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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주 “<유퀴즈> 때문에 참 부끄러워질 때가 많았다”

『유퀴즈에서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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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퀴즈>에 나오시는 분들을 보면서 항상 반성하죠. <유퀴즈>에 나올 만한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저는 계속 정진해 가는 길인 것 같아요. (웃음)


<유퀴즈>에서 들은 이야기는 우연히 만나 우연히 듣게 된 세상 이야기의 한 조각이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MC도 나도 중간에 생각을 덧붙이기보다는 최대한 담담한 태도를 유지했다. 귀 기울여 듣는 충실한 청자. 그것이 우리의 색깔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도 이따금 작게나마 덧붙이고 싶은 내 이야기가 있었다. 수많은 출연자가 들려준 이야기 중 마음 깊이 공감한 부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번뜩이는 단상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그분들에게 배운 사랑의 마음과 빛나는 열정도. 그렇게 이 책을 쓰게 됐다. (8쪽)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의 기획자이자 메인 작가인 이언주가 에세이 『유퀴즈에서 만난 사람들』을 펴냈다. 6년 동안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안부를 묻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는 알게 됐다. “모든 사람은 한 편의 드라마”라는 사실을. 모두가 자기만의 서사를 가지고 있었고 희로애락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가 자신의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고 이언주 작가는 고백한다.

『유퀴즈에서 만난 사람들』에는 사육사 강철원, 피아니스트 조성진, 생태학자 최재천, 소설가 정세랑, 작가 이지선 등 출연자 50명의 이야기가 담겼다. 글과 함께 실린 스틸 사진으로 그들과 함께했던 순간을 기록한다. 아울러 <유퀴즈>의 스케줄표와 제작과정, 비하인드 컷, 작가 다이어리 등을 통해 촬영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전한다. 이언주 작가는 <채널예스> 인터뷰를 통해 “방송에서 못 다 한 이야기들을 책 속에 담았다. <유퀴즈>를 보면서 좋았던 분들의 이야기가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록새록 떠오르면 좋겠다. 가끔씩 꺼내서 읽어볼 수 있는 책이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재석은 냉철하고 다정한 인생 선배

첫 에세이입니다. 그동안 출간 제의를 많이 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많지는 않고 간혹 받기는 했어요. 그런데 방송작가들은 거의 매주 방송이 있으니까 여유가 없거든요. 책을 쓰려면 많은 시간과 애를 써야 되잖아요. 그래서 시작을 못 했었죠.

지금도 한가해지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웃음) 

맞아요. 그런데 책을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어요. 제가 하는 일과 관련된 책을 쓰면 좋을 것 같았고, 마침 시기가 잘 맞아서, 계속 말만 할 게 아니라 이번에 한 번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유퀴즈>를 하면서 매주 좋은 이야기들을 듣는데, 방송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전달하지 못한 이야기도 가끔 있거든요. 제가 느끼는 이야기들도 있고요. 그런 것들을 책에 담아보면 <유퀴즈>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보시면서 방송을 봤던 기억도 되살리시고 ‘이걸 만드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고 재미있어 하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5년 동안 <무한도전>의 작가로 일하셨고, 김태호 PD뿐만 아니라 나영석 PD와도 함께 일하셨죠. 그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번 책에 없어요. <유퀴즈>와 관련된 이야기만 담으셨습니다. 

맞아요.

그만큼 <유퀴즈>가 작가님에게 남긴 것이 많은 걸까요? 

매주 다양한 분들을 만나서 사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인사이트를 많이 얻어요. 좋은 이야기들과 한 번 생각해 볼만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다 소화시키기 벅찰 정도예요. 어떻게 보면 그런 것들이 조금 넘쳐서 책으로도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다른 프로들과 달리 <유퀴즈>를 하면서 이야기가 계속 쌓이는 것 같기도 했고요.

처음 <유퀴즈>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엄청난 대박을 기대하면서 준비도 많이 하고 사이즈도 키우는 방송도 있는데, 어떤 때는 ‘이런 것도 존재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처음부터 힘을 조금 빼고 시작하는 것들도 있어요.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는 식으로. <무한도전>을 끝내고 난 뒤에는 그런 것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무한도전>은 매주 큰 프로젝트들이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유재석 씨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작하게 된 거예요. <무한도전> 다음에 또 같이 해볼 수 있는 재미있는 게 없을까, 요즘 사람들은 뭘 궁금해 하고 재미있어 할까, 지금 하지 않는 방식의 프로그램이 뭐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같이 의논하기 시작했죠.

최초의 포맷은 거리에서 시민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죠. 그렇다 보니 “사람을 만나 다정하게 안부를 묻고 솔직하게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는 프로그램의 원칙이 정립된 것 같아요. 진행자들은 “최대한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기로 했고요. 

그렇죠. 저희 나름의 의미를 붙이거나 해석할 수가 없잖아요.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 본인 입으로 털어놓는 이야기니까요. 사전 조사를 하거나 팩트 체크를 하는 부분도 아니어서 그 분의 말 그대로 그때의 감정 그대로 담고, MC도 그냥 지나가다 만난 분과 대화하듯이 진행을 했었죠.

김민석 PD는 “이언주 작가는 유재석 씨가 가장 신뢰하는 분”이라고 이야기했어요. 

오래 같이 일을 하면서 맞춰온 호흡이 있는 것 같기는 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같이 일한 시간이) 10년 조금 더 된 것 같은데, 매주 만나고 녹화하고 통화하면서 진행을 해왔으니까요. 어떤 때는 인생 선배로서 (유재석 씨에게) 개인적인 고민을 상담하기도 해요. 워낙 현명하게 조언을 해주시거든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여쭤보기도 하고 그 의견을 많이 참고해서 생각하기도 하고요. 뭔가 서운하거나 마음이 안 좋을 때도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 어른스럽게 ‘그럴 때는 이렇게 마음먹으면 좋다, 그거는 그렇게 서운해 할 건 아니다’ 하고 설명해 주시기도 해요. 냉철하면서도 다정하거든요. 저에게는 인생 선배이기도 하고 방송계의 아주 좋은 동료이자 선배이기도 하고, 굉장히 신뢰하고 의지를 많이 하고 있어요. 프로그램에서 그런 MC와 같이 한다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기도 하고, 제작진한테 날개가 달리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존경하면서 일하고 있죠.

“유재석은 조세호가 옆에 있을 때 좀 더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네, (두 사람이) 워낙 좋아하거든요. 촬영장이지만 매주 만나서 수다 떨고 촬영하고 중간에 간식도 먹고 하면서 재미있는 상황들도 많고요. 그런 편안함이 있는 것 같아요. 두 분이 너무 친하고 매일 통화하는 사이이기도 해요. 처음에는 유재석 씨 혼자서 진행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그런데 또 다른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MC가 있으면 밸런스가 맞아서 더 좋을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혼자 진행하면 외롭잖아요. 옆에 동생이 있으면 안정감이 있고. 그래서 두 분이 같이 시작하게 됐죠. 세호 씨는 재석 형을 아주 존경하고 재석 형은 세호 씨를 너무 귀여워해요. 그렇게 실제로 친하니까 좋은 케미가 나오는 것 같아요.

거리에서 시민을 인터뷰하는 일이 쉽지 않잖아요. 예상도 할 수 없고 통제도 불가하니까요. 

맞아요.

거기에서 오는 두려움도 있었을 것 같고, 예상 밖의 발견을 했을 때 느끼는 짜릿함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땠나요? 

지금은 섭외된 분들을 모시고 준비를 해서 촬영을 하는데, 그때는 누구를 어떻게 만나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전혀 모르니까 기대되는 면과 걱정되는 면이 동시에 있었어요. 가끔은 안 풀릴 때도 있었고요. (촬영에 응한 시민이) MC를 만나서 반갑게 토크를 했는데 지나고 보니까 방송에 나가는 게 싫어진 경우도 있었고, 그러면 녹화가 재미있게 됐어도 편집을 해야 했고요. 어떤 때는 골목에 접어들면서 만난 분이 상상도 못한 이야기를 꺼내놓으실 때도 있었어요. 어떻게 만난 지 몇 분밖에 안 되는 MC를 믿고 저렇게 이야기를 다 털어놓으실까, 신기하게 보이기도 했는데요. MC가 가진 친근함과 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이 있어서 시민들이 자기가 갖고 있던 이야기를 펼쳐내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너무나 귀한 이야기들을 매주 듣게 되고 ‘우리는 다 각자의 드라마와 이야기를 갖고 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가끔은 인터뷰이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예상을 훌쩍 빗나가는데, 그래서 좋을 때도 있어요. (웃음) 

그렇죠. 생각지도 못했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요.

『유퀴즈에서 만난 사람들』에 실린 김은주 구글 수석 디자이너의 이야기도 그랬습니다. 

아, 어떤 말씀이신지 알 것 같아요. 당연히 성공 스토리가 나올 것 같았는데 의외로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를 하셨죠. 그때 (시청자) 반응이 진짜 좋았어요. 저희가 (사전에) 인터뷰할 때도 그 이야기를 하셨는데, 생각해 보면 그때는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녹화 하시면서 그 이야기를 더 잘 해주셨던 것 같고, 그러다 보니까 방송을 낼 때는 그 이야기에 더 방점이 찍히긴 하더라고요. 이야기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진짜 많으셨고, 방송 보고 같이 우셨다는 분들도 있었어요.

맞아요. 위로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조성진 씨의 이야기도 떠올라요. 그렇게 완벽한 연주를 하시는 분이 스스로 만족한 연주가 몇 번 없다고 하시고, 그렇게 많은 연습을 하고 기회를 받기 위해 노력을 하시고, 그런 이야기도 새로웠던 것 같아요. 김수정 작가님이 본인이 겪었던 번아웃 같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신 것도 되게 의외였고요. 생각해보면 김수정 작가님은 그 시절에 어떻게 결핍이 있는 캐릭터를 생각하고 사랑 받게 하셨는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누구 하나가 월등해서 되는 건 아니에요

책에서 <유퀴즈>의 스케줄표를 공개하셨는데요. 일정이 보통 빡빡한 게 아니더라고요. (웃음) 수요일에 녹화를 하면, 사전 인터뷰와 대본 작성은 언제 하세요?

수시로 계속되는 작업이기는 해요. 수시로 섭외하고, 섭외가 확정되면 만나 뵙기도 하고 전화로 인터뷰하기도 하고요. 매주 방송이 되니까 계속 수시로 하는 거예요. 딱히 고정 요일이 있지 않아요. 수요일은 녹화하고 본방송이 있으니까 사이사이에 섭외와 인터뷰와 대본 작업을 하는데, 보통은 월요일과 화요일 중에 정리를 하고요. 수요일 날 녹화하고 나면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편집을 보거든요. 그리고 추가적으로 촬영하기도 하고요. 고정으로 하는 녹화와 방송 말고는 거의 수시로 있는 작업들이에요.

그러면 지난주에 촬영해서 이번 주에 방영하는…

그런 경우도 있어요.

계속 그렇게 돌아가면 너무 힘들지 않습니까? 여분의 촬영분이 있어야 조금 여유가 생길 텐데요. 

가끔은 (일찍) 찍어서 다른 회차에 올리는 스톡(stock)이 있기는 한데, 보통은 시의성 맞게 나가려고 바로 당주에 찍어서 방송하고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저도 이 일을 시작하고서 매주 방송이 계속됐기 때문에 그냥 인이 박힌 작업이라, 지금은 막 힘들고 그렇지는 않아요.

최근에는 시민들도 미리 섭외를 해서 촬영하시는데요. 드라마틱한 사연을 갖고 있는 분들을 어떻게 발견하시고 섭외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를 포함해서 (<유퀴즈>에) 작가들이 8명 정도 있는데요. 사실은 매일 그 일을 하고 있긴 해요. 화제 되는 분이나 숨겨진 이야기를 찾는 거죠. 유튜브든 방송이든 기사든 주변의 추천이든 다방면으로 찾아요. 궁금한 사람 없을까, 요즘 궁금한 직업 없을까, 이야기가 화제 되는 분들 없을까, 하고 찾는 게 거의 저희의 주요 일이에요.

<유퀴즈>의 작가님들이 ‘후속 영상 인터뷰’도 진행하시잖아요. 출연자 분들이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실 때가 많던데요?
아마도 처음에 MC와 인터뷰할 때 긴장되기도 하셨을 것 같아요. 그리고 한바탕 이야기를 하고 나면 긴장이 좀 풀리면서 곱씹게 되고 ‘아, 이 이야기를 못했는데’ 하는 것도 생각나잖아요. 그 타이밍쯤에 저희가 후속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다큐멘터리 3일>을 찍었던 VJ 분들과 예전부터 같이 작업하고 있어요. 저희도 촬영하면서 놓친 것들을 추가적으로 질문을 드리고요. 그렇게 (내용들을) 채우는데, 예전에 거리에서 시민 인터뷰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MC가 한 번 마음을 열고 지나가면, 조금 남은 이야기를 후속으로 담아서 같이 방송하고 있어요.

<유퀴즈>를 보다 보면 ‘사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 묻고 들어주기를 바라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것 같아요. 뭔가 다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를 털어놓잖아요. 서사의 민족이라서 그런지. (웃음)

한국인이 서사의 민족이라고 생각하세요?

네, 서사를 너무 좋아하잖아요. 이야기를 너무 좋아하고. 그리고 각자 본인만의 이야기도 가지고 있고 표현하기도 잘하고요. 저희도 시민 분들을 초대해서 이야기 나누면서 ‘어쩜 저렇게 말씀을 잘하실까, 이렇게 긴 이야기를 어떻게 저렇게 잘 전달하실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되게 많아요.

우연히 방송작가가 되셨다고요. 아는 선배가 ‘막내 작가 자리가 있는데, 해볼래?’라고 해서 시작하게 됐다고 쓰셨습니다. 선배는 왜 그런 권유를 했던 걸까요? 

그 분이 대학교 선배였는데, 제가 동아리 같은 데에서 공유하는 글을 적은 걸 보고 ‘저 친구가 글 적는 걸 좋아하는구나’ 생각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러다가 이런 일 한 번 해보겠냐고 소개를 한 거고요. 그때는 방송작가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어요. 프로 작가로 일을 할 만큼 글 솜씨가 좋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방송작가, 특히 예능작가가 하루 종일 글 쓰는 일을 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사람을 만나고 프로 구성하는 일들이 훨씬 더 많아요. 아마 계속 앉아서 글 쓰는 일이었으면 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지쳤을 것 같은데. 현장에서 일하거나 사람을 만나는 일이 많고 그런 것들이 재미있어서 계속 한 것 같아요. 촬영현장이 항상 재미있는 곳이니까 지루하지도 않고, 또 프로그램이 하나 끝나면 또 새로운 프로를 기획해서 하게 되잖아요. 그런 재미로 쭉 갔던 것 같아요.

큰 고민과 준비 없이 우연히 시작한 일인데, 오랫동안 좋은 성과를 내는 방송작가가 되셨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당시에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할 일이 없어서 일을 찾고 있었고, 고향을 떠나서 서울에서 자리 잡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일단 이 일을 하면 계속 서울에서 생활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조금 간절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꾸준하게 했던 것 같고요. 예전부터 계획하고 꿈꿨던 일은 아니었지만 막상 해보니까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즐겁게 일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일도 마찬가지이지만, 다 타이밍이잖아요. 어떤 타이밍에 어떤 프로그램이 주어지고, 기회가 주어지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런 기회들이 타이밍마다 잘 주어져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저도 (맡았던 프로그램 중에) 잘 안 됐던 프로들도 많거든요. (웃음) 어떻게 보면 이것밖에 할 줄 몰랐고, 해봤더니 의외로 나와 잘 맞는 일이었던 거예요. 그래서 저는 방송작가를 하려는 후배들이 고민할 때는 적극적으로 해보라고 말하는 타입이에요. 재미있고 익사이팅한 일이기도 하고, 그래서 좀 불안정하기도 한데, 오래 하다 보면 그만큼 성과도 갖고 가는 일이고요. 여러 가지로 장점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오래 하고 있는 것 같고요.

작가님의 재능과 자질이 빛을 발한 결과이기도 하겠죠? 

이 일 자체가 다 팀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누구 하나 독보적으로 가지는 않아요. 혼자 하는 작업이면 외롭기도 하고, 성과에 희비가 크기도 했을 것 같은데요. 예능 프로그램은 팀으로 이루어져서 계속하는 거라, 그것도 장점인 것 같아요. 누구 하나가 너무 월등해서 또는 천재적이어서 이루어지는 건 아니거든요. 팀워크와 분위기와 시너지로 가는 거라서. 그래서 가끔은 ‘우리가 다 모자라니까 이렇게 같이 합쳐서 1인분 하는 거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영향력이 큰 콘텐츠를 만드는 방송작가로서 두려워하는 일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되고 답은 정해져 있고, 그런 것들은 경계하고 싶은데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내가 항상 정답이 아니니까,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 오류를 줄이는 것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고요. PD들은 (방송작가에 비해) 많이 알려져 있지만 방송작가는 그렇지 않잖아요. 저희(방송작가) 자체가 카메라 뒤에 있는 직업인데, 일종의 자기 PR을 할 경우에 ‘나의 한마디 때문에 뭔가 오해되거나 잘못 전달되는 건 없을까’ 이런 생각도 들고요. 특히 예능프로는 기획부터 최종 단계까지 작가들의 손이 많이 가요. 작가들의 아이디어에서 탄생한 프로도 많고요. 그런데 아무래도 알려지지 않다 보니까,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유능한 작가들이 더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작가 고유의 능력과 색깔이 많이 담긴 프로인데 세상에 안 알려진 경우들을 보면서 아쉽기도 하고, 그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나대는 건 아닌가 걱정도 많이 되고요. (웃음) <유퀴즈>도 60~70명 스태프가 만드는 프로인데 이번에 책을 내면서 마치 제가 다 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을까, 그러면 안 되는데, 이런 우려도 있어요.



<유퀴즈>에 나올 만한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유퀴즈> 때문에 참 부끄러워질 때가 많았다”고 쓰셨어요. 떠오르는 출연자가 있나요? 

매회 있는 것 같아요. 생환 광부 분이 나오셨을 때 모시고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나 강인한 분이라는 게 느껴지는 거예요. 생사를 오고 간 이 분의 이야기를 그냥 이러고 앉아서 들어도 되나 싶고, 그 분이 뿜어내는 강한 기운이나 에너지를 느끼면서 그냥 ‘구사일생으로 살아오신 분’ 정도로 생각하고 모신 게 반성되기도 하고요. 그걸 어떻게 가늠하겠나 싶기도 하고... 매주 그런 것 같아요. 매주 어떤 사람의 어떤 이야기가 그렇게 반성시키기도 하고 ‘난 아직 모자라다’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하고요.

정동식 축구 심판을 보면서도 생의 강렬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렇죠. 저렇게 사는 게 진짜 멋있는 것 같고. 그 분도 진짜 기억에 많이 남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진짜 건강하게 받아들이면서 이야기하시잖아요. 사실 아들하고의 이야기들은 그냥 아들이 촬영 현장에 놀러 와서 담긴 부분이거든요. 그렇게 강직하게 강인하게 사시는 분이니까 아들도 자연스럽게 ‘아빠는 진짜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현장에서도 엄청 울컥했어요.

1000원 밥집을 어머님한테 물려받은 김윤경 사장님의 사연도 정말 드라마 같죠. 어쩜 이런 분이 계실까요?

맞아요. 그러면서 ‘나 같으면 할 수 있을까, 못 할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들죠. 그 어머님은 저 딸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니까 주고 가셨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방송 만들면서) 그런 생각 진짜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나 같으면 할 수 있을까? 나 같으면 여기까지 올 수 있을까? 이지선 교수님 뵐 때도 그랬어요. 현장에서 이야기 들으면서 울컥해서 눈물이 날 때 ‘우는 게 실례가 아닐까’ 싶을 때도 되게 많아요. 나는 울고 있는데 저 분은 너무 담담하게 이야기할 때 부끄럽기도 하고요. 촬영하면서 그런 경우들이 종종 있는 것 같아요.

그럴 때는 방송이 끝난 후에도 여운이 남잖아요. 부끄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절망스럽기도 하고요. 그런 감정은 어떻게 갈무리 하세요?

갈무리 못하고요. 저는 그럴 때 다른 사람한테 그 이야기를 꼭 전달하는 습관이 있어요. 이야기 해주듯이. 그러면서 일종의 갈무리 아닌 갈무리를 하고요. 또 앞에 닥친 일들이 많아서 여운이 오래 못 가기도 하는데요. 몇몇 분들은 진짜 오래 기억에 남고 방송 편집 보면서 또 느껴요. 방송을 보고 사람들이 많이 감명 받을 때 또 같이 느끼고요. 그런 이야기들을 주변에 참 많이 해요. 친구나 가족들한테 ‘오늘 이런 분을 만났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하고 들려줘요. 그게 이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한데요. 그런 이야기를 많이 갖고 있으면 누가 고민 상담할 때 위로를 할 수가 있어요. 제 경험은 너무 부족하니까 그 분들의 경험에 빗대서 위로하는 거죠. 어제는 영화배우 류승룡 씨와 촬영을 했는데, 그 분이 <극한직업> 전에 부진했던 작품들로 힘들었던 기억이 있더라고요.  최근에 저도 비슷한 경험을 했거든요. 그럴 때 있잖아요. 여기가 터널 같고, 나는 최선을 다했는데 빠져나갈 수 없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를 때. 앞으로 가면 되나, 뒤로 가야 되나, 알 수 없을 때. 그럴 때 사모님이 ‘그냥 거기에서 멈추면 동굴인데 조금 더 가면 터널일 수 있다, 빛이 나올 수 있다’ 그렇게 말씀하셨대요. 그 말을 듣고 묵묵히 갔더니 <극한직업>이라는 아주 큰 작품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인생이 또 계속 터널이라는 거예요. 유재석 씨도 ‘인생은 팔당 터널이다, 터널 나오고 또 터널 나오고 거기서 잠깐 빛을 보고 또다시 터널로 들어가고’ 그런다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경험과 빗대어서 위로를 받기도 하고 공감이 되기도 했어요. ‘그래, 나도 여기에서 멈추지 말고 더 묵묵하게 가봐야겠다’ 하는 생각도 들고요.

공통 질문은 어떻게 만드세요? 어디에서 아이디어 얻으시나요?

여러 군데에서 생각을 얻는데, 어떤 글귀에서 떠올릴 때도 있고요. 다른 방송을 보거나 출연자를 인터뷰 하다가 그 분이 말했던 단어에서 생각이 들기도 해요. SNS 글에서 차용하기도 하고, 거기에서 생각이 나기도 하고, 되게 방대해요. 그리고 이런 공통 질문이 주어지면 나도 한번 생각해 보게 되잖아요. 별거 아니더라도. 예를 들면 ‘내 인생의 책을 쓴다면 첫 줄은 뭘로 할까?’ ‘내 인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어떤 장면으로 시작할까?’ 이런 생각을 누구든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만든 게 공통 질문이기도 하거든요. 출연자의 답변도 듣지만 방송을 보시는 분들도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에 ‘<유퀴즈> 공통 질문 베스트’가 실려 있는데요. 그 중에 하나를 작가님께 여쭤볼게요.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는지? 어떤 어른이 된 것 같은지?’ 궁금합니다. 

어떤 어른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어떤 일을 꾸준히 하는 사람 정도는 된 것 같아요. 누구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내 일처럼 걱정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성격적으로 잘 맞아서 그렇게는 된 것 같고. 그것 말고는 <유퀴즈>에 나오시는 분들을 보면서 항상 반성하죠. 저 사람의 분위기는 어디서 나올까, 어떻게 저런 말씀을 저렇게 잘하실까, 어떻게 그렇게 힘든 시간을 버티고도 저 얼굴을 갖고 있을까, 그런 식으로 많이 생각하죠. 그러니까 <유퀴즈>에 나올 만한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저는 계속 정진해 가는 길인 것 같아요. (웃음)

‘모든 사람은 한 편의 드라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가님도 한 편의 드라마가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그 드라마를 지켜보신 소감은 어떠세요? 마지막 장면은 어떻게 연출하고 싶으신가요? 

저는 그냥 한 사람으로서는 되게 외로움도 많이 타고 고독함도 많이 느끼거든요. 그러니까 일상에서 생기는 에피소드는 되게 코믹스럽고 명랑 만화 같은데 실은 내면은 엄청 고독하고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멀리서 보면 되게 웃기고 재미있는데 가까이서 살펴보면 굉장히 고독한 분위기의 드라마일 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을 이야기하자면, 아무튼 오래 현장에서 있으면서 활기차게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고요. 이후에도 좋은 프로그램이 많이 남겨져서 나중에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을 것 같고요. 많은 작가들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런데 다들 마지막 장면은 죽음이지 않을까요. (웃음)



*이언주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메인작가. 2002년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다. MBC [무한도전] [나는 가수다], tvN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KBS [날아라 슛돌이] 등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은 프로그램을 다수 집필하며 시청자 가까이에서 호흡하고 있다. 2015년 [무한도전]으로 MBC 방송연예대상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2022년 [유 퀴즈 온 더 블럭]으로 “참신한 기획과 섭외로 출연자의 인생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등 토크쇼 분야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라는 찬사를 받으며 대한민국콘텐츠대상 방송영상산업발전유공 부문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언제나 ‘궁금증’ ‘새로움’ ‘공감’이 담긴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방송 때 미처 모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유퀴즈에서 만난 사람들》을 썼다.


유퀴즈에서 만난 사람들
유퀴즈에서 만난 사람들
이언주 저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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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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