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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삭 “우리의 삶에 깃든 공포가 언제나 안전하기를”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김이삭 저자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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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호러라는 장르가 타자에 대한 장르라고 생각하거든요. 타자라는 존재를 통해 두려움이라는 본능을 끄집어내는 장르랄까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나와 다른 것을 두려워하죠. 그런데 역설적으로 타자가 나와 ‘다르기’ 때문에 호러 장르를 안심하고 즐길 수 있어요. (2024.06.17)


첫 장편소설 『한성부, 달 밝은 밤에』의 드라마화를 확정 짓고, 장편소설과 에세이, 다양한 앤솔러지 소설집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소설가 김이삭이 첫 소설집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를 출간했다. 수록작에는 각각 귀신과 괴물, 논리적이지 않은 힘으로 대표되는 ‘괴력난신’이 등장하고, 작품 속 인물들은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연대와 위로를 청한다. 비정상으로 낙인찍혀 주변으로 밀려난 인물들에게 괴력난신은 낯설고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 자신과 비슷하여 의지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김이삭의 소설이 으스스한 호러적 재미와 함께 통쾌한 해방감을 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4년 여름, 서늘하고도 다정한 김이삭의 세계를 만나볼 시간이다.



이미 장편소설과 에세이를 펴내셨지만 소설집은 첫 출간이셔요. 첫 소설집을 묶으신 소회가 궁금합니다.

채널예스 독자님들, 안녕하세요. 장르소설 작가인 김이삭입니다. 첫 소설집인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로 인사를 드리게 되었네요. 출간할 때마다 걱정하는 마음과 설레는 마음을 반씩 품었던 것 같은데요. 이번에는 걱정이 좀 더 큽니다. 제가 쓴 소설로만 엮인 첫 소설집이라니……. 앤솔러지에 참여할 때와는 부담감이 다르네요. 쓸 때는 제 취향을 가득 담아서 썼는데, 읽는 분들의 감상은 어떠할지 알 수 없어 조금 걱정입니다. 출간 후 뚜껑을 열어보면(?) 알 수 있겠지요?

이번 소설집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를 짧게 소개해주신다면요?

첫 단편에서부터 지금까지 제가 천착하는 소재가 세 가지가 있는데요. ‘역사’와 ‘여성’ 그리고 ‘괴력난신’입니다.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는 호러 장르를 기반으로 제가 천착하는 소재들을 엮은 책입니다. 영화 <여고괴담> 시리즈나 드라마 <전설의 고향>, 청나라 소설 『요재지이』를 보거나 읽을 때 여귀 혹은 요괴의 목소리에 마음이 사로잡혔던 분들이라면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작가의 말에서 「성주단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셨어요. 호러 장르에서 여성 캐릭터가 사용되는 방식에 대해 고민이 많으셨다고요. 쓰시는 동안 작품 속 설정과 캐릭터에 대해 고민하신 지점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호러라는 장르가 타자에 대한 장르라고 생각하거든요. 타자라는 존재를 통해 두려움이라는 본능을 끄집어내는 장르랄까요. 사람은 본능적으로 나와 다른 것을 두려워하죠. 그런데 역설적으로 타자가 나와 ‘다르기’ 때문에 호러 장르를 안심하고 즐길 수 있어요. 타자가 귀신이나 살인마에게 쫓기는 피해자이든, 그들을 쫓고 있는 가해자이든, 혹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복합적인 존재이든, 어쨌든 내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두려움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 두려움이 진짜 내 두려움이 되지는 않는달까요. 적당한 거리감을 두면서 “안전한 공포”를 즐기게 되지요. 그런데 이렇게 되면 타자가 타자로만 남게 되고, 끝까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 되잖아요(호러 장르에서 여성 캐릭터는 이렇게 타자로만 남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분명히 나와 다른 타자라 할지라도, 그 이질감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면, 조금 다른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을까요. “안전한 공포”라는 건 사실 허상이라는 것을요. 저는 이 깨달음(?)에서 오는 두려움을 포착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작품 속 설정과 캐릭터를 구상할 때 어떻게 해야 이런 부분을 살려낼 수 있을지를 주로 고민했는데요. 쉽지는 않더라고요…….

「야자 중 ×× 금지」는 아영, 정원, 예원 세 명의 여성 청소년이 겪는 학교 괴담 체험기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체험에 참여하는 세 인물의 동기가 모두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원은 괴담을 파헤치려 했고, 나머지는 다른 이유로 예원을 따르다가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되지요. 작품 속 세 인물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예원은 전교 3등(문과)이자 괴담 덕후입니다. 이 작품은 배경이 목동 학군에 있는 가상의 학교인데요. 이런 학교에서 내신 성적이 전교 3등인 학생이라면,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전제하에) 4년제 일반 대학 수시 지원 가능 횟수인 6개를 다 쓰지 않을 가능성이 있지요. 수시 원서 접수비라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하향 지원을 했다가 진짜로 붙을까 봐서요. 그러나 재정적으로 풍족하고 학업 성취도가 뛰어난 학생이라 할지라도, 모르는 게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기에, 주변 환경에서는 접해볼 일이 없기에, 미처 생각해본 적이 없기에……. 「야자 중 ×× 금지」에서는 그것이 ‘괴담’으로 나옵니다. 예원은 모르는 것을 모르는 대로 그냥 넘어가는 청소년이 아니라, 어쩌면 영영 알 수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알고자 노력하는 청소년입니다.

정원은 셋 중 가장 이성적이면서도 침착한 청소년입니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이성적이면서도 침착한’ 판단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선택을 하곤 하지요. 끝까지 다 읽어야 그 이유를 확실히 알 수 있고요. 사실 「야자 중 ×× 금지」는 처음에 장편으로 구상했던 글이거든요. 원래 제목은 『야자 중 연애 금지』였습니다. 제목에 ‘연애’가 들어갔던 건 정원 때문이었고요.

아영은 「야자 중 ×× 금지」의 주인공인데요.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늦게 조형한 캐릭터입니다. 이 글을 처음으로 구상한 게 5년 전이거든요. 그사이 제 관심사가 변하면서 아영이라는 캐릭터의 설정도 아예 바꾸게 되었습니다. 아영은 북한 이주민 2세대 청소년이랍니다. 외국 음식을 학교 급식을 통해 처음으로 접하고, 한국 사회를 학교를 통해 익히지요. 왜 하필 북한 이주민 2세대인가, 라고 물으신다면 북한 이주민들이 목동 학군의 변두리 지역에 모여서 거주하고 있다는 현실(?!)과 제 가족의 절반이 북한 이주민이라 작가의 관심이 그쪽에 쏠려 있다는 지극히 사적인 답변을 드려야 할 듯합니다…….

작가님의 작품은 읽으면서 시대적 배경이나 소재에 대한 풍부한 레퍼런스가 느껴집니다. 이 점이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아요. 「풀각시」를 읽으면 달귀 귀신 이야기가 궁금해지고, 「교우촌」을 읽으면 천주교를 박해하던 역사에 대해 알고 싶어져요. 다양한 독서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신지, 쓰기와 읽기를 병행하는 작업이 고되진 않으신지 궁금합니다. 

반쯤은 농담이지만, 저는 소설을 쓰기 위해 다른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을 사서 읽고 싶은데 책값을 벌어야 해서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주로 논픽션을 사서 읽고요. 소설은 장르소설 위주로 구매해서 읽습니다. 이따금 중화권 원서를 직구해서 읽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 읽는 속도가 사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적독가이기도 합니다.) 보통은 책이나 논문을 읽다가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을 때 아이디어를 얻고요, 그 작은 씨앗을 키우기 위해 관련 분야의 책과 논문을 좀 더 읽습니다. 구상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 다시 또 디테일을 위한 자료 조사를 시작하고요. 언제든 쉬이 참고할 수 있도록 장편을 쓸 때마다 책장을 새로 정리하고 있어요. 읽기와 쓰기 중 사실 읽기를 더 즐기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딱히 고된 점은 없지만, 참고할 자료가 다 집에 있기에 밖에서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게 조금 슬픕니다.

「낭인전」에는 늑대인간 변강쇠가 등장해요. 그에게는 약한 구성원을 배려하는 것, 뒤처지거나 다친 이도 버리지 않는 것 등 지켜야 할 늑대의 도리가 있습니다. 이는 여러 번 상부(喪夫)했다는 이유로 옹녀를 쫓아낸 인간들과 변강쇠가 대조되는 점이기도 합니다. 변강쇠를 통해 대안적 남성성을 보여준 것으로 읽히기도 하는데요. 이에 대해 더 듣고 싶습니다.  

그것은 소설 속에서 “늑대의 도리”로 나오지만, 사실 인간의 도리이기도 하지요. 이 글을 구상할 때 판소리 관련 논문들을 읽었는데요. 어떤 논문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변강쇠전』은 다른 판소리들과 달리 결말이 매우 특이한 편인데(옹녀는 결말 부분에서 아예 사라지고, 변강쇠는 장승의 동티를 입어 죽은 뒤 바위에 갈려 시신도 남기지 못합니다), 작품 속 인물들이 하층민일뿐더러 연행자 또한 하층민이었기에 이러한 결말이 자조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요. 즉 허구인 캐릭터와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실제 사람이, 어쩌면 상연을 지켜보는 이들 또한 하층민이었기에 그러한 결말을 보고 자조적인 웃음을 보였을 거라는 거지요.

그 부분을 읽으니 『변강쇠전』을 다르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골계희(滑稽戱)의 미학인 골계미는 약자나 사회적 소수를 조롱하는 데에서 나오는 웃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강자나 권력자를 풍자하는 데에서 나오는 웃음에 있거든요. “약한 구성원”이나 “뒤처지거나 다친 이”를 조롱하며 우스갯소리로 삼는 것은, 심지어 그 조롱이 나 자신을 향한 것이라 할지라도 해학이라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두 주인공인 옹녀와 변강쇠를 어떻게 조형해야 원작의 틀을 그대로 따라가면서도 이야기가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읽힐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늑대의 도리”를 지키는 변강쇠를 만들어내게 되었어요. 「낭인전」에서 옹녀가 강쇠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건 그가 “마음씨는 비단결 같고, 용모는 천상 선인 같으며 수명은 삼천갑자 동방삭 같은 이”라 그렇거든요. 하지만 옹녀가 강쇠를 사랑하게 된 건 그가 “늑대의 도리”를 지키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지요. 강쇠는 마을에서 추방당한 옹녀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자 세상을 향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도록 곁에서 힘을 주는 사람이었어요.

옹녀와 변강쇠가 모두 시스젠더 헤테로이고 이 작품이 로맨스적 요소가 강하기에 변강쇠의 이러한 면이 대안적 남성성으로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사람이라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도리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늑대의 도리”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도리이기도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채널예스 독자분들께 전하고 싶은 한마디를 말씀해주시겠어요? 앞으로의 계획과 포부도 궁금합니다. 

괴력난신의 붐은 온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역사’와 ‘여성’ 그리고 ‘괴력난신’에 천착하며 한 우물을 파려고요. 독자의 시간을 순삭시키는 재미있는 글, 다 읽었을 때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를 남기는 글을 꾸준히 쓰는 것이 제 계획이자 포부랍니다.

그러면 채널예스 독자님들, 안녕히 계세요. 저는 책으로 안부를 전할게요.

부디 책 속에서 많은 재미를 발견하셨기를 바랍니다.



*김이삭

평범한 시민이자 번역가, 그리고 소설가. 지워진 목소리를 복원하는 서사를 고민하며 역사와 여성 그리고 괴력난신에 관심이 많다. 장편 『한성부, 달 밝은 밤에』와 『감찰무녀전』을 썼고, 여러 앤솔로지에 참여하였다. 자전적 에세이로 『북한 이주민과 함께 삽니다』가 있다. 홍콩 영화와 중국 드라마, 대만 가수를 덕질하다 덕업일치를 위해 대학에 진학했으며 서강대에서 중국 문화와 신문 방송을, 동 대학원에서는 중국 희곡을 전공했다.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김이삭 저
래빗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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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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