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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종은 혁신적 탄생의 원천이다!”

『혼종의 나라』 문소영 작가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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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만이 아니라 모든 문화는 다 혼종적입니다. 바바가 순수성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했듯이요 그런데 한국은 압축성장을 하면서 그 혼종성의 혼란과 역동성이 다른 문화권보다 더욱 강한 것 같습니다. (2024.04.12)


『명화독서』, 『그림 속 경제학』 등 예술이 우리의 일상과 교차하는 지점을 읽어내온 문화 전문 저널리스트 문소영이 한국 문화를 ‘혼종’이라는 콘셉트 아래 7개의 키워드로 구분해 바라본 책 『혼종의 나라』를 출간했다. 영화, 드라마, 예능, 미술 등 다양한 시각문화와 사회적 이슈 등 일상의 이면에 질문을 던지고 그것들에 숨겨진 오늘의 한국 사회와 한국인의 특징들을 포착하는 이 책은 <중앙일보> 칼럼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에 인기리에 연재해온 내용을 묶어 보완한 것이다. 

저자는 개인과 세대, 나아가 우리 사회와 전 세계가 열광하는 한국의 문화의 트렌드를 꿰뚫는 하나의 단어로 ‘혼종hybrid’을 꼽는다. 탈식민주의 학자 호미 바바는 제국의 영향을 받은 식민지 문화가 다양성과 잠재력을 키워 결국 문화권력을 전복할 수 있음을 설명하는 데 이 개념을 사용했는데, 저자는 이를 한국 문화를 관통하는 핵심으로 소환해 우리를 둘러싼 사회 곳곳의 문화적 현상을 명쾌하게 분석해낸다.

 


안녕하세요, 문소영 작가님. 오랜만에 신간 『혼종의 나라』로 독자님들을 찾아뵙게 되었네요. 주로 일상 속 예술과 그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던 전작들과 비교했을 때 이번 책에서는 작가님의 관심사가 사회 전반으로 더 확장된 느낌을 받았는데요, 전작과 비교해 이번 책은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지난번에 냈던 책은 『명화독서』였는데, 미술작품과 관련된 문학작품, 주로 고전들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고전은 시공을 초월해 우리 삶에 영감을 주고 결국 연결되지만 현실 자체는 아니지요.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미술로 보는 신화와 문학 이야기를 좋아했는데, 그러면서 현실의 나와 나를 둘러싼 ‘지금, 여기’의 존재들의 민낯은 좀 외면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지금, 여기’ 존재들의 아름다움과 추함, 우스움과 진지함을 모두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쓸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결국 제 관심사는 문화예술을 통해 현재의 현실사회와 나 자신을 보는 것이고, 여기에 오기 위해 경제학, 예술학, 문화학을 차례로 공부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송호근 교수님이 추천사에서 저를 벤야민의 산책을 하는 문화사가, 문화사회학자라고 불러주셨는데, 그 과분한, 그러나 듣고 싶었던 호칭에 정말 기뻤습니다. 예술과 사회의 연결이라는 점에서 제 세 번째 책 『그림 속 경제학』과도 연결되는데 『그림 속 경제학』이 르네상스부터 20세기 초까지의 명화들 속에 어떻게 서구 경제사와 경제의식의 변천이 담겨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지식 전달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혼종의 나라』에는 지금 각종 문화를 통해 보는 한국 사회에 대한 저의 시각이 많이 나옵니다.

책의 제목에서 이야기하신 ‘혼종’이라는 단어가 우리 주변에서 정말 다양한 의미와 뉘앙스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는 ‘혼종’이라는 말을 어떤 의미로 쓰셨나요? 그리고 왜 한국 문화에 ‘혼종적’ 특성이 있다고 보셨나요?

한마디로 서구식 근대화가 이루어지면서 전통문화와 서구문화가 섞였다는 것인데요. 문화마다 시차가 있어서 여러 제도나 우리가 입는 옷, 사는 집 등은 이미 20세기 초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서구화되었지만, 생각하는 방식에 있어서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퍼진 것은 산업화와 민주화가 완수된 90년대부터거든요. 그리고 아직도 유교적·공동체주의적 가치관과 개인주의적·자유주의적 가치관이 혼재하고 충돌하는 상태고요. 그래서 자유주의가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채 자유주의의 도구인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도구가 아닌, 마치 종교 같은 가치체계가 되어버리는 상태가 나타나고, 그 이야기를 제1장 ‘돈’과 제2장 ‘손절과 리셋’에서 다룹니다. 

저는 왜 그렇게 요즘 한국인들에게 ‘손절’이 화두인지, 그 원인을 바로 유교적·공동체주의적 가치관과 개인주의적·자유주의적 가치관이 혼재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부당한데도 질질 끌어온 인간관계 ― 예를 들면 육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부모나 배우자 ― 에 대해 단호하게 끊고자 하는 자유주의적 욕망과 전통적 가치관에 의한 망설임이 충돌하거든요. 그래서 막장드라마보다 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가족 관찰·상담 예능을 욕하면서 보게 되고, 논쟁하고…. ‘구하라법’ 등 이와 관련된 법안도 발의되었지만, 현실이 너무 복잡해서 몇 년째 계류 중입니다. 그런 와중에 게임에 익숙한 세대는 이 복잡함을 피해서 시궁창 같은 인간관계와 인생을 게임처럼 단숨에 리셋해버리고 싶은 욕망을 키워가는데, 요즘 ‘회빙환’ 즉 회귀·빙의·환생을 다룬 웹소설·웹툰·드라마가 그렇게 인기를 끄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지요.

작가님이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이른바 ‘국뽕’이라고 하는 식의 극찬이나 냉소적인 비판이 아닌, 애정과 관심이 있는 비평이 느껴집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한국 콘텐츠와 문화가 세계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잖아요. 하지만 외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한식’은 치킨이거든요. 본래 미국 남부 음식이지만 두 번 튀기고 간장, 고추장 양념을 하는 등 한국적 요소가 들어갔죠. 넷플릭스 사상 최대 히트작 <오징어 게임>도 세계보편적인 요소와 한국적인 요소, 진부한 요소와 독창적인 요소를 정교하게 잘 버무렸는데, 이러한 배합의 기술 자체가 할리우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입니다. 방탄소년단(BTS)으로 대표되는 K팝도 그래요. ‘가장 한국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한국적이지 않은 동시에 한국적’인 것, 즉 하이브리드(hybrid)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사랑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무리 멋진 혼종 문화를 탄생시켜도 그것을 알릴 채널이 없었다면 세계적인 한류를 일으킬 수 없었겠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와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의 출현이 그 채널의 기회를 만들어 주었고, 변화에 열려 있고 빠르게 적응하는 한국인들은 그 채널을 120% 활용했죠. 이런 게 바로 탈식민주의 학자 호미 바바(Homi Bhabha)가 말한 하이브리드 정체성 - 본질적으로 유동적이고 역동적이고 적응력이 강하며, 새롭고 혁신적인 무언가를 탄생시키는 정체성이겠지요. 사실 한국만이 아니라 모든 문화는 다 혼종적입니다. 바바가 순수성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했듯이요 그런데 한국은 압축성장을 하면서 그 혼종성의 혼란과 역동성이 다른 문화권보다 더욱 강한 것 같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피지컬: 100>, 샹들리에와 신라 금관 모양의 조명이 공존하는 청와대 인테리어 등 한국 사회 곳곳에서 ‘혼종성hybridity’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이걸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은 이러한 한국 문화의 혼종적 특성에 대해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갖는 게 좋다고 보시나요?

청와대의 ‘짬뽕’ 인테리어에 대해 최범 디자인 평론가는 “이러한 절충주의 양식은 장기적 관점에서 우리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 시각적인 ‘나라 만들기(nation building)’의 과정을 잘 보여주니 보존되고 연구될 필요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서문에도 썼지만 저는 예전에 가장 질색하던 풍경이 어설프게 그리스 신전을 흉내 낸 기둥을 장식한 예식장에서 현란한 색깔의 뻣뻣한 한복을 입고 나오는 사람들이었는데, 미술가 최정화는 바로 그 ‘짬뽕’ 문화에 애정과 풍자를 동시에 섞어서 키치함과 숭고함이 동시에 있는 설치미술 작품들로 승화시켰고 세계 각지의 미술관에서 조명을 받았지요. 결국 무비판적 수용도, 그렇다고 무조건적 거부도 아닌, 비판적이면서도 애정과 흥미를 가진 눈으로 보면 그것이 창조의 거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오징어 게임>이나 <내 남편과 결혼해줘> 등 유행하는 K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알게 되어 간지러웠던 부분을 긁어주는 듯한 시원함을 느꼈는데요. 글을 쓰실 때 어떤 기준으로 글감을 선정하시나요?

나를 둘러싼 문화 속에서 흥미가 가거나 반대로 묘하게 신경을 긁는 존재들에 대해 글을 쓰게 됩니다. 이를테면 회빙환 웹소설은 길거리 스낵처럼 자극적이고 중독적인 맛이 있는데 또 한편으로 비슷비슷한 내용이 대량생산되는 걸 보면서 거부감을 느끼게도 되더라고요. 그 양가적인 느낌을 받으면서 대체 왜 이들은 이토록 유행하고 또 이토록 내 신경을 자극할까에 대한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걸 분석하며 글을 쓰게 된 것이고요. ‘별걸 다 동상으로 만드는 한국’도 일단 삼성역의 ‘강남스타일’ 동상과 광화문광장에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잡아 그 뒤의 광화문과 북악산 풍경을 가로막는 ‘세종대왕’상이 눈에 거슬렸기 때문에 쓰기 시작한 것이랍니다. (웃음) 

저도 ‘강남스타일’을 좋아하고 세종대왕을 존경하지만 왜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기릴 때 꼭 동상을 세워야 하지? 미적으로 세련되고 아름답지도 않은데? 하는 의문에 다다르게 된 거죠. 재미있는 건, 위인 동상을 꼭 세워야 하나 라는 말을 하면 마치 전통이 훼손된 것처럼 화내는 분들도 있던데, 생각해보면 사실 누군가를 동상으로 기리는 건 전혀 한국 전통이 아니고 서구의 전통이란 말이죠. 그 기이한 혼종성 자체가 재미있기도 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일단 이런 식으로 제 눈길을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사로잡는 문화적인 존재나 트렌드, 그리고 그것에 대한 통념, 그리고 그것들이 바로 우리 사회의 현재와 집단의식에 대해 시사하는 것들을 쓰게 된답니다.

『혼종의 나라』는 한국문화와 사회에 관한 책이지만 국내 이슈에만 매몰되지 않고 세계적인 흐름과 트렌드 속에서 우리의 문화를 바라보는 균형잡힌 시선이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이처럼 어느 한쪽에만 경도되지 않는 태도와 관점 그리고 정보의 습득을 위해 작가님께서 추천하시는 방법이나 팁이 있을까요?

제가 신문기자라 좀 편향된 답일 수도 있지만 (웃음) 신문 읽기를 추천드립니다. 요즘은 다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자신이 흥미 있는 기사만 클릭해서 읽고 또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이 관심 뉴스를 뽑아주어 그것을 조장하면서 정보의 편향성이 점점 심해지는 것같아요. 신문을 보면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국제뉴스를 많이 보고, 가능하면 BBC나 알자지라 같은 해외 매체를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언어 장벽 문제가 있지만 요즘은 인공지능 번역도 엄청 발전했으니까요. 

그리고 문화에 관심 있는 분들은 해외여행 가실 때 꼭 현지의 박물관을 심도 깊게 돌아봤으면 좋겠습니다. 이를테면 싱가포르에는 주로 레저와 쇼핑을 즐기기 위해 가잖아요. 하지만 그곳의 아시아 문명 박물관 같은 곳도 가보면 좋아요. 볼거리가 많고 아시아의 해양 교류 속에 과거 한국은 어떤 위치였나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어보실 독자님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하고 싶은 말씀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저는 기본적으로 제 주변의 것들을 재미있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 책도 재미를 느끼며 썼고, 그래서 자화자찬이지만 읽어본 분들은 대부분 재미있게 쓱쓱 읽힌다고 해주십니다. 이미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무한 감사를 드리고 다른 독자님들도 많이 읽어주시고 비평도 가차없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문소영

미술부터 영화까지 시각문화에서 아름다움 못지않게 인간과 사회의 명암을 읽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기발하고 황당한 콘텐츠를 특히 좋아하지만, 거기에서도 정치·경제·사회 코드를 종종 발견하곤 한다.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석사, 홍익대학교에서 예술학 석사, 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칼리지에서 문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홍익대학교 예술학과에서 박사 과정 중이다. 현재 〈중앙일보S〉 선데이국 문화전문기자이며 한국콘텐츠진흥원 비상임이사로도 일하고 있다. 그 전에는 〈중앙일보〉의 영어신문 〈코리아중앙데일리〉에서 오래 일했고 문화부장을 거쳤다. 

성신여자대학교 겸임교수로도 출강했다. 〈중앙일보〉에 ‘문화가 암시하는 사회’, 〈중앙선데이〉에 ‘영감의 원천’ 등 칼럼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으며, 여러 매체에 글을 써왔고, 종종 강연을 나간다. 지은 책으로 『광대하고 게으르게』 (2019), 『명화독서』 (2018), 『그림 속 경제학』 (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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