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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원 시인의 책장

당신의 책장 – 황유원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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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은 평소 뭘 보고 듣고 읽을까? 언젠가 영감의 원천이 될지도 모를, 작가들의 요즘 보는 콘텐츠. (2024.03.20)


작가들은 평소 뭘 보고 듣고 읽을까?
언젠가 영감의 원천이 될지도 모를, 작가들의 요즘 보는 콘텐츠.



『Frank: Sonnets』

다이앤 수스(Diane Seuss) 저 / Graywolf Press


직업이 번역가이다 보니 아무래도 내가 읽게 되는 책은 현재 번역하고 있거나 앞으로 번역할 예정이거나 번역을 위해 검토하는 책이 대부분이다.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한 책은 다이앤 수스의 소네트 시집인 『Frank』. 예전에 검토할 때도 느꼈지만, 여러모로 엄청난 책이다. 제목 ‘프랭크’는 시인 ‘프랭크 오하라’,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앨범 <Frank>, 그리고 ‘솔직한, 노골적인’이라는 뜻의 형용사 ‘frank’를 모두 지칭하는데, 공교롭게도 딱 이 셋을 합친 느낌의 시집이랄까? 그나저나 마감이 몇 달 안 남았군. 힘내자!





영화 <다이쇼 로망> 3부작

스즈키 세이준 감독


장편소설 하나를 끝내고 다음 작품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침표라도 하나 찍을 작정으로 간만에 극장 나들이에 나섰다. 마침 아트나인에서 스즈키 세이준의 저 악명 높은 ‘다이쇼 로망 3부작’을 모두 볼 수 있다기에 큰맘 먹고 세 편 다 예매해버렸다. 가장 먼저 본 <지고이네르바이젠>은 최소한의 형식 몇 개만을 유지하고 변주하는 가운데 끝없이 미끄러지고 또 미끄러지는 한편의 꿈과 같은, 자유로우면서도 강박적인 이야기. 예술의 가장 기본 뼈대인 형식과 내용에 대해 끊임없이 의식하고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노래 ‘Valley of the Shadows

Origin Unknown


최근에 맥스 포터의 신작 『Shy』를 읽었다. 물에 빠져 죽으려고 돌을 잔뜩 집어넣은 배낭을 맨 채 밤에 기숙학교를 탈출한 한 아이의 이야기. 그가 낀 헤드폰에서는 워크맨으로 튼 ‘드럼 앤 베이스’ 음악이 끝없이 흘러나온다. ‘Valley of the Shadows’는 그중 한 곡으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장례식 때 이 음악이 울려 퍼지길 바란다. ‘레이브파티’ 장례식장이라니, 이보다 더 멋진 장례식은 아마 없을 거야.




음반 <12>

류이치 사카모토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반을 50장 넘게 가지고 있다. 꽤 좋아한다는 뜻이다. 보통 대중적이면 깊이가 없고, 실험적이면 소통의 여지가 없다고들 한다. 사실이다. 그런데 그는 이 두 경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오가며 살았다. 약간 과장하면, 실험음악과 영화음악은 그에게 똑같은 음악/소리 작업이었던 것 같다. <12>는 그의 마지막 앨범이다. 들을 때마다 삶과 죽음에 대해, 예술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걸어가야 할 길, 그 길의 끝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될 어떤 평범한 하루, 분명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그날에 대해 생각한다.



returntomonkeyisland.com 홈페이지 캡처 


게임 <원숭이 섬으로의 귀환(Return to Monkey Island)>

Terrible Toybox 개발


플레이스테이션 유저이긴 하지만 여전히 옛날 도스 게임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래, 안다. 이렇게 말하면 나이가 들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는 꼴밖에 안 된다는 것을.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게임이 단순하던 시절에 오히려 게임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고 항변하고 싶기도 하다. 왕년에 유명한 ‘포인트앤클릭 어드벤처’ 게임은 거의 다 해본 사람으로서, 어떤 게임도 재미가 없는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최근에 이 게임을 구입했다. 아직 몇 시간 플레이하지 못했지만 대만족이다. 지긋지긋한 “You Died”도 없고 말이다! 나는 이 게임으로 다시 ‘바다 사나이’로 거듭날 것이다.


Frank: Sonnets
Frank: Sonnets
Seuss, Diane
Graywolf Press
Ryuichi Sakamoto (류이치 사카모토) - 12
Ryuichi Sakamoto (류이치 사카모토) - 12
Ryuichi Sakamoto
씨앤엘뮤직씨앤엘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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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유원

시인, 번역가.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초자연적 3D 프린팅』, 『세상의 모든 최대화』, 옮긴 책으로 『모비 딕』, 『바닷가에서』, 『폭풍의 언덕』, 『밤의 해변에서 혼자』, 『짧은 이야기들』, 『유리, 아이러니 그리고 신』, 『시인 X』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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