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종 “다리를 잃었지, 유머를 잃은 건 아니니까요”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 박찬종 저자 서면 인터뷰
사랑, 유머, 취미는 꼭 이 순서대로 저를 지켜주었던 것 같아요. 트럭 밑에서는 지금 제 아내가 된 영지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정신을 잃지 않게 했고, 병실에서 ‘암살 개그’를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다리를 잃은 것에 매몰되어 멈춰 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2024.02.27)
자전거로 퇴근하던 중 5톤 트럭에 깔려 다리를 절단한 자전거 유튜버 CJPARK의 경이로운 멘탈과 회복탄력성을 담은 책이다. 끔찍한 사고 후 112일 만에 의족을 차고 다시 걸었고, 그 모습을 담은 <다시 걷게 되던 날> 유튜브 영상은 조회 수 220만 회를 기록했다.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놀라웠다. 누군가는 분노와 증오 혹은 자책과 슬픔에 빠져 있었을 시간에 그는 웃었고, 도전했고, 다시 시작된 삶을 열렬히 사랑했다. 이제는 패러사이클리스트가 되어 금메달을 향해 전진하고 있는 CJPARK, 박찬종 작가를 만나보았다.
끔찍한 사고 이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사고를 기점으로 제 삶은 엄청나게 바뀌었습니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연구활동을 하고, 믹스커피를 홀짝이며 보고서를 쓰던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죠.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졌다고 생각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먼저 제가 처한 상황을 하루하루 글로 적기 시작했어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쓴 글을 되짚어 보면서 생각이 정리되고, 몸도 나아지고 있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었어요. 제가 글을 쓰던 블로그가 많은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고, 출판사에서도 연락이 와서 마침내 출간까지 이어졌습니다.
자전거를 다시 타겠다는 다짐을 알린 후로 장애인 사이클 국가대표 감독님에게 연락이 와서 자전거 선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벨기에에서 열린 월드컵 경기에도 다녀왔고, 지난 11월에 열린 전국체전에서는 은메달 4개를 땄습니다.
책에 보면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아내 영지님과 함께 엉엉 울었다는 글이 있는데요, 저는 이 부분을 보고 매우 안도했습니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누구나 상실 앞에서 5단계의 애도의 단계를 거친다고 했는데, 혹 작가님께서 이런 애도의 단계를 거치지 않은 것이 문제가 될까 봐 우려스러웠거든요. 그 사건 전과 후,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제가 장애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잘 이겨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저는 회복이 굉장히 빠른 환자였고, 재활운동도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있었거든요. 비슷한 환자들이 많고 장애인 배려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재활병원 환경도 마음의 안정이 되었죠. 그런데 집에 도착한 순간, 마음이 쿵 내려앉더군요. 제가 애정을 갖고 신혼집을 인테리어 할 때는 제가 장애인이 되는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거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에 우울감이 피어났고, 영지를 부둥켜안고 처음으로 엉엉 울었습니다.
한참을 울고 일어나서, 아니, 바닥에 앉아서요, 가까이 있는 물건부터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조금씩 몸을 움직이다 보니, 다리가 아니라 의지가 없는 게 문제였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차근차근, 다시 처음부터 현실에서의 장애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사고 일주일 만에 상실을, 달라진 삶을 수용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작가님을 보고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작가님께서 삶을 대하는 그런 태도는 사고 전에도 쭉 이어져 왔던 걸까요?
이전부터 그래왔다기보다는 큰일을 겪으면서 발견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사고가 있기 전에는 저도 평범하게 회사를 다니면서 불안한 미래를 고민하는, 너무나도 흔한 이 시대의 청년이었거든요. 사고 전에도 지금처럼 삶을 사랑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삶이 더 풍부했었을 거예요. 그래서 독자 여러분들이 제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경험을 공유하면서 삶이 갖는 아름다움을 찾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읽어보면 작가님의 놀라운 회복탄력성의 근원이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겠더라고요. 사랑, 유머, 취미. 우리가 흔히 긍정이라고 뭉뚱그리는 것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짚어주신 것 같았습니다. 사랑, 유머, 취미 중 그중에 가장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이것만은 독자 여러분의 인생에 꼭 있었으면 하는 가치는요?
사랑, 유머, 취미는 꼭 이 순서대로 저를 지켜주었던 것 같아요. 트럭 밑에서는 지금 제 아내가 된 영지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정신을 잃지 않게 했고, 병실에서 ‘암살 개그’를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다리를 잃은 것에 매몰되어 멈춰 있던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전거를 다시 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는 삶의 불꽃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저는 다른 것보다도 독자 여러분들이 취미를 꼭 가졌으면 좋겠어요. 다른 가치들보다도 우리 사회에선 너무 저평가되고 있고, 비효율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취미가 어떤 것이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는 시간은 소중하고, 그 시간들이 바로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장애인 사이클 국가대표에 도전한다고 들었습니다. 취미로 하던 자전거가 업이 된 건데요. 취미가 일이 되면 안 된다고 흔히 말하잖아요. 작가님께 자전거는 이제 어떤 의미인가요?
맞아요, 취미가 일이 되면 안 되죠. 심지어 장애인 사이클 선수는 돈도 안 돼요(웃음). 사실 자전거를 다시 취미로 타는 것과 선수로 국가대표, 패럴림픽에 도전하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제게 선수가 되라고 등 떠민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저는 의족 회사로부터 의족을 지원받고 있어요. 수천만 원에 달하는 의족을 지원해주는 비용은 결국 다른 절단환자가 의족을 구매한 돈에서 나오는 것이거든요. 그런 지원을 받고서 고작 취미로 자전거를 타는 것은 너무 나태한 태도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전거를, 저를 알리고 장애를 알리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국가대표가 되고, 패럴림픽에 나가서 절단장애인도 이렇게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자전거 선수가 되기로 결심한 이후에 느끼게 된 건, 제가 자전거를 여전히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취미가 일을 방해하게 하지 말자’는 생각이어서 자전거를 타고 싶은 마음을 눌러두려 애썼는데 지금은 일주일에 6일은 자전거를 타거든요. 어떻게 보면 스스로 주 6일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는 건데도, 자전거를 타는 시간은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KBS <휴먼다큐> 팀에서 작가님을 찍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내용이 담길 예정인가요?
제가 퇴원하던 작년 1월경, KBS PD님께 연락이 와서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큰 사고를 겪은 제가 장애를 받아들이고 생활인으로서 삶에 다시 적응해나가는 과정을 통해,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고요. 그리고 단기간에 패럴림픽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삶을 방향을 찾아나가는 모습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다가오는 2024년 4월에 방영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독자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사람이 죽음을 경험하고 돌아오면 가치관에 많은 변화가 찾아옵니다. 저는 흐릿하고 삭막하다고 생각했던 매일 매일을 더 또렷하고 선명하게 바라보게 되더군요. 이전보다 더 행복을 쫓는 선택지를 적극적으로 고르기도 합니다. 물론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이 책에는 사고 이후로 제 삶이 더 풍성해지는 과정을 담았습니다. 독자 여러분들께도 『내 다리는 한계가 없다』가 기폭제가 되어 일상에서 더 적극적으로 행복을 고르고, 더 풍성한 삶을 살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박찬종 평범한 회사원이자 취미로 자전거를 타고 동호회 활동을 하던 자전거 유튜버였다.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자전거로 퇴근하던 중 5톤 트럭에 깔리는 끔찍한 사고를 당해 왼쪽 다리를 잃는다. 사고 일주일 만에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것을 긍정하면서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시작하는 SNS 글을 올려 화제가 되었고, 112일 만에 의족을 차고 다시 걷는 모습을 영상으로 올려 무려 220만 명에게 그의 경이로운 멘탈과 회복탄력성을 보여주었다. 장애를 어려워하고 불편해하는 사람들에게 ‘암살 개그’를 건네며 무거운 분위기와 일상의 고통을 풀어나가는 똑똑한 유머의 소유자다. 놀랍게도 병상에서 장애인 사이클 선수가 되기로 결심하고, 사고 후 바로 다음 해에 참가한 전국체전에서 4개의 은메달을 따낸다. 다리를 잃었지만 여전히 사랑하는 삶이 남아 있어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고 말하는 그가, 한계 없이 굴려나가는 유쾌한 인생을 만나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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