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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다솔 “좋으나 싫으나 미우나 고우나 글을 쓰겠구나”

산문집 『적당한 실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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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보면 무언가를 글에 정확히 담는 일은 내 인생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빠르게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걸 담으려 했지만 다른 것이 된 것도 되게 좋은 일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거든요. (2024.04.01)


세 번째 책이다. 그동안 출간한 세 권의 책에 대해 “내 자식들이지만 얼굴이 다 다르게 생겼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양다솔 작가는 『적당한 실례』를 “작가 정체성을 갖게 된 이후로 쓴 글”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떻게든 농담으로 만들고 싶은 슬픈 사건을, 관계에서 빚어진 반짝 빛나는 삶의 순간을 최선을 다해 기록한다. 자신의 쓰기가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전제”하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는다. 나를 잘 돌보는 사람, 열심히 해보는 사람 양다솔은 자신의 쓰기 역시 잘 사는 일의 과정이라고 여기는 사람. 『적당한 실례』는 그런 그가 빼곡히 담아낸 아름답고 눈물 나는 삶의 모양이기도 할 것이다.

첫 번째 책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은 10년 동안 쓴 책이라 아는 것 같지만 모르는 장면도 많은, 이제는 너무 멀어진, 그러면서도 자랑스러운 느낌이라면요. 『아무튼, 친구』는 쓸 때 시간과 조건을 정해 놓고 실험하듯 써본 것이었기 때문에 엄청 어려워하고, 헤매고, 괴로워했어요. 너무 잘 해내고 싶은 주제여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적당한 실례』를 쓸 때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다는 건 목수가 되어서 가구를 주문 제작해 주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주제에 맞춰 기한까지 잘 납품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이 책은 제가 업자가 되어가는 과정이 담겼다고 할 수 있어요. 원래는 긴 산문을 많이 쓰고, 주제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는 글을 썼다면, 『적당한 실례』에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한 줄로 하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한 글이 많아요.”



눈물을 흘리는 마음

<채널예스>에 동명의 칼럼을 연재한 적이 있죠. 그때도 정말 즐겁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요.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출연했을 때 ‘글쓰기 소상공인’이라는, 좀 특이한 소개를 했었는데요. 그 이후 담당자였던 엄지혜 작가님께서 글쓰기 소상공인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두루 써줬으면 좋겠다고 칼럼 제안을 주셨어요. 그때 그 내용을 적당히 담으면서도 다양한 에피소드를 장벽 없이 다룰 수 있는 컨셉을 생각하다가 이 제목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제목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으셨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주변에 있는 글 쓰는 친구들끼리 자기 책이나 글의 제목이 잘 안 나오면 서로에게 묻곤 하거든요. 이슬아 작가님의 책 『깨끗한 존경』의 제목을 제가 지어줬어요. 제목을 고민하길래 제가 책을 엄청 열심히 읽고 공책 하나 가득 제목 후보를 적어서 보냈던 기억이 나요. 그 제목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웃음)

그래서 그 친구가 저한테 제목 빚을 하나 지고 있었던 차였죠. 마침 칼럼의 코너명을 지었어야 했고요. 나를 자유롭게 하면서도 나한테 힘을 주는 코너명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주제를 담기보다는 태도의 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제가 어느 날 어떤 분께 되게 귀여운 실례를 하게 되는데요. 이슬아 작가님이 다정한 타박을 하듯이 “너는 왜 아직도 사람들한테 서슴없이 실례를 하고 다니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나는 그 정도 적당한 실례는 항상 하고 싶다”고 말을 했어요. 그 말을 들은 이슬아 작가님이 방금 네가 말이 코너명으로 너무 좋은 것 같다고 얘기를 한 거죠. 그렇게 그 친구가 제목 빚을 갚게 되는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이 제목을 너무 좋아해서 책 제목으로까지 정하게 되었어요.



저자 소개글을 보면 ‘웃기와 웃기기를 두루 좋아한다’고 되어 있는데요.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이 잘 웃는 분은 물론이고, 잘 우는 분이기도 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작가는 어쨌든 어떤 이야기를 드러내기로 선택하는 것이잖아요. 본의 아니게 우는 이야기를 제가 많이 선택하는 것 같아요. 선택이 많이 되니까 많이 일어나는 일처럼 보이는 재미있는 현상이 생긴 건데요. 사실 제게 우는 행위는 굉장히 비일상적인 일이고, 독특한 현상이에요. 때문에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웃음이라는 건 의도적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고, 좋아하고, 잘 안다고 생각하는 쪽이라면 울음은 제가 관장할 수 없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쪽이거든요. 저는 소위 사람들이 우는 장면에서는 전혀 울지 않고요. 슬픈 영화를 본다거나 장례식, 결혼식 속의 어떤 장면에서도 거의 안 울어요. 아무리 슬프고 감동적인 글을 읽어도 그렇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울 때 놀라워요. 그러니까 그걸 탐구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책에 담긴 대부분의 울었던 순간들은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탐구해 본 장면인 거군요. 

맞아요, 내가 울 것이라는 예상도 안 되고요. 울 때마다 슬픔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려운 되게 오묘한 감정 안에서 눈물이 나온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서요. 그럴 때마다 기이한 현상을 목격한 사람처럼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식으로 접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울 때 그걸 엄청 주목하는 거죠.

최근에도 그런 일이 있었나요? 

얼마 전에도 있었어요. 시골에서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보조교사로 3-4개월 일을 했는데요. 한 번은 전학 가는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앞자리에 나와 마이크 잡고 얘기하는 시간이 마련되었죠. 저는 학생들이 앞에 나가서 얘기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것 같았어요. 그냥 친구가 갈 때 곁에 살짝 가서 고마웠어, 정도로 얘기하는 게 더 편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한 명씩 나가서 “보고 싶을 거야” “네 이름을 잊지 않을게” “우리를 기억해 줘” “우리랑 놀았던 거 잊어버리지 마” 이런 말을 다들 하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아, 우리가 헤어질 때 저런 말 말고는 해야 될 말이 없다, 저거만 말하면 된다, 아이들이 다 알고 있다, 이런 생각에 눈물이 펑펑 났어요. 아무도 안 우는데 말이에요. 그곳에서 저는 수신자도 아니고, 발신자도 아니잖아요. 그냥 그 현장에 있는 사람인데 우는 걸 스스로 보면서 나의 눈물이 나오는 방식이 독특하다, 그리고 뭔가 있다,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살려고 한 농담’이라는 글이 생각나요. 울고 싶은 일을 어떻게든 농담으로 만들어보려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잖아요. 

눈물이 나는, 화가 나는 일을 웃기게 만드는 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요. 끝도 없이 고치니까 약간 가능하기는 하더라고요. 화를 내는 것에 집중하지 않으니까 그 사건이 점점 오브젝트가 되면서 내가 이 사건으로 상처받았다는 것, 화가 났다는 것을 사람들이 몰라도 된다는 마음이 되었어요. 그게 너무나 재미있었고요. 어떤 얘기를 아주 많이 고치면 이 이야기로부터 이런 감정을 가지게 되는구나 깨달았어요. 동시에 어떤 것이 나와 유착된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재미있게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그 단순한 목적이 많은 것들을 씻겨 나가게 해주는구나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 글에서 이런 문장을 쓰셨어요. “슬프게 말해져야 하는 슬픔이 있다. 오롯이 그래야만 하는 것들도 있다. 그렇지만 어떤 것들은 슬픔으로 심어졌어도, 조금 다른 것으로 틔워냈으면 했다.”(224쪽)고요. 

그 글은 한 중년남성이 노상방뇨 하는 모습을 보고 쓴 이야기였잖아요. 저한테는 왜 아직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진짜 이해가 안 되는 사건이에요. 글을 보시면 제가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처를 다 하거든요. 경찰에 신고까지 하고요. 그런데도 뭔가 제대로 한 것 같지 않은 거죠. 누구라도 불쾌하고, 누가 봐도 문제인데 거기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않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했어요. 문제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사람들이 무관심하다면 그 내용 자체가 가지는 힘이 없다는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에 제가 무대 만드는 취미 활동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곳이야말로 사적이지도 공적이지도 않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얘기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냥 화 내는 것 말고 어떻게 그 이야기를 바꾸어야 힘을 가질까 고민했어요. 저는 사람들은 중요한 얘기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무조건 재미있는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진짜 중요한 이야기라면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서 웃기는 것이 돼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일을 재미있게 만드는 게 유의미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슬프게 말해져야 하는 슬픔이 분명히 있죠. 특히 한국에 정말 많이 일어나고 있는 비극들, 이태원 참사라든지 세월호 참사 같은 일들은 슬픈 그대로 말해져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혼자라는 화두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이 자신을 아주 잘 돌보는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가령 뇌척수염으로 입원했다가 퇴원을 한 뒤에 나를 위해서 정성껏 음식을 해먹는 장면이 있죠.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부엌에 있었다”(89쪽)고 했잖아요. 

저는 제가 저를 잘 챙기는 사람이라는 걸 몰랐어요.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꼼꼼하게 자기를 챙기고 정성스럽게 사느냐는 얘기를 할 때마다 다들 이렇게 하지 않나, 생각했거든요. 이렇게 된 것은 아마 세상의 단위가 혼자인 게 기본값인 사람이기 때문일 거예요. 저는 기억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혼자였거든요. 저를 챙겨주는 사람이 있거나 제가 다가가기 전에 누군가 옆에 와준 기억이 없어요. 언제나 인생의 단위가 혼자였고, 그게 너무 기본값이니까 그게 당연한 줄 알았던 거죠.

혼자서 뭇국을 끓여 먹었던 때도 마찬가지예요. 퇴원을 하고 혼자 집에 있는데요. 너무 기력이 없는데 아무도 저를 챙겨주지 않으니까 그냥 했던 거예요. 예전 같았으면 약간 슬프고 사무쳤을 것 같은데요. 그때는 좀 달랐어요. 슬픔은 20% 정도고 그저 내 인생 정말 일관적이다, 생각하면서 그냥 내가 일어나서 해야겠다 싶었어요. 나아가서는 이런 때 그래도 전화 걸어서 뭇국 끓이는 방법을 물어볼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하게 되더라고요.

혼자라는 상황에 슬퍼하는 단계를 지났다고 느끼는 건가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혼자라는 화두에 대해 생각해왔어요. 저는 언제나 먼저 다가가야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그에 대한 오랜 슬픈 감정이 있었죠. 한편으로는 그래서 저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많았던 것 같고요. 제가 원하는 것을 누군가가 알아서 해 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냥 나 말고는 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알아서 너무 잘하니까 별로 걱정이 안 된다는 말도 듣긴 하고요. 그러니까 저는 비빌 언덕도 없고, 도와주고 싶은 스타일의 사람도 아니라 그런 여러 우연으로 항상 모든 단위가 혼자인 거예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어떻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어요. 내 팀원이 나밖에 없다고요.

근데 그 팀원의 생활 기술이 엄청 좋아요.(웃음) 

다행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것도 다 노력한 거예요. 예를 들면 요리도 부모님이 가르쳐 주시거나 어릴 때부터 많이 접한 게 아니에요. 혼자 살면서, 내가 요리를 제대로 안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려면 이걸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20대고, 돈도 안 벌 때인데 엄청 비싼 냄비를 샀어요. 큰 돈을 썼는데 요리를 안 하면 이상하잖아요. 이런 식으로 사건을 조장했죠.

평소에도 저는 비상용 물품들을 잘 챙겨 다니거든요. 누가 아프다고 하면 바로 약을 건네고요. 어디를 갈 때도 혹시나 잠을 못 잘까, 배가 아플까, 하면서 다 대비하는 스타일이에요. 그것도 제가 아픈 것에 아무도 관심이 없으니까 내가 챙겨야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차 마시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모습도 비슷한 느낌이었어요. 그 시간이 작가님에게는 나를 지켜보는 시간, 나를 다듬는 시간 같더라고요. 

‘생활 다도인’이라는 단어를 찾고 엄청 안심했어요. 자물쇠에 딱 맞는 열쇠를 찾은 느낌이었는데요. 왜냐하면 차를 좋아하는 사람, 차를 자주 마시는 사람, 애호가 같은 말이 저에게는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에요. 제가 차를 마시는 모습을 오래 지켜본 사람들은 종교를 넘어서, 거의 삶 자체에 가깝다고 말해요. 저는 밥보다 차를 마셔야 하고요. 다른 데 소유욕이나 애착이 별로 없는데 누가 제 차를 마시는 걸 잘 못 봐요.(웃음) 저한테는 생명수에 가까운 느낌이죠.

차가 저한테 너무 중요한 게 되어버려서요. 만약 차가 나에게 없었으면 삶이 어떻게 흘러갔을지 잘 모르겠어요. 심지어 사주에도 제가 차를 마시는 게 살기 위해서 하는 행위라고 나오더라고요. 그것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잘 익은 차 같은 사람이 되려면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할지 고민 중이다”(28쪽)라고도 쓰셨어요. 

차를 좋아하다 보니까 차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사람에게 이름을 짓듯 보이차도 태어난 때의 이름을 새로 짓거든요. 때문에 엄청 종류가 많고요. 같은 차는 두 번 안 나와요. 그러니까 이름이 계속 새로 태어나는 차라서 하나하나가 개체 같아요. 또 재미있는 게 차의 수명을 100년 정도로 보거든요. 오래될수록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고요. 20대-30대부터 맛이 올라오기 시작해서 40대-50대에서 60대까지가 전성기라고 하고 70대-80대부터는 맛이 떨어진다고 얘기를 하죠. 그리고 100년 된 차는 폐기해요. 이런 점이 인생과 닮았다고 느껴요.

또 차 안에 미생물이 살아서 물건처럼 아무 데나 두면 안 돼요. 게다가 같이 모여 있어야 하고, 한 조각만 떼어내서 오래 방치하면 걔만 맛이 이상해져요. 마치 인간 같죠. 고독과 외로움은 차에게도 나쁜 거예요. 그런 것을 보면서 삶의 순리와 이치라는 게 묘하게 닮았다고 느껴요. 심지어 같은 사람이 만든 같은 이름의 차여도 어떻게 관리를 했는지에 따라 되게 큰 차이를 갖거든요. 똑같은 시간을 보내도 어떤 차는 정말 멀리까지 가고, 어떤 차는 10년 전이랑 똑같거나 혹은 더 나빠져 있어요. 좋고 나쁨에 대해서 이분법적으로 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요. 엄연히 그런 것들이 있다는 생각도 하면서요. 시간을 견뎌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좋은 차 같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쓰는 사람 양다솔

작가님이 나를 잘 돌보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한편으로는 해보는 사람이기도 해요. 어머니와 모자를 판매했던 일도 그렇고, 판소리와 섹시 댄스, 복싱을 배우기도 하잖아요. 작가님께 해보는 마음은 어떤 것인가도 궁금했어요. 

저는 되게 비관적이고요. 일단은 안 될 거라고 생각해요. 긍정적인 친구들이 “다솔아 너는 이런 거 잘하니까 해봐, 잘할 거야”라고 하면 저는 “너처럼 살았으면 나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웃음) 하죠. 그런데요. 비관적인 것 치고는 용기를 자주 낸다는 생각이 들어요. 긍정적인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시도를 하겠죠. 근데 저는 그런 베이스를 가지지 않았는데도 해보거든요. 그게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저도 해요. 그게 저의 재미있는 점이라는 생각이 들죠. 비관적인 것 치고 용기를 자주 내는 게 저도 재미있고, 한편으로는 다행이에요.

사실 제가 천성이 밝은 사람이라는 걸 살면서 계속 느끼거든요. 이렇게 비관적인 제가 천성까지 어두웠으면 어땠을까, 싶을 정도로 바탕이 밝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러니까 집은 되게 밝은데 갖고 있는 가구가 어두운 느낌이랄까요. 집안이 어두운 걸로 차 있기는 기본적으로 밝으니까 번갈아서 에너지를 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새로운 것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지만 간혹 이거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면 그게 너무 귀하고요. 하고 싶으면 꼭 하게 해줘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쓰는 마음에 대해서도 질문이 생기는데요. “계속 쓰려는 마음은 실패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전제한다.”(33쪽)는 말도 하셨거든요. 그럼에도 계속 쓰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글을 쓰다 보면 무언가를 글에 정확히 담는 일은 내 인생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빠르게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걸 담으려 했지만 다른 것이 된 것도 되게 좋은 일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거든요. 나도 아니고, 얘도 아닌, 다른 게 생겨난다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절망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안심이자 희망이기도 해요. 저는 이야기 중에 제일 재미있는 게 살아 있는 것들의 얘기라고 생각해요. 그건 결국 관계에 대한 얘기일 수밖에 없고요.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사건들을 이야기로 만드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것들을 다 써놓고 보면 제대로 담겨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게 또 재미있어요.

사실 타인, 관계를 쓰다는 것에 대해 예민한 문제들이 많잖아요. 저는 그런 것을 맞닥뜨릴 때마다 더 잘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잘 쓸 수 있어서가 아니에요. 이거 아니면 쓸게 없다는 생각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성공하려는 생각을 안 하는 것이 맞지, 그걸 제대로 못 할 것 같으니까 하지 말아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지 말자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잘 써보고 싶은데 망칠 게 분명해서 쓰지 못한 이야기가 지금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걸 안 쓰면 도대체 뭘 쓸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글 쓰는 게 힘든 일이잖아요. 그렇지만 내가 기억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딘가에 최대한 잘 남겨두고 싶은 마음도 있는 것 같아요. 

‘태양에 대한 통화 기록’이라는 짧은 글이 있는데요. 저는 그런 순간을 썼을 때 기분이 너무 좋아요. 그건 누가 봐도 그리 대단하지 않은 이야기예요. 평생 대화했던 모녀가 전화 한 통 나눈 이야기니까요. 근데 어떤 우연한, 어느 날 지나간 바람처럼 또 한 번 지나간 순간이 저한테는 여러 조건으로 인해 너무 결정적일 수가 있잖아요. 이게 너무나 묘하게 아름다운데 말로는 다 하기가 어렵거든요. 쓰지 않았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순간을 글로 썼기 때문에 그게 잠깐이라도 띄워 올려지고, 그 조각이 남게 되는 거죠.

내가 삶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주목하고 싶은 순간을 그런 식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 제게는 중요해요. 저는 그런 순간들이 기억났으면 좋겠고요. 그런 순간들을 삶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쓰지 않으면 나조차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서요. 그런 순간을 잘 써서 사람들이 보기에도 ‘이런 게 삶의 순간이구나’ 느낄 수 있다면 정말 좋겠어요.

모임’이라는 글도 정말 좋았어요. 멋진 단편 소설을 읽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삶의 아름다운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느낌이었어요. 

‘who am I?’라는 게임이 있어요. 서로에게 아무 이름이나 붙여주고요. 그 사람이 자신에게 붙여진 이름을 맞출 때까지 힌트를 주는 게임이에요. 어느 날 친구들과 그 게임을 짧게 했는데요. 그 게임을 해보면 웃긴 게, 나랑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런 상황도 너무 웃기고, 그때의 모임도 정말 웃겼어요. 마침 글을 쓰는 사람들이 모였던 날이라서 그냥 그 자리에서 다 같이 글을 썼던 거예요. 그날이 너무 웃겨서 썼던 이야기죠. 뭐랄까, 장난치는 것처럼 재미있게 쓴 글이었는데요. 읽는 사람 생각은 하지 않고 쓸 때 내가 정말 재밌었으니까 괜찮다고 말하고 싶은 글이어서요. 그 글이 좋았다고 얘기해 주신 게 너무 기쁘네요.

세 번째 책을 내면서 작가 정체성에도 변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확실히 전과는 다른 것 같아요. 마음이 차분한 느낌도 있고요. 예전에는 제가 작가라는 걸 스스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주변에 얘기도 잘 안 했는데요. 이번에는 책 구매 링크도 주변에 쫙 돌리고(웃음) 사라고 말했어요. 대개 사람들이 뭔가를 시도할 때 한두 번 해보고 말았다고 많이 얘기하잖아요. 세 번까지는 안 해보고요. 근데 세 번째 책을 내고 나니까 이제는 좋으나 싫으나 미우나 고우나 글을 쓰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뻔뻔해지겠구나, 싶고요. 앞으로는 이상한 걸 내면서도 제가 원래 이런 거 하는 사람인데 어떡합니까, 하는 느낌으로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웃음)



*양다솔

글쓰기 소상공인, 스탠드업 코미디언. 웃기와 웃기기를 두루 좋아한다. 충북과 서울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수필집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출간하며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해 《아무튼, 친구》 《절멸》(공저)을 썼다. 종종 메일링 프로젝트 ‘격일간 다솔’을 발행하고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를 만든다. 글쓰기 공동체 ’까불이 글방‘의 글방지기이며, 팟캐스트 <조용한 생활>에서 ’시티드 코디미쇼‘ [농담하는 입장]을 진행하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통 갈피를 못 잡는 사람. 마치 눈떠보니 11시인 기분이다. 뭘 하기엔 늦었고 안 하기에도 아쉽다. 갑자기 절에 행자로 출가하고 유럽으로 무전여행을 떠나며 모험가처럼 살다가 어느 날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어쨌든 큰소리치는 이야기는 말은 기뻐야 힘이 나고 글은 슬퍼야 깊이가 있다는 것이다. 만날 때마다 우울한 소리를 하는 사람은 곁에 두기 힘들고, 쓰는 글마다 행복하다고 하는 사람은 밥맛이 없다. 10년간 쓴 수필을 모아 『간지럼 태우기』를 출간하며 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가끔씩 메일링 프로젝트 ‘격일간 다솔’을 발행하고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를 만든다. 글쓰기 공동체 ‘까불이 글방’의 글방지기이다.

사흘 밤낮을 새우더라도 친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열혈 우정인. 제일 좋아하는 공자님 말씀은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다. 친구들의 모임이 하필 글쓰기 모임이어서 10년 가까이 글을 썼고 늘 친구에게 얘기하듯이 글을 쓴다. 더 많은 이들과 친구이고자 비건 지향을 실천한다.


적당한 실례
적당한 실례
양다솔 저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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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읽고 씁니다.

적당한 실례

<양다솔> 저15,3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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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권 성적의 첫째와 지적장애를 가진 느린 학습자 둘째까지! 연년생 두 아들을 키우는 워킹맘 이은경쌤의 육아에 대한 고민과 어려움을 솔직하고 리얼하게 담았다. 엄마와 아이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고 있다


문화지원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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