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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여성의 날] 왜 그녀는 도끼를 손에 들었나? - 서미애 작가

착하지 않는 여자들의 세상 - 서미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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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길을 걷다가도 누군가의 발소리에 겁을 집어먹길 바란다.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에 목숨이 위태로운 경험을 하길 바란다. (2024.03.08)


채널예스 여성의 날 특집 기획 ‘착하지 않은 여자들의 세상’ 

욕망을 숨기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여성들은 선입견을 벗어나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소설, 영화, 과학, 번역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형성을 부수고 다채로운 욕망을 보여주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3년 전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행사를 하던 중 “한국에는 왜 여성 추리작가들이 더 많은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의 작가적 정체성이 ‘여성’이라는 단어보다는 ‘추리작가’ 쪽이어서 그 질문은 나 역시 이유가 궁금했다. 그 질문을 계기로 관찰을 시작하면서 이런 현상이 한국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발견했다. 시대의 욕망과 변화를 가장 많이 반영한다고 하는 추리소설에서 여성작가의 등장, 작품 속 강렬한 여성 캐릭터의 탄생은 역시나 현대사회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전체제의 종말은 스파이소설과 007 제임스 본드의 몰락을 가져왔고, 과학수사의 등장은 탐정의 관찰력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시니컬한 남성 탐정이 주로 나오는 하드보일드에서 여성의 역할은 팜므파탈이거나 피해자, 주변인이었다.

추리소설 초창기부터 여성작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추리여왕 아가사 크리스티부터 루스 렌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메리 히긴스 클라크 등 걸출한 여성 작가들이 늘 한편에서 빛나고 있었다. 2000년대 들어와서 보다 일상적이고 은밀한 곳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 추리소설의 새로운 주류가 되면서 여성 작가들의 활약은 더 두드러진다. 추리소설 속 여성 캐릭터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추리소설은 그 시대의 욕망과 범죄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현대의 살인사건이 주로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진다. <한겨레21>에서 2016년 1월부터 2021년 11월까지 여성살인 사건 판결문 427건을 분석한 적이 있다. 기사는 427건 중 93%(397명)의 피해자가 아는 사람에게 살해당했다고 전한다. 교제중인 남자에게 살해당한 케이스가 155건, 남편에게 살해된 케이스는 248건이었다. 대부분의 살해 동기는 자신을 무시하거나 기분 나쁘게 해서라고 판결문에 기록되어 있다.

여성이 살인범인 경우의 통계를 찾아보았다. 같은 기간의 통계라면 비교하기 좋을 텐데 애석하게도 그 통계는 찾기 힘들었다. 2004년 법무부에서 발간한 논문을 보면 남편이나 연인을 살해한 여성 129명 중 82.9%(107명)이 상대 남성에게 학대받은 경험이 있다. 대다수의 살해 동기가 장기적인 학대를 벗어나기 위한 방어 행위였다는 얘기다. 살해 동기부터 여성은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라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추리소설 속에서 여성은 자신의 물리적인 약세를 극복하기 위해 주로 독약을 이용한 범죄를 모의한다. 실제 범죄에서도 여성의 살해 방법은 독약이나 술 등을 복용하게 한 뒤 무기력해진 상대에게 흉기를 쓰는 식이다. 독약으로 상대를 죽이기 위해서는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다. 그래서 여성 범죄자들은 지능적이고 계산적이며 냉혹하다.

길리언 플린의 소설 『나를 찾아줘』의 주인공 에이미는 직접 살인을 하는 대신 남편을 완벽하게 살인범으로 몰아넣고 모습을 감춰버린다. 바람 피운 남편에 대한 복수로 그를 살인범으로 만들기 위해 몇 달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한다.

멋진 캐릭터를 만드는 꿈은 어느 작가가 꿈꾼다. 특히나 추리라는 장르는 매혹적인 캐릭터를 하나 만들면 계속해서 연작을 쓸 수가 있다. 미스터리, 스릴러를 쓰는 여성 작가들이 모여 <미스마플클럽>이라는 모임을 만들었을 때 우리는 첫 엔솔로지를 준비하면서 여성빌런에 대해 써보기로 뜻을 모았다.

걸크러쉬와 센 언니 캐릭터가 각광받는 지금, 장르소설의 여성 캐릭터는 이제 물리적인 한계도 넘어서야 한다는 생각에 Born to kill, 주희라는 여성 연쇄살인마를 구상했다. 이름도 주희, 붉은 피를 보면서 쾌락을 느끼는 존재라는 의미다. 육체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존재를 만들고 싶었다. 무례하고 선을 넘는 남성들에게 경고가 아닌, 바로 한방 먹이는 존재를 그리고 싶었다. 여자라고 만만하게 보고 선을 넘는 남자들에게 제대로 두려움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 주희의 손에 도끼를 쥐여 주었다. 시선으로 여자들을 희롱하고, 아무렇지 않고 성적인 농담을 던지며 신경을 긁던 놈이 공포를 느끼기를 바랐다.

밤길을 걷다가도 누군가의 발소리에 겁을 집어먹길 바란다.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에 목숨이 위태로운 경험을 하길 바란다. 주희가 휘두르는 도끼를 바라보며 도대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필자 | 서미애

『남편을 죽이는 서른가지 방법』으로 데뷔. 『잘자요 엄마』,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등의 장편이 있다. 『잘자요 엄마』는 미국, 프랑스, 독일 등 16개국에 출간되었다. 『그녀만의 테크닉』, 『반가운 살인자』, 『그녀의 취미생활』 등이 영화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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