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관통한 대한민국 3세대 다큐멘터리스트의 이야기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기』 안태근 작가 서면 인터뷰
저는 소중한 것을 기록하는 사람이에요. 무엇이든 그 진실성을 끝까지 파고들고, 사회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고요. (2024.05.10)
다큐멘터리란 어떤 것이고, 어떤 사람이 만들까? 여기 시대정신과 진실성, 예술적 감각을 50년간 발휘해 온 안태근 감독이 있다. 전 세계를 누비고, 누구도 언급하지 않은 이야기를 먼저 꺼내며, 끝없이 추적하며 설득했던 지난날들. 대한민국 3세대 다큐멘터리스트로서 처음 꺼내는 제작기와 회고록이 비로소 한 권의 책으로 엮어졌다. ‘이 직업은 지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그에게 동력이 되는 힘은 무엇이었을까. 탁월한 리더십과 정의로운 모험담에 관해 들어보자.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독자분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기』 저자 안태근 감독입니다. 75년도에 첫 작품을 만들었으니 어느새 반세기 가량 제작 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님들을 만나게 되어 영광입니다.
많은 영화 장르 중에 다큐멘터리를 업으로 삼게 되신 계기가 있을까요?
처음 드라마 감독 밑에서 조감독으로 5년 정도 일하다 보니 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큐멘터리는 누구나 저예산으로 시작할 수 있는 장르예요. 진입장벽이 낮았다는 게 계기가 될 수 있었죠. 또 제 성격과도 잘 맞았어요. 저는 소중한 것을 기록하는 사람이에요. 무엇이든 그 진실성을 끝까지 파고들고, 사회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고요. 하나하나 넓혀가다 보니 인물 다큐, 역사 다큐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룰 수 있었는데, 모두 제가 발휘할 수 있는 능력과 맞닿아 있는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기본적으로 문화, 역사, 철학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취재를 하다 보면 그 세계가 워낙 넓어서 연구자의 심정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감독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는 될 수 없다 보니까 쉬운 과정은 아니에요. 그래도 소명이 있는 사람들은 하죠. 그러니까 어떤 선구자의 입장이랄까. 그게 바로 시대정신이에요. 어떨 때는 현실 속에 깊게 파고들어서 중재자나 해결사의 역할을 맡게 되기도 하고요. 이야기꾼이 되어야 하기도 하고. 이렇게 우리 사회를 더 아름답고 숭고하게 만들어간다는 생각 때문에 많은 사람이 다큐멘터리 PD를 희망해요.
책에 미처 싣지 못했지만 기억에 남는 출장이나 편집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하나만 얘기하기가 무척 어렵네요. 죽을 뻔한 적도 있고, 보통 분들이 마주할 수 없는 충격적인 일에 항상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사람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출연자들과 씨름하는 시간이 많아요. 아주 조심스러운 예시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취재할 때는 정말 힘들었죠. 할머니들이 처음부터 자기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아요. 우리가 그분들과 신뢰를 쌓고, 기분도 맞춰드리고 하면서 점점 속 사정을 듣게 되는 거죠. 그럴 때 출연자들은 정말 엉엉 울어요. 제작진들도 그 모습을 보면 눈물 나고요. 그때가 참 기억에 남습니다.
『나의 다큐멘터리 제작기』에서는 특히 한국 사회가 지나온 역사와 문화에 대한 언급이 많다고 느껴집니다. 이런 부분에 특히 집중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또는 후배 다큐멘터리 PD들이 계속해서 다루어주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역사와 문화에 대한 다큐는 지금이 아니면 담을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인간문화재나 역사적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언젠가는 모두 사라지거나 죽으니까요. 그래서 담을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얼과 신념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청률이 높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프로그램이어도 방송사는 폐방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 경험이 누적되면 인기 없는 분야는 방송 편성이 쉽지 않고요. 비정규 방송은 특집 등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꾸릴 수 있기 때문에 그럴 때라도 꼭 해야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해주면 좋겠어요. 시청자와 방송 관련자들이 이런 역사와 우리 민족의 문화에 관심을 많이 가져서 좋은 것들을 보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책을 통해 가장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다큐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쓰인 개인적인 감회를 모아놓은 글이다 보니, 감독의 마음을 잘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면에서는 50여 년의 회고를 담아 둔 역사서이기도 하고요. 책에서도 말했듯이 다큐멘터리 소재는 무궁무진합니다. 많은 분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좋은 영상으로 만들어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다큐멘터리에 입문하거나 평소 좋아하던 다큐를 다시 보게 된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앞으로의 포부나 계획도 함께 알려주세요.
인간이나 이 사회나, 눈에 보이는 현상 그 이면의 세계는 분명히 존재해요. 그런데 우리는 겉모습만 보고 스쳐 가는 일이 다반사죠. 결국 다큐멘터리라는 것은 그 이면을 파헤치는 작업인데, 결국은 진실을 추구하는 거거든요. 열심히 공부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진실을 마주하게 됐을 때의 그 미학이랄까, 또는 어떤 한계에 부딪히면서 쟁취한 철학이랄까 그런 것들이 저를 이렇게 다큐의 세계로 이끌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갈 예정입니다. 이제는 좀 더 큰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문제를 제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고 이 사회가 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선한 방향성이 있는 다큐를 만드는 거죠. 이런 생각은 처음 다큐를 시작할 때도 늘 하던 생각이었는데, 그때는 역량이 부족해서 하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 여러분께도 눈에 보이는 세계를 그대로 보기보다는 다큐멘터리와 함께하면서 사고의 폭을 조금 더 넓혀가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안태근 서울 출생으로 중앙대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부터 조감독으로 활동 후, 1986년 시나리오 <사방지舍方知>와 다큐멘터리 <살풀이춤>으로 영화감독 데뷔하였다. 1991년 EBS 프로듀서를 시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 3부작(2004), <청사초롱과 홍등> 5부작(2007),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2010) 등의 다큐멘터리 184편을 연출하였다. 그 외 드라마 및 애니메이션 등 천여 편을 제작하였다. 영화 관련 다큐멘터리로는 <한국영화개척자 나운규> 외에 <일제강점기의 영화>, <신상옥 감독 추모 다큐> 등이 있다. 또한 외주제작부 책임프로듀서로 다큐멘터리 <글로벌프로젝트 나눔>, <직업의 세계 일인자>, <시네마 천국>을 기획하였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방송학과 문화콘텐츠학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국청소년영화제부터 금관상영화제, EBS 프로그램상, 이 달의 PD상 등을 20여 차례 받았다. 저서로는 『나는 PD다』 시리즈(2010~2015), 『한국영화 100년사』(2013), 『이소룡평전』(2013),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아라!』(2014), 『문화콘텐츠 기획과 제작』(2014), 『당신이 알아야 할 한국인 10』(2014), 『돌아오지 못하는 안중근』(2015), 『安重根 硏究』(2016), 『한국합작영화 100년사』(2017), 『한국영화 100년사 세미나』 시리즈(2017~2019), 『홍콩여배우열전』(2020), 『다큐멘터리의 이해와 제작』(2020), 『한중일영화 100년사』(2021) 등이 있다. 호남대 문화산업경영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교 객원교수로 있다. 한중일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2010년 11월부터 매달 ‘이소룡기념사업회’ 세미나를 개최해 왔고, 2013년 4월부터 ‘한국영화100년사연구회’를 발족해 영화 세미나를 이어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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