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아이를 돌보며 나를 알아가는 과정 (G. 안미옥 시인)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393회)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
육아 일기라고 하면 아이가 중심이 된 성장기를 생각하는데, 저도 같이 성장한 게 많고 저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 많이 있었거든요. 내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 더 가까웠어요. (2024.05.16)
사는 일이 쓰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삶이 저절로 글이 되진 않는다. 생각이 아니라, 문장이라는 몸을 가져야 글이 된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그러니 일단은 쓰자. 손을 움직여 쓰고, 쓰고 나서 생각하자. 그러면 내가 쓴 문장의 두께만큼 용기는 자연스럽게 생길 것이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야 무언가 다른 쪽으로 겨우 가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쓰고 싶은 것이 아니었는데 요즘은 늘 이런 식으로, 쓰지 못한 시간에 대한 한탄과 불안과 염려, 체력에 대한 갈망 같은 것을 쓰게 된다. 파편적으로 쓰고 싶지 않은데 그것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다짐과 결심을 반복하는 것이 내가 계속 쓰고 있고, 쓸 수 있었던 힘이었을까. 손을 풀고 그저 담담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면 떠오르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자. 나는 쓰면서 나와 세계를 더 들여다보았고 내 삶을 그저 흘러가기만 하는 삶으로 두지 않았다. 붙잡았다. 견고한 악수처럼. 그 시간을 믿어보자.
안미옥 작가가 쓴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에서 읽었습니다. <황정은의 야심한책> 시작합니다.
오늘은 에세이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를 쓴 안미옥 시인을 모셨습니다.
황정은: 이번에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라는 제목으로 에세이를 내셨는데요. (출간된 지) 이제 한 달 된 거잖아요. 소감이 어떻습니까?
안미옥: 아직까지도 사실 잘 믿기지가 않는 느낌이 있어요. 이게 책이 되려나 싶은 마음으로 계속 썼었던 것 같고, 그게 진짜 물성을 가진 책이 되니까 ‘이게 나오다니 믿어지지가 않네’ 하는 심정으로 있고요. 그리고 아이한테 책 나오기 전에 제목도 물어보고 ‘엄마가 너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쓴 게 나올 거야’ 이렇게 얘기해주고 제목도 얘기해줬더니 계속 그 뒤부터 나무가 ‘엄마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 언제 나와?’ 계속 이렇게 물어보는 거예요. 그래서 ‘응, 곧 나와’ 하다가 (웃음), 드디어 나왔을 때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책) 뒤에 사진이 한 컷 실렸는데 그것도 보여주고. 그리고 얼마 전에 서점에 갔었거든요. 멀리서 매대에 책이 있었는데 ‘저거 엄마 책이다’ 하면서 되게 반가워하기도 하고. 그리고 할머니랑 같이 있는 시간들이 좀 많이 있는데 할머니가 책에 있는 「나무의 말」을 읽어주셨나 봐요. 그런데 너무 재밌다고 계속 읽어달라고 (웃음) 되게 좋아하고 있어요.
황정은: 왠지 자기 몫이 있다고, 자기 역할이 있다고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웃음)
안미옥: 나중에는 그렇지 않을까요. (웃음) 나중에는 ‘왜 내 얘기로 이런 얘기를 썼어?’ 이럴 수도 있을 것 같고. (웃음)
황정은: 저는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를 읽으면서 불시에 자꾸 눈물이 나서 혼났거든요. 그런데 책이 나오고 나서 그런 이야기를 종종 들으셨다고요?
안미옥: 네, 약간 되게 웃기기도 하면서 울컥하기도 한다는 얘기들을 좀 들었어요. 그런데 쓰면서 저도 어떤 부분은 되게 재미있게 쓰고, 어떤 부분은 저의 유년 시절도 생각나고, 또 지금 나무의 마음 같은 것도 공감하게 되기도 하고 하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울컥하기도 하면서 써서, 그게 읽는 사람들한테도 좀 전달이 되었나 싶기도 하고. 또 어떤 독자 분은 자기 엄마 생각이 많이 나서 되게 울컥했다고 그런 이야기도 들었어요.
황정은: 맞아요. 저는 아이는 없고 조카는 있는데 조카들의 과거의 시간이 좀 생각나기도 했고 그리고 양육자 생각을 자꾸 하게 된 것 같아요. 이 책에 나오는 양육자인 안미옥 작가님의 모습, 그리고 안미옥 작가님이 양육자로서 나무와 나누는 대화를 읽으면서 같이 마치 병렬로 뭐가 흘러가듯이 저의 유년시절이 계속 지나가는 경험을 해서 눈물이 났나 봅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무엇보다도 모국어로 적힌 글을 읽을 때의 기쁨이랄까 이거를 되게 충만하게 느꼈어요. 이번 책을 읽으면서. 이 비유가 사용되는 맥락을 알아야 더 막 확 와 닿는 말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느껴져서 ‘내가 이걸 읽어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황정은: 이번이 첫 산문집이잖아요. 시집도 그간에 여러 권을 내셨고, 앤솔로지 작업으로 산문을 종종 쓰셨어요. 그런데 이번 책이 작가님의 첫 단독 산문 책이라서 느낌이나 의미가 조금 다르기도 했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안미옥: 앤솔로지로 참여하기도 했었는데 그때의 산문들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제가 하나의 이야기만 쓰면 되는 거였는데 이거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제가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을 쓰고 한 데 묶어내는 책이라서 일단은 물리적으로 다 쓸 수 있을까 걱정이 많이 됐고, (웃음) 그리고 절반은 연재를 했었는데 절반은 저 혼자 써야 됐거든요. 그 시간이 조금 길었어요. 혼자 마감 없이 물량을 만들어내는 게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고. 그런데 늘 ‘이 얘기 너무 기록해보고 싶다’ 이런 것들은 많이 있어서 메모를 해놨는데, 그걸 가지고 막상 한 편의 글을 쓰려고 할 때 생각보다 시간이 되게 오래 걸리고 술술 써지지는 않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여러 고군분투를 했었고. 그리고 제가 시는 계속 써왔었는데 시 쓰기보다 사실 처음에는 산문이 너무 어려웠어요. 뭔가 내가 생각하는 것 내 일상이 아무런 레이어 없이 다 보여지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부끄럽고 ‘이렇게 써도 될까’ 이런 생각도 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냥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 그러니까 어떤 시적 장치 없이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데도 좀 시간이 걸려서. 이래저래 시간을 많이 들여서 쓴 산문이라서 좀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제일 좋았던 것은 제가 시집을 낼 때마다 가족들도 보는데 ‘너무 읽고 싶은데 미안하지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웃음) 그런데 이번에는 그래도 되게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어서 그게 좀 기쁜 것 같아요. (웃음)
황정은: 작가님의 시집 제목도 저는 좋은데, 산문집 제목이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잖아요. 이 제목이 되게 좋아서, 그런데 이거를 제목으로 정하는 과정에서도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어떤 마음이었는지,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안미옥: 거의 시집 제목은 제 의견이 많이 반영이 됐었는데 산문집은 감이 안 오더라고요. 뭐가 좋을지 아예 감이 안 와서 되게 막막해 하고 있었는데 편집자 선생님께서 몇 가지 제목들을 추려주셨어요. 그 중에 ‘좋아하는 쪽으로’라는 제목으로 연재를 했었거든요. 그런데 원고가 완성이 되고 나니 그것보다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가 더 맞겠다, 더 많이 품어주는 제목이겠다 싶었고. 이 제목이 들어있는 문장이 ‘내가 가능해서가 아니라 가능하지 않더라도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 몸을 움직여보겠다’ 하는 어떤 다짐을 담은 문장이라서, 그 문장 자체가 이 책의 주제가 되는 느낌도 들어서 최종적으로 이것을 선택하였습니다.
황정은: 이번 책 에필로그에 「나무 일기」라는 제목의 글을 실으셨잖아요. 글 순서를 보니까 여기 실린 글 중에서는 제일 처음에 쓴 글인 것 같더라고요. 나무가 (생후) 10개월 되었을 때 쓴 일기였던 거죠. 이 글이 이번 책의 시작이자 씨앗이 된 것 같은데, 그 글이 어떻게 이번 책으로 이어지게 되었는지도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안미옥: 어떤 계간지에 ‘지난 계절의 일기’라는 코너가 있는데요. 거기에서 청탁이 왔어요. 그냥 편하게 일기를 쓰면 된다고 그래서 ‘네, 알겠습니다’ 하고서, 그때가 나무가 한 10개월 정도, 돌이 되기 전이었어요. 그런데 돌 때까지는 정말 아이와 밀착되어 있는 시간이거든요. 아이가 걷지도 못하는 시기니까. 그러니까 아이 얘기를 많이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처음에 쓸 때는 제 마음 안에서는 ‘육아 일기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 있는 거예요. 그냥 지금의 내 삶을 쓴 건데 어떤 사람들은 이걸 그냥 아이 키운 이야기로 읽지 않을까. 물론 그게 맞긴 한데 ‘아이와 함께하는 일상의 이야기’와 그냥 ‘육아 일기’가 제 안에서는 좀 다르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걸(「나무 일기」를) 썼는데 원래는 여기 책에 실린 분량보다는 조금 더 이런저런 얘기가 많이 있었는데 좀 정돈을 하였고, 그게 발표되고 나서 주변에서 그 글을 읽은 몇몇 분들이 ‘너무 좋다, 계속 읽고 싶은 이야기였다, 책장이 넘어가는 줄 몰랐다’ 이런 칭찬을 많이 해주시고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많이 해주셔서 그러면 한번 써볼까 하고 생각하게 됐고, 마침 산문집 요청이 와서 시기상 맞아서 이야기들을 쓰게 되었어요.
황정은: 조금 전에도 이야기하셨지만 일기를 ‘육아 일기’로 다시 나누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도 글에 쓰셨단 말이죠. 이게 어떤 선생님의 조언으로 생각이 달라졌다는 이야기가 마지막 꼭지의 글이 등장하는데, 그 부분이 좋아서 말로 다시 듣고 싶어요.
안미옥: 아마 ‘육아 일기’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건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저의 불안이 좀 작동한 생각 같아요. 아이를 출산하기 전에 이후의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되잖아요. 그런데 아직 겪어보지 못한 삶이니까 불안이나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아이 키우는 데 되게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내가 너무 힘들어서 혹은 내 삶에 이 존재가 너무 중요해져서 글쓰기를 안 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도 되게 컸고, 아이 키우는 것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자꾸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이 되게 컸어요. 그런 이야기를 제가 좋아하는 그 선생님한테 얘기를 했더니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육아를 하면 자기 존재가 지워지고 아이만 남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게 분리가 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것 또한 나라는 걸 인지하면 된다. 지금은 ‘아이를 키우는 나’ ‘아이를 돌보고 있는 나’ 그리고 ‘내 삶도 있는 나’ 이렇게 내 삶의 일부분으로 봐야지, 그게 나의 전부가 되지 않게 생각하면 된다’ 이런 얘기를 해주셔서, 그게 그때도 뭔가 쿵 하는 울림이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계속 그 이야기가 저에게 중심을 잡아줬던 것 같아요. 물론 요즘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주양육자가 엄마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잖아요. 그리고 글쓰기는 사실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가능하지 않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고. 아이를 낳고 나니 실제로 시간이 없었고, 시간과 체력과 에너지와 이런 게 다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것인가’ 하고 되게 두려워했었는데, 물론 절대적으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시간도 있지만 지나가면서 보니까 ‘‘글 쓰는 나’ ‘아이를 양육하는 나’ 이렇게 딱 분리되는 게 아니라 글을 쓰는 나와 일상을 살아가는 내가 계속 맞물리면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고, 그게 내 글쓰기 세계에도 영향을 많이 미치고 달라지게 되는 거구나’라는 걸 많이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황정은: 그게 작가이자 양육자인 사람이 가지는 특별한 장점인 것 같기도 합니다. 자기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을 자기가 하는 일(글쓰기)과 상호작용하면서 할 수 있는 직업군을 가진 여성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돌보는 동안에 자신의 삶이 지워지는 순간들이 분명히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이를 돌보는 일이 전부가 되지 않게 이것도 나의 일부라고 생각하면서 받아들이면 된다고 하셨잖아요. 저는 그 말이 굉장히 강하게 와 닿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여러 조건들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 주양육자인 주로 엄마들이 그게 전부인 경우들이 너무나 많단 말이죠. 제가 옆에서 목격하는 사례도 많고 말이죠. 그래서 작가님의 책에 언급된 그 말들이 새삼 위로가 됐던 것 같아요. 저한테도. 저는 곁에서 지켜보면서 간접적으로 육아를 돕긴 했습니다만, 돌보느라 지워진 내가 아니라 ‘돌보는 나’인 거라는 말을 들으신 거잖아요. 읽는 입장에서도 그게 좀 힘이 되는 말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를 키우는 동안 특히 아이가 나이가 어릴수록 그 생각을 하잖아요. 내가 지워지는 게 아닌가라는 공포를 많이 겪고 있고. 그런데 그런 생각들이 굉장히 위험하고 슬픈 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본인도 자기를 지우고 있는 거잖아요. 이게 다 결국은 내가 겪고 있는 내 삶이고 내 경험인데 나 스스로 이걸 지우고 있는 거라서 되게 위험하고 슬픈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안미옥: 너무 사랑하는 존재 혹은 내 시간을 너무 많이 할애하는 존재가 생기면 자꾸 그런 쪽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너무 커다라니까. 저도 그런 순간들이 있는데 그때마다 ‘맞아, 나는 내 삶이 있지. 같이 맞물려서 가지만 내 삶이 있지’ 하고 생각하면서 내 삶을 이 아이에게 전적으로 다 덧씌우면 이 아이도 너무 힘들다는 것을 계속 되새기면서, 그러면서 지냈던 것 같아요.
황정은: ‘돌보느라 지워진 나’라기보다는 ‘돌보는 나’인 거다, 라는 말을 읽는 순간에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제가 알겠더라고요. 직접 겪은 일은 아니지만, 제 동생한테도 아이가 있는데 동생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맞이한 성장 비슷한 그런 게 있거든요. 제가 느끼기로는 예전에 제가 알던 동생보다 5배 6배나 큰 사람이 된 것 같은 그게 있어요. 전보다 더 섬세해졌고 더 따뜻해졌고 그리고 더 대담해졌고 더 관대해졌고, 그리고 굉장히 전투력이 커져가지고. (웃음) 같은 사람이지만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많은 부분이 커진 그런 느낌이 좀 들거든요. 가장 놀라운 점이 전투력 관한 부분인데 어디를 쳐야 치명상을 제대로 입힐 수 있는지를 정말 전보다 잘 알게 된 것 같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말과 행동을 더 조심스럽게 하는 거예요. 그런 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놀랍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랑 같이 커가는 양육자가 맞이하게 되는 성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돌보느라 지워지는 게 아닌 거예요.
안미옥: 제가 ‘육아 일기’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게 약간 그런 맥락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할 때는 ‘육아 일기’라고 하면 아이가 중심으로 된 성장기인데 저도 같이 성장한 게 되게 많고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되게 많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이와 같이 내가 성장한 이야기. 내가 살아가게 된 이야기. 내가 나를 알아가는 어떤 과정에 더 가까워서 이게 ‘육아 일기’로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황정은: 맞아요. 그리고 ‘육아 일기’로만 읽을 수는 없는 게, 이 책 안에 성장하는 사람이 둘이잖아요. 성장이라기보다는 발견이랄까요? 나무와의 대화나 나무의 행동을 보면서 어떤 존재의 어떤 면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존재를 생각하고 궁금해 하는 ‘나’를 또 새삼 발견하게 된단 말이죠. 저는 이모라서 가끔 아이를 보긴 하지만 아이를 대하면서 배우는 게 굉장히 많거든요. 일단은 내가 뭘 모르는지를 알게 된다는 게 굉장히 많이 배우는 면인 것 같아요. 작가님 책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이상하다’라는 말의 의미를 알려주려면 그 뜻을 나부터 물어야 되는 거잖아요.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세상을 다시 감각하게 되는 면도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떠셨어요?
안미옥: 말도 그렇고 주변 사물도 그렇고 진짜 새롭게 생각하게 된 게 되게 많았던 것 같아요. 특히 아이는 호기심이 진짜 많고 제가 못 보던 걸 다 되게 잘 봐요. 예를 들면 아이랑 하원을 하고 오는데 한창 아이가 맨홀 뚜껑, 구멍 이런 거에 빠져 있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러면 골목을 지나가는데 웬 담벼락에 물 나오는 구멍 같은 게 군데군데 있는데 그런 게 거기 있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었는데 그걸 다 짚으면서 가는 모습을 보고 ‘아, 이런 데 이런 게 있었구나’ 그런 것도 깨닫게 되기도 하고. 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단어 뜻 모르는 거를 종종 물어보는데 ‘그동안 내가 얼마나 어떤 단어들을 그냥 뉘앙스로서만 이해하고 살았나’ 이거를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다시 설명을 해야 하다 보니까 되게 직관적으로 어떻게 얘기해줘야 설명이 가능할까도 생각하고 ‘내가 이 단어를 이런 식으로 인지하고 있었네’도 깨닫게 되었던 것 같아요.
황정은: 시 작업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미치는 대화일 것 같습니다.
안미옥: 네, 아무래도. 그래서 시 쓸 때 한창 아이와 있다 보니까 아이가 줬던 이야기들을 가지고 쓴 적이 있었는데, 아이가 아직 말을 못할 때 아이랑 같이 유아차 끌고 산책을 가면 비둘기도 보이고 강아지도 보이고 한단 말이에요. 그럼 되게 신기해하면서 이렇게 손가락질을 하면서 가리켜요. 제가 ‘비둘기야 구구구구, 멍멍이는 멍멍’ 이렇게 얘기를 해줬는데 아이가 어느 날 (강아지를 가리키면서) 월월 그러는 거예요. (웃음) 나는 아이한테 개는 멍멍 짖는다고 얘기를 해줬는데 아이가 내는 소리가 개의 소리와 훨씬 더 가까운 거예요. 너무 놀랍기도 하고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다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원래는 그렇지 않은데 내가 살면서 그렇게 굳어져 왔던 거구나’라는 걸 많이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황정은: 세상이 나한테 말한 것이로구나, 이걸 알게 되는 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개는 멍멍 하고 짖는다고 배웠으니까 말이죠. 특히 아이의 질문에 대답을 하려고 보면 내가 여태껏 안다고 생각한 무언가를 내가 사실은 모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고, 말문이 막힐 때가 굉장히 많아지지 않습니까?
안미옥: 네, 맞아요.
황정은: ‘세상에, 내가 이렇게 대강 알고 있었구나’ 그것도 좀 알게 되고.
황정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서 ‘이해하는 마음’에 관해 쓰셨잖아요. 아이가 태어나면서 다른 존재를 이해해보고자 하는 마음의 중요함을 알게 되신 거잖아요. 그 시간들의 결과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또 뭐가 있을까요?
안미옥: 이해가 되면 화가 안 난다.
황정은: 그렇습니까? 이해가 돼도 화가 나는 경우가 있잖아요.
안미옥: 있긴 한데 그래도 좀 덜 나더라고요. 이해가 되면 마음이 조금 너그러워진달까. 저의 경우에는 왜 그런지 알 수 없을 때 화가 많이 나는데, 그러니까 왜 그런지 알 수 없을 때 넘겨짚어서 생각하는 거죠. ‘얘가 지금 이래서 이렇게 하는 거 아니야?’ 제 식대로 자꾸 넘겨짚어서 생각을 하게 되니까 자꾸 더 화가 나는데, 그런데 얘기를 충분히 해보고 사실은 그런 마음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면 좀 이해가 되면서 ‘내가 오해했구나’ 하고, 결국에는 이해라는 게 나의 오해를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아채게 되는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가 말을 하게 되면서 아이에게 기대가 생기는 것 같아요. 아이가 자기 마음을 다 알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겨요. 그래서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너 이거 왜 그랬어?’라고 물어보면 아이가 ‘나는 이래서 이랬어’라고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 돼서 화가 나는데, 그런데 아이가 아직 자기 마음을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감정은 있는데 그 감정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왜 화가 나는지 모르는 순간들이 많이 있는 거예요. 물론 대화하면서도 그런 걸 알게 되지만 육아 서적에서 배우기도 하고 또 친구들한테 물어봐요. ‘지금 이 시기인데 왜 이러는 거야?’ 물어보면 ‘아, 그때 그래’ 이러기도 하고. (웃음)
황정은: 좀 위안이 됩니까?
안미옥: 위안이 되죠. 한창 아이가 말을 못할 때, 막 자지러지게 울고 제가 어떤 대처를 해도 계속 울고 그럴 때 되게 막막하고 그랬는데, 하루 지나고 보면 이빨이 올라와가지고 이앓이 때문에 그랬다든지. 아니면 어른이 생각할 때 아이가 이유 없이 우는 것 같을 때 저희 시어머니가 ‘크느라고 그러는 거야’ 이렇게 얘기를 해 주셨었는데, 진짜 그 대답이 만병통치약처럼 ‘아, 크느라 저러는구나’ 하면 약간 마음이 너그러워지면서 이해가 되더라고요. (웃음)
황정은: 그런 면에서 이해라는 게 다른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좋은 것이라고 쓰셨나 봐요.
안미옥: 그렇기도 하고. 한창 제가 세 번째 시집 낼 때 시기상으로도 사랑에 대해서 되게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아이도 키우고 있고. (그때) 뮤지션 친구가 노래 가사를 좀 써달라고 했는데 사랑에 대한 정의를 써달라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사랑이 뭐지 하고 엄청 고민을 하게 됐었는데 모르겠는 거예요. (웃음) 그때 그 작업하면서도 사랑이 뭘까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사랑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마음 아닐까’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 뒤로 계속 이해에 대한 생각을 하고 이해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된 것 같아요.
황정은: 맞아요. 사랑은 일단은 애쓰는 마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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