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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정의 옛 담 너머] 얌전한 아가씨인 내가 전생에 배덕한 선녀였다고?

현호정 칼럼 -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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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에 점을 보러 갔다. 자리에 앉자 무당이 부채와 방울을 흔들었다. 혼이 실린 그녀는 대뜸 내게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왜냐고 되물으니 완전히 사람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2024.05.28)


현호정 소설가가 신화, 설화, 전설, 역사 등 다양한 옛이야기를 색다른 관점에서 읽으며, 현대와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을 전합니다. 격주 화요일 연재됩니다.


옛날에 한 남자가 있었는데 어릴 적부터 자기 생일날 밤이면 평소 알지 못했던 곳, 구체적으로는 어떤 집으로 가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 집에 가면 백발의 노부부가 있었는데 단정한 차림으로 풍성한 상을 차려 놓고 상 옆에 의자를 두었다고. 그러면 자기는 그 의자에 앉아서 음식을 배불리 먹는데, 노부부는 상 아래에서 밤새 통곡하더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매년 이런 꿈을 꾸니 그는 자연히 마을 거리의 모습이라든지 집의 크기, 담장 둘레, 심지어 문의 방향과 돌계단의 굴곡 같은 세세한 사항들도 모두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게 됐다.

훗날 그가 평안감사가 되어 임지로 가는데 한 마을이 유난히 눈에 익었다. 꿈에 보던 바로 그 마을이었다. 감사는 하인을 멈추고 혼자 말을 타고 마을로 들어갔다. 곧 꿈에서 보던 그 집이 보였다. 그 집으로 들어가니 과연 노부부가 있었고 그들은 평양감사의 행차에 영문을 모른 채 마당 아래 엎드렸다. 평안감사는 그들에게 마루 위로 올라와 얼굴을 들어보라 했다. 과연 꿈에서 통곡하던 얼굴 그대로였다.

사연을 들어보니 그들에게는 열다섯 살에 죽은 아들이 하나 있었다. 총명하던 아이는 어느 날엔가 평안감사가 임지로 가는 행렬을 보고는 “사내대장부라면 평안감사는 해야지!”라고 탄식한 일이 있었다고. 그 아이가 죽은 연월일은 평안감사가 태어난 연월일과 같았다.1



이 이야기는 조선 후기의 야담을 모은 책인 『청구야담』에 수록되어 있다. 『청구야담』은 귀신, 꿈, 관상, 운명 등 신비한 이야기들이 담뿍 담긴 책인데, 이념이나 규범으로부터 한결 자유로워진 사회 분위기 덕을 톡톡히 보았다. 유교 경전인 논어에서 ‘자불어괴력난신(子不語怪力亂神)’라는 구절로 옳지 않다고 못 박아 두었던 ‘괴이(怪異)와 용력(勇力)과 패란(悖亂)과 귀신에 관한 일’을 이야기하기가 한결 편해진 터다.

‘괴이’ 얘기는 학창 시절 적잖이 두려워했는데 따돌림 경험 때문이었다. 나는 괴이한 이야기나 괴이한 것들 자체가 아니라 내 안에 괴이의 기준이 제대로 없다는 것이 두려웠고, 그걸 다른 이들에게 들키는 것이 두려웠다. 이상하다는 게 무엇인지, 그러니까 무엇이 이상한지, 이것들 중에 누구까지가 정상이고, 나는 어디까지 가도 되는 것인지를 파악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점차 표현을 줄였다. 나는 꽤 오래 얌전한 여자애로, 생활기록부에 “친구들의 말을 잘 들어 줌”이라고 적히는 이로 살았다.


소설가가 되기 전까지는.


이제 내 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지난 11월에 점을 보러 갔다. 자리에 앉자 무당이 부채와 방울을 흔들었다. 혼이 실린 그녀는 대뜸 내게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왜냐고 되물으니 완전히 사람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무당으로 산 지 18년이나 되었지만 신점 보러 온 사람 앞에 전생 얘기가 나오는 건 처음이라며 그가 스스로 놀란 후 내게 쏟아낸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이 땅에서 태어나 윤회를 해 온 존재가 아니라 원래 하늘의 선녀였는데 죄를 지어 벌을 받아 잠시 쫓겨난 상태라는 것. 이전의 삶들이 없었으니 자연히 이 땅의 사람들과 인연이 얕다는 것. 외로움, 언젠가 또 버려질 것이라는 두려움,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집착, 불안함이나 쓸쓸함이나 까닭을 알 길 없는 후회, 절망, 구원 갈망 따위가 거기서 발생하리라 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내가 천계에서 지은 죄가 성애(性愛)에 관한 죄라, 나를 내치며 옥황상제는 좋은 짝을 만나 건강하게 사랑을 주고받으며 가정을 이루고 살 수 없다는 조건까지 친히 추가했다는 거였다. 이 이야기를 하며 무녀는 갑자기 흥분했는데 그래서 남자는 좋은 마음으로 다가와도 내게 커다란 상처를 주고 떠날 수밖에 없다며 “고추는! 고추는! 반드시 너한테 상처를 줘!”라고 반복적으로 호통쳤다. 그건 그 남자가 나빠서라기보다는 어떤 저주 때문에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라며 차선책으로 동성애를 권하기도 했지만 가장 좋은 건 매일매일 공부하고 글 쓰고 명상하면서 이번 생을 죄 씻는 구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글로 옮기니 우스워 보일 수 있겠다 싶다. 그러나 나는 그 얘기가 유일한 진실이나 사실이라고 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허황되고 쓸모없는 거짓말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또 내가 자주 이 생각을 하는 데에는 대략 4년 전에 받은 수면내시경 경험도 한몫한다. 일산에 살 때였는데, 『단명소녀 투쟁기』로 박지리 문학상을 받은 직후였던 것 같다. 회사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고 마지막 순서가 내시경이었다. 나는 원래도 몸이 떨리고 심장이 빠르게 뛰는 편이라 의사가 ‘그냥 지금 재워’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는 확실하지 않다. 확실한 것은 내가 수면 상태에서 선녀 동산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아름답다기보다는 편안한 곳이었다. 나는 동산 하나하나에 올라앉은 선녀들을 봤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 아니, 막 부르기 시작해 한 소절 두 소절을 넘기는데 누가 내 뺨을 치며 깨웠다. 눈을 뜨니 내 목구멍에는 호스가 연결돼 있었고 내가 너무 놀라 발버둥 치자 의사 혹은 간호사가 차분히 말했다. “아직 내시경 안 끝났는데, 숨이 완전히 멈춰 있어서 깨워야 했어요.”



나중에 엄마에게 ‘내가 죄짓고 이 땅에 벌받으러 내려온 선녀라 스님처럼 살아야 한대’ 말하자 엄마도 이야기 하나를 보탰다. 엄마와 아빠가 결혼한 후 몇 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아 무척 초조했단다. 그런데 외할머니가 절에 가 극진히 불공을 드리자 곧 내가 생겼다는 거였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그냥 다 믿는 것은 아니니 여러분도 그래 주기를. 다만 나는 옛이야기 수저를 물고 태어났구나. 금도 은도 아니지만 아무쪼록 맛있는 것 많이 먹게 도와주기를.


1  이강옥 옮김, 『청구야담 – 상』, 문학동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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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현호정(소설가)

『단명소녀 투쟁기』 『고고의 구멍』, 『삼색도』 등을 썼다. 2020년 박지리문학상, 2023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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