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디 다음 세대가, 우리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니까.”
『빛의 구역』 김준녕 작가 서면 인터뷰
『빛의 구역』에는 제가 글을 쓰기 전부터 세상에 내뱉고 싶었던 일종의 ‘외침’이 담겨 있습니다. 작품의 발상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가난, 고통, 죽음 등 운명처럼 인간을 따라다니는 것들에 관해 제 나름의 해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2024.03.12)
“악력이 대단하다”(김성중) “밤새도록 멈추지 못하고 읽었다”(김보영)는 평과 함께 한국과학문학상 대상을 만장일치로 수상하며 신인으로서의 입지를 굳힌 김준녕이 모든 시스템이 통제되는 미래 지구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빛의 구역』을 출간했다. 죽고 죽이고 피가 튀기는 디스토피아에서 왠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소설 내부의 고통이 현실 세계를 투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과 생존이라는 부피가 대단한 주제의식을 특유의 상상력과 장악력으로 풀어낸 이번 작품에는 그간 자신만의 답을 찾고자 끈질기게 노력해 온 작가의 내공이 고스란히 담겼다.
김준녕 작가님, 안녕하세요. 『빛의 구역』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이번 작품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지 독자 여러분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채널예스 독자님들. 장편소설 『빛의 구역』으로 돌아온 김준녕입니다.
선후가 맞지 않으니 이상한 말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빛의 구역』은 역설적으로 저를 소설가로 만들어준 작품입니다. 다시 말해 『빛의 구역』을 쓰기 위해 소설을 시작했다는 것이죠.
『빛의 구역』에는 제가 글을 쓰기 전부터 세상에 내뱉고 싶었던 일종의 ‘외침’이 담겨 있습니다. 작품의 발상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가난, 고통, 죽음 등 운명처럼 인간을 따라다니는 것들에 관해 제 나름의 해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거창한 포부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저 남들처럼, 덜 가난하고 덜 아프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답이 있으리라 지레짐작하고 세상에 뛰어든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맨땅에 헤딩’이었고, 많이 깨졌습니다. 이센스의 노래 <Back in time>에는 “언제 올지도 확실하지 않은 버스를 타려고 미리 나와 기다리며 발 구른 건지도”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정확히 그 같은 상태로 지냈고, 그러면서 소중한 사람들을 여럿 떠나보냈습니다.
그런 지난한 과정이 없었더라면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과 『빛의 구역』을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 작품은 그 과정에서 흘러나온 잔해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잔해가 곧바로 작품이 될 수는 없습니다. 잘 다듬고 포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들에겐 미친 사람의 중얼거림과 다름없을 테니까요.
그간 수많은 작업을 통해 기술과 악력을 터득한 끝에 『빛의 구역』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번 책은 현재까지 제 작품들이 그려온 변곡점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주의 사항’이 눈에 들어옵니다.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과는 달리 뻑뻑하고 읽기 힘든 책이라는 경고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데요. 두 책의 연관성이 궁금합니다.
‘작가의 말’에서 언급했듯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이 세상에 물음을 던진 책이었다면, 『빛의 구역』은 그 물음에 대한 저만의 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두 작품이 여러 층위에서 해석되기를 바랐습니다. 물론, 엄연히 독립적인 작품들이므로 별개로 읽으셔도 무방합니다.
『빛의 구역』이 세상에 대한 저의 최종 결론인 것은 아닙니다.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공염불 외우듯이, 질문과 답하기를 반복할 생각은 없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설을 쓰면서 ‘문학이 답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빛의 구역』을 쓰고 나니 문학, 더 크게는 삶 전체를 보는 관점이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이 점은 앞으로 발표할 소설들에서 많이 드러날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두 책을 보았을 때, 부디 새로운 질문과 답을 찾게 되길 바랄 뿐입니다.
‘붉은 구역’에서 ‘검은 구역’에 이르기까지, 각 구역을 색으로 표현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더불어 그중 가장 애착이 가거나 마음이 쓰였던 구역이 있으신가요?
‘빛의 구역’이라는 제목처럼, 다양한 색채가 한데 모여 밝은 빛을 내기를 소망하며 썼습니다. 여러 개체들이 연대할 때 나타나는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초기 설정 중에는 노랑 구역, 초록 구역 등 더 다양한 구역들도 있었습니다. 작품 분량과 전개를 고려해 과감하게 삭제했지만요.
애착이 가는 건 역시 붉은 구역입니다. 분량도 긴 데다, 가장 많은 사건이 벌어지는 곳인 만큼 마음이 쓰였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가 가장 잘 반영되어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군부독재 시대에 이르기까지, 자유를 억압당하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인지 붉은 구역을 둘러싼 작품 속 인물들에게 깊게 감정이입이 되곤 했습니다. 이야기가 끝난 지금, 부디 그들이 잘살고 있기를 바랍니다.
각 구역의 특성을 보면, 저마다 현실 세계의 어두운 부분 하나씩을 은유하고 있는 것 같아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요. 특히 ‘보라 구역’에 살고 있는 생명체들이 인상 깊었는데요. 그 상상력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요?
개인적으로 각 나라의 신화와 설화 등을 많이 찾아 읽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소설가라 그런지, 오랜 시간 인간의 경험이 축적되어 만들어지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이야기들에 이끌리는 것 같습니다. 보라 구역의 생명체들은 그런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신(神), 요괴, 괴물 등을 참고해 만들었습니다. 그런 존재들에게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이 가장 잘 보인다고 생각했고, 보라 구역의 생명체들 역시 인간의 특성을 인간보다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 주기를 바랐습니다.
더불어, 작품의 세계관이 거대하다 보니 생존에 관한 근원적 물음을 인간이라는 종에만 국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희망을 갖고 서로 연대하는 일에 종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쓰는 소설은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기에, 생명체를 그대로 등장시키기보단 인간과 가장 가까운 존재들을 대화가 가능한 형태로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SF라서 가능했던 알레고리라고 생각합니다.
인류 전체를 관장하는 미래 정부의 이름 ‘에테르나라’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에테르나라’는 그리스어에서 파생된 단어 ‘에테르(aether)’와 국가를 의미하는 우리말 ‘나라’를 결합해 만들었습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에테르는 빛의 파동설이 제기되었던 시대에 파동을 전파하는 매질로 여겨졌던 가상 물질입니다. 이 단어가 지니는 함의는 시대별, 분야별로 달라지는데요.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난 후 그 복합적인 의미들을 대입해 다시 해석해 본다면 독서가 더욱 재밌어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국가라는 말 대신 ‘나라’를 쓴 데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어요.)
이번 작품을 집필하시는 동안 “뼈를 깎아내는 심정으로 버텼다”고 언급하셨어요. 어떤 점이 그토록 고통스러우셨는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우리는 왜 그토록 괴로워하면서까지 삶에 관한 해답을 갈망하는 것일까요?
집필 과정을 생각해 보면 작업이라기보다는 복수극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복수 대상은 저 자신이었고요.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으로 한국과학문학상을 수상하기 전, 저는 다른 원고 수정과 차기작 집필을 동시에 이어가고 있었는데요. 엉성한 트리트먼트를 마주할 때마다 과거의 저를 문자 그대로 한 대 치고 싶었습니다. 수상 소식을 듣고 나자 근심은 배가 되었습니다. 어쩌자고 이렇게 일을 벌려놓은 것인지…….
차기작 집필을 해야 하는데, 수상작에 대한 여러 의견들이 머릿속을 휘저어놓기도 했고 글의 분량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압박감도 커져갔습니다. 내용이 밝으면 모르겠지만, 죽고 또 죽이는 글이다 보니 늘 어두웠습니다. 생계 문제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글쓰기에 몰두하기 위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완성하기 전까지(물론 완성하고 나서도) 카드값에 전전긍긍하며 눈치 보듯 살아야 했습니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까지 쓰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건 제게 ‘왜 그렇게까지 사느냐’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삶을 비롯해 인간의 모든 활동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무의미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려 몸부림을 치다 보니, 고통스러웠던 것이겠지요.
그렇다고 허무주의에 빠지자는 말은 아닙니다. 무의미하고 쓸모없기 때문에 오히려 삶을 즐길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의미와 쓸모에 관해 고민하기 시작하면 무엇 하나 제대로 즐기기가 어려워집니다. 무가치해 보이는 것이 가장 재미있는 법이라고, 개인적으로 믿습니다.
이 이상의 답변은 또 다른 소설을 통해 이어가겠습니다. 내년 상반기에 출간될 『부유자들』을 통해 확인해 주세요. 지구에서 유기되어 우주를 떠도는 이들에 대한 소설입니다. 사람들은 왜 삶의 끝자락에서도 해답을 찾고자 중얼거리는 것인지에 관해, 조금이나마 답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 지난한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작가님께서 궁극적으로 세상에 남기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자연 앞에서 인간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전쟁, 기근, 환경 변화 등에 개인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바로 희망을 갖는 일입니다. 희망은 거대한 자연마저도 침범할 수 없는 가장 귀중한 가치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희망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말입니다. 절대적 존재에 의한 구원을 기다리자는 말이 아닙니다. 인간은 끝까지 발악해야 합니다. 당장 앞이 보이지 않더라도 팔을 휘두르고, 소리쳐야 합니다. 그것이 인간으로서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합니다.
*김준녕 1996년 출생, 연세대학교 졸업. 하루의 절반은 글을 준비하고, 나머지 절반은 글을 쓰며 보낸다.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으로 제5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0번 버스는 2번 지구로 향한다』, 장편소설 『빛의 구역』을 출간했다. 인스타그램 @nyung_no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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