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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 철학자들로부터 삶의 방향을 안내받는 법

『실존의 향기』 한충수 작가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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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인생의 방향을 찾는 일은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의 이야기를 고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쉬가 멋진 말을 했지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자기 삶이 되는 이야기를 찾아낸다”고요. 그러니까 인생 방향 찾기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2024.06.21)


우리가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삶을 사랑하는 법은 무엇일까? 이 책은 니체, 하이데거, 키르케고르, 러셀, 사르트르와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짧은 글귀를 하나씩 소개하고, 거기에 담긴 철학자들의 사유를 지금 우리의 삶과 연결해 친근하고 이해하기 쉽게 풀이한다.

실존철학이란 사람에게 삶의 변화를 청유하는 철학이다. 이 책은 그 변화가 사람이 저마다 가지고 있는 향기가 달라짐으로써 나타난다고 말한다. 나의 존재에 집중하고, 흩어진 향기를 되찾기 위해 실존철학을 어떻게 읽고 소화해야 할까?



작가님의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하이데거의 철학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후로 이 거인 철학자의 어깨 위에 서서 실존철학, 예술철학, 비교철학 분야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제게 가장 뜻깊은 것이 실존철학이랍니다. 저는 학부에서 기계항공공학을 전공했는데, 그 시절에 우연히 실존철학을 접하고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진로를 공과에서 문과로 바꾸게 되었지요. 부모님과 은사님 그리고 학우들의 도움으로 오랜 공부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에서 제가 좋아하는 실존철학을 마음껏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답니다.

책의 제목을 『실존의 향기』로 지으셨습니다. 실존이 향기와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저는 “실존”을 진실한 존재로, “향기”는 분위기로 이해합니다. 실존의 향기는 진실한 존재의 분위기를 말하지요. 진실로 존재하는 사람은 참된 자아를 붙잡고 실존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실존하지 않는 사람은 자아를 상실한 채 생존에 급급하여 허둥지둥 살아갑니다. 두 사람의 분위기는 서로 다르겠지요. 실존하는 사람에게서는 자신의 진실한 존재가 멋지게 피어나서 고운 분위기를 풍길 것입니다. 아름다운 꽃처럼 말이지요. 저는 그 분위기를 실존의 향기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저의 책이 그 향기를 전하는 공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책의 구성이 일반 철학서와는 다르게 독특합니다. 철학자들의 글귀를 한 토막씩 인용하여 문장 자체를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데요. 이렇게 구성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두 철학자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 철학자는 제가 가장 많이 읽은 하이데거입니다. 그는 수많은 강의와 강연들에서 다른 철학자들과 대결했습니다. 그 대결은 그들의 글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을 발췌해 자세히 해석하는 방식으로 벌어졌지요. 감탄을 자아내는 그의 해석을 보면서 저도 그처럼 글을 써보고 싶었나 봅니다. 두 번째 철학자는 저를 철학의 길로 안내한 니체입니다. 그는 산업사회에서 독서도 다른 모든 일처럼 빨리 해치우는 사람들을 걱정했습니다. 니체는 그들에게 문장을 되새김질하면서 느리게 읽는 법을 가르치려고 했지요. 물론 저의 독서력은 하이데거나 니체에 비하면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독자 여러분과 함께 읽는 힘을 길러보고 싶습니다.

이번 크레마클럽 오리지널 연재분도 그렇고, 책에 사랑을 다룬 내용이 많아 보입니다. 사랑이 실존과 어떤 큰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요?

먼저 책에 사랑을 주제로 하는 에피소드가 여러 편인 배경부터 말씀드려야겠네요. 책의 「나(아)가는 글」에서도 밝혔는데요, 9번째 에피소드에서 인용한 사랑에 관한 키르케고르의 일기는 제가 강의 준비를 위해 참고문헌을 읽다가 발견했고, 10번째 에피소드에서 다룬 니체의 운명애(amor fati)는 저의 수강생들이 발표했던 개념이고요, 11번째 에피소드에서 소개한 초월적 사랑은 제가 야스퍼스의 책을 번역하다가 찾았답니다. 그러니까 책에 사랑에 관한 내용이 많은 것은 실존과 사랑 사이의 필연적 관계 때문이 아닙니다. 하지만 질문을 받고 생각해보니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 같네요. 진실로 존재하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데, 그때 자신을 세상의 중심처럼 느낍니다. 그런데 사랑을 하는 사람도 같은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 나온 남자주인공의 프러포즈 대사에서도 그 느낌이 충만한 것을 볼 수 있지요. “난 요즘 온 우주가 우리 둘만 있게 도와주는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 온 우주가 도와줘서 말인데, 우리 결혼할래요?” 이처럼 사랑과 실존이 가까워서, 다음 책에서도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를 적어도 하나는 써보려고 합니다.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실존이라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고, 우리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아직 인생의 방향을 찾지 못한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사람이 인생의 방향을 찾는 일은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의 이야기를 고르는 일인 것 같습니다.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쉬가 멋진 말을 했지요.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자기 삶이 되는 이야기를 찾아낸다”고요. 그러니까 인생 방향 찾기는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고민에 빠질까요? 제가 “언젠가”라고 번역한 독일어는 “früher oder später”인데, 영어로는 “sooner or later”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둘 다 비교급이지요. 바로 여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진로를 더 늦게 결정하는 것처럼 보이면 마음이 조급해지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사람은 자신의 진실한 이야기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추구하는 삶을 향해 서둘러 달려가게 되지요. 이 어려움을 감내하는 데에 실존철학이 다소 도움이 될 수 있답니다. “실존하다”로 번역된 영어 단어 “exist”는 글자 그대로는 “나와 서다”를 뜻하지요. 실존하는 사람은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리는 대다수 사람과 달리, 즉 그들에게서 나와 서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조금 늦더라도 자기 삶의 이야기를 직접 찾는 것이지요. 그렇게 인생의 방향을 찾는 인물의 모습은 이번 책에서 「실존의 인물」이라는 제목의 8번째 에피소드에 담았답니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다음 책에도 있을 것입니다.

철학책이 드라마처럼 시리즈로 구성된다니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실존의 분위기와 철학』 시리즈를 구상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실존철학은 19세기에 탄생한 철학이지만 지금도 관련 책들이 전 세계에서 출판되고 있답니다. 그 수많은 책을 연구하면서 저는 인상 깊은 구절들을 주제별로 묶어서 해설하는 시리즈의 책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지요. 그 실존의 분위기와 철학 시리즈의 첫 번째 시즌이 바로 이 책 『실존의 향기』입니다. 두 번째 시즌(『실존의 허기』)에서는 현대인이 느끼는 공허함에 관한, 세 번째 시즌(『실존의 생기』)에서는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여러 실존철학자의 견해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저의 책들을 통해 여러분의 삶에 실존의 분위기가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을 많이들 하는데요, 책 속에서 사르트르가 강조한 주체성과 책임감이 코로나19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듯이 인문학과 우리 삶을 연결한 대목들이 흥미로웠습니다. 삶에서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전국의 많은 대학교에서 철학과를 비롯한 인문대의 여러 학과가 폐과되는 현실에서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인 것 같습니다. 다시 드라마 <눈물의 여왕>의 도움을 받아보려고 합니다. 여자주인공은 심각한 뇌종양 진단을 받았으나 수술을 받지 않으려고 합니다. 기억상실이라는 수술 부작용 때문이지요.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살아 있다는 건 기억들을 연료 삼아서 내가 움직이는 거야. 그러니까 그 기억들이 나고 내 인생이야. 그런데 그게 다 사라지는 거라고. … 근데 어떻게 그게 나야?” 저는 인문학이 인류의 기억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은 인류 상상력의 기억이고, 어학은 인류 대화의 기억이고, 사학은 인류 업적의 기억이고, 철학은 인류 정신의 기억이고, 신학은 인류 믿음의 기억이지요. 이러한 기억이 모조리 사라진다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상상하기 힘들 것입니다. 문학과 함께 상상력도 없어졌기 때문이지요. 저는 앞으로 『실존의 분위기와 철학』 시리즈와 함께 저의 존재 이유와도 같은 삶에서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를 계속 생각해보겠습니다.



*한충수

한충수는 서울대학교 기계항공공학부를 졸업한 뒤 동 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하이데거 철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독일과 한국의 여러 대학교에 출강했고, 현재는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에서 기쁘게 일하고 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실존철학, 예술철학, 비교철학이다. 번역서로는 한병철의 『선불교의 철학』(2017), 하이데거의 『철학의 근본 물음』(2018), 야스퍼스의 『철학적 생각을 배우는 작은 수업』(2020), 하이데거의 『예술 작품의 샘』(2022)이 있다. 국제 학술지 논문으로는 “Heidegger and the Bridge”(2013),  “Heideggers Rezeption des  Taoismus”(2017), “Heideggers Erläuterung der hölderlinschen Dichtung”(2019), “Humanismus bei Heidegger und Sloterdijk”(2022), “An Elucidation of the Citation from Hölderlin’s Poem ‘The Journey’”(2023)가 있다. The Routledge Handbook of Phenomenology and Phenomenological Research(2021)에서 한국의 하이데거 철학 연구를 소개했고, 현재 한국 하이데거 학회 및 Heidegger Circle in Asia에서 활동하며 국내외 하이데거 철학 연구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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