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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랑 칼럼] 토리야마 아키라, 혹은 고독한 외계인

윤아랑의 써야지 뭐 어떡해 1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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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야마를 더욱 고독하게 만든 건 그 이후에 누구도 ‘토리야마적인’ 만화를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2024.03.22)

출처: 토리야마 아키라 인스타그램


참담하고 참담한 심정으로, 지난 3월 1일 우리는 『닥터 슬럼프』와 『드래곤볼』의 작가를 잃었다. 우리네 세상을 말 그대로 만들고 지탱했던 거목들이 이리 속절없이 스러질 때마다 익숙해질 리 없는 슬픔과 충격에 그만 허우적대고 만다. 하지만 토리야마 아키라의 부고는, 적어도 내게는 다른 것들과 적잖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느낌이란 게 과연 무엇인가.

토리야마가 어떤 만화를 만든 사람이었는지, 혹은 그가 얼마나 돈을 많이 벌었는지, 혹은 그의 사회적 영향력이 얼마나 엄청난 것이었는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글 대신 나무위키나 온라인 기사를 읽어보시길 권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호사가들이 좋아할 그런 잡다한 정보가 아니라, 토리야마가 자기 시대에 있어 수행했던 복합적인 역할(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와 돌아보면, 그 자신이 단골 소재로 번번히 활용하기도 했었지만, 토리야마 아키라는 외계인이었던 것 같다. 오해를 피하고자 서둘러 덧붙이건대, 나는 그가 궤를 달리 하는 천재였다고 비유적으로 말하려는 게 아니다. (물론 이것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지금 떠올리는 외계인 상은 이런 것이다. 첨단 문명을 영유하며 살아가다 실수로 지구에 불쑥 표류해버리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어 지구인들에게 자신이 가진 첨단 문명의 산물을 전수하며 평온한 삶을 보장받는, 그러나 영원히 자신의 동족을 만날 수는 없는 외계인. 즉 자기 세대의 마지막이면서 다음 세대의 시작이고 그러면서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중층적인 입장의 외계인. 이런 의미에서라면 토리야마는 외계인이라 할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것도 몹시 고독한 외계인 말이다.

그는 만화에서부터 시작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5살 어린 안노 히데아키와 같은 1세대) 오타쿠도 아니었고, (전설적인 편집자 토리시마 카즈히코의 ‘조교’가 있기 전까진) 일본만화의 전통적인 작법에 거의 무지했으며, 디자인 회사를 다니다 전적으로 돈 때문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즉 일본만화의 완전한 외부자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언뜻 보기에 토리야마 아키라의 만화들은 당대 일본에 있어 몹시 이색적인 시도들로 가득 차 있다. 영어 효과음, 박력 넘치는 액션 연출, 과할 정도로 디테일한 사물 묘사… 차라리 미국만화에 더 가까워 보이는 요소들.

하나 신기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닥터 슬럼프』와 『드래곤볼』엔 ‘만신’ 테즈카 오사무적인 만화관(觀)이 당대의 어떤 만화보다도 충실하게 계승되고 있었단 점이다. 만화를 “이 이미지와 저 이미지 사이, 서술성과 이미지성 사이, 순간과 과정 사이, 단면과 단면 사이, 단면과 캐릭터 사이에서 끝없이 진동하면서 성립하는 관계”(『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로 여기며 인과 자체를 파편화 및 유동화하는 데에 전념했단 점에서, 토리야마는 정말 드문 의미에서 테즈카의 후예라 할 만화가였다. (어쩌면 둘 사이엔 『천재 바카본』의 아카츠카 후지오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만화를 위해 만화 바깥에서 온 사람이랄까?

하지만 그는 이런 만화관을 ‘대중적’으로 소화한 거의 마지막 세대이기도 했다. 『닥터 슬럼프』 이후 사물들이 뜬금없이 인격체가 되어 직접 활약하는 황당한 전개는 『퀴즈! 과학상식』 시리즈 같은 아동용 학습만화에나 어울리는 것이 되었고, 『드래곤볼』 이후 전적으로 액션 묘사를 위한 ‘피상적인’ 만화는 일본 안에서 나올 수 없게 되었다. (『원피스』나 <신세기 에반게리온>에 대해선 다양한 연구서가 나왔지만 『드래곤볼』에 대해선 『드래곤볼 깊이 읽기』 같은 소수뿐이라는 걸 떠올려보자) 55년생인 토리야마의 앞뒤에 있는 『터치』의 아다치 미츠루(51년생)와 『시끌별 녀석들』의 타카하시 루미코(57년생)와 비교하면,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독한 위치의 만화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당신께서도 알고 있듯, 그는 일본만화를 거의 바꿔버리고 나아가 일본 서브컬쳐가 국제적인 문화로 발돋움하게끔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학파의 창시자를 넘어선 게임 체인저라고 할까. 하나 『드래곤볼』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일본만화라는 사실은 퍽 유명하지만, 구체적으로 미국 흑인 커뮤니티와 (스페인을 포함한) 라틴 문화권 전반에서 유달리 인기가 높다는 사실은 적어도 한국에선 덜 알려져 있다. 『드래곤볼』은 『나루토』의 등장 이전까지 힙합의 소재로 빈번히 쓰였고, <드래곤볼 슈퍼>는 일본보다 남미에서 더 높은 인기를 누려 브라질에선 아예 야외상영까지 열렸던 것이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전설적인 힙합 크루 우탱 클랜의 멤버 RZA는 자신의 책에서 『드래곤볼』이 (종종 등장하는 인종차별적인 묘사에도 불구하고) 흑인의 삶의 여정을 은유한다고 쓴 바 있다. 자신의 근원에서 분리된 주인공이 나중에 자신의 정체성을, 그리고 그에 얽힌 슈퍼 파워를 되찾는 전개가 서로 꼭 닮았다는 게다. 한데 흥미롭게도, 이와 비슷한 견해는 라틴 문화권에서도 발견된다. 가족을 사랑하고, 저승에서 몇 번이나 되살아나며, 세계에 대한 의무감을 강하게 고수하는 주인공들의 태도에서 라틴계 사람들이 자기네의 이상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이런 견해들의 타당성을 자세히 파헤치진 않을 것이다. (가령 미국에서 『드래곤볼』이 인기를 얻은 데 있어 그 앞에 있는 홍콩 쿵푸영화의 영향은 적지 않았다)

다만 당장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만화 특유의 무국적성 내지 탈국가성을 밀어붙인 토리야마는, 신화적 구조에 가깝게 패턴화된 이야기와 캐치한 캐릭터 디자인으로써 변덕스럽기 짝이 없는 ‘보편성’을 자극하는 데에 (지나칠 만큼) 성공했다. 그리고 그만큼 원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가 만들어낸 기호와 형식들은 자유자재로 사용되고 전유되어 새로운 문화의 코드가 되어간 것이다. (여담이지만, 유명한 똥 이모지의 원조는 『닥터 슬럼프』의 운치군이다) 여기서 우리는 오해나 전유가 얼마나 생산적인 결과를 내기도 하는지를 새삼스레 깨닫는다. 하나 동시에 이는 원조를 소외시키는 흐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토리야마는 또 한 번 고독한 위치로 돌아가게 된다.

토리야마를 더욱 고독하게 만든 건 그 이후에 누구도 ‘토리야마적인’ 만화를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닥터 슬럼프』는 당시 『시끌별 녀석들』과 함께 개그만화의 혁신을 이끌었고, 『드래곤볼』은 <주간 소년 점프>의 ‘원나블’을 비롯한 후대 소년만화들에 있어 규범이 되었다. 하지만 그 멋진 작화와 연출에도 불구하고, (저 유명한 『땡땡의 모험』을 종종 연상시킬 만큼) 명료한 선(Clear Line)으로 이루어진 형상들로써 액션을 연출하는 특유의 방법은 아무래도 계승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애니메이션도 그렇지만 만화에서 운동감을 효과적으로 묘사하려면 종종 신체나 배경의 형상을 왜곡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인데, 토리야마는 형상의 왜곡을 최소화하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강렬한 운동감을 자아내는 데에 성공했던 것이다.

이런 만화를 지속적으로 그리려면 엄청난 노동과 계산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그는 일찍이 건초염에 걸려 장편만화를 많이 그리지 못했다) 달리 말해, 이런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만화적’이라 하기엔 적잖이 예외적인 방법이다. 허면 토리야마의 (마찬가지로 만화가인 아내 미카미 나치를 제외하면) 유이한 어시스턴트였던 다나카 히사시와 마츠야마 타카시가 지금은 각각 대학 교수와 전문 일러스트레이터로 전직했다는 사실, 달리 말해 토리야마의 직계 제자가 모두 직업으로서 만화가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과연 우연일까? 앞서 그를 두고 “학파의 창시자를 넘어선 게임 체인저”라 말한 건 이 때문이기도 하다. 1살 연상인 『아키라』의 오토모 카츠히로와 비슷하게, 토리야마의 천재성은 오히려 그를 특출난 예외로서 고독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 고독 속에서도 강경하게 낙천주의를 추구하던 외계인을, 우리는 얼마 전에 잃었다. 그것도 『드래곤볼』의 40주년이란 시점에 말이다. 나는 어린 시절 투니버스를 통해 애니판 <닥터 슬럼프>와 <드래곤볼>을 접했는데, 당시 막 시작된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들이 역사적 간격에 상관없이 인기 애니메이션들을 마구잡이로 들여온 덕에 <디지몬 테이머즈>와 <드래곤볼>을 자연스레 동시적으로 시청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00년대를 ‘투니버스의 전성시대’라 부르는 내 또래들은 아마도 한국에서 <드래곤볼>을 동시적인 것으로 경험할 수 있는 끝자락에 있었을 거란 얘기다. 그런 행운을 누릴 수 있던 것에 늦게나마 감사함을 느낀다. 그런데 이 감사를 받을 외계인은 이제 어디에 있는가.

『드래곤볼』의 프로토 버전인 「기룡소년(드래곤보이)」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한다. 애도에 어울리는 맥락의 문장은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그를 기리는 말로써 여기에 다시 써보고 싶다.

“이젠 됐다. 조용히 잠들 거라. 넌 성을 정말 잘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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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윤아랑(평론가)

비평가.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을 주로 다루며, 주체성과 현실 감각을 문제 삼는 문화비평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뭔가 배 속에서 부글거리는 기분』(2022), 『영화 카페, 카페 크리틱』(공저, 2023), 『악인의 서사』(공저, 2023)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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