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부 15년 차 공무원 법의인류학자의 삶
『발굴하는 직업』 진주현 작가 서면 인터뷰
처음에는 뼈와 관련된 이야기로 에세이를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뼈를 매개로 한 정체성과 직업, 가족에 관한 글이 되었어요. (2024.03.28)
『뼈가 들려준 이야기』를 통해 “뼈 하나로 이처럼 훌륭하게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엮어낼 수 있다니 놀랍다”(최재천 생태학자)는 평을 들어온 법의인류학자 진주현의 신작 산문 『발굴하는 직업』이 출간되었다. 마음산책 직업 이야기 열 번째 책이기도 한 『발굴하는 직업』은 저자가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기관에서 근무하며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제2차 세계대전 때 신원 미상이 된 유해를 발굴하고 분석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미국 국방부에서 일하는 법의인류학자의 삶이 담긴 『발굴하는 직업』을 출간하셨는데요. 자기소개와 함께 어떤 일을 하시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는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기관(DPAA)에서 과거 전쟁에서 실종된 군인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감식하여 신원확인을 하는 법의인류학자입니다. 직장은 미국 하와이 진주만에 있어요. 취직해서 첫 10년은 한국전 프로젝트 팀장으로 한국전 관련 유해만 다루다가 몇 년 전에 매니저로 승진해서 지금은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 베트남전을 모두 총괄하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1978년에 서울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의 상당 부분을 싱가포르와 독일에서 보냈어요. 한국에 돌아와 중고등학교와 대학까지 졸업한 후 미국 유학을 떠났습니다. 그게 벌써 20년 전의 일이네요. 박사학위를 받을 즈음 지금 삶의 터전인 하와이로 이사를 왔어요. 남편과 두 딸,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멀리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아요.
뼈를 감식하는 일이 정확히 어떤 것일지 궁금한데요. 유해를 분석해 신원확인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유해가 랩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뼈를 물로 세척하고 말리는 것입니다. 땅속에 오래 묻혀 있던 뼈들이라 흙이 많이 묻어 있어요. 토양의 습도와 온도 등에 따라 보존 상태가 천차만별입니다. 식물 뿌리가 뼈 사이사이로 들어가서 자란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뼈가 손상되지 않도록 잘 제거해줍니다. 건조한 곳에 묻혀서 살점이나 머리카락이 부패하지 않고 미라처럼 말라버린 경우도 있고요. 세척 후 분석 준비가 끝나면 어느 부위의 뼈가 들어왔는지 하나씩 데이터베이스에 입력을 합니다. 그다음에 DNA 샘플을 어느 부위에서 채취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유해가 한 사람의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여러 명의 유해가 섞인 경우도 많기 때문에 각각 개체를 분류하기 위해 샘플을 떼는 데도 전략이 필요하지요. DNA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인류학 감식을 진행합니다. 뼈의 길이를 재서 신장을 추정하고 뼈의 모양과 상태를 분석해 성별과 사망 당시 나이를 추정할 수 있어요. 생전에 뼈가 부러졌던 흔적 같은 특이 사항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분석합니다. 치과 전문의가 실종 군인의 치아 기록과 유해의 치아를 비교하고, 영상 판독 전문가가 실종 군인의 흉부 엑스레이와 유해를 비교 분석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뼈에 남아 있는 탄소, 질소, 산소 동위원소를 이용해 그 사람이 죽기 전에 몇 년 동안 주식은 무엇이었는지 어느 지역의 물을 마셨는지 같은 것을 알아내기도 하지요.
흔히 DNA 결과가 나오면 바로 신원이 확인될 거라고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저희처럼 70여 년 된 뼈를 분석할 때는 DNA 결과만으로는 신원을 밝힐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DNA 결과와 인류학적 감식을 비롯한 다른 모든 방법을 통한 감식의 결과가 일치하면 그제야 저희 기관의 군법의관이 최종 신원확인을 합니다.
유해를 가지러 북한에 다녀오신 적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이런 해외 출장 경험들이 궁금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부터 베트남전까지 세계 각지에서 실종된 미군이 여전히 8만 명이 넘습니다. 이 중 상당수는 깊은 바다에서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어 현실적으로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3만 명에 가까운 유해를 찾아 신원을 확인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해외 출장이 잦을 수밖에 없는데요 그게 이 직업의 매력이면서 힘든 점이기도 합니다. 아이가 없을 때는 해외 출장이 신날 때가 많았지만 중학생과 유치원생 아이가 있다 보니 엄마로서 자리를 비우는 게 쉽지 않습니다.
베트남에서 40일간 발굴할 때는 첫째가 세 살밖에 안 되었을 때라 여러모로 마음이 심란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도 엄마가 수십 년간 집에 돌아가지 못한 이의 유해를 찾는,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이해하는 것 같아요. 엄마가 출장 가서 없으면 힘든 점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 가족 모두가 유해를 찾는 일을 직간접적으로 하는 거라고 설명해줍니다. 키리바시공화국이나 북한처럼 쉽게 갈 수 없는 곳을 다니면서, 지금도 이렇게 살기 어려운 곳인데 70여 년 전에 이곳까지 와서 목숨을 잃고 유해마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싶어서 마음이 안 좋습니다. 다음 출장은 일본으로 잡혀 있고 머지않은 시기에 태평양 도서 국가도 방문할 예정입니다.
미국에서 군인들과 함께 일하다 보면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민간인으로 군인들과 일하는 건 나라를 불문하고 힘들 거예요. 반대로 군인의 입장에서 저같이 군대에 대해 잘 모르는 민간인과 일하는 것도 쉽지 않을 거고요. 미군과 처음 일할 때는 무엇보다 단어나 표현이 생소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육해공군의 계급이 다 다를뿐더러 약자가 굉장히 많고, 약자를 풀어줘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힘든 군대용어가 많았어요. 유해 감식하는 건 과학의 영역이기 때문에 군인과 함께 일할 게 없었지만, 군인이 주가 되어 발굴을 나갈 때는 유일한 민간인으로 함께 작업을 수행하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민간인 직원의 상당수가 전역한 군인이다 보니 그들은 생소함이 없는 것 같았지만, 저는 처음보다 많이 나아졌는데도 여전히 회의를 할 때마다 낯설 때가 있습니다. ‘발굴’을 ‘작전’이라고 한다거나 ‘응급 상황 대처법’을 ‘작전 중 위기관리 전략’이라고 하는 작은 차이부터 실제 발굴의 목표에 대한 차이까지 광범위한 생각의 차이가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군인 대부분이 덩치도 크고 말이 거칠 때도 많아서 그들을 지휘하려면 상당한 배짱이 필요합니다.
두 딸을 키우는 워킹 맘이시기도 한데요. 퇴근 후의 일상은 어떠신가요.
미국은 한국에 비해 퇴근 시간이 빠른 것 같아요. 오후 4시 정도에 아이들을 픽업해서 태권도나 발레 같은 과외활동을 하도록 데려다주고 기다렸다 데려오는 게 많은 미국 엄마와 비슷합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저는 저녁 준비를 해요.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삼시를 거의 다 만들어 먹습니다.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썰고 지지고 볶는 게 저에게는 휴식과 같이 즐거워요. 식구들 모두 든든히 먹고 나면 하루가 끝나요. 아이들이 숙제하고 잘 준비하는 동안 저는 동네 산책을 자주 나갑니다. 날이 좋을 때는 하늘에 별이 쏟아질 것처럼 많이 보여요. 집에 와서 씻고 책 읽다 보면 어느새 졸고 있지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식구들 도시락부터 싸다 보니 밤 9시만 되어도 졸음이 쏟아지곤 해서 일찍 잠자리에 드는 편입니다.
올해로 미국에서 지낸 지 20년이 되셨다고요. 그동안 언어적, 문화적 문제는 없으셨나요.
영어는 저의 영원한 족쇄 같아요. 미국에 와서 다른 건 몰라도 영어 공부만큼은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모국어처럼 편하지는 않습니다. 매일 많은 사람과 영어로 소통하다 보니 확실히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요. 처음 유학생으로 미국에 왔을 때는 모든 게 낯설어서 어떤 게 문화의 차이인지조차 제대로 몰랐던 것 같아요.
인생의 절반 가까이 미국에서 보낸 지금은 오히려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가 더 명확하게 보입니다. 미국 사회가 한국 사회보다 전반적으로 돌아가는 속도가 느려서 불편한 게 많지만 느린 대신 정확하고 합리적인 면도 많습니다. 한국의 ‘새벽?총알 배송’은 저처럼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하와이 섬에 사는 사람에게는 꿈만 같은 이야기예요. 하지만 미국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굳이 새벽에 총알처럼 배송을 받아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아이들 교육에 대한 생각이나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서도 개인차를 넘어 사회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는 걸 느낍니다. 이제 저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이방인인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두 문화의 좋은 점을 다 누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법의인류학자로서의 삶이 본인의 소명처럼 느껴지신다는 대목이 인상 깊었습니다. 어떤 분들께 『발굴하는 직업』을 추천해주고 싶으신가요.
처음에는 뼈와 관련된 이야기로 에세이를 쓰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뼈를 매개로 한 정체성과 직업, 가족에 관한 글이 되었어요. 어리바리하게 미국에 첫발을 디뎠던 유학생으로 시작해 미국 공무원 15년 차가 되는 과정에서 겪은 많은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날의 긴장감, 상사로부터 무례한 인종차별을 겪으면서도 참아내야만 했던 초짜 시절, 베트남 오지로 유해 발굴을 떠나서 고생했던 경험, 직장 동료들과의 미묘한 갈등과 줄다리기 속에서 겪었던 좌절과 분노 같은 직장 이야기는 사회생활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직장을 떠나 집에서 벌어지는 육아의 현장과 제가 무엇보다 열심히 공을 들여 즐겁게 하는 요리와 청소 이야기는 살림하는 모든 분과 나누고 싶어요.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쉴 새 없이 지내지만 그래도 긴 시간 동안 제가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제가 하는 모든 일의 본질입니다.
법의인류학자로서 집에 돌아가지 못한 분들의 유해를 찾아 늦게나마 집에 보내드리는 일, 엄마로서 아내로서 주부로서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일, 어느 하나도 귀하지 않은 것이 없죠. 그런 귀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제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제 책은 귀한 소명 뒤에 숨겨진 고귀하지만은 않은 일상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진주현 법의인류학자.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유학을 떠났다.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인류학 석사학위를,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기관(DPAA)에서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제2차 세계대전 때 실종된 군인의 유해를 발굴해 분석한 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하와이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지은 책으로 『제인 구달 & 루이스 리키: 인간과 유인원, 경계에서 만나다』 『뼈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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