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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의 시절 리뷰] 그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했다

이슬기 칼럼 8화 – EBS 창사특집 <조앤 윌리엄스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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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스의 제언은 한국의 초저출생 문제란 물질적 가치의 신봉으로 인한 경쟁 사회의 심화, 열악한 노동 문화, 성별 간 기대치의 불일치라는 것을 주지시킨다. (2024.06.27)


세상의 행간을 읽는 이슬기 기자의 콘텐츠 리뷰.
격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EBS 창사특집 <조앤 윌리엄스와의 대화>

정부가 ‘인구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언했다. 2030년까지 ‘합계출산율(여성이 15~49살에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 1.0명’을 목표로 “범국가적 총력 대응체계를 가동하겠다”(윤석열 대통령)는 것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꼴찌였다. 올해는 여기서 더 떨어진 0.6명대로 예상되고 있다.

“와, 대한민국 완전히 망했네요(Korea is screwed. Wow!)”라는 밈으로 회자된 세계적인 석학 조앤 윌리엄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법대 명예교수가 한국의 청·장년들을 만났다. 지난 20일 방영된 EBS 창사특집 프로그램 <조앤 윌리엄스와의 대화>에서다. 지난해 EBS 다큐멘터리 <인구대기획 초저출생>에 출연, ‘합계출산율 0.78명’(2022년 기준)을 듣고서는 머리를 싸매며 놀랐던 그다. 노동과 젠더를 연구하는 그는 한국에서 각각 두 아이를 낳아 기르는 40대 엄마와 아빠, 알바부터 정규직까지 모든 고용 형태를 경험한 20대 남성 노동자, 30대 여성 사회복지사와 마주 앉았다.

다큐는 윌리엄스 교수가 등장했던 짧은 영상에 달린 댓글들, 청소년들의 의견, 해외 유명 언론들의 진단에서부터 초저출생의 원인을 짚어나간다. 그 가운데 크게는 일중독 사회로 일컬어지는 경쟁과 백래시 심화라는 두 가지 주제에 포커스를 둔다.

윌리엄스 교수의 진단은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한국의 고강도 노동이 이제는 초저출생이라는 사상 초유의 현상을 초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노동자의 연평균 근로 시간은 1,901시간으로, OECD 가입국 중 멕시코, 칠레 다음이다. 2021년부터 주 52시간제가 근로자 5인 이상의 사업장에서도 전면 시행됐지만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잘 지켜지지 않는다. 윌리엄스 교수가 말하길, 한국에서의 이상적 근로자 모델은 1950년대에 멈춰 있다. “성인 초기에 일을 시작해서 40년 동안 전일제로 초과근무도 하며 출산과 육아, 노인 돌봄 등으로 쉬지 않는 사람”으로 말이다. 이는 가사·돌봄 노동을 오롯이 전업 주부인 아내에게 의탁하는 기혼 남성이나 달성 가능한 형태다.

윌리엄스 교수의 얘기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당연시해 왔던 가치관의 전복이 일어난다. 윌리엄스 교수가 목도한 한국 국민들은 “아이를 안 낳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아이에게 제대로 해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해줄 수 없는 건, 다름 아닌 ‘물질적 지원’이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물질적 행복이야말로 굉장히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처럼 경쟁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사교육비 지출은 OECD 가입국 중 최고 수준이며, 주거비도 OECD 주요국 평균보다 1.23배(2023년 기준) 높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이상 이러한 현실에 매몰될 수밖에 없고, 대안적 삶을 상상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윌리엄스 교수는 가정 내 역할을 두고서도 남성과 여성 사이 기대의 불일치가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한국 여성들은 점점 진보적으로 변하는 반면, 한국 남성은 급격하게 보수화되고 있다. 이는 다른 국가에서도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한국에서는 그 차이가 훨씬 뚜렷해 많은 갈등이 파생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목도하는 ‘백래시’(대중적 반발)다. 그는 젊은 남성들은 자신이 부양자 역할을 하고 아내는 가정주부 일을 하는 전통적인 성역할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경력을 유지하길 원하기 때문에 “이것이 낮은 혼인율로 이어지는 원인 중 하나”로 본다.

그가 내놓는 해결책은 기업과 정부, 사회 차원으로 나뉜다. 먼저 기업이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 기업 관리자들이 근무 방식의 변화가 회사의 생산성을 높이며, 여성들이 직장을 떠나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깨닫고 직원들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정부에서는 고용주로 하여금 육아휴직 대체 인력을 더 뽑도록 장려해야 한다. 그래야 휴직자가 돌아왔을 때, 그 사이 대체 인력 부재로 과로에 내몰린 동료들의 분노를 피할 수 있다. 보다 가족 친화적인 기업 문화를 위한 첫걸음인 셈이다. 사회적으로는 여성과 남성 사이 대립으로 비화되는 ‘기대치의 불일치’라는 방정식에 남성을 추가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한국의 젊은 남성들은 아버지 세대의 남성상과 비교해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느끼고, 이것이 많은 불안과 분노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윌리엄스의 제언은 한국의 초저출생 문제란 물질적 가치의 신봉으로 인한 경쟁 사회의 심화, 열악한 노동 문화, 성별 간 기대치의 불일치라는 것을 주지시킨다. 외부의 관찰자 시점으로 듣는 이야기라, 더욱 심플하고 명료하게 전달된다. 그러나 정부가 인구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내놓은 대책들은 어떤가. 육아휴직 기간 연장 및 급여 연장, 자녀 세액 공제, 출산 가구에 대한 저금리 대출 혜택처럼 기존 육아휴직제도 정비나 현금성 지원책에 가깝다. 육아휴직은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운용을 막는 현장의 인식이 문제이며,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살인적인 근로 시간에 있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현금 지원책은? 아이를 낳으면 1억 원을 지급하겠다는 한 기업의 정책을 두고, 윌리엄스 교수는 반문한다. “아이를 키우는데 1억만 드나요?” 육아에는 1억만 들지 않고, 육아휴직 기간인 1년만 소요되지 않는다. 전 생애에 걸친 육아를 감당하면서도 부모의 커리어가 지속 가능한 상황이어야 사람들은 아이를 낳는 선택지에 보다 가까워질 것이다.

다큐 말미, 윌리엄스 교수가 힘주어 말하는 것은 아이를 낳겠다는 것도, 낳지 않겠다는 것도 사람들의 자유로운 선택지 중 하나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사람들에 신의 축복을 빌며 이어 말한다. “한국의 청년들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1년 전 “한국 망했다”며 머리를 감싸 쥐던 그는 자신의 무례를 사과했다. 그리고 그 새 한국을 찬찬히 들여다본 결과를 한 자 한 자 골라 가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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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슬기 기자

글 쓰고 말하며 사는 기자, 칼럼니스트. 1988년 대구 출생, 창원 출신. 한양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서울신문》에서 9년간 사회부, 문화부, 젠더연구소 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기자로 《오마이뉴스》에 〈이슬기의 뉴스 비틀기〉를 연재 중이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의 행간을 읽는 일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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