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셔스터먼 “인간이 완벽하지 않은 이상, 이야기에 완벽한 결말이란 없다”
『게임 체인저』
지금 미국은 영어덜트 소설이 굉장히 잘 팔리고 있고 어쩌면 지금이 최전성기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유행을 봤을 때 틱톡 같은 SNS 플랫폼이 오히려 책을 더 읽게끔 하는 역할도 하는 것 같습니다. (2024.03.14)
『드라이』와 『수확자』 시리즈 작가 닐 셔스터먼이 신작 『게임 체인저』 출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게임 체인저』의 주인공은 미국 백인 10대 청소년인 미식축구 선수 애시. 그의 머릿속에는 미식축구와 여자 생각뿐이다. 그러나 경기장에서 상대 팀과 부딪친 순간, 세상이 백팔십도 바뀌는 사건이 일어난다. 처음에는 교통 신호등의 정지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다. 그 다음 경기에서는 부모님이 부자가 되고, 그다음 경기에서는 자신이 여자가 된다. 애시가 부딪칠 때마다 우주는 바뀌고, 그는 자신이 존재했던 세상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우주를 바꾸려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좋게 만들 기회를 얻는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캘리포니아의 극심한 가뭄, 미묘하게 느껴지는 인종 차별, 기술의 발전으로 죽음이 사라진 세상 등 현실과 현실에 기반한 근미래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해 나가는 닐 셔스터먼은 세상을 더 나아지게 만들 방법으로 ‘이야기’를 꼽는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다른 각도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소감이 어떤가요?
하루 반 정도밖에 한국에 있지 않아서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서울을 좀 더 많이 보고 느껴보고 싶어요. 앞으로 3일 동안 서울 외국인 학교에 방문할 예정이고, 이후에는 강연과 관광을 하게 될 것 같아요.
한국 학생이 나오는 영 어덜트 소설이 나올 수도 있겠네요.
방문한 곳들을 이야기에 녹여내는 편이기 때문에, 언젠가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등장할 수도 있겠죠?
『드라이』와 수확자 시리즈, 그리고 이번에 『게임 체인저』가 한국에 소개됐습니다. 10대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을 것 같아요.
10대는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남아 있는 생이 굉장히 길어서 어떻게 살지 결정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기회가 많기 때문에 이야기를 쓸 거리가 많다고 느껴요.
『드라이』는 캘리포니아의 가뭄과 산불, 『게임 체인저』에서는 인종차별이나 동성애 혐오 이야기가 나옵니다. 미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 되는 것들을 이야기에 녹여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사회와 관련이 있는 이슈,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문제에 관한 답을 한다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편인데요. 복잡한 논점들이기 때문에 간단한 대답을 내릴 수는 없어요. 일단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국 사회에서도 많은 이슈들이 있고 많은 문제점이 있을 텐데,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선택한 기준이 있었나요?
『게임 체인저』는 주인공 캐릭터가 어떤 이슈들에 당면하면 좋을지 목록을 만들어봤었어요. 그중에서 어떠한 문제들이 이 이야기와 잘 맞는지를 골랐고요. 사회에 다른 문제들도 물론 많죠. 하지만 이 한 책에서 모든 걸 다룰 수는 없고, 어쩌면 다른 문제들은 또 다른 소설에서 나올지도 모르겠어요.
미국 관용어 중에 ‘다른 사람의 신발을 신어본다’라는 표현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게임 체인저』도 다른 인종이나 다른 성,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 서보는 일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독자들이 제 책을 통해서 이러한 관점을 좀 넓히고 시야를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다른 각도에서 좀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고요. 제가 쓰는 책들이 다 그런 의도에서 쓰여진 거고, 또 공감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확자』는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이 배경입니다. 유토피아로 보이지만 사실은 디스토피아에 가깝죠. 그 와중에서도 어떻게든 좀 좋은 세상을 찾아나가려고 애쓰는 주인공이 나오고,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 소설이 끝납니다. 열린 결말로 이야기를 끝내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시는 편인가요?
우리 자신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완벽한 결말이란 없다고 생각을 하는 편인데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그에 따른 결과가 나타나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디스토피아 소설은 세계가 잘못된다든지, AI가 잘못된다든지, 정부가 잘못된다든지 하는 식으로 흘러가는데, 이걸 바꿔서 만약에 이미 완벽한 세상에서는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봤어요.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므로 결국은 완벽한 해결책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디스토피아처럼 변해갈 수도 있다는 걸 이야기에 녹여냈어요.
작가님도 죽음이 두렵나요?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까요? 저도 두려워하고요. 하지만 저는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다 생각해 보는 편입니다. 그래야 좀 마음이 편안해져요. 세계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고, 우리가 죽음 후에 어떻게 될지 상상하더라도 실제 세상은 상상 이상의 뭔가를 가져다줄 거예요.
『게임 체인저』 초반에는 코로나에 관한 언급이 나옵니다. 팬데믹 이후, 작품에 변화가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게임 체인저』는 팬데믹을 겪으면서 쓰던 소설입니다. 쓰고 있을 때 코로나가 찾아왔는데요. 팬데믹이 끝나고 나서 이 책이 나올 걸 알았기 때문에, 코로나를 겪고 난 후, 계속해서 변화하는 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글 처음부터 코로나를 언급했던 거고요.
작가님은 현실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편이신가요? 코로나 이후, 힘든 일은 지나가고 곧 끝이 올 거라고 믿었던 편인가요?
제 소설은 모두 다 희망에 관한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습니다. 희망과 긍정을 세상에 가져오는 이야기를 의도했고, 제 이야기는 보통 시작했을 때보다는 그래도 더 나아지는 결말로 끝나요. 세상이 더 나빠지고 안 좋은 결말을 맞이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게임 체인저』는 어떤 독자가 풋볼 이야기를 좀 써달라고 제안을 받아 쓴 소설이었다고요.
한 교실에 방문했을 때 학생이 스포츠 이야기를 써보라고 제안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미국 풋볼 경기에서 선수가 심하게 부딪히면서 다른 우주로 간다는 줄거리를 생각해 냈고, 다른 우주에 갈 때마다 다른 사회적인 문제를 겪으면서 뭔가 배워나가는 이야기라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배경이나 소재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자료 조사가 필요할 텐데, 어떤 식으로 자료 조사를 하나요?
조사는 굉장히 중요하죠. 현실을 기반으로 써야 하니까요. 보통 SF 소설이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에 연구 조사를 많이 해야 하죠. 『수확자』의 배경은 죽음을 정복한 세상이지만, 이게 언제쯤 가능할지, AI 관련해서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갈지, 아닐지 등을 많이 조사했고요. 『게임 체인저』는 초끈 이론이라든지 다중 세계 등에 대해서도 찾아봐야 했어요. 미국의 인종차별 역사도 많이 연구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분리 정책, 흑인과 백인을 격리한 역사를 조사했는데, 저도 자료를 찾으면서 당시 학교에서 어떤 식으로 사람들을 분리해 왔는지 알게 되었어요.
소설가분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항상 자료 조사 시간이 즐겁다고 많이들 얘기하는 반면, 자료를 다 쌓아놓고 막상 쓰려고 하면 벽에 가로막힌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요.
자료 조사를 해서 많은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결과물을 다 쓸 필요는 없습니다. 이야기에 필요한 것들만 찾아서 쓰면 되는데요. 말씀하신 벽(writer’s block)은 아예 생각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물론 막힐 때가 있지만 제가 생각할 때 그건 막다른 길이라기보다는 쓰다가 나올 수 있는 일반적인 과정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보통 그럴 때는 숨 한 번 크게 쉬고 그냥 계속해서 써 나가는 편입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려고 해요.
집필 과정 중 사람들이 이야기를 읽고 어떻게 반응할지 무서웠던 적은 없나요?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거나, 이야기를 다 쓰고 났더니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내용이라고 비판하는 게 그려지면서 쓰는 게 두려워지거나 어려워지는 순간이요.
글을 쓸 때 그런 부분에 대해서 걱정은 합니다. 하지만 제가 걱정을 하고 있다는 그 부분에서 저는 화가 나곤 해요. 이야기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쓰는 거지 독자의 반응을 신경 쓰면서 써야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민감한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기도 하죠. 그럴 때는 충분히 소수자가 존중되고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게임 체인저』를 쓸 때는 LGBTQ 커뮤니티에 속한 분들에게 이 이야기를 읽어달라고 부탁했어요. 결과적으로 책이 나왔을 때는 충분히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어요. 누군가는 늘 항상 불편한 부분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늘 노력하는 수밖에 없죠.
정치사회적 맥락 외에 작가님이 신경을 쓴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 캐릭터가 실제 인물 같은지를 생각해 보고, 캐릭터들 간 관계가 어떤지를 생각해 봅니다. 다음으로는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를 별로 접할 것 같지 않은 아이들로 독자들을 상정하고 씁니다. 예를 들어 평소에 LGBTQ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던 운동부 아이들이 이 책을 읽고 어떻게 생각할지 상상하고는 해요.
다양한 작품이 드라마나 영화로 나올 예정이라고요. 영상화를 상정하고 이야기를 쓰는 경우가 있을 것 같아요. 독자들이 어떤 장면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작가님만의 방식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영화와 드라마로 각색될 거로 생각하면서 소설을 쓰지는 않아요. 책에 먼저 집중하면서 써요. 하지만 머릿속에서 그려내듯이 상상하면서, 시각화를 해가면서 쓰기 때문에 아무래도 읽는 사람들이 좀 더 생생하게 영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들은 여러 이야기들을 고려하기 때문에 실제로 영상화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어쨌거나 책에 모든 힘과 영혼을 다 쏟아부어 만들었어요. 영상화 되면 좋은 일이겠지만 안 되더라도, 책으로는 남아 있게 될 겁니다.
아들인 제러드 셰스터먼과 협업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가족과 같이 작업하는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좋은 점만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말만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좋습니다. 제러드가 글도 잘 쓰고, 저랑 잘 맞아요. 물론 아빠와 아들 간의 관계에서는 사실 좀 티격태격하는 때도 있지만 글을 쓸 때는 잘 맞는 편이에요.
만약 혼자 이야기를 썼다면 이야기도 달라졌을까요?
당연히 다를 겁니다. 아들이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오거든요. 거의 5대5로 작업을 한다고 보시면 되고, 『드라이』뿐만 아니라 최근에 ‘록시’라는 작품도 같이 썼는데,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협업은 어떻게 하게 되나요? 구글 닥스 같은 걸 사용해서 동시에 작업을 하시는 경우도 있을 거고요.
누구와 협업하느냐에 따라 다른데요. 하나의 문서로 아예 같이 쓰는 경우도 있고, 다른 작가와는 구글독스로 한 명이 쓰면 거기에 대해 다른 한 명이 코멘트를 남기는 식으로 작업 한 적도 있습니다. 아들과는 따로따로 작업했었어요. 맨 처음 아웃라인은 같이 짜고, 한 명이 한 장을 쓰면 다른 사람이 그걸 다시 쓰는 방식으로요. 다른 사람이 이어서 다음 장을 쓰면 또 다시 써서 누가 어디를 썼는지 구분 되지 않고 둘이서 완전히 같이 썼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점점 더 책을 안 읽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도 점점 책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나요?
누가 읽느냐에 대한 변화는 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10대 독자 중에서는 여성 10대 독서 비율이 더 높아지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강한 청소년 남성 캐릭터를 그리기도 해요. 10대 남성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면, 그 독자들이 조금 더 공감할 수 있도록요. 지금 미국은 영어덜트 소설이 굉장히 잘 팔리고 있고 어쩌면 지금이 최전성기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유행을 봤을 때 틱톡 같은 SNS 플랫폼이 오히려 책을 더 읽게끔 하는 역할도 하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SNS에서 책에 관해 이야기하고, 책 소비를 더 촉진하기도 하고요. 책 자체는 아직 우리 곁에 활발하게 남아있어요. 다만 독서 경향성은 변화하는 것 같은데, 더 많은 사람이 디지털과 오디오북으로 책을 읽고 있죠. 책이 미래에 아예 없어지진 않겠지만 소비 방식이나 주요 독자층이 변할 수는 있을 거예요. 사람들은 계속 이야기를 갈구하기 때문에 AI가 우리를 대체하거나 하지 않는 이상 작가들은 계속해서 일자리가 있을 거예요. (웃음)
다른 책에 비해 미국에서 영어덜트 소설이 많이 읽힌다면,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잘 썼기 때문이겠죠. 아무래도? (웃음)
작가님이 좋아하는 영어덜트 소설가를 추천해 주세요.
닉 스톤이라든지 알렉스 런던, 제임스 레놀즈, 카산드라 클레어, 루타 서페티스도 있고요! 좋아하는 책이 굉장히 많습니다. 영어덜트 작가들을 특히 굉장히 존중하고 존경한다고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통해 세계가 더 나아지도록 노력하고 있고 독자에게 좋은 영향이 끼치는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요. 저도 그 커뮤니티 중 한 명이라는 점이 굉장히 자랑스럽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작가로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는데, 어떤 때 어떤 독자들을 만날 때 가장 기쁜가요?
제 이야기에 열정을 가진 독자들을 만날 때 가장 기뻐요. 또 독자들이 본인 이야기를 해줄 때 재밌습니다.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제 책을 읽고 나서 다른 책도 읽게 되었다고 하거나, 『게임 체인저』를 읽고 사회적인 문제를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 기뻐요. 부모와 10대 자녀가 같이 읽고 토론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기분이 좋았어요. 글과 생각은 사람을 굉장히 많이 바꿔놓기 때문에,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책임감이 많이 듭니다. 글이 가진 힘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돼요. 한국어로 번역이 되었으니, 다시 한국에 와서 더 많은 독자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1962년 미국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으며 16세 때 가족과 함께 멕시코시티로 이주해 그곳에서 국제 학교를 다녔다. 이후 캘리포니아 대학교 어바인에서 심리학과 연극을 전공했다. 전미 도서상을 받은 『챌린저 디프』와 미국 도서관 협회 마이클 L. 프린츠상을 받은 『수확자』, 미국 도서관 협회 최고의 영 어덜트 소설상을 받은 『분해되는 아이들』, 보스턴 글로브 혼 북상을 받은 『슈와가 여기 있었다』 등을 포함해 30개가 넘는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대중성을 인정받아 「수확자」 시리즈, 『드라이』, 『게임 체인저』가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는 중이다. 현재 플로리다에 거주하며 아들인 재러드 셔스터먼과 소설, 시나리오 등을 공동 작업하고 있다. 홈페이지 storyma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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