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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숙의 노상비평] ‘토요코 키즈’와 세이브마트 노인들과 비둘기들

거리는 누구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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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배회하는 것 말고 다른 방식의 삶을 선택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면 문제는 ‘토요코 키즈’들에게 있지 않다. (2024.05.10)


이연숙(리타) 평론가가 길에서 만난, 우리가 선택할 수 없지만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격주 금요일 연재.


세이브마트 주변에서 비둘기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다. (2023년 8월 23일) 사진_이연숙


유튜브 채널 중에서 “안협소”를 즐겨본다. 약 4년 전부터 활동을 시작한 이 채널은 본래 도심 자투리땅을 이용해 지은 건축물을 뜻하는 ‘협소 주택’의 사례를 주로 다뤘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 추측으로는 소개할 협소 주택이 거의 다 떨어지기 시작해서) 일본의 도시 괴담이나 사고 건축물과 관련된 ‘썰’을 풀기 시작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러한 행보는 성공적으로 더 많은 구독자를 유입했다. 뭘 다루든 영상의 막바지에는 항상 구글 스트리트 뷰를 통해 관련 장소를 보여주는데 이게 또 황당한 재미가 있다.

최근에는 일본의 사회 문화 현상까지 어떻게든 사고 건축물과 연결 지어 소개하기 시작했는데, 요컨대 지난 4월 게시된 “2024 토요코광장의 실태”1과 같은 영상이 그렇다. “안협소”가 ‘토요코 키즈’, 즉 도쿄 가부키쵸 토호 시네마 근처에 모인 취약 계층 청소년들을 다룬 것은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의 채널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토요코 키즈’의 존재를 소개하는 영상을 게시하기도 했다.2 영상 속에서 ‘토요코 키즈’는 가정과 학교에서 나와 노숙 생활을 하고, ‘지뢰계’(소녀적 공격성을 표상하는 하위 문화적 코드) 스타일을 선호하고, ‘파파카츠’(조건 만남의 한 종류)를 통해 번 돈을 ‘악질 호스트’에게 상납하고, 약물과 자해에 중독되는 등 여러 사회 문제가 밀도 높게 압축된 복합체로서 타자화되어 재현된다. 국내에서는 ‘토요코 키즈’와 하위 문화적 스타일을 공유하는 청소년들을 일컬어 ‘경의선 키즈’라고 부르기도 한다.3 이들을 드디어 발견한 ‘건수’ 잡은 어른들의 온갖 호들갑이 공중파 뉴스와 인터넷 기사로 보도되기도 했다.4

“안협소” 채널은 일본 현지의 보도 영상,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의 화면 캡처, 무료 일러스트 사이트 ‘이라스토야’에서 퍼온 이미지 등을 통해 ‘토요코 키즈’의 “실태”를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먹힐만한 ‘콘텐츠’로 재구성한다. 대부분의 유튜버들이 그렇듯 ‘기계적 중립’을 취하는 “안협소”는 객관적인 사실을 특유의 무감동한 말투로 읊는다. 어차피 ‘왜’ 이 청소년들이 가정 밖으로, 학교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따져 묻는 건 그의 역할도 아니다. 한없이 가벼운 ‘콘텐츠’의 외양 아래 파묻힌 ‘왜’를 구할 책임이 있는 건 결국 시청자인 나다. 희한하게도 신문, 텔레비전과 같은 전통적인 언론의 기능을 일정 부분 유튜브가 대체하게 된 셈이다. 어찌 되었든 ‘토요코 키즈’의 존재를 알려준 건 “안협소” 채널이니까. 취약 계층 청소년들을 자극적인 소재로 내세워 높은 관심을 벌어들였음에도 그들에게 쏟아지는 고약한 댓글들을 별다른 저지 없이 방치하고 있다는 점만 빼면 “안협소”는 어떤 의미에서 뉴스 중개자다. (그런데 ‘진짜’ 뉴스 중개자들 역시 그런 댓글들을 방치한다. 그들이 나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단지 그들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자본주의의 한 병폐적 측면인 주목 경제의 문제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앞서 언급한 가장 최근 게시된 ‘토요코 키즈’를 다룬 영상 때문이다. 정확히는 영상 속 “안협소”의 몇 마디가 내 마음을 치고 지나갔다. “이 바리케이트 밖에서는 온갖 사람들이 광장 안에 있는 토요코 키즈들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마치 인간 동물원 같은 모습입니다.” 여기서 그는 지난 12월 중순 ‘토요코 키즈’가 모여 있는 토호 시네마 근처 공터를 신주쿠시가 모종의 이벤트 문제로 2월까지 폐쇄하며 바리케이트, 공사용 천막 등으로 에워싼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한 인터넷 뉴스에서는 이를 두고 “이벤트를 활용한 정화 작전인가”라고 쓰고 있다.6 영상 속에서 아직 다른 장소로 이동하지 않은(혹은 못 한) 몇몇 ‘토요코 키즈’들은 바리케이트 밖 여유로운 포즈를 취한 사람들에 의해 그야말로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 같은 모습이다.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청소년들이 놀 수 있도록, 다시 말해 안전하게 ‘망가질’ 수 있도록 ‘제대로’ 그들에게 거리를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리로부터 “정화”한다는 발상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거리에서 치운다고 집으로 돌아갈까, 돌아갈 집이 없는데도? 거리를 배회하는 것 말고 다른 방식의 삶을 선택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면 문제는 ‘토요코 키즈’들에게 있지 않다. 나는 문득 내가 살고 있는 난곡 세이브마트 근처 공터에서 낮밤 없이 막걸리를 마시고 노상 방뇨를 하고 윷을 던지며 노는 노인들을 생각했다. 때때로 서로 시비가 붙어 싸움을 하고 경찰차가 수시로 드나든다. 비둘기들은 무리 지어 노인들 근처를 배회하며 떨어지는 콩고물이 없나 탐색한다. 거리는 노인들과 비둘기들의 것이다. 당연히 아이들의 것이기도 하다.


1  “2024 토요코광장의 실태”, 안협소, 2024.4.21, //www.youtube.com/watch?v=16ucLzDlViA

2  “안협소” 채널 통틀어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 중 하나가 2년전 올라온 “[사고건축물] 최근 일본 사회문제 "토요코 키즈"”다. 2022.4.6, //www.youtube.com/watch?v=t9VLkqSWrIU&t=193s

3  이와 관련해서는 아래 글을 추천한다. VADOMORI, “한국판 토요코 키즈(?), 경의선 키즈 현상 이해를 위한 문화연구 입론”, 2024.3.18, //blog.naver.com/vadomori12/223386628947

4  2023년 말 쏟아진 ‘경의선 키즈’ 관련한 기사들은 대부분 유튜브 “카광” 채널이 제작한 “홍대 지뢰계, 2023 가출 청소년의 삶”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2023.10.11, //www.youtube.com/watch?v=Vzuhiw8vAB0) 자극적 카피를 내세운 기사들 대신 아래 기사를 추천한다. 김송이, 이예슬, 최혜린, “어른들은, 제대로 알려 하지 않고 ‘경의선 키즈’에게 낙인부터 찍었다”, 2023.11.16, 「경향신문」, //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11160600025

5  “いらすとや”, //www.irasutoya.com/

6  キモカメコ 佐藤, “大量の機材設置で突如閉鎖された「ト??」?場、イベント活用した“?化作?”か”, 「Sirabee」, 2023.12.22, //sirabee.com/2023/12/22/20163217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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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이연숙(리타)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에 대한 글을 쓴다. 소수(자)적인 것들의 존재 양식에 관심 있다. 기획/출판 콜렉티브 ‘아그라파 소사이어티’의 일원으로서 웹진 ‘세미나’를 발간했다. 프로젝트 ‘OFF’라는 이름으로 페미니즘 강연과 비평을 공동 기획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hotleve 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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