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후기] 진부하지만 언제나 유효한, 죽기 전에 남긴 마지막 편지 - 『8월에 만나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8월에 만나요』
아이러니하지만 두 아들의 배신 아닌 배신 덕분에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던 마르케스의 마지막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2024.03.19)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마침 그가 죽기 전에 내게 쓴 편지가 덩그러니 홀로 남은 내게 전달된다. 이런 전개,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마치 죽을 걸 미리 알았던 것처럼, 어쩌다 ‘우연히’, 게다가 ‘죽기 전’에 중요한 편지를 상대에게 쓸 생각을 했을까.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진부하잖아, 하고 생각하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지고 만다.
마르케스의 유고 소설 『8월에 만나요』에 담긴 두 아들들의 프롤로그를 읽다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이 마치 그런 마지막 편지 같다고. 죽고 세상에 없는 세계적인 소설가의 마지막 작품이 그를 그리워하는 독자들에게 십 년 만에 도착한다는 서사.
그런데 역시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사실 마르케스는 이 마지막 편지, 그러니까 『8월에 만나요』를 쓰고 나서 마음이 변해 버린 편지인 것처럼 박박 찢어 버리길 바랐다. 아이러니하지만 두 아들의 배신 아닌 배신 덕분에 우리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던 마르케스의 마지막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득 1999년부터 집필을 알렸던 이 소설이 살아생전 출간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이 책을 둘러싼 여러 글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의심은 마르케스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이 소설을 시작하고 그에게는 약 십오 년의 시간이 있었으나 알츠하이머와의 싸움까지 고려하면 이 소설을 완성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집필에 주력했고, 다음에는 『백년의 고독』 출간 사십 주년 기념행사를 치렀으며, 무려 죽기 사 년 전에는 『나는 여기에 연설하러 오지 않았다』를 펴냈다. 그 직후에는 마르케스가 정신적인 문제로 인해 단 한 줄도 새로 쓸 수도, 수정할 수도 없다는 소식 또한 널리 퍼졌다고 한다. 그는 2014년 4월 17일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이 소설은 그 자체의 오류 혹은 작품성의 부족이라기보다 바쁘디바쁜 현대 사회 속에 작가의 컨펌을 끝내 받지 못한 비운의 운명을 품은 것일지도 모른다.
『8월에 만나요』는 마르케스의 소설 중 유일하게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다. 사회의 통념을 뒤로 하고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아 떠나는 중년의 아나를 보면 『백년의 고독』에서 만난 솔직하고 자유로운 여자들이 떠오른다. 또 육체의 덧없음, 생의 모멸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살아 있음을 추구하는 모습은 마치 성별이 다른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나는 거의 거울처럼 늙어 소멸한 어머니를 통해 자신을 본다. 비록 시간이 무자비하게 흐를지라도 우리는 마지막까지 자기 영혼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 미완성이 맞나 싶을 정도로 완결성이 돋보인다.
연단에 올라 “고백하건대 저는 이 수상식장에 참석하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는 힘을 다했”다며 너스레를 떨던 거장. 늘 솔직하고 유머러스했던 마르케스를 떠올리며 그의 마지막 작품을 읽었다. 마르케스 당사자는 원하지 않을지 몰라도 독자로서의 나는 괜히 눈시울을 붉히며, 아마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그의 신작을 마지막 편지처럼 읽어 버렸다.
*필자 | 박지아 문학편집자. 민음사 해외문학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오르한 파묵,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 책 등을 편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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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편집자. 민음사 해외문학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오르한 파묵,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 책 등을 편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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