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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아이오와 광인 문보영의 낯선 언어로 쓰기” (G. 문보영 시인)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9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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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온갖 자극에 몸을 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을 쓰신 문보영 시인님 나오셨습니다. (2024.05.23)


시인님, 아이오와 광인 같아요... 

나는 왜 편안함을 느끼는 걸까? 글쎄. 사실 난 줏대 없는 인간이다. 거절에 약하고, 갈등이나 싸움의 조짐이 보이면 회피하거나 도망가는 쪽을 택한다. 아마 내 영혼의 많은 부분은 외면에 할애되어 있을 것이다. 누가 뭐라 하면 일단 사과하고 나중에 따져본다. 조금 손해 보더라도 갈등을 일으키지 않기. 내게는 지는 쪽이, 친절한 편이, 거절하지 않는 편이, 웅크리는 편이 편한데, 그게 삶에 꼭 도움이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나는 조금 더 강해져야 한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는 강해지는 것 외의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걸 안다. 어떤 따뜻한 곳에서는 내가 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호구처럼 살아도 된다는 걸 안다. 나는 강해지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변하지 않기로 한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문보영 시인님의 ‘아이오와 일기’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문보영 시인님은 2023년 가을, 아이오와로 가게 됩니다. 30여개 국에서 온 작가들이 3개월간 아이오와의 한 호텔에 묵으면서 읽고 쓰고, 강연하고 토론하는 다양한 문학 행사에 참여하는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건데요. 문보영 시인님은 87일이라는 시간동안 그곳에서 100편이 넘는 일기를 쓰고, 변해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다른 삶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게 됩니다.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을 쓰신 문보영 시인님을 모시고, 여러 엑소포닉 작가들을 만나 지내던 아이오와에서의 생활이 삶의 방향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인터뷰  문보영 편

오은: 문보영 시인님 소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인. 시집 『책기둥』 『배틀그라운드』 『모래비가 내리는 모래 서점』, 소설집 『하품의 언덕』, 산문집 『준최선의 롱런』 『일기시대』 『불안해서 오늘도 버렸습니다』 등이 있다. 독자들의 집으로 손글씨 원고를 부치는 일기 딜리버리를 운영하고 있다. 제36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 이번 책까지 생각하면, 어느덧 시집보다 산문집이 더 많아졌어요.

문보영: 어떡하죠. 그러네요.(웃음)

오은: 이해가 되기도 해요. 문보영이 제일 잘하고 잘 쓰고 사랑하는 것은 시지만, 시인님은 항상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분이니까요.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이 어떤 책인지 시인님께서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문보영: 이 책은 제가 한국 작가로서 ‘아이오와 레지던시 프로그램(IWP)’에 참여했던 일들에 관한 기록이에요. 아이오와가 문학의 도시로 유명한 도시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매년 30여 개 국가에서 작가들을 초청해요. 이 프로그램에서는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이 낡은 호텔에 3개월 동안 묵으면서 다양한 문학 행사도 하고 인간적인 교류도 하면서 영향을 주고받고요.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은 제가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일을 기록한 책입니다.

오은: 제목을 보고 오랫동안 생각했어요. 가정형이어서 그렇기도 하고요. 또 ‘들판’이 실제 들판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지만 은유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도 있어서 그랬는데요. 제목에 담고 싶었던 마음을 듣고 싶습니다.

문보영: 아이오와 하우스 호텔 바로 옆에는 끝도 없이 들판이 펼쳐지고, 강이 흘렀어요. 사실 대부분의 일과를 수행하는 대학 건물이랄지 다운타운은 반대 방향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낮에는 그 들판을 등지고 걸어갔죠. 삶이란 것이 들판의 반대 방향에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러다 밤이 되면 작가들끼리 그 들판을 되게 많이 걸었어요. 걸으면서 재미있는 얘기도 하고, 슬픈 얘기도 했는데요. 그러면서 들판이 삶의 반대 방향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밤에는 들판을 걷고, 그 힘으로 또 다음 날에 삶속으로 갔으니까요. 들판이 삶의 반대 방향에 있는 것처럼, 제가 한국을 떠나서 들판을 만난 것 같기도 했고요. 그런 의미에서 제목이 정해졌습니다.

오은: 표지 이야기도 하고 싶습니다. 원래는 뒤집힌 그림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사실을 시인님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접하고서 책을 뒤집어서 다시 봤는데요. 똑바로 봐도, 뒤집어서 봐도 되는 그림이었어요. 이 작품은 어떻게 만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문보영: 제가 이 그림을 그리신 히영 작가님을 정말 좋아해서 작가님과 작업하고 싶다고 편집자 분께 얘기를 드렸는데요. 편집자님도 좋아하셨어요. 신기한 건 책 제목에 맞게 따로 그려주신 그림이 아니고, 원래 있던 그림이었다는 사실인데요. 더욱이 제목도 나중에 붙은 거라서요. 제목과 그림이 따로 있다가 만났는데 소개팅이 잘 이루어진 느낌이었죠.(웃음) 그림 자체도 애초에는 거꾸로 있던 그림인데 신기하게도 뒤집으니까 들판이 나타난 거예요. 참 운명 같은 표지 같아요.

오은: 프롤로그에서 이 책이 “내면의 기록”이자 “일기” “성장 소설”이라고 밝히셨는데요. 이 중 성장 소설이라는 표현에 눈길이 갔어요. 아이오와에 머무신 게 87일입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에 내면에 아마 놀라운 변화가 있었을 것이고요. 성장 소설이라고 명명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 것 같거든요.

문보영: 다양한 인종,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첫째로 느낀 건 언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거였어요. 왜냐하면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도 여과되고 남은 잔여에서 발생하는 어떤 희미한 헤아림 같은 것들이 있었거든요. 저는 그게 좋았어요. 한편으로 언어가 진짜 재미있는 거라는 것도 느꼈죠. 엑소포닉(exophonic) 작가들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거든요. ‘엑소(exo)’가 ‘밖으로 나가다’라는 뜻이래요. 그리고 ‘폰(phone)’은 ‘음성’이라는 뜻이니까요. 자신의 음성 바깥으로 나간 사람들, 자신의 모국어 바깥으로 나가 다른 언어를 활용해서 글을 쓰는 작가들을 엑소포닉 작가들이라고 부르는데요. 저는 그런 작가들을 책에서만 접했지 이렇게나 많은 줄 몰랐던 거예요.

그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니까 외국어와 모국어를 충돌시키면서 글을 써 나가는 것 자체가 그들의 핸디캡이면서도 개성이더라고요. 그곳에서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있었는데요. 그 중 한 명이 코토미라는 친구였어요. 그 친구는 대만 사람인데 어느 날 일본으로 가서는 일본인처럼 살아가기 시작했어요. 모든 글을 일본어로 쓰기 시작하고요. 그러다 일본에서 굉장히 유명한 작가가 됐고요. 지금은 자신이 일본어로 쓴 글을 모국어인 만다린어로 번역을 해요. 그런 작가들을 보면서 저도 영어라는 외국어를 사용해서 글을 써볼 수도 있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을 갖게 됐어요.

오은: 『일기시대』라는 산문집에서 이렇게 쓰신 적이 있습니다. “일기를 쓸 때 나는 나에게서 가장 멀어진다. 나는 나에게서 멀어져 타인을 만나고 다시 내게로 돌아온다. 그래서 일기에는 늘 타인의 흔적이 묻어 있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문장이기도 했어요.

문보영: 일기는 저한테는 항상 흥미로운 장르예요. 일기를 계속 발표하니까 일기는 내밀한 건데 어떻게 남한테 보여주냐, 보여줄 때 불안할 때가 있지 않냐 등의 질문을 많이 받았거든요. 하지만 제가 일기를 폭발적으로 쓰게 됐던 최초의 계기는 친구들에 관한 일기를 써서 그들을 웃겼을 때였어요. 친구들이 블로그에 시를 올리기 시작했을 때, 저는 시는 보여주기가 싫어서 일기를 썼고요. 일기에 그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를 쓴 거죠. 그런데 친구들이 그걸 읽고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누군가를 웃기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게 저의 정체성 같은 게 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사실 그 감각을 되게 오랫동안 잊고 살았는데요. 아이오와에 갔더니 웃길 목표물이 35명이나 있었던 거예요. 저한테는 너무나도 최적의 글쓰기 환경이었던 거죠. 실제로 책을 출간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동의가 필요하니까 글에 등장하는 작가들의 부분을 영어로 서툴게 번역해서 보여주는 과정이 있었는데요. 글을 본 작가들이 좋아하는 걸 보면서 오랫동안 내가 잊고 살았던 글쓰기의 소중한 부분을 다시 깨달은 것 같았어요.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입니다.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주세요.

문보영: 저한테는 한 권의 책이나 마찬가지로 두 권의 책인데요. 최승자 시인님의 『어떤 나무들은』과 김유진 작가님의 『받아쓰기』를 소개하고 싶어요. 두 권을 함께 하고 싶은 추천하고 싶은 이유가 둘 다 아이오와 일기로 나온 책이기 때문인데요. 매년 작가 분들이 IWP에 가지만 아직 그에 관해 쓴 책이 두 권밖에 안 나왔더라고요. 제 것까지 해서 세 권이 됐는데요. 이 세 권의 책이 다 다르거든요. 함께 읽는다면 그 다름을 보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문보영 저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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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읽고 씁니다.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문보영> 저16,2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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