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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보통의 아이들을 만나다

『선 위의 아이들』 남예은 작가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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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두려움에 먹혀 버리지 않도록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싶었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 위안이 되는 작은 말 한마디가 때론 살아야 할 의미를 부여해 주곤 하잖아요. (2024.04.15)


‘서울문화재단 발간지원사업 선정작’으로 뽑히며 주목을 받은 남예은 작가의 첫 소설집 『선 위의 아이들』이 출간되었다. 힘든 상황 때문에 좌절하고 휩쓸릴 때도 많지만, 현실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깨닫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내었다. 선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보통의 아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남예은 작가를 지금 만나 보자.



첫 번째 소설집 『선 위의 아이들』로 인사드리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에 대한 소개를 짤막하게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청소년 문학과 동화를 쓰는 남예은입니다.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매우 설레고 기쁩니다. 2018년에 단편 「로봇과 함께 춤을」이 ‘한낙원 과학 소설상’ 우수작에 선정되면서 등단했어요. 2020년에 단편 「코르셋」으로 ‘창비어린이’ 신인 문학상을 받았고요, 2022년에 단편 「선 위의 아이들」로 ‘어린이와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두 편의 수상작과 함께, 처음으로 선보이는 「나쁜 사랑」 「지하철 1호선」 등 총 네 편의 이야기가 이번 소설집 『선 위의 아이들』에 실려 있습니다.

특별히 청소년 문학을 써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선 위의 아이들』을 어떤 마음으로 집필하셨는지도 들려주세요.

이유는 없어요. 그냥 좋아요. 물이 흘러가듯 자연스레 쓰고 싶고, 또 쓰다 보면 청소년 문학을 하고 있는 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지워진 짐이 너무 무거워요. 낙오되고 싶지 않은 두려움, 자기 자신이 참 쓸모없다고 느껴지는 지점과 존재적인 공포가 아이들을 경직시키고, 꿈꾸지 못하게 만들고, 고립시킨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청소년기를 두려움 속에서 방황했고요. 

책을 쓸 때 저는, 아이들이 두려움에 먹혀 버리지 않도록 ‘삶’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고 싶었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위로, 위안이 되는 작은 말 한마디가 때론 살아야 할 의미를 부여해 주곤 하잖아요. 저는 책을 통해서 그렇게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모든 아이들을 다 만날 수 없으니까. 책을 통하면 할 수 있잖아요. 제목에 나오는 ‘선’은 혼란스러움과 두려움을 말해요. ‘선’을 뛰어넘어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힘들지만 그 경계 너머로 갈 수 있는 어떤 힘이 반드시 자신 안에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학교 폭력과 왕따, 가족과의 갈등, 이성간의 문제, 진로 스트레스 등 요즘 십 대들을 보면 다양한 환경으로 인해 좌절하고 고민하는 경우가 참 많은 것 같아요. 『선 위의 아이들』에 이러한 보통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어 무척 반가웠습니다. 혹시 이번 소설집에 작가님의 경험이 투영된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저에게 이야기가 들어올 때는 일상 속에서 마음을 간질이는 어떤 생각이 떠올랐을 때인 것 같아요. 잊을 수 없는 상황이나 사람을 마주했을 때 오래도록 제 안에 머무는 것 같거든요. 계속 맴돌면서 저를 괴롭히기도 하고 즐겁게 하기도 해요. 왜 그랬을까, 혹은 왜 그러지 못했을까, 생각하면서 답을 찾죠.  

맞아요. 이번 소설집에서 이야기의 씨앗은 저의 경험이었어요. 「나쁜 사랑」의 주인공 이로운은 한동안 웹 소설이나 무협 소설을 즐겨 보던 때의 저와 같아요. 「코르셋」 속 고등어구이 가게는 제가 종종 가던 생선구이 가게고요. 주인아주머니와 따님이 운영하는 곳인데 그분들을 보면서 상상해서 만든 이야기예요. 표제작인 「선 위의 아이들」은 우울증이 찾아왔을 때 방콕했던 저의 모습이 투영되었죠. 대여섯 살 때 너무 활달해서 슈퍼맨 놀이를 한다고 지붕이며, 담이며 올라가서 많이 다치곤 했는데요. 어머니가 걱정됐는지 집안일을 하실 때는 방문 고리에 제 다리를 묶어 두신 적도 있어요. 저는 바로 풀고 놀러 나갔지만. 예전에 오일장에서 우연히 발이 묶여 있는 아이를 본 적이 있어요. 부모님도 보이지 않아서 아이 주변을 몇 시간이나 맴돌았던 것 같아요. 그때 떠오른 이야기예요.

앞으로도 저의 경험이 이야기를 쓰게 만들겠죠. 모두 내려놓고 꾸밈없이 솔직하게 계속 쓰고 싶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아는 것을 상상한다고 하니까요.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결국 자기만의 ‘믿음’을 공고히 다져 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어쩌면 지금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기 확신과 신념, 자존감 같은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러한 캐릭터들을 그리게 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씨감자를 심을 때, 감자에 상처를 내고 땅에 심잖아요. 단단하고 완전하게 자라난 감자 입장에서는 상처가 아프기만 할 거예요. 잘 자라서 고생 끝인 줄 알았는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다시 땅에 묻히면서 억울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 상처를 통해 싹이 트고 더 많은 감자들이 열리면서, 많은 동물들이 생명을 이어 갈 수 있게 양분을 베풀어 주잖아요.

우주 만물은 음양의 법칙, 작용 반작용의 원리에 의해 뭔가를 얻으려면 뭔가를 잃어야 해요. 바꿔 말하면 잃어야 얻을 수 있다는 건데, 여기서 뭘 잃기 위해서는, 즉 내어놓기 위해서는 내가 가진 것이 있어야 내어놓는 것도 가능하겠죠. 내가 나를 믿고 사랑하는 단단한 마음, 내적인 힘이 있을 때 우리는 뭔가를 내어놓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성장하려면 자존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선 위의 아이들」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상처받고 흔들리고 부서지기도 하지만, 어느새 생채기에서 새살이 돋아나 완전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표제작 「선 위의 아이들」은 학폭으로 고통받는 친구를 방관하고 외면한 열일곱 살 인우의 이야기인데요. 인우는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 놓고는 자기 자신의 삶까지 방관하기 시작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충분히 공감할 만한 내용인 것 같아요. 마음속 양심에 따르느냐, 나에게 피해만 없다면 모른 척하느냐의 문제로요.

인우는 양가적인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는 인물이에요. 하루 종일 줄에 묶여 있는 정운을 구하지 않으면서 아이를 돕지 않는 사람들과 신을 향해 미움을 표하는데요. 인우가 하는 말들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 던지는 칼이죠. 친구를 내버려 두었다는 죄책감에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어 하지만, 한편으로는 모든 상황이 회복되어서 처벌 없이 넘어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나요? 어떤 것을 선택하면 어떤 것은 내어 주어야 하는 갈등에 놓이기 마련이니까요. 학폭을 다루는 이야기는 많이 만들어져 있어서 학폭 가해자가 느낄 지옥을 그려 보고 싶었어요.   

조심스럽지만, 혹시 유사한 경험을 했다거나 목격한 적이 있으신가요?

초등학교 때 서울에서 부산으로 전학을 가서 일명 은따를 당했지만 나름 센 척을 잘해서 물리칠 수 있었어요. 일본과 미국 유학 시절에 한국인이라고 야유와 혐오를 받은 적도 있고요. 막 얻어맞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죽고 싶어지는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너무 우울하고 무서워서 밖으로 나가지 않게 되더군요. 많이 위축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감사하게도 제 곁에 「선 위의 아이들」 속 정운에게처럼 힘을 주는 분이 계셔서 조금씩 밖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많은 감정이 듭니다. 그 일이 씨앗이 되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힘들었지만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그 시절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선 위의 아이들』을 읽었거나, 앞으로 읽을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글을 쓰는 것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한 적이 있어요. 남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 봐, 모자란 모습이 여실히 보일까 봐 『선 위의 아이들』을 쓸 때의 저는 참 겁이 많았고 그래서 머뭇거렸던 것 같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부모님께 또는 친구들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 봐,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이 비난 받을까 봐 두려운 분들이 있을까요. 그래서 용기 내기를 포기한 분들이 있다면 꼭 책을 읽어 보셨으면 해요. 망설이지 말고 스스로를 위한 선택을 하라고, 그래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코르셋’ 속에 머물러 있지 마시고요. 선 밖으로 나오시기를 기원합니다. 머물러 있던 저도 『선 위의 아이들』을 쓰면서 많이 바뀌었답니다. 저에게 의미 있었던 글이 독자들에게도 가닿기를 꿈꿉니다. 너무 근사하네요. 이렇게 서로가 연결된다는 게. 

읽어 주시고 또 읽어 주실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남예은

1975년에 부산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광고학을 전공했고, 일본어 동시 통역사로 일했다. 제4회 한낙원 과학 소설상 우수 응모작에 「로봇과 함께 춤을」이 선정되었다. 「코르셋」으로 제12회 창비어린 이 청소년 소설 부문 신인 문학상을, 「선 위의 아이들」로 제8회 어린이와 문학상을 받았다.


선 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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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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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위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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