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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찬란한 직진 - DAY6(데이식스) 'Fourever'
DAY6(데이식스) 'Fourever'
데이식스의 2막은 그동안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이들의 음악이 탄탄히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걷기, 아니 뛰기 때문이다. 앨범에 수록된 일곱 곡의 노래는 하나하나 정성스레 놓인 돌다리 위를 주저 없이 직진한다. (2024.03.20)
마지막으로 아무것도 재지 않고 내 멋대로 굴어 본 게 언제던가. 쥐꼬리만 한 사회적 지위와 체면 때문에 때로는 가성비를 따지는 약빠른 계산기 앞에 우리의 운신의 폭은 날이 갈수록 좁아져 간다. 멋지거나 있어 보이고 싶다는 욕심도 한몫한다.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든 운신은 어떻게 해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우리의 정신과 육체를 위축되게 한다. 격렬한 감정의 파도가 밀려올 때 눈치 보지 않고 눈물 콧물 쏙 빼고 웃고 웃을 수 있는, 모두가 O라 말할 때 당당히 X를 들 수 있는, 좋아하는 사람 앞에 꾸밈 없는 마음을 내어놓을 수 있는 그런, 용기. 맞다. 우리는 나이와 함께 한 때 우리가 용기라 불렀던 것들을 조금씩 잃어간다.
그룹 데이식스가 3년 만에 완전체 명의의 앨범 <Fourever>를 발표했다. 멤버 숫자인 4(four)와 ‘영원’이라는 뜻의 ‘Forever’를 합성한 단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너무 직관적이지 않나 싶은 순간, 앨범 첫 곡이자 타이틀 곡인 ‘Welcome to the Show’가 문을 박차고 들어온다. 힘만 좋은 게 아니다. 눈을 마주치기가 무섭게 방언처럼 말을 쏟아낸다. “이젠 혼자가 아닐 무대 / 너무나 감격스러워 / 끝없는 가능성 중에 / 날 골라줘서 고마워’. 음악에서, 아니 현실에서도 ‘감격스럽다’는 표현을 이렇게 직설적으로 들어본 적이 있나 싶다. 도무지 조금도 잴 생각이 없어 보이는 노래는 영케이를 시작으로 멤버들의 목소리에 뜨거운 진심을 담아 전속력으로 실어 보낸다. ‘나와 맞이하는 미래가 위태로울지도 몰라’, ‘그래도 내 손 놓지 않겠다면 / Welcome to the show’. 공연 전 천천히 들어차는 좌석, 암전(暗轉)과 함께 어마어마한 음압으로 쏟아지는 관객들의 함성을 뚫고 기어코 울리는 첫 음. 오랫동안 기다려온 무언가가 시작하는 걸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몸으로 기억할 순간이 ‘Welcome to the Show’를 빼곡히 채운다.
앨범 <Fourever>가 세상의 빛을 보기까지 데이식스에게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멤버 전원이 군복무를 마쳤고, ‘예뻤어’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 같은 곡들이 입소문을 타고 차트를 역주행했다. 덕분에 카투사, 군악대, 해군 등 다양한 형태로 복무하던 멤버들이 ‘국군의 날’ 행사에 오랜만에 모여 노래하는 진풍경을 연출했고, 마지막으로 제대한 멤버 원필이 팀에 합류한 지 한 달여 만에 연말 특집 음악 프로그램에서 자신들의 노래로 메들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이 모든 걸 이끈 음악의 힘은, 데이식스가 지금처럼 금세 새 노래로 대중을 찾게 한 가장 큰 동력이기도 했다.
그런 새출발이 ‘Welcome to the Show’로 시작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데이식스의 2막은 그동안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이들의 음악이 탄탄히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걷기, 아니 뛰기 때문이다. 앨범에 수록된 일곱 곡의 노래는 하나하나 정성스레 놓인 돌다리 위를 주저 없이 직진한다. 첫 곡에 이어지는 ‘HAPPY’와 ‘The Power of Love’는 지금까지 누구보다 이 순간을 기다려온 이들이 있음을 온몸으로 외친다. 아무 이유도 근거도 없이 그저 행복하고 싶은 마음과 황홀하고 놀라운 사랑의 힘을 지고지순하게 부른 이들은 ‘널 제외한 나의 뇌 (Get The Hell Out)’을 통해 데이식스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청춘의 풋사랑을 한여름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비트와 멜로디를 뼈대로 이보다 청량할 수 없게 담아낸다.
다음 곡 ‘나만 슬픈 엔딩’까지 리듬 파트만 두고 보면 펑크(Punk)나 LA 메탈이 떠오를 정도로 두드려대고 휘몰아치던 이들이 가까스로 숨을 고르는 건 앨범 후반에 자리한 두 곡 ‘사랑하게 해주라’와 ‘그게 너의 사랑인지 몰랐어’에 들어서다. 그렇다고 앞선 직진의 기세가 꺾인 건 아니다. 데이식스의 또 다른 장기인 애틋한 세레나데를 프로듀서 데이비드 포스터식의 풍성한 팝 편곡이나 현악 연주 등으로 외양만 부드럽게 다듬었을 뿐, 그 안에 담긴 마음만은 지금까지의 어떤 곡보다 뜨겁고 곧다. 사랑할 수 있게 너의 마음에 들여만 놔 달라고, 그땐 그 모든 게 사랑인지 정말로 몰랐다는 솔직한 고백 앞에서 마음의 빗장이 또 한 번 풀린다. 우리가 운명이 아니라면 운명의 멱살이라도 잡고 필연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기개(氣槪). 이토록 찬란한 진심을 마지막으로 본 적은 또 언제였나. ‘내 전부를 다 바칠게’라는 무모한 맹세를 모른 척 믿고 싶어지는, 데이식스의 힘찬 2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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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