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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관람차는 언제까지나 - ‘전설이 될 거야’를 마무리하며
김윤하의 전설이 될 거야 마지막화
케이팝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이 어떻게 좋은지 알리고 싶었다. (2024.04.19)
4월 8일 월요일. 온앤오프의 여덟 번째 미니앨범 [BEAUTIFUL SHADOW]의 첫 곡 ‘Bye My Monster’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다. 이 사람들, 정말 진심이구나. 온앤오프와 작곡가 황현은 그룹 데뷔부터 지금까지 7년 째 호흡을 맞춰오고 있다. 2020년대 케이팝에서는 흔적 기관으로 사라졌다 알려진 비장함과 휘몰아침의 미덕을 잊지 않고 활동하는 드문 파트너이기도 하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멜로디가 곡 전체를 이끌고, 메인 보컬이 성대를 갈아 곡의 하이라이트를 부른다. 웅장한 전자기타와 현악 연주가 박력 넘치게 교차하고, 사랑 앞에서 재앙, 절망, 구원, 지옥과 괴물을 부른다. 돌이킬 수 없는 이별 앞에서 마지막 호흡처럼 흩어지는 멤버 효진의 ‘안녕’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우리가 사랑해 온, 그러나 오래 잊고 있었던 케이팝의 어떤 정수가 그곳에 있었다.
4월 13일 토요일. 이제는 케이팝 팬들 사이에서도 꽤 인지도가 높아진 미국의 음악 페스티벌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생중계를 틀었다. 십여 년 전부터 페스티벌을 온라인으로 무료 생중계한다는 남 다른 발상으로 전 세계 음악 팬들 사이 명성을 드높인 이들은 이제는 해외 음악 페스티벌 섭외가 흔해진 한국 가수들을 일찌감치 초대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올해에는 한국 시간으로 토요일 오후, 에이티즈 무대가 예정되어 있었다. 케이팝 보이 그룹으로는 최초로 코첼라 무대에 서게 된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50분. 카메라나 음향 등 크고 작은 문제로 인한 혼란이 중계 화면 밖까지 전해졌지만 공연을 보고 난 이들은 입을 모아 모니터 밖까지 전해진 기합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자탈, 자개 무늬, 한글로 ‘헬로 코첼라’가 새겨진 부채 모두가 제대로 한판 벌어진 무대 위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에이티즈나 케이팝을 몰라도 공연이 전하는 에너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시간이었다.
4월 15일 월요일. 7개월 만에 돌아온 보이 그룹 보이넥스트도어(BOYNEXTDOOR)의 앨범 [HOW?]을 들으며 오랜만에 구김살 없이 활짝 웃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음악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면 취향에 맞는 음악과 완성도가 높은 음악 사이 길을 잃는 경우가 생긴다. 전자는 이성으로, 후자는 매력 발굴로 적당히 조율해 가며 살아가다 그 두 가지가 기분 좋게 만나는 지점을 종종 만나게 되는데, [HOW?]가 그런 앨범이었다. ‘옆집 소년’이라는 조금은 뻔한 키워드를 레트로한 음악과 색다른 태도로 풀어내는 솜씨가 익숙한 듯 새로운 감상을 끌어냈다. 앨범 중간에 무심하게 툭 떨어진 타이틀곡 ‘Earth, Wind & Fire’의 개성 넘치는 자태와 풋풋한 세레나데 ‘So let's go see the stars’, 다섯 번째 트랙 ‘l i f e i s c o o l’에서 아웃트로 ‘Dear. My Darling’으로 이어지는 묘한 낭만까지 취향과 완성도 두 마리 토끼를 제대로 잡은 앨범이었다.
4월 16일 화요일. 걸 그룹 아이브의 공식 SNS 계정에 이들의 세 번째 콘셉트 포토가 떴다. 오는 4월 29일 발매될 두 번째 EP [IVE SWITCH]를 위한 프로모션이었다. 4월 초 공개한 컴백 스케줄러부터 신비로운 빛으로 마법 소녀 이미지를 강하게 어필한 이들이었으니만큼 일관성이 느껴졌다. 이미지 속 아이브 멤버들은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선물로 탐내봤을 반짝이는 마법 소녀를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 냈다. 아이브는 뚜껑을 열면 ‘반짝반짝 작은 별’이 당장 흘러나올 것 같은 오르골 형상의 단상 위 색색의 보석이 박힌 마법봉을 들고 섰다. 사실 봉이라기 보다는 창이나 장검 같은 무기 같기도 하다. 하긴 마법봉은 마법 소녀의 무기니까. 10대 여자아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그룹으로서 주요 타겟층을 정확히 공략한, 똑똑한 데다 예쁘기까지 한 콘셉트 포토였다. 마음 한구석 여전히 ‘그때 취향’을 간직하고 있는 어른들의 마음을 자극한 건 덤이었다.
무려 3년 반만의 연재를 마무리하는 ‘전설이 될거야’의 마지막 순간까지, 케이팝 세상은 이토록 멈추지 않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물론 언제나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케이팝은 깊은 마음을 주면 줄수록 오히려 어두운 부분이 많이 보이는 꽤 복잡한 세계이기도 하다. 그래도 케이팝이 당장 멸종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면, 그 뿌연 물살의 흐름 안에서 흥미로운 움직임을 포착해 글로 풀어내 보고 싶었다. 케이팝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이 어떻게 좋은지 알리고 싶었다. 케이팝이라는 단어가 대중에 익숙해진 이래 ‘이제 슬슬 인기가 시들해질 때’라는 말을 매해 들었다. 다행히도 또는 안타깝게도 케이팝은 지금도 이렇게 건재하다. 여전히 소란스럽고 뜨겁다. 앞서 이야기 한 지난 몇 주간의 일기 같은 감상만 봐도 그렇다. 이것이 행인지 불행인지는 아직 판단이 어렵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런 고민을 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케이팝 관람차는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케이팝 관람차는 언제까지나, 우리가 사랑과 관심을 멈추지 않는 그날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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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