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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승 칼럼] 엄마를 어떻게 하지?
김지승의 끔찍하게 예민한 질문들 4화 - 타자의 장례식
새벽 2시 45분 엄마의 전화. 있잖아. 내가… 내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2024.06.18)
김지승 작가가 읽고 쓰기 위한 여성의 질문들을 던집니다. 격주 화요일 연재. |
새벽 2시 45분 엄마의 전화.
있잖아. 내가… 내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
놀랐지만 놀라지 않은 척한다. 그럴 수 있지. 바다 해, 곧을 정. 해정 씨. 바다에서 곧게 사느라 외로운 해정 씨, 이제 기억나십니까?
그래. 미안하다.
괜히 전화해서, 잠을 깨워서, 자신이 영 못 쓰게 된 것 같아서 미안하다는 말을 다급하게 남기고 엄마는 내가 반응할 새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거는 것도 끊는 것도 일방적이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너에게는 그럴 수 있지, 라는 엄마가 하지도 않은 말이 미열처럼 남았다. 이 새벽에, 있는 대로 겁먹게 하고서는 이런다고? 혼잣말로 미열을 식혔다. 보란 듯이 푹 잠들어버려야지 했지만 쉽지 않았다. 천장이 스크린이 되고, 벽이 스피커가 되더니 익숙한 얼굴과 한 문장을 반복 재생했다. 엄마를 어떻게 하지? 아버지가 떠난 지 3개월이 지나고 있었다.
슬픔에 충실하셔서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마. H는 자기 시처럼 말했다. 여덟 살인가 아홉 살인가 보육원에 보내졌다는 이야기도 좋아하는 시를 낭송하듯 해서 그 자리의 모두를 울린 이력이 있는 H. 엄마도 사라지고 할 수 있는 말도 사라졌다. 그러니 나도 사라지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하지만 언제고 마음만 먹으면 사라질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에 굳이 사라지지 않았다고 H는 말했다. 15년 만에 눈앞에 엄마가 나타났을 때에야 왜 진작 사라지지 않았나 자신을 책망했다고. 안녕하세요. H는 재회의 자리에서 그렇게 입을 열었다. 살을 좀 빼야겠구나. 엄마의 첫인사는 그랬다. 15년 동안 참아온 말이 그것이었던 것처럼.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들의 몸에 그 장면이 따끔따끔 새겨지느라 침묵이 흘렀다. 혹시 미친 거예요? 내가 아는 H라면 그렇게 쏘아붙이고도 남았을 텐데, H는 평소 잘 먹지도 않는 샐러드를 주문하며 엄마를 향해 “그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문득 자기를 버릴까 봐 엄마 옷자락 붙잡는 세 살 아이 표정 알지? 듣고 있던 모두가 그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만나기 전에 더 힘껏 사랑할 수 있었던 엄마와 헤어지고, 샐러드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바람에 허기와 허탈이 오가는 상태로 침대에 쓰러지고 나서야 H는 일상의 자신으로 돌아와 중얼거렸다. 와… 이 엄마를 어떻게 하지?
날이 갈수록 엄마의 몸속 많은 것들이 슬픔에 자리를 내어주고 침묵했다. 한 사람과의 관계를 토대로 구축된 중요한 세계가 무너졌다. 잃음에서 잊음으로의 이행이 부드럽게 폭력적이었다. 이렇게까지 이해가 될 건 뭐냐. 그래서 내 슬픔이 자꾸 뒤로 밀렸다. 엄마의 남편과 내 아버지는 같지만 다른 존재였다. H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르지. 엄마 남편 애도하느라 아버지 애도가 불가능해진 딸들의 모임이 있는데 들어올래? 나는 쥐고 있던 지우개를 H에게 던졌다.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하는 H의 얼굴에 쩔쩔매는 세 살 아이의 표정이 일순 나타났다 사라졌다. 네. 네. 친구랑 같이 있어요. 말해도 모르실 거예요. 아니, 친구가 엄마 욕을 왜 해요? 네. 네. 안녕히… 할 말만 하고 끊는 엄마들의 모임도 어딘가 있겠지, 하고 내가 웃자 H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나는 안 무서워도 딸 친구는 무서운가 봐.
- 네가 무섭다는 말일 거야. 인정하기 싫어서 괜히 다른 사람 끌어들이는 거지.
하긴. 자기 얘기는 절대 글로 쓰지 말라고 하더라.
- 그래, 너는 엄마 말 들어. 내가 대신 이쁘게 쓸게.
H가 지우개를 되던지며 웃었다. 괜찮은 생각이야. 네 엄마 얘기는 내가 쓴다 그럼?
곤충 날개를 닮은 꽃잎이 떨어졌다. 포기했나 봐. 우리는 포기한 것들 곁에서 마음을 놓는다. 친밀한 사람들은 가까워서 불편하고, 데면데면한 사람들은 멀어서 불편하다.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엄마를 어떻게 하지? 아직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다. 앤 카슨의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에서 엄마가 딸에게 말한다. “너는 기억하는 게 너무 많아.” 뭐든 너무 많으면 압력이 생기고 살해의 힘을 갖게 된다. 우리의 기억이 살해의 힘을 갖게 될까 봐 두 엄마는 두려운 걸까. 아니 두려운 건 우리다. 너무 많은 망각으로 살생의 힘을 갖게 된 엄마들. 새벽에 전화해 자기 이름을 묻고, 상처받은 얼굴 앞에서 나는 기억이 안 난다, 하는 엄마들이. H가 나 대신 쓴다. 나를 낳은 자가 나의 암살자라니, 완성되는 동그라미.
H 대신 나도 쓴다. 엄마 쓰기의 모범답안들. 지독한 현실과 딸 사이의 중간자이자 전적인 지지자였던 엄마를 위해 마지막 책을 쓴 마야 안젤루, 일반적으로 남성 영웅을 노래하는 서사시 장에 엄마라는 영웅의 자리를 마련하고 그의 삶을 서사시로 다시 쓴 테레사 학경 차, 호메로스와 엄마의 불어 발음이 유사한 점을 활용해 자신의 오디세이아, 자기 서사시의 저자를 엄마로 호명하는 엘렌 식수… 우리가 그들처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쓰겠지. 삶의 유일한 각주로 자꾸 출몰하는 그 대괄호를, 첫 번째 방을, 타자의 기원을 살해하고 내 문단을 시작하겠지. 두려움이 가시지 않으면 H와 나처럼 서로를 대리 상주로 세우고 남의 엄마에게서 나의 엄마에게로 건너갈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은 기억이 갖는 살해의 힘으로 매일 엄마를 다시 낳는 우리가 쓰지 않으면 대체 “그걸 어디다 내려놓을 수 있겠어요?”1
1 앤 카슨 지음, 황유원 옮김,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 난다, 2021, pp. 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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