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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하게 빚은 ‘super 이끌림’ - 아일릿 ‘magnetic’
아일릿 ‘magnetic’
대체로 따끈한 봄 햇살에 한나절은 데운 것 같은 노곤한 비트에 랩인지 싱잉인지 잠꼬대인지 구분하기 힘든 노래가 흘러나오는 음악 위로 케이팝 여자아이들의 익숙한 또랑또랑함이 굵은 선을 긋는다. (2024.04.05)
처음 들은 순간 느꼈다. 이건 어떻게든 되겠다. 이 바닥에서 먹고 사는 사람치고 촉 없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니만큼 믿을만한 정보는 못되지만,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JTBC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알유넥스트’로 결성된 아일릿의 데뷔 앨범 [SUPER REAL ME], 그 가운데에서도 타이틀곡 ‘Magnetic’은 ‘지금’의 히트 공식을 촘촘히 쌓아 올린 ‘요즘 케이팝 모범생’ 같은 곡이었다.
노래의 시작, 별 가루나 벚꽃잎이 흩날리는 것처럼 보드랍고 낭만적인 신시사이저 음이 공간을 가른다. 반짝임에 잠시 정신이 팔린 사이, 멤버 원희의 느슨한 내레이션이 깔린다. ‘Baby I’m just trying to play it cool / But I just can’t hide that I want you’. 나도 모르게 토끼 굴에 빠져버린 앨리스처럼 누군가에게 한 번쯤 가슴 철렁해 본 사람이라면 혹할만한 고백과 함께 노래는 이제 막 꿈에서 깬 듯 느릿하게 기지개를 켠다. 아무튼 좀처럼 흥분하는 법이 없는 이 묘한 긴장 상태는 노래가 끝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이어진다. 식지도, 끓어오르지도 않는다. 기가 막히게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는 찻물처럼 유구하게 미지근하다. 심지어 누가 봐도 ‘여기부터가 후렴 시작입니다’ 선명한 신호를 주는 원희의 ‘This time I want’ 파트가 있음에도 그렇다. 당장이라도 뭔가 시작될 것처럼 목소리를 제외한 모든 사운드를 제거했던 노래는 다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여전한 비트를 데리고 와 ‘Super 이끌림’을 선포한다.
‘Magnetic’의 공식 곡 설명에도 등장하는 플럭앤비(Pluggnb)는 이렇듯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분위기에 최적화된 요즘 유행 장르다. 대체로 따끈한 봄 햇살에 한나절은 데운 것 같은 노곤한 비트에 랩인지 싱잉인지 잠꼬대인지 구분하기 힘든 노래가 흘러나오는 음악 위로 케이팝 여자아이들의 익숙한 또랑또랑함이 굵은 선을 긋는다. 곡은 물론 팀의 주요 정서를 이끄는 펀치 라인 ‘super 이끌림’은 물론 ‘여잔 배짱이지’, ‘정반대 같아 our type 넌 J 난 완전 P / S와 N극이지만 그래서 끌리지’ 같은 노랫말이 고유의 리듬을 만든다. 한국어와 영어를 멜로디와 비트에 맞춰 마음껏 섞는 건 물론 얼핏 들어서는 무슨 얘기인지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알쏭달쏭함까지 오랫동안 맥을 이어온 케이팝의 전통 표현 양식 그대로다.
벼락처럼 찾아온 첫사랑과 지금 새 음악을 찾아 듣는 이들이 주목하는 장르의 만남.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보이지만 아일릿과 ‘Magnetic’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사실 플럭앤비는 무엇보다 틱톡으로 대표되는 숏폼 플랫폼에서 큰 지지를 받는 장르다. 음악을 ‘가지고 노는’ 것이 일상화된 이들이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며 수면 위로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한 셈이다. 실제로 노래 ‘Magnetic’은 방시혁 의장을 비롯해 Slow Rabbit, VINCENZO 같은 케이팝 베테랑 뿐만 아닌 다양한 국적의 10대 창작자들이 함께 만든 곡으로 화제를 모았다.
사운드와 비주얼 모든 면에 관심을 기울이며 숏폼으로 가지고 놀기 용이한 것에서 나아가 제발 가지고 놀아달라고 애원하는 장르 케이팝에서 입소문 타기 가장 좋은 건 쉬워 보이면서도 막상 따라 해 보면 쉽지만은 않은 안무 챌린지다. 특히 더 많은 사람이 따라 하게 하기 위해 전신보다는 상반신을 활용한 도전 의식을 자극하는 동작을 만드는 게 포인트인데, ‘Magnetic’ 후렴구에 빠른 비트에 맞춰 양손을 사용하는 안무가 대표적이다. 노래는 도무지 몇 번을 봐도 어떻게 손이 움직이는지 모르겠다는 예비 탈락자를 위한 초보용 포토타임도 준비한다. 손가락 폭풍이 지나가고 ‘BAE’와 ‘Dash’가 반복될 즈음 들리는 ‘찰칵’ 타이밍에 포즈를 취해 보자.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Tell Me’의 ‘어머나’ 포즈라도 해라. 우리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은가.
사실 이렇게까지 뜯어 보지 않아도 ‘Magnetic’은 충분히 매력적인 곡이다. 비트에서 보컬 어레인징까지 어디 하나 거슬리는 곳 없이 물 흐르듯 흘러가고, 포근하고, 사랑스럽다. 케이팝을 좋아한다면 가슴 뛰지 않을 수 없는, 이제 막 데뷔한 아이돌의 설렘도 몇 스푼쯤 들어가 있다. 언제 어디서 누가 들어도 ‘느낌 좋은’ 곡이라는 이야기다. 덕분인지 노래는 발매 열흘 만에 음악 스트리밍 차트 정상을 호시탐탐 노리는 중이고, 그룹은 데뷔 8일 만에 음악 방송 1위를 차지했다. 그냥 들어도 좋은 노래와 그냥 봐도 좋은 무대를 보며 정교하게 세공된 케이팝의 요즘 성공 공식을 굳이 뜯어 보는 것도 지병이라면 지병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게 바로 케이팝 하는 재미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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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