를 떠올릴 만한 사물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깨진 거울 조각 때문이었다. 거울 속에 수만 권의 장서가 담겨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다. H가 검지를 들어 공기를 톡톡 건드리듯이 까딱거리며 단서를 더했다. 차가운 재의 냄새. 찰칵. 거의 동시에 우리는 첫 번째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자 공간이 사방으로 조금 자랐다. 옆방에 들어갔던 둘이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아직 서재의 과거를 10분의 1도 복원하지 못했는데. 방 밖 속도와의 이런 불일치에 우리는 한참 지쳐 있었다. 쓰지도 못하고 찍지도 못하네. H가 자조적으로 말했다. 엄살인가 했다가 엄살이 아니구나 한 게 6개월 전. 1년 가까이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H에게 사진 워크숍을 권한 건 나였다. 나라고 상황이 나은 건 아니었다. 다음 날 H가 두 자리를 등록했고 우리는 세상의 신화들이 여성에게는 “터무니없는 회유책”이라고 말했던 안젤라 카터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모든 기대를 0에 맞추는 데 성공했다.
거울 조각 하나가 빈 방 구석의 찢긴 벽지를 비추고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창 귀퉁이를, 제일 큰 조각은 H의 운동화를 보여줬다. 내가 거울 속 운동화를 가리키자 H가 고개를 끄덕였다. 찰칵. 두 번째 사진. 아마도 여기 5단 책장 정도가 있었을 것 같다고, 세계문학전집 코너에 어울리는 작가와 대표작들을 이어 말하면서, 우리는 가구들과 책과 사람이 사라진 방에 남은 거울 조각들이 아픈 비유로 작동하지 않도록 서로의 마음을 가리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무슨 수로, 대체 누가 거울 조각의 비유를 피할 수 있을까. 우리가 쓰지 못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 여전히 어떤 것은 알 수 없어서였다. “거울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1 라는, 우리가 새긴 공동의 문장이 기습한 침묵과 그 그림자들로 곧 방안이 가득 찼다. 그 감정이 준비되었다. 쓰지 못할 때, 그게 자기 무능과 유약함과 과잉된 자의식 때문이라고 자신에게 봐주지 않고 선언할 때의 감정이 날카로운 거울 조각 모서리처럼 나를 찔렀다. 한 여자의 불행은 다른 여자들에게 유의미한 경고가 된다. 누적된 불행과 경고들. 우리가 차지하고 있는 이 공간의 유일한 현실이 그 무력한 통증인 것처럼 절로 심장 근처에 손이 갔다.
빗소리인가? H가 창을 열었다. 방 안에 갇혀 있던 기억이 조금 빠져나갔다. 비를 보는 것이 거울을 보는 것이다. 지겹다고 말한 건 내가 먼저였다. 나도. 아주 작은 거울 조각 같은 비여서 한 방울만으로도 모든 시공간이 열린다. 지겹다. 밖이 없는 이야기들. 세상 모든 것이 거울이 되고 마는, 끊임없이 되비추며 마주한 두 거울 같은 이야기. 지겨워도 어떻게 달리 써야할지 모른다면 지겹다고 말하면 안 된다, 안 되지만 우리는 둘이고 방 입구가 출구라는 걸 안다. 찰칵. 비가 아니라 비가 가르는 허공을 찍기 위해서 비도 찍는다. 거울 조각들이 하염없이 내리는 걸 보며 H가 중얼거린다. “나 말고도 한 사람”이 나오는 시가 있었는데…
(…)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나 말고도 한 사람이 더 있다는 게 생각났고
저는 이제 그만하려고요.
맞아요. 이런 날은 아무래도 좀 그렇죠. 어디 가서 술이
나 한잔해요.
- 임승유, ‘두 사람이’, 『생명력 전개』 중
한동안 우리는 이런 식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은 순간들을 모았다. 그날 빈 방은 비어 있지 않고 텅 빔과 다르지 않게 꽉 차 있었다. 텅 빈 듯한 몸에 대해서도 잠시 우리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먼저 무언가를 다시 쓰기 시작한 쪽이 H였는지 아니면 나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1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저, 민승남 옮김, 『아구아 비바』, 을유문화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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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연결한다. 『100세 수업』, 『아무튼, 연필』, 『짐승일기』, 『술래 바꾸기』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