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를 제대로 알려면 먼저 스스로를 알아야 했다.
시골 마을인 산펠리페에 사는 사포텍 원주민이자 현재 생존해 있는 가장 유명한 치유자인 펠리시아나와, 멕시코시티에서 현대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기자 조에, 두 사람의 세계에는 일면 교점이 거의 없어 보인다. 전통과 서구화, 과거와 현재, 받아온 교육과 그로 인해 구축된 세계관, 사회적 지위, 세대 차이는 있을지언정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나라 사람인데도, 두 사람은 쓰는 언어조차 다르다. 펠리시아나는 원주민의 전통 언어를, 조에는 스페인어를 구사한다. 펠리시아나가 사람을 쓰다듬는 듯한 부드러운 구어체로 말한다면, 조에의 이야기는 컴퓨터를 앞에 두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듯한 정돈된 말투로 이어진다. 거의 모든 면에서 대조적인 두 사람은, 펠리시아나의 사촌이자 스승인 팔로마가 살해된 사건을 조에가 취재하며 접점을 갖게 된다. 그리고 조에는 펠리시아나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펠리시아나와 그 가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너희는 한계에 부딪치는 벼룩이 아니야.
원하는 만큼 뛰어오를 수 있단다.
펠리시아나의 조상들도 치유자였지만, 치유자의 가계는 남성인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사촌에게 이어진다. 자신의 ‘책’을 가진 언어의 치유자로서 펠리시아나가 마침내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완고한 그의 외조부는 막아선다. 그건 남자들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멕시코시티에서 현대적인 교육을 받은 조에 역시, 펠리시아나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그 역시 ‘언어’를 가진 사람, 기자이지만 그의 세계에는 여성에게 편협하게 굴며 억압하는 남자들이 있고, 사방에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늘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조에의 어머니는 딸들을 격려한다. 남성우월주의로 돌아가는 체제에서 여성의 삶이란 병에 벼룩을 넣고 뚜껑을 닫아 놓은 것과 같다고. 그 뚜껑을 누군가 열어주어도 벼룩들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 한계까지만 뛰어오른다고. 뚜껑을 직접 없애고, 원하는 만큼 뛰어오르라고. 하지만 세상에 나온 딸들이 겪게 되는 삶이란 결코 녹록한 것이 아니다.
펠리시아나와 조에는 서로 확연히 다른 세계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한 성부가 연주한 주제를 다른 성부가 모방하며 이어가는 푸가의 선율처럼 이들이 한 챕터씩 주거니 받거니 이어가는 자신과 가족들의 과거와 비밀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 변주와 모방처럼 닮아 있다. 펠리시아나가 말하는 여동생 프란시스카와 사촌 팔로마, 조에가 말하는 엄마와 여동생 레안드라의 이야기에서 독자는 침범당할 수 있는 몸을 가진 이들의 가계와 이들이 받았던 좌절들을 현실에 비춰보게 된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 돌림노래처럼 이어 부르는 듯한 이 억압의 이야기 속에서, 펠리시아나가 “우리의 자매들은 우리에게 없는 무언가, 우리가 아닌 무언가입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가 말하는 “자매”란 것이 단순히 혈연으로 이어진 여자 형제가 아니라, 여성이라는 큰 조류 안에서 엇비슷한 좌절과 고통들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이들 전부를 아우르는 말임을 깨닫게 된다.
나는 책 - 여자이자 언어란다.
치유자인 팔로마는 펠리시아나의 할머니를 죽음에서 구해내고, 펠리시아나의 치유자로서의 재능을 알아보고 인도한다. 아이를 낳고 남편을 잃은 뒤 치유자가 된 펠리시아나는 언어의 치유자이자 책의 주인이라 불리며 의식용 버섯을 이용해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치유한다. 수많은 것들을 내다보고 들여다보던 펠리시아나는, 팔로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가 어떻게 살해당했는지 바로 깨닫는다.
펠리시아나는 말한다. 자신은 마녀도, 점쟁이도 아니라고. 자신은 여자이자 언어일 뿐이라고. 그와 비슷한 것을, 조에의 어머니도 말한다. 직감이라고, 손이 불에 타고 있는 것과 같은 확신이라고.
조에의 어머니는 마녀도, 치유자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자녀들에 대해서만은 강한 직감을 갖고 있어서, 딸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바로 예감하고 연락을 하거나 찾으러 간다. 그리고 그런 직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사실 조에의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우리들 주변에서도, 자기 자식들, 특히 딸들에 대해서만은 예민한 직감을 가진 어머니들이 있다. 그런 것은 단순히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깊은 사랑의 발로이자,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성애 중심적인 가부장제에서 소외되고 억압에 시달리거나 폭력에 노출될 딸들에 대한 걱정에서 오는 동기화다. 이와 같은 동기화는 어머니에게서 딸로 전해지는 내리사랑 같은 것만 포함하는 것도 아니어서, 펠리시아나와 프란시스카의 초경이나, 조에와 레안드라가 서로가 서로의 균형을 맞추려는 듯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포함된다.
꽃이 꽃으로 태어난 이상, 덤불이 될 수는 없어.
『마녀들』은 기본적으로 대조적인 두 여성이 서로 번갈아 자신의 가족과 과거를 돌아보는 형태로 이어지지만, 그 이야기의 중심에는 팔로마가 있다. 팔로마는 펠리시아나의 사촌이자 제3의 성별인 무셰(Muxe)로, 남성이 아닌 자가 소외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인물이자, 전통문화와 서구문화 사이의 갈등 속에서 살해당한 인물이다. 남성이 치유자의 가계를 이어가는 집안에서 가스파르 삼촌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전통과 관습에 따라 펠리시아나의 아버지가 맡았던 치유자의 자리를 이어간다. 하지만 무셰를 제3의 성으로 인정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지 못하는 무셰를 부모를 돌보는 자식으로 여기던 사포텍문화와 달리, 서구문화에서 이들은 잘못된 존재이자 혐오의 대상이 된다. 사포텍 여성들, 전통을 따르는 이들, 소외받는 사람들은 팔로마를 사랑했고 그의 치유와 돌봄을 받았지만, 남성들은 그의 도움에 고마워하기는커녕 걸을 때마다 깃털이 떨어지는 것 같은 놈이라며 헐뜯고 혐오한다.
서구문화가 성별이분법적 세계에서 벗어나려 하는 현대에 와서도, 이들 남성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자신들을 지배하는 서구문화의 충돌 속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만 취사선택하며 아집을 휘두른다. 그들은 펠리시아나가 치유자가 되려는 것을 전통의 이름으로 반대하고, 전통 안에서 받아들여지던 무셰인 팔로마를 혐오한다. 그들은 치유자가 된 펠리시아나의 능력을 질투하거나 이용하려 하고 펠리시아나가 자신들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으면 총으로 쏘거나 집에 불을 지르는 등 폭력을 휘둘렀듯이, 팔로마의 사랑을 이용하고 착취하거나 성병을 옮기고 마침내 살해한다. 그들은 자신과 다른 존재를 인정하지 않거나 약자로 규정하고, 그들이 울타리를 넘는 꼴을 두고 보지 못한다.
하지만 팔로마는 말한다. 꽃이 꽃으로 태어나면, 누군가 그것이 덤불이기를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꽃이 덤불이 될 수는 없다고. 조에의 어머니가 벼룩에 빗대어 말했듯이, 남들이 규정하고 원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문예사조인 마술적 리얼리즘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모호하게 무너뜨리고, 예언이나 예지, 주술과 같은 비현실적인 사건들을 인물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펠리시아나가 따르는 전통, 치유자로서의 소명과 예지는 전통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마술적 세계관에 속해 있다. 그리고 ‘현대인’이자 기자, 교육받은 지식인으로 마술적 세계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던 조에는 팔로마의 죽음을 통해 펠리시아나와 만난다. 마술적이고 주술적인 세계와 이성적이고 사실적인 세계는 두 여성의 만남을 통해 동등하게 공존할 자리를 찾았다. 미개하고 비현실적이라 여겼던 미신적인 세계는, 펠리시아나를 통해 여성과 억압받는 자들의 직관, 전통 속에 살아 숨 쉬는 마술, 언어라는 이름의 치유로 받아들여진다.
마술적 리얼리즘이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자아 찾기의 산물인 동시에, 소외되고 억압된 사람들, 피식민지인, 피지배층, 그리고 가부장적 세계관에서 배제된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통로임을, 그들의 ‘리얼리즘’임을, 『마녀들』은 마녀이자 마녀가 아니고, 다만 언어를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필자 | 전혜진 만화와 웹툰, 추리와 스릴러, SF와 사회파 호러, 논픽션 등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소설집 『마리 이야기』, 『바늘 끝에 사람이』, 『아틀란티스 소녀』, 장편소설 『280일』, 논픽션 『규방의 미친 여자들』과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 『여성, 귀신이 되다』를 발표하였고 다수의 앤솔러지에 참여하였다. |
전혜진
만화와 웹툰, 추리와 스릴러, SF와 사회파 호러, 논픽션 등 매체와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소설집 『마리 이야기』, 『바늘 끝에 사람이』, 『아틀란티스 소녀』, 장편소설 『280일』, 논픽션 『규방의 미친 여자들』과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 『여성, 귀신이 되다』를 발표하였고 다수의 앤솔러지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