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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거리를 전전하는 남자와 그 앞에 나타난 불명의 여자

『냉담』 김갑용 작가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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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시작할 무렵, 거리에서 불명의 여자를 갑작스레 만나면서 벌어지는 한 남자의 내외부의 변화를 그린다. (2024.06.24)


김갑용은 <소설가라는 존재>와 <소설 쓰기>를 통해 인간과 세상의 본질을 찾아가고자 하는 일관된 태도를 지녀 왔다. 장편소설 시리즈 「내일의 고전」의 첫 책이자 그의 첫 장편 『냉담』에서 2020년 전 세계적인 팬데믹 속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어그러진 괴리감과 만나면서 그의 세계는 더욱 본격적으로 깊어지고 확장되었다.

『냉담』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 시작할 무렵, 거리에서 불명의 여자를 갑작스레 만나면서 벌어지는 한 남자의 내외부의 변화를 그린다. 소설을 쓰지 못하는 남자는 그에게 끝까지 필요한 영감을 주는 <그녀>를 절대적으로 쫓는다. 이 소설은 작가와 소설 그리고 배경이 되는 도서관이 가진 이미지의 일탈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이상한 쾌감을 선사한다. 소설과 소설 바깥, 현실과 꿈을 넘나들며 인간 삶의 심연을 더듬어 가는 김갑용에게 <이 시대에 소설을 쓴다는 것>에 대한 질문을 던져 보았다.



전염병이 심화되는 시기가 배경이다. 이 배경으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최초의 영감의 순간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2015년의 전염병 시기에 나는 오갈 데 없는 대학생이었다. 대학교 인근 지역의 감염자 발생으로 내려진 휴교령 때문에 텅 빈 캠퍼스 건물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숨어 지낸 적이 있었다. 그 며칠 동안 몹시 피폐해졌고 몇몇 극단적인 상상을 했다. 많은 사람이 전염병에 걸리고, 개인이 다수에게 쫓기고, 유폐되고, 격리 시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다른 한편, 『냉담』의 구상 초안은 2019년에 거의 마무리되었고 당연히 2020년의 전염병 시기는 반영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2020년에 이르러 지난 상상보다 더한 현실이 엄습하면서, 내가 쓰고자 했던 내용의 배경이 더는 현재 지점을 가리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전염병이 끝나더라도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가 마스크를 다시 벗게 되더라도 우리는 앞으로 마스크의 영향 아래서 살 일만 남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내 소설에 마스크를 씌워야만 했다.

소설 속에는 <소설이 사라진 미래의 마지막 도서관>이 나온다. 평소의 현실 속에서도 그런 생각을 하는가? 소설이 사라진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

<소설이 사라진 미래의 마지막 도서관>은 『냉담』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상상해 왔던, 그러니까 내 머릿속 「바벨의 도서관」 같은 공간이었다. 미셸 푸코는 도서관이 헤테로피아Heterotopia적인 속성을 지닌다고 말한 적 있다. <모든 시간, 모든 시대, 모든 형태와 모든 취향을 하나의 장소 안에 가두어 놓으려는 의지, 마치 이 공간 자체는 확실히 시간 바깥에 있을 수 있다는 듯 모든 시간의 공간을 구축하려는 발상>이 근대에 이르러 도서관에 형성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냉담』의 <이곳 도서관>은 도서관의 이러한 속성이 노골적으로 불거진 공간이다. 만약 먼 미래가 있다. 그 미래가 왜 내게 멀게 느껴지느냐면, 소설이 더는 쓰이지 않을 무렵이라는, 곧 도래할 테지만 현재의 내가 체감하기 힘든 전제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모든 소설이 도서관에 갇혀 있을 것이다. 도서관은 그야말로 소설의 공동묘지가 된다. 그렇게 소설이 옛 유물 신세로 전락한다면, 더는 쓰이지 않게 된 그 연유는 무엇일까? 나는 소설이라는 장르의 마지막을 상상하며 소설을 쓴다. 사람이 평생 죽음을 전제하며 살 듯이.

장편소설 사이에 두 편의 단편소설이 있다. 특이한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이 구성의 배경을 알고 싶다.

2022년 당시에 이 소설의 본문을 얼마만큼 쪼개 구성할지 고민이었다. 나는 최대한 잘게 쪼개고 싶었다. 많은 소제목을 갖기를, 각 소제목에 할당된 내용의 끝마다 매번 새로운 충격이 나타나기를, 그 어떤 소설보다 클라이맥스가 많은 형식이기를 바랐다. 여기서 쇼팽의 녹턴이 실마리가 되었다. 쇼팽의 녹턴은 정규 번호가 붙은 열아홉 곡과 그 외 두 곡으로 분류된다. 한 연주자가 쇼팽의 전집을 녹음한다면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스물한 곡을 모두 녹음하거나, 정규 번호가 부여되지 않은 두 곡을 제외한 나머지 열아홉 곡만을 녹음하는 것이다. 재밌는 발상이 떠올랐다. 만약 장편소설에 본문 외의 부속 원고가 두 편 있는데, 이 두 편은 본문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으면서도, 책 내에서 아무 쓸모가 없어서도 안 된다. 동시에 본문과 함께 어우러져 한 권의 책을 이뤄야 한다! 작가는, 나아가 독자는 이 한 권의 책을 어떤 식으로 구분 짓게 될까? 본문과 부속 원고 두 편을 하나의 소설로 볼까, 아니면 한 편의 장편소설과 두 편의 단편소설로 분명히 구분 지어 바라볼까? 그리함으로써 『냉담』은 열아홉 개의 소제목을 가진 본문과 부속 원고 두 편을 갖추게 된 것이다.

독자들이 카뮈의 『페스트』를 떠올린다. 전염병 시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그렇게 연상하는 듯하다. 이런 독자들의 반응이, 반가운가?

카뮈를 존경하고, 『페스트』 또한 즐겨 읽어 왔다. 독자의 이런 반응이 감사하나, 아쉽고도 당연하게도 내 소설은 그만한 경지에 오르지 않았다. 카뮈에게는, 그리고 카뮈의 소설에는 인류애가 있다. 내 소설에는 그게 없다. 내가 인류를 혐오해서가 아니다. 나는 아직 인류 전체를 바라볼 깜냥이 되지 못한다.

어떤 소설 또는 작가가 당신의 소설가 인생에 도움이 되었나?

안톤 체호프. 소설은 아니지만 체호프의 『사할린 섬』. 책은 러시아의 시베리아 넘어 동쪽 끝 사할린섬에 자리한 유형지를 직접 탐사하고 관찰한 보고서의 형식을 띤다. 작가로서 성공한 시기에 체호프는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가장 비참한 속성을 띠는 지대에 도달했다. 죄수가 아닌 작가로서 유형지에 이른, 내가 알기로는 최초의 사례다. 체호프는 시베리아를 횡단하는 과정에서 이곳 주민들의 특이한 언어상(言語相)에 관해 이렇게 언급한다.

아파서 고함지르는 것, 우는 것, 도움을 청하는 것, 일반적으로 부르는 것 등을 이곳에서는 울부짖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베리아에서는 곰뿐만 아니라 참새도 쥐도 울부짖는 셈이다. 쥐도 <고양이를 맞닥뜨렸기 때문에 울부짖는다>라고 말하고들 있다. 우리도 울부짖기 시작한다. (안톤 체호프, 『사할린 섬』, 배대화 옮김, 동북아역사재단, 서울, 2013)

그 구절을 읽은 뒤로 나는 내 소설 작중에서 무엇을 다루든 그것이 울부짖는다고 생각하며 쓴다.

첫 장편소설이다. 어려웠던 점은?

2016년에 신춘문예로 등단했는데 이제 두 번째 책을, 첫 번째 장편소설을 낸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등단한 작가들은 현재의 체감상 기성 작가에 준해 가는 듯하다. 등단한 지 채 몇 년이 지나기도 전에 단행본을 서너 권씩 출판하는 부지런한 작가들이 많은 요즘이다. 언제는 나보다 몇 년은 늦게 등단한 이삼 년 차 작가 한 명이 내게 첫 장편소설을 쓰는 게 얼마나 고생인지 자신이 안다며 선배처럼 격려해 주기도 했다. 소설을 향한 관점이 어느 정도 무르익은 시점에서부터는 쓰기가 처음인지 아닌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진정으로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작가가 남들이 열 권을 쓸 때 한 권을 썼다면, 실은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열 권을 쓸 수 있었으나 그럼에도 한 권을 썼다면, 그것은 아홉 권을 머릿속에서 써보았다가 지워 버린 것이다. 첫 장편소설을 쓰는 데 내게 가장 어려웠던 점은 바로 종이 낭비에 불과했을 아홉 권의 책을 머릿속에서 지워 내는 일이었다.

「내일의 고전」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고전>이라는 말에 무게감이 부담스럽지 않았는가? 어떤 소설이 <시대의 고전 소설>이 될 수 있다고, 또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고전>이라는 말이 부담스럽지는 않은데, 왜냐하면 소설가가 살아 있는 <오늘>이 아니라, 그 사람이 죽은 뒤의 <내일>에 비로소 논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만큼은 내 소설이 심사대에 오를 일이 없으므로, 그 당락을 걱정하기보다는 오늘 쓸 수 있는 것이 무언지를 생각하는 게 더 마음이 편하다. 그러나 오늘 쓸 수 있는 것이 더는 없다고 여겨지는 순간 나는 내 지난 소설들의 가치를 되돌아보고 불안해할 것이다(다행히도 내게는 오늘 쓸 수 있는 소설 한 편이 아직 남은 듯도 하다). 그런 나도 지난 시대를 향해서는 한 독자로서, 엄연히 <고전>의 심사위원일 것이다. 나는 소설이란 애당초 천성이 무뎌서는 안 되며 날카로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 시대의 단두대였던 소설이 지금에 와서는 바지 속의 호주머니도 찢어내지 못한다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소설이, 오로지 소설 내부에서 발현되는 힘만으로, 미래의 독자에게 유효한 상처를 입힐 수 있다면, 그 소설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 본다.



*김갑용

빈틈없는 구성과 마음 깊은 곳을 찌르는 심중한 문장들 사이로 인간 삶의 불완전성과 무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는 소설가. 1990년 대구에서 태어나 아산에서 자랐다. 10대 때부터 장편소설을 썼고, 2016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슬픈 온대」가 당선되어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한 사람의 모든 것을 소설에 담는다는 불가능성에 도전하고 절망하는 이들이 주인공인 8편의 단편 소설집 『토성의 겨울』(2022)이 첫 책이다.

『냉담』은 그의 첫 장편소설로 동정심과 죄의식 그리고 감정의 표현이 쇠약해진 한 남자가 거리에서 불명의 여자를 갑작스레 만나면서 벌어지는 내외부의 변화를 그린 소설이다. 이 소설은 겉으로는 공동체를 잠식해 가는 사회에 스민 냉담성에 관한 화두를 던지고 있지만, 독자는 문학에 냉담한 이 시대를 견디는 소설가의 고귀한 분투를 같이 겪게 될 것이고, 결국 자신이 찾고자 하는 진정한 가치와 진실에 도달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과정에 서 있게 될 것이다. 작가는 <소설에서 끝내 말하지 못하는 진실>을 해방시킴으로써 그 진실을 독자로 하여금 마주하게 한다. 그 진실은 모두에게 유익할 리 없을 것이고, 누구에게나 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는 두 인물을 축으로 하는 장편소설을 구상 중이다. 『냉담』이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간 한 사람을 다루었다면, 차기작에서는 두 사람의 이야기, 즉 이원적 관계에서부터 출발하여 세상과 공동체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냉담
냉담
김갑용 저
소전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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