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영 “미래에 어떤 네가 기다릴지 몰라”
『페이스』
아이들한테 말해주죠. 지금 이 모습이 절대 너의 전부는 아니야, 지금 생각하기에 나는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니까 어떤 쪽으로는 가능성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모르는 거라고, 미래에 어떤 네가 기다릴지 모른다고. 저도 마찬가지예요. (2024.05.09)
“나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로 은시울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거울 속에는 항상 뿌옇게 흐린 얼굴이 있었다. 사진이나 영상, 초상화도 다르지 않았다. 으레 다른 사람들도 그럴 거라 믿었지만, 여섯 살 즈음에 자신은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시울과 가족의 일상이 흔들렸고, 결국 시울은 ‘단 한 사람’을 속이기로 마음먹었다. 세상에서 내 얼굴을 볼 수 없는 유일한 사람, 나 자신만 속이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시울은 평범한 일상을 되찾았고, 열여덟이 됐다. 거울 속 얼굴은 여전히 흐릿하지만 매일 다른 빛깔과 형태로 모습을 바꿨다. 시울은 그 또한 하나의 유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됐다. 그리고 묵재를 만났다. 강묵재는 실수로 시울의 이마에 큰 흉터를 남기게 되고, 흉터는 시울의 삶에 틈을 만든다.
『페인트』로 40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이희영 소설가는 『챌린지 블루』 『소금 아이』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보통의 노을』 등을 통해 새로운 시각에서 청소년 이야기를 조명해왔다. 신작 『페이스』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아이가 있다면…….” 하는 하나의 생각에서 시작됐다. 작가의 말에서 이희영 소설가는 ‘무언가를 진심으로 본다는 것’에 대해 말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시울이가 ‘볼 수 없는’ 얼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시울이는 ‘볼 수 있는’ 숱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페이스』는 작가님의 첫 중편소설이기도 합니다. 처음 경험해보는 호흡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어떠셨나요?
중편이라는 걸 의식하고 쓰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어떤 글을 쓰든지 기승전결을 정확하게 생각해놓고 써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강연에서 아이들 만나서도 그런 얘기하거든요.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나도 엔딩이 궁금해서라고. (웃음) 『페이스』도 마찬가지였어요. 작가의 말에 썼듯이 ‘자신의 얼굴이 안 보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서 그 문장을 포스트잇에 붙이고 시작했기 때문에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몰랐어요. 꼭 중편에 맞춰야지라는 생각은 좀 없었어요. 심리적으로 약간 편하긴 했죠. (웃음) 물리적으로 장편을 쓰는 것보다는 조금 편했던 것 같아요. (웃음)
말씀하신 것처럼 포스트잇에 쓴 한 줄의 문장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아이가 있다면…….”에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그 뒤에 이야기는 어떻게 이어졌나요?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이 아이가 겪는 고군분투가 아니라 ‘얼굴을 볼 수 없는 아이의 눈에 비친 다른 사람의 얼굴은 어떨까’라는 게 저의 포커스였던 것 같아요. 주인공인 시울이가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음으로 해서 경험하는 고뇌와 고통과 고군분투보다는, 내 얼굴이 안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소설 속에 시울의 친구들과 할머니가 나오잖아요. 그 사람들이 스스로는 볼 수 없는 무언가를 시울이는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자기 얼굴은 못 보지만 다른 사람 얼굴은 볼 수 있으니까. 시울이와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렇게 나왔던 것 같아요.
할머니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면서 시울이가 그런 생각을 하죠. “과연 누가 할머니의 진짜 취향을 알고 있을까. 어쩌면 할머니 본인조차 모르지 않을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내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사람을 볼 때 외모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연령대로 보죠. 특히 나이 드신 분들에 대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왠지 나이 많으신 분들은 파스타 같은 음식 되게 싫어하실 것 같고, 늘 드시는 것만 드실 것 같고, 커피 같은 것도 잘 못 드실 것 같고. 그런데 아니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한 번 써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체 중에서도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설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얼굴이 하나의 상징일 수 있는데요. 제가 학교에 강연을 다녀보면 십대들이 외모에 관심이 되게 많아요. 얼굴에만 국한된 건 아니고요. 다이어트 때문에 점심을 안 먹는다든지, 외모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저도 기성세대의 눈으로 그런 아이들을 보면 ‘그냥 그 자체로 너무 예쁜데, 아이들은 그걸 모르는구나’ 싶어요. 그래서 얘기를 해주면 아이들은 ‘그냥 하는 얘기겠지’ 생각하는데, 진짜 제 눈에 비친 아이들은 너무 예쁘거든요. 존재 자체로 빛이 나요. 그걸 아이들은 못 보는구나 싶어요. 그런 마음이 할머니의 이야기에서도 나온 것 같고요. 십대뿐만 아니라 이십대 젊은 친구들도 그렇거든요. 되게 예쁜데 자기는 그걸 못 보는 것 같아요. 『페이스』라는 소설에서는 이야기에 힘이 있어야 되니까 얼굴로 국한된 건데, 결국은 자신은 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했어요.
내 모습을 내가 보지 못해서 좋은 점도 있을까요?
나를 알아가는 게 사실은 엄청난 내공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단순히 외모뿐만이 아니라. 나를 모른다는 건, 지금 나를 알아갈 수 있는 여건이 안 될 수도 있어요. 환경이 안 될 수도 있고, 심리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주변 환경 때문에 안 될 수도 있는데 알아가기 위해서는 좀 노력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나를 모른다는 게 나의 안 좋은 면을 내가 외면해서 그럴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나의 약한 모습이나 콤플렉스나 그런 것들을 일부러 외면해서 나를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요. 아니면 아직 찾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안 좋은 면, 약한 면, 콤플렉스 같은 건 일부러 안 보려고 하는 것 같아요. 난 더 강해야 돼, 나는 조금 더 열심히 해야 돼, 올발라야 돼, 이런 생각이 좀 강해요. 그런 의미에서는 약간 부정적일 수도 있죠.
인시울은 어떤 인물로 그리고 싶으셨어요?
제가 썼던 책들 대부분이 외부에서 보기에는 ‘이 아이는 진짜 괴롭겠다’ 하고 생각하기 쉬운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보통의 노을』의 노을이는 미혼모의 아들이고 『페인트』의 제누 같은 아이는 부모에게 버림받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이런 아이들이 (소설에서) 힘들어하고 콤플렉스 덩어리가 되고,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페이스』에서도 시울이라는 아이가 콤플렉스와 문제를 갖고 있다고 해서 굳이 밝지 않게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내 모습은 못 보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조금 더 면밀하게 볼 수 있는 아이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대한 희열과 깨달음을 갖고 있는 아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어둡게는 그리고 싶지 않았어요.
시울이가 여섯 살 때 자신의 얼굴이 안 보인다고 이야기하니까 집안에 한바탕이 소동이 일어나잖아요. 결국 시울이는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이제 내 얼굴이 보인다’고 거짓말을 하는데요. 예상 밖의 전개였어요.
사실 우리가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다른 구성원들이랑 같이 지내면서 백프로 나를 다 보여줄 수는 없잖아요. 시울이가 ‘좋은 아침’이라는 아침 인사를 되게 싫어하는 것도 세상에 좋은 아침은 없기 때문이죠. (웃음) 어떻게 보면 사람들은 자기 얼굴을 본다고 하지만 사회적 가면을 많이 쓰잖아요. 정말 출근하기 싫은데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 오늘 열심히 하자’ 하고 인사하는 것처럼. 그런 것처럼 시울이는 사실은 자기 얼굴이 안 보이는데 보이는 척해야 삶이 그럭저럭 굴러가겠구나, 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그런데 우리 다 그렇게 사는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아이들도 마찬가지고요. 성인들도 진짜 자기의 욕망, 자기의 문제 같은 걸 다 감추잖아요. 감추고 안 그런 척하잖아요. 그런 모습을 그려봤습니다.
표지가 정말 인상적입니다.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프랑스 작가님의 작품인데, 되게 귀여우면서도 예술적이죠. 사실 『페이스』에 맞는 다른 디자인이 있었어요. 그런데 출판사 분들이 눈에 띄고 딱 『페이스』에 맞는 디자인이 아니라 ‘이게 뭐지?’ 싶은 디자인이 오히려 사람들 눈에 더 와 닿지 않을까라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사실 처음에는 ‘엥? 이게 뭐지?’ 그랬어요. 그런데 계속 보면 볼수록 정이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로 했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가 청소년소설 표지에 웹툰형 일러스트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거든요. 활자로 된 책은 자기 상상력을 기반으로 읽어야 되는데 주인공 같은 아이가 표지에 이렇게, 게다가 예쁘고 잘생긴 아이들이 나와 버리면 ‘얘가 주인공이구나’ 하고 자기만의 주인공을 안 만들어요. 그래서 저는 꼭 필요하다면 뒷모습이나 45도 각도로, 웬만하면 얼굴이 다 안 나오게 해달라고 말씀을 드리는데요. 그런 점에서도 이번 표지는 되게 좋았습니다.
거울 속 시울이의 얼굴은 그냥 단색이거나 하나의 뭉뚱그려진 이미지가 아니죠. 표지의 그림처럼 알록달록하고 다채로운 얼굴이에요. 왜 그렇게 묘사하셨어요?
그러게요. 제가 현대미술을 좋아하는 건 아닌데, 단순히 늘 뿌옇게만 보인다고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어쨌든 이게 나름 시울이의 얼굴이거든요. 되게 추상적인 얼굴이죠. 우리도 매일 아침 똑같이 보는 얼굴이지만 그날그날 얼굴이 달라지고 세월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처럼 시울이의 얼굴도 그럴 것 같았어요. 그것도 작가로서 또 하나의 유희일 수도 있어요. ‘오늘은 시울이의 얼굴이 약간 초록빛 아닐까?’ 아니면 ‘오늘은 20세기 현대 미술의 거장이 그린 것 같은 추상화 같지 않을까?’ 하면서 생각해 봤는데요. 그걸 읽는 것도 재밌었다고 말씀하시는 독자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냥 얼굴이 뿌옇고 안 보인다고 표현해도 되는데 이것저것 변주를 함으로써 그걸 읽는 재미도 있었다고요.
소설의 끝에서 시울은 생각합니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얼굴이 있는데, 문득 얼굴을 나타내는 표현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든다”고요.
너무 단순하잖아요. 얼굴이 예쁘다 안 예쁘다, 잘생겼다 못생겼다, 눈이 크다 작다, 쌍꺼풀이 있다 없다, 이렇게 말하는 정도이고, 나이 드신 분들에게 중후하다는 표현을 쓰는 것 외에는 특별히 얼굴에 대한 표현이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는 소설을 쓸 때 웬만하면 외모 묘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들을 하잖아요. 『페이스』에서 말한 것처럼 오늘은 얼굴이 청량하다든지 오늘은 약간 노을 빛이라든지, 이렇게 좀 다양하게 표현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피지컬적인 외모가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이라든지 감정이라든지 분위기를 나타내줄 수 있는 다른 표현을 쓰면 어떨까.
작가님의 얼굴은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세요?
사실 이제 저는 나이 드는 게 좋아요. 오히려 제가 나이가 들어서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십대 삼십대에 젊고 외모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할 때였으면 이런 게 안 보였을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미의 기준이나 그런 것을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예쁘다 안 예쁘다, 피부가 좋다 안 좋다, 그런 거에서 조금 벗어나게 되는 것 같고요. 이제 진짜 제 목표는 예쁜 주름을 갖는 거예요. 웃을 때 예쁜 주름을 갖는 것, 성질부리는 주름이 아니라. (웃음) 좀 있으면 쉰이 다 되어 가니까, 그럴 때는 진짜 나이가 얼굴에 드러나거든요. 그래서 웃는 주름을 많이 만들어놓고 싶어요. 누가 봐도 선한 할머니가 되도록. 이제 제 얼굴은 제가 책임져야죠. 그런데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그런 생각을 내려놓은 건 되게 편해요. 그래서 되게 자유로워요.
시울이가 묵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시간을 밑그림이라고 생각해봐. 거기에 물감 한 방울이 떨어졌어.” “얼룩은 안 사라져. 결국 더 짙은 색으로 덮을 수밖에 없어. 행복이나 추억 같은 것으로......”라고 말하잖아요.
(살면서) 한 번 떨어뜨리겠습니까? 몇 번을 떨어뜨리죠. 잘하려고 준비 다 해놨는데 마지막에 어그러지는 경우도 있고요. 제가 아이들을 만나서 들어보면 공부가 힘든 게 그런 이유래요. 노력한 만큼 안 나오는 거. 진짜 내가 공부를 안 해서 성적이 안 나오면 그냥 포기한대요. 아이들이 정직하거든요. 그런 거에 대해서는 스트레스 안 받아요. 그런데 내가 죽어라 했는데 오히려 성적이 떨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애들이 너무 힘든 거예요. 모든 게 다 ‘해도 안 되는 거구나’ 싶은 절망감 때문에. 계획했던 일이 생각처럼 안 되는 게, 밑그림에 물감 한 방울 떨어지는 일과 비슷한 거죠. 그런데 살다 보면 그런 일이 한두 번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걸 덧칠하고 또 잊어버리고, 그게 계속 반복되는 게 삶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많이 떨어뜨렸어요. (웃음)
얼룩이 남았더라도 얼마든지 덧칠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어른이 있다는 게, 참 좋아요.
제가 학교 강연에서 상담 선생님, 진로 선생님들을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인데요. 고등학생들은 중간고사나 기말고사가 끝나면 기본적으로 10~12명이 찾아와서 학교 그만둔다는 이야기를 한데요. 등급이 떨어지면 가야 될 대학이 달라진다는 거죠. 그 아이들은 그것만 보는 거예요.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밀려났네, 이제 자퇴하고 검정고시 봐야지, 그거밖에 안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인생이 되게 길잖아요. 긴 인생에서 시험 하나는 얼룩도 아닌데... 그래서 선생님들이 시험이 끝나고 나면 상담하러 올 아이들을 기다리면서 가슴이 두근두근한대요. 어떻게 또 아이들을 다독여서 돌려보낼까 싶고. 아이들을 그렇게 만든 현실이 미안하기도 해요.
그때의 아이들은 ‘앞으로 남은 시간이 정말 길고, 지금의 일로 인생이 판가름 나지 않는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을 것 같아요.
사실 제가 학교 다닐 때 국어를 별로 못 했거든요. 제일 싫어했던 게 독후감 쓰기 일기 쓰기 이런 거였어요. 국어 시간에 맨날 졸아서 혼나고요. 아이들은 저한테 ‘국어 되게 잘했죠? 언어 영역 몇 점 맞았어요? 독후감 이런 거 상 많이 받았죠?’ 하고 물어보는데 저는 진짜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말해줘요. 만약에 제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서 십대 희영이한테 너 나중에 작가 된다고 그러면 엄청 비웃을 거라고. 그리고 아이들한테 말해주죠. 지금 이 모습이 절대 너의 전부는 아니야, 지금 생각하기에 나는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니까 어떤 쪽으로는 가능성이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모르는 거라고, 미래에 어떤 네가 기다릴지 모른다고.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걸 경험했으니까 그런 얘기를 해주는 거예요.
서른다섯에 글을 쓰기 시작하셨어요. 그때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마음이 있으셨던 것도 아니고, 어떤 작품을 쓰겠다는 계획이 있으셨던 것도 아니죠?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도 몰랐어요. 소설이 뭔지도 몰랐고. 그냥 낙서부터 시작을 했어요. 그때 개인적으로 좀 힘든 것도 있었고 해서, 누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심리적으로 안정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뭣도 모르고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어요. 제가 강연에 가서 그런 얘기를 해요. 맨 처음에 남편 욕부터 썼다고. (웃음) 그렇게 시작을 했다가 장편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걸 읽어줄 사람이 없잖아요. 작가 지망생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아줌마가 쓴 장편을 누가 읽어줘요? 그렇게 잘 쓴 글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나 궁금해서 공모전에 도전한 거예요. ‘공모전에 꼭 합격해서 작가가 될 거야’가 아니라 ‘본심을 가면 그래도 한 번쯤 읽어줄 만한 거고, 본심도 못 갔다는 건 그냥 폐기처분 해야 되는 거겠지’ 그게 기준이었어요. 제가 쓴 장편을 읽어줄 사람이 없으니까, 읽어줄 수 있는 사람이 심사위원들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공모전에 이것도 내보고 저것도 내보고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처음 완성하신 장편도 청소년 이야기였나요?
처음 습작으로 쓴 건 막장도 있었는데, (웃음) 공모전에는 청소년소설을 써서 냈어요. 사실 그때도 청소년소설이 뭔지는 모르고 막 썼죠. 공모전 낸 다음부터 정신 없이 읽었던 것 같아요. 청소년소설 위주로 상 받은 작품도 다 읽고 분석해 보고. 그 다음에 또 쓰고 떨어지고, 또 쓰고.
청소년소설을 계속 읽고 써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뭐였어요?
청탁이 그렇게 왔고, (웃음) 그리고 쓰다 보니까 재밌었어요. 저도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낸 적은 없는데, 청소년소설을 쓰다 보니까 제 마음이 치유가 되더라고요. 나는 어렸을 때 이런 얘기를 듣고 싶었는데, 싶기도 하고요. 저는 혼나기도 많이 혼나고 비판도 많이 받았어요. 집안도 좀 무섭고 그래가지고 ‘왜 못했어? 왜 이것밖에 못했어?’ 이런 얘기를 되게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싫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성인이 돼서 저를 생각해 보니까 그래도 열심히 잘 살았던 것 같더라고요. 그때는 왜 그렇게 주위 사람들이 (내가) 못한 것에만 초점을 맞췄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그럼 지금이라도 한번 얘기해 주자, 라는 생각에 청소년소설 쓰면서 스스로 치유가 많이 됐던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작가라는 말이 아직도 되게 어색해요. 몸에 안 맞는 옷을 입은 것 같거든요. 그래서 그냥 글쟁이 아줌마라고 얘기를 많이 하는데. 제가 쓴 글이 ‘내 작품’이라기보다 그냥 과거의 십대 희영이한테 보내는 긴 편지 같아요. ‘아직도 너에게는 기회가 많아, 괜찮아, 잘못할 수도 있지’ 이런 것들을 지금 얘기해주면서 좀 치유가 된 것 가고요. 그러다 보니까 계속 청소년소설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그때의 작가님과 지금의 아이들은 분명 다른 세대인데, 그럼에도 본질은 같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아이들의 고민이 진짜 세대를 초월해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안 그런 것 같아 보여도, 부모 눈치를 되게 많이 봐요. 우리 부모에게 나의 보호자에게 내가 어떤 아들인지 어떤 딸인지 되게 신경을 많이 쓰거든요. 그래서 ‘내가 더 잘해야지’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우리 애는 그런 거 신경 안 써요’라고 말하는 부모님들도 계실 텐데, 속으로는 다 상처받아요. 결국은 (세대가 달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저희 때도 부모님한테 혼나면서도 ‘다음엔 안 혼나야지, 다음에는 자랑스러운 딸이 돼야지’라는 마음을 본능적으로 갖고 있었잖아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강연 현장에서 만나보면 그래요. 그런데 부모님한테는 내색을 못하죠.
부모님이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거죠. 그렇지만 일부러 관심 없는 척하기도 하고요.
저한테 메일을 보내는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이 엄청난 얘기를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왜 저한테 메일을 보내냐 하면, 저는 완전히 타인이거든요. 이 작가는 나를 모르는 거예요. 내가 어느 학교 다니는지, 몇 등인지, 학교에서 어떤 아이인지, 이런 거 아무것도 모르죠. 선생님이나 부모님은 나에 대해서 다 알아요. 그래서 말하기가 힘든 거예요. 그런데 이 작가는 나를 모르니까 별 것 아닌 얘기도 막 해요. 저는 그냥 대단하네, 잘했네, 하고 말해주니까 백프로 응원을 받잖아요. 그런데 부모님은, 아닐 수도 있지만, ‘저번에도 잘하지 그랬어. 이렇게 할 줄 아는데 저번에도 잘하지’ 이렇게 말하기도 하잖아요. 그러면 더 상처를 받으니까 말을 많이 못하는 것 같아요.
『페이스』에서 시울이랑 묵재도 그렇잖아요. 상대가 나에 대해 잘 모르니까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돼요.
맞아요. 요즘 아이들이 의외로 친한 친구한테도 되게 말조심 하거든요. SNS도 하고 하니까 뭔가 말 한마디 잘못하면 쫙 퍼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예 모르는 아이한테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죠. 타인이기 때문에 더 편할 때가 있잖아요.
묵재는 본의 아니게 시울이 얼굴에 흉터를 남기게 됩니다. 그런데 그 흉터를 통해서 시울이가 자신의 얼굴을 (일부나마) 볼 수 있게 돼요.
흉터도 상징이죠. 사실은 마음이든 몸이든 상처 없고 흉터 없이 여기까지 살아온 사람 없잖아요. 그런데 가리기 바쁘죠. 없애야 되고 안 보여줘야 되고. 특히 한국 사람은 그런 생각이 되게 강한 것 같아 맞아요. 나는 정말 상처 한 번도 안 받았어, 쟤는 정말 상처도 하나도 없어,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그늘이 있거나 상처가 있는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걸 더 감추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내 인생의 어느 부분은 상처가 날 여기까지 키운 건데. 소위 말해서 우리는 들판에서 자랐잖아요. 비닐하우스에서 자란 거 아니잖아요. 비도 맞고 눈도 맞고 서리도 맞아서 강하게 키운 건데. 그런 걸 약간 상징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 눈에는 (그 흉터가) 빨리 지우고 없애야 되는 것이지만 시울이는 이게 너무 신기한 거죠. 이 상처 때문에 내가 나를 인식하는 것이고. 어떻게 보면 우리는 상처 때문에 내가 성장하는 것을 알잖아요. 그걸 좀 상징화시켰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사회는 흉터를 감춰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작가님도 똑같이 생각하셨었나요?
어렸을 때는 진짜 그랬죠.
그 생각을 어떻게 바꾸셨어요?
이제는 사회적으로도 흉터를 좀 드러내도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게,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아이들한테 놀림 당하고 그런 걸 감추려고 하고 놀림을 당한 애가 뭔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얘기했잖아요. 학원 폭력을 당하거나 회사에서 괴롭힘 당하면 쉬쉬하고, 내가 그런 걸 당한다고 해도 전혀 아닌 척했잖아요.
피해자인 걸 부끄럽게 생각했죠.
그렇죠. 사기를 당해도 그랬고, 성적으로 큰 폭력을 당해도 2차 가해 3차 가해를 당했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당사자인 여자가 그런 걸 말하면 안 됐고, 주위에서 조용히 시켰잖아요. 그런데 아니거든요. 드러내야 되거든요. 내가 학원 폭력을 당했고 직장 내 따돌림을 당했고 성적으로 폭력을 당했다는 걸 점점 드러내서 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상처를 주지 않는다는 건, 그 사람의 상처에 어떤 힘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상처는 드러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의 상처가 다른 사람을 보호할 수도 있고,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끼리 서로 연대할 수도 있고, 그런 연대가 모여서 그런 상처를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잖아요. 그렇게 돼가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 더디지만.
작가님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이름이 평범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요. 이름을 지을 때 어떤 생각하세요?
우선 시울이는 눈시울, 입시울 할 때 그 시울이거든요. ‘시울’이 주변이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묵재는 재가 타고 남은 것을 뜻해요. 그런 의미의 묵재가 있기는 했습니다. 얘가 지금 완전히 마음이 바스러졌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름을 묵재라고 지었는데요. 인물들 이름을 지을 때는 우선 사전을 많이 봐요. 특히 제가 순 우리말사전을 되게 좋아해서 집에 몇 권 있거든요. 그걸 다 한번 보고, 이름으로 쓸 만한 걸 찾죠. 국어사전, 순 우리말사전, 라틴어사전 이런 걸 많이 뒤져보고 한자 같은 것도 찾아보고 그래요.
이름 속에 캐릭터를 녹여놓는 편이시군요.
작가님들마다 다른데, 저는 이름이 되게 중요해요. 제목이나 상황은 (나중에) 바꿔도 되는데 웬만하면 이름은 바꾸지 않고 한 번 꽂히면 무조건 그렇게 가야 되거든요.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면 이름이 나오면 글을 반은 썼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제가 쓴 모든 소설이, 그리고 앞으로 나올 소설도 이름은 되게 중요해요.
집필을 시작했는데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진도가 잘 안 나가겠어요.
아예 시작을 안 해요. 제목은 가제로 써놓기도 하고 아예 제목 없이 쓸 때도 있는데요. 어떤 작가님은 제목이 안 나오는 글을 못 쓴다고 하시던데, 제목이 이정표가 돼서 그 제목으로만 가야 된다고 하시던데, 저는 제목은 맨 마지막에 지어요. 그런데 이름이 안 나오면 아예 시작을 못해요. 시울도 이름 찾으려고 몇 번씩 사전을 찾았어요. 노을(『보통의 노을』)도 그렇고 마오(『테스터』)도 그렇고, 그 이름이 되게 중요하고 상징이 다 있어서, 저는 약간 이름에 고집을 부리는 편입니다. (웃음)
김지은 평론가님이 쓰신 작품해설을 쓰셨는데, 그 글도 너무 좋았어요. 해설을 받아보시고 어떤 기분이셨을지 궁금합니다.
제가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로 너무 과찬으로 너무 잘 써주셨는데, 그건 독자 분들이 더 많이 아세요. 그래서 ‘『페이스』도 좋았지만 평론이 더 좋았다’는 후기도 많았어요. (웃음) ‘『페이스』는 평론까지 읽어야 완벽하다’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좋은 글은 독자님들이 먼저 알아보시는구나 싶더라고요. 평론가님이 정말 제 책에 화룡점정을 띄어주셔서, 저는 너무 감사드립니다.
김지은 평론가님이 쓰시길 ‘괴물을 무찌르기 위해서 찾아 떠나는 게 유년의 성장 서사라면, 내가 괴물이라는 걸 알게 되는 게 청소년의 서사’라고 하셨는데요. 『페이스』에 대해서도, 청소년기라는 시절에 대해서도, 아주 잘 말해주는 문장이에요.
그 과도기가 그런 것 같아요. 유아기 때는 정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잖아요. 내가 중심이고 사회가 나를 중심으로 다 돌아가잖아요. 뭘 해도 다 잘한다, 잘한다, 하고. 그런데 이 괴물이라는 것은,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괴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공격을 하기도 하잖아요. 무찔러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 좋게만 보지는 않잖아요. 그렇게 공격도 당하고, 나의 어두운 면도 보고, 나의 흉측한 이빨도 보고, 그렇게 자기를 보기 시작한 게 청소년기인 것 같아요. 저도 평론가님처럼 그렇게 해석을 하기도 해요.
지난해에 <문장의 소리>에 출연하셨을 때 청소년 소설의 영역을 넓히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제는 영어덜트소설이라는 말이 보편화됐고, 청소년소설을 즐기는 어른도 늘어난 것 같은데요. 여전히 독자들의 연령대가 한정되어 있다고 느끼세요?
한국은 더 심하죠. 아예 고정관념은 그렇게 깔려 있어요. 청소년소설은 애들이나 있는 유치한 거라고. 그런데 요즘 (작가님들이) 그렇게 안 쓰세요. 제가 도서관 같은 데 강연 가서 같이 (작품을) 읽어보면 ‘요즘 청소년소설 이렇게 써요? 이렇게 충격적인 내용도 써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애들이 우당탕탕 하는 얘기 아니었어요?’라든지 ‘사회적 문제를 청소년소설로 녹여내셨네요?’ 같은 이야기도 많이 하세요. 우선은 청소년소설에 대한 선입견이 많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유럽 미국 일본의 경우에는 영어덜트라고 해서 시장이 되게 넓거든요. (청소년소설이) 가볍게 읽기 좋다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는데, 그러다 보니까 ‘없는 시간 쪼개서 책을 읽을 때는 이런 가벼운 소설을 읽느니 고전을 읽는다든지 다른 책을 읽어야지’ 이런 생각을 가지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게 나쁜 건 아닌데, 그런 선입견을 갖고 계시면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시기 조금 힘드실 수도 있다는 거죠. 저는 영어덜트 쪽으로 청소년소설의 영역을 넓히고 싶었어요. 『페이스』도 그랬던 것 같아요.
한 해에 두세 권씩 왕성하게 출간하고 계시잖아요.
어쩌다가 다작을 하게 돼서, 작년에도 세 권이 나왔는데 올해도 세 권이 나올 것 같아요.
어쩜 이렇게 꾸준히, 많이, 쓰실 수 있나요?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쓰다 보니까 짬짬이 쓰는 게 습관이 됐어요. 그게 처음엔 마이너스였는데 지금은 플러스가 되는 것 같아요.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남편 회사 보내고 좀 쓰다가, 아이 데리고 오고 저녁하고 짬짬이 쓰고, 그런 게 습관이 됐어요. 지금도 강연 가기 전에 아침에 일어나서 조금 쓰고요. 조금씩 쓰는 버릇이 생겼어요.
이야기가 계속 생겨난다는 게 너무 신기합니다. (웃음)
이거 썼으면 저것도 써보고 싶고, 또 이 장면 썼으면 저 장면도 한번 써보고 싶고, 이런 욕심이 생기는 것 같아요. 청탁을 주시면 ‘이 기회를 놓치면 어떡하나’라는 생각에 또 쓰게 되고. (웃음) 일 욕심이 조금 많은 것도 하나의 이유인 것 같아요. 계속 신작이 나오니까 독자 분들께 신작을 소개해 드리고 싶어가지고 강연도 계속 하게 되고요.
올해 세 권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셨으니까 『페이스』 이후로 두 권이 더 나오겠네요. 소개 좀 해주세요.
곧 나올 소설의 제목은 『셰이커』예요. 이제 인쇄만 앞두고 있고요. 시간 여행자에 대한 판타지예요. 래빗홀 YA 시리즈로 나오는데, 지금까지 제가 쓴 것 중에 가장 영어덜트다운 책일 것 같아요. 십대뿐만 아니라 정말 이삼십대 분들이 읽어도 청소년 소설이라는 생각을 안 할 정도로 확장된 이야기예요. 주인공이 삼십대로 시작하거든요. 기존의 시간 여행이랑은 조금 다르고, 제가 웬만하면 이런 얘기를 안 하는데, 진짜 읽으면 후회 안 하실 것 같아요. 하반기에 나올 책도 판타지인데 『페이스』와 『셰이커』가 약간 현대 판타지라면 그 작품은 세계관이 들어가 있는 정통 판타지예요.
인터뷰를 마치기 전에 더 하고 싶으신 말씀은 없나요?
열심히 쓸 테니까 잘 많이 봐주시면 좋겠어요. 『페이스』도 그렇지만, 읽고 나서 각자 가슴에 무언가 남을 만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이희영 소설은 읽으면 뭔가 남는 게 있다, 라는 이야기를 듣는 글을 계속 쓰고 싶어요. 청소년 독자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이삼십대, 그리고 그들의 부모님이 읽으셔도 괜찮을 만한 책을 쓰는 게 제 목표고요. 많이 사랑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희영 단편소설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로 2013년 제1회 김승옥문학상 신인상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페인트』 『보통의 노을』 『나나』 『챌린지 블루』 『테스터』 『소금 아이』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등이 있으며, 2018년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대상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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