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숙의 노상비평]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두루마리 휴지 상속
정말 이상했던 순간은 장례 지도사들이 더없이 엄숙한 표정과 절도 있는 동작으로 그가 놓인 관 구석구석에 완충재 역할을 할 것으로 추측되는 두루마리 휴지를 여러 통째 넣기 시작했을 때다. (2024.06.14)
이연숙(리타) 평론가가 길에서 만난, 우리가 선택할 수 없지만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격주 금요일 연재. |
아마도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하는 글을 읽고 싶어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달리 시작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지난달 죽은 내 할아버지에 대해 줄곧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내게 물려준 것에 대해서도.
나는 할아버지를 좋아했다. 내가 어렸을 적 할아버지는 개구진 말투로 나를 ‘연자야’라고 부르곤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물 한 잔 떠오니라’ 같은 성가신 심부름을 나는 한 번을 고분고분하게 따른 적이 없었다. 그건 우리만의 힘겨루기 놀이기도 했다. 그는 나를 기특한 손주로 여겼다. 서울의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 난 다음에는 특히 그랬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그에게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서 살고 있는지 하나도 솔직하게 말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한국 전쟁을 거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파견 건설 노동자로 일한, 더럽게 고집이 세고 무섭게 입이 걸은, 키 크고 곰보 자국이 멋진 내 할아버지. 나는 그를 좋아했지만 내 삶에 대해서는 그에게 정말이지 단 한 마디도 전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내 삶을 모욕하게 둘 수는 없었으므로. 이처럼 그와 나의 단절은 매우 천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일어났으므로 나는 이제 와 후회하지조차 않는다.
하지만 이따금 그가 할머니와 함께 내 첫 아르바이트 현장에 왔던 그날 그 장면이 떠오른다. 임금 체불로 스무 살의 나를 매일 울게 만든 대학 근처 돈까스 가게. 그때 그들은 이미 예순이 넘었고 기특한 손주를 보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버스를 타고 왔다. 나이보다 젊어 보여 사장은 그들이 나의 부모인 줄 안다. 서울에서 본 교양 있는 노인들, 어른들, 선생들과는 달리 촌티 나는 그들의 등장에 나는 창피해서 죽을 지경이다. 돈까스 가게에 앉아 있는 모두가 사투리로 메뉴 하나하나를 궁금해하는 그들을 비웃으며 쳐다보고 있는 것 같다. 얼굴이 터질 듯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결국 내가 그날 어떻게 그들을 돌려보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돌아갔을지를 상상하면 언제나 처음처럼 가슴이 미어지고 만다. 그가 서울에 온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죽기 일주일 전인가 나와 나눈 통화에서 그는 자기도 한번 서울로 가는 KTX가 타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앞으로 10년은 더 살거라 생각했기에 심드렁하게 아무 말이나 대꾸했다. 그건 더 이상 힘겨루기 놀이는 아니었다.
장례 이틀 차, 입관식에서 본 그의 얼굴은 한 달 전 만났을 때와 다름없이 놀랍도록 생생해 보였다. 여전히 10년은 더 살 것처럼 보였다. 반면 그의 몸은 석고로 된 거푸집처럼 흰 천에 둘둘 감겨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장례 지도사들은 테이블에 길게 놓인 그를 물건처럼 들어 관에 넣으며 가족들은 잠시 눈을 감고 묵념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어디까지 봐도 되고 어디까지 보면 안 되는 장면이었던건지 모르겠다. 정말 이상했던 순간은 장례 지도사들이 더없이 엄숙한 표정과 절도 있는 동작으로 그가 놓인 관 구석구석에 완충재 역할을 할 것으로 추측되는 두루마리 휴지를 여러 통째 넣기 시작했을 때다.1 엥? 이거 실화? 나는 비용 절감을 위해 선택된 것이 분명한, 장례식장이 강제하는 애도의 절차들이 의도하는 것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효과를 산출하는, 좋든 싫든 한국 문화에서는 반드시 배변 활동을 떠올리게 만드는 두루마리 휴지의 갑작스러운 등장 때문에 터진 웃음을 참느라 부들댔다. 아마 할아버지도 웃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건 장례식장이 미리 설치해 둔 농담일지도 모른다. 알다시피 죽으면 우리는 모두 두루마리 휴지만도 못한 폐기물이 될 뿐이니까.
삶을 건설하고 지속하기 위해서는 죽음으로부터 안전 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최소한 현대적 의미에서) 장례식장이 고안된 것일테다. 장례식장은 거대한 오수 처리 시설처럼 죽음을 보관해 주고, 처리해 주고, 정화해 준다. 장례식장을 통해 비로소 죽음은 안전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문명과 위생의 상징인 두루마리 휴지가 입관 절차에 사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삶에 묻은 죽음을 닦아내지 않고 우리는 매일의 일상을 견뎌낼 수 없으니까.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더 부유한 버전의 입관식에서도 두루마리 휴지가 사용될지 궁금해졌다. 오직 쓰레기가 되기 위해서만 생산되는 두루마리 휴지는, 장례식이 더 이상 아무것도 생산하지 못하는 죽은 몸을 산 사람의 사회로부터 분리하고 처분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는 경제적 절차라는 일말의 진실을 노출한다. 깨끗한 슬픔에 잠기기 어렵게 만드는 이 꾀죄죄한 생활 용품은 물론 한때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기특한 손주에게 잔잔한 모욕감을 제공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러한 진실–즉 죽음조차 평등하지 않다는 것–을 결코 잊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기이한 자랑스러움 역시 제공한다. 계급적 표식으로서의 두루마리 휴지. 모욕감과 자랑스러움.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들이야말로 할아버지가 내게 물려 주려 했던 유산이라는 걸,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건만 혼자 알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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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와 시각예술에 대한 글을 쓴다. 소수(자)적인 것들의 존재 양식에 관심 있다. 기획/출판 콜렉티브 ‘아그라파 소사이어티’의 일원으로서 웹진 ‘세미나’를 발간했다. 프로젝트 ‘OFF’라는 이름으로 페미니즘 강연과 비평을 공동 기획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hotleve 를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