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반대 의견” (G. 김영란 전 대법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88회)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참여해서 조금씩 더 정의로운 사회로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책 『판결 너머 자유』를 쓰신 김영란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4.04.11)
우리 사회에 롤스식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면 그 어려운 이유는 여전히 유교 등 전통적인 사상을 토대로 하는 공동체적인 관념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작가 이청준식으로 말하자면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대는 전짓불빛의 공포가 강해지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원사회이니만큼 당신의 목소리를 내보라는 시대적 요구가 강해지는 것 같았지만, 소문의 벽에 둘러싸여서 자신이 어느 쪽인지 밝히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또다른 상황도 함께 도달했다.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깨닫는 것과 동시에 많은 사안에서 여론의 향방이 극단적인 대결로 치달아서 다양한 목소리의 설 자리는 좁아지는 그런 모순적 상황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그러다보니 토론은 없이 표결만 남은 사회로서 동조자를 끌어들여서 다수를 확보하는 것만이 중요한 사회로 가고 있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김영란 작가님의 책 『판결 너머 자유』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상반되지만 합당한 신념체계들이 건강하게 공존하는 사회.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전짓불빛의 공포’ 없이 자신의 신념을 밝히고, 더불어 타인의 신념을 듣는 사회. 그리하여 다양한 목소리가 곳곳에 반영되는 사회. 김영란 작가님은 합당한 다원주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개념을 살피며 이것이, 편을 가르고, 토론이 사라진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치료해주는 명약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판결 너머 자유』를 쓰신 김영란 작가님을 모시고, 합당한 다원주의 사회로 가는 길 위에서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오은: 작가님은 여행을 갈 때도 가장 신중하게 결정하는 것이 가져갈 책을 고르는 일이라고 해요. 그럴 정도로 책이 일상에 아주 깊숙이 박혀 있는 것 같은데요. 작가님께 책이 어떤 존재인지 궁금합니다.
김영란: 흔히 영혼의 양식이라고 하잖아요. 제게도 그래요. 여행을 가면 그곳을 즐겨야 하는데요. 물론 즐기기도 하지만 밤이 되면 시차 적응이 안 되기도 하니까요. 그럴 때 책이 없으면 거의 공황 상태가 돼요. 때문에 만약 여행 기간이 닷새라면 닷새 동안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을 고민하는 일이 우선이에요. 요즘은 휴대전화로도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저는 그래도 여전히 종이책을 고릅니다. 평소에 꼭 읽어야 되는데 못 읽었던 책 중 닷새 분량이 되는 책, 그러니까 조금 어려운 책을 들고 가는 편이죠. 집중이 필요해서 못 읽고 있던 책을 들고 가는 편입니다.
오은: 오늘 저희가 이야기 나눌 『판결 너머 자유』는 5일짜리 여행용 책으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영란: 적어도 5일은 걸릴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웃음)
오은: 김영란 작가님 소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56년 부산 출생.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재학 중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1981년부터 판사로 일했다. 2004년 우리나라 최초로 여성 대법관이 되었고, 6년간 대법관으로 재직하면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배려하고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노력하여 '소수자의 대법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우리 사회의 정의 확립에 크게 기여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입법에 힘썼다.
이후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 학원 석좌교수로 학생들과 만났고,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아주대학교 법학 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일하고 있다. 청조근정훈장, 한국여성지도자상 등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김영란의 책 읽기의 쓸모』, 『판결과 정의』, 『김영란의 헌법 이야기』, 『시절의 독서』 등이 있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 대법관이나 소수자들의 대법관 같은 다양한 수식으로 불리시는데요. 이런 수식이 어느 때는 좀 부담스럽기도 할 것 같아요. 어떤가요?
김영란: 너무 부담스럽죠.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도 혹시 누가 나를 알아보실까 싶을 때도 있어요. 저는 졸기도 하고, 지하철 정류장도 놓치고 그러는데 말이에요.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는 거죠.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하고, 조심하려고 애를 쓰고는 있어요. 다 성공하지는 못하지만요.
오은: 『판결 너머 자유』가 어떤 책인지 작가님께서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이 책 어떤 책이죠?
김영란: 제가 10년 동안 최신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로스쿨 학생들에게 강의를 해왔어요. 이렇게 하니까 최근 나온 전원합의체 판결 중 어떤 중요한 것이 나왔는지, 대법관 님들의 방향성은 어떤지, 그 중 어떤 대법관 님들이 어떤 의견을 가지는지 등 대체적인 흐름을 알게 됐고요. 그것들을 소개하고 싶은 생각이 생겼어요. 그냥 막연히 소개하는 것보다 요즘 우리 사회에 필요한 시각을 가지고 묶어서 소개하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판결과 정의』라는 책에서는 가부장제라든가 과거사 문제 등 세 가지 정도의 쟁점을 가지고 소개를 했었죠.
이번에 나온 『판결 너머 자유』는 존 롤스라는 미국 사회 철학자의 『정치적 자유주의』라는 책을 가지고 전원합의체 판결을 묶어서 소개해 보자 하는 생각에서 쓰게 됐습니다.
오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톺아 보면서 어떻게 법이 변화하고 있는지, 법의 적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리고 한국 사회의 변화가 판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등 다양한 관점을 볼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톺아 보면서 판결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바라보는 일이 일반 독자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이라고 믿으셨는지도 궁금했어요.
김영란: 어떤 큰 판결이 나도 보통은 신문 기사 내용 정도밖에 모르잖아요. 대법원에서 토론도 하고, 전문가들 불러서 변론하면서 어마어마한 판결이 선고되었는데도 결론만 알고요. 왜 그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또 몇 대 몇으로 결론이 나왔는지 알지 못해요. 실은 그것이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거든요. 아슬아슬하게 통과됐느냐 아니면 압도적인 차이로 통과됐느냐, 또 어떤 다양한 의견들이 있느냐 하는 것들이 우리 사회를 보여주는데요. 아무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아요. 심지어 로스쿨 학생들도 다수 의견만 외우기도 하고요.
저는 반대 의견이 우리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반대 의견이 전통적인 우리 생각을 반영했는데 소수로 몰려 있다면,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이어오던 생각과 달리 다수 의견의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고요. 반대로 반대 의견이 굉장히 발전된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데 다수 의견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가 여전히 그 문제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어요. 그런 중요한 것을 아무도 제대로 읽어주지 않는다는 데 아쉬움이 있었죠. 그래서 그런 걸 소개하고, 조금이라도 해설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해설하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입니다.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주세요.
김영란: 올리비아 랭이라는 여성 작가가 쓴 『외로운 도시』라는 책이 있는데요. 최근에 그 책을 읽었어요. 책을 덮는데 가슴이 멍하고 찡하더라고요. 이 책에는 우리가 아는 사람도 등장지만 미처 알지 못하는 굉장히 많은 미국의 무명의 작가들이 등장해요. 작가가 그들을 정말 섬세하게 들여다보고 찾아가고 소개하는 책이라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올리비아 랭의 책이 너무 무거울 수 있는데요. 한 권을 더 소개하자면 아일랜드의 데리언 니 그리파라는 시인의 책 『목구멍 속의 유령』이라는 책이에요. 18세기에 살았던 아일랜드의 여성 작가가 창작한 구전 시가 있어요. 그 구전된 시를 보면서 시인이 그 삶을 쫓아가거든요. 일일이 현장에도 가보고, 상상도 해보고요. 거기다 시인은 아이를 넷을 키우는데요. 모유를 먹이면서, 모유를 모아서 기증도 하는 친환경적인 삶을 살아요. 여러모로 너무나 아름다운 책이더라고요. 그래서 두 권을 소개합니다. 두 권 해도 되는 거죠?(웃음)
오은: 그럼요, 2권 추천해 주셨어요. 올리비아 랭의 『외로운 도시』, 데리언 니 그리파의 『목구멍 속의 유령』. 그리고 여러분, 한 권 더, 김영란의 『판결 너머 자유』까지 세 권을 여행 가실 때 챙겨 가시면 되겠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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