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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혐오의 시대, 함께 살기 위한 열쇠는

『약속큐브』, 『우리는 약속친구들』 홍성민 작가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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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 무엇이기 전에 결국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서로 다름을 틀림이라 여기며 갈등하는 시대에 화해와 용서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약속큐브 기호는 이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2024.02.26)


‘우리’보다 ‘나’, ‘개인’의 삶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 집단을 위해 묵살되던 개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획일화되고 버려졌던 ‘개성’, ‘다양성’의 가치를 알아주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나 뭐든지 극단으로 치달으면 역효과가 생긴다. 나를 존중하는 마음이 나만 아는 이기심으로 바뀌는 순간, 존중과 배려는 사라지고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세상에 균열이 일어난다.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에 문제가 된 ‘차별’과 ‘혐오’는 성, 연령, 세대, 지역, 빈부, 직업 등으로 서로를 분리하고 단절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홍성민 작가가 창작한 새로운 사람의 기호, “약속큐브”는 우리 안에 이미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지혜가 내재되어 있으며, 이 지혜를 통해 평등, 평화, 공존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음을 전한다. 홍성민 작가와 함께 “약속큐브”의 가치와 철학을 담은 두 도서 『약속큐브』, 『우리는 약속친구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어 보았다.



먼저 작가님과 약속큐브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주얼리 디자이너이자 약속의 작가, 홍성민입니다.

약속큐브는 제가 창작한 새로운 사람의 기호인데요, 그 출발은 기존의 성기호가 내포하는 성 고정관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전쟁의 신 마르스의 창과 방패를 의미하는 남성 기호♂와 아름다움의 신 비너스의 손거울을 의미하는 여성 기호♀는 전 세계적으로 흔히 볼 수 있는 기호이지요. 어린 시절 이 기호에 대해 깊이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그 시절 저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화나고 지친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아버지 대신 어머니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거든요. 아이를 낳아 기르고, 집안 살림을 하고, 돈을 벌어오고, 어머니는 그야말로 메마른 샘을 짜내어 사랑을 내어주셨어요. 어느 날 순전한 호기심으로 남성 기호와 여성 기호의 유래와 의미를 찾아보게 되었고, 어린 마음에 혼란을 느꼈습니다. 내가 알고 있고 모두가 사용하는 창을 든 남자와 거울을 보는 여자의 모습이 우리 집에는 없었으니까요.

성기호에 대한 불편한 마음은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예쁜 꽃과 아름다운 글귀를 좋아했어요. 여성을 위해 만든 소품이나 의류 디자인을 보며 감동을 느끼기도 했고요. 그러한 성향에 맞는 직업을 찾았지만, 머리가 긴 남성 주얼리 디자이너로 살아가며 많은 오해와 편견을 받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세상은 빠르게 변해갔어요.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로 말이죠. 우리나라도 그런 변화가 진즉 일어났고, 변화의 시대가 그렇듯 많은 혼란과 갈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러 목소리가 화해와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다투는 것이죠. 이러한 세상에서 기존의 성기호는 이 시대의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기에 너무나 구시대적이라 생각합니다. 비단 성 역할과 성 평등 문제만이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람의 기호를 만들고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약속큐브 기호를 창작하였고 전시, 공연,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오랫동안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해온 주얼리 디자이너신데요, 약속의 작가로 새롭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뉴욕에서 주얼리 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시기에 회사 사무실에서 우연히 창밖을 내다보며 고민하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공원에 작은 어린이 동상이 서 있었는데 그 주변으로 남녀노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밝아 보였어요. 심지어 비둘기들도 즐거워 보이더군요.(웃음)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십 분 전에 디자인한 반지와 그 동상을 비교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만든 반지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인데, 저 동상은 과거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게 될 테니 모두의 것이라 할 수 있겠구나. 진정한 예술품이란 무엇일까? 진정한 예술품의 정의를 내리는 건 어렵지만, 적어도 내가 앞으로 만들어갈 작품이 공적인 예술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즐거움을 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이 생겼습니다. 그 일로 곧바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 머릿속으로 구상하며 낙서처럼 끄적이던 약속큐브를 본격적으로 창작하게 되었습니다.

약속큐브의 일곱 가지 기호는 십자 모양의 힘(╋) 기호와 동그라미 모양의 포용(○) 기호가 확장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책에서 밝히셨듯 힘과 포용은 자연에서 가져온 모양인데요, 왜 사람과 관계를 의미하는 기호를 자연에서 가져오셨나요?

자연의 모습은 보기에 좋고 안정된 구조를 가집니다. 하나의 개체가 담고 있는 형태뿐 아니라 수많은 개체들이 모인 군집 또한 그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르더라도 조화와 균형을 갖춘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다'라고 말하지요. 자연에서 나고 자란 인간의 본성 또한 마찬가지여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사회를 일구며 살아갑니다. 여기에 착안하여 새로운 사람의 기호를 자연의 모습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저는 『약속큐브』의 첫 페이지에 적은 "남자, 여자이기 전에 우리는 모두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아주 좋아합니다. 성, 세대, 장애, 인종, 지역, 문화, 빈부, 직업, 정치적 성향 등 우리는 모두 다른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정말 멋지지 않나요? 우리가 그 무엇이기 전에 결국 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은 서로 다름을 틀림이라 여기며 갈등하는 시대에 화해와 용서의 씨앗이 될 것입니다. 약속큐브 기호는 이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약속큐브 기호


많은 사람들이 작가님이 왜 기호의 이름을 '약속'이라 지으셨는지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약속 기호는 "사람의 평등한 결합"을 의미합니다. 이는 기호의 모양에도 드러나 있는데요, 남성과 여성은 모두 힘과 포용의 기호로 이루어져 있고, 남성과 여성의 평등한 결합인 약속 기호 또한 동서남북 어느 방향에서 보나 같은 모양입니다. 저는 약속 기호를 통해 남성과 여성이, 나아가 사람과 사람이 평등한 관계를 맺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습니다. 성이 다름을 차별하지 않고, 가난과 장애로 차별하지 않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차별하지 않으며, 어디에 살고,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무슨 음식을 먹든지 차별하지 않는 관계, 서로의 종교적 신념을 존중하고 역사의 자부심과 문화의 독창성을 인정하는 관계. 우리 모두가 그러한 관계를 맺기 위한 '약속'을 하기를 바랍니다. "맺어서(約) 묶는다(束)"는 “약속”의 의미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약속큐브는 영어로 번역할 때에도 "Yacsok Cube"라고 적기로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약속큐브의 메시지에 공감하고 그래서 언젠가 약속큐브 기호가 사회적으로 약속된 국제적인 기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서 『약속큐브』와 『우리는 약속친구들』은 모두 약속큐브 기호에 대한 책인데요, 두 도서가 어떻게 다른가요?

쉽게 말하면 『약속큐브』는 어른을 독자 대상으로 집필하였고, 『우리는 약속친구들』은 어린이들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도서 『약속큐브』는 기호의 모양과 뜻을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약속큐브가 담고 있는 상징과 이야기, 그간의 활동과 작가노트까지 담아놓은 일종의 약속큐브 설명서 입니다. 저는 이 중에서 약속큐브 활동을 정리한 부분을 가장 좋아하는데요, 아무리 좋은 뜻이더라도 사람들에게 닿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약속큐브가 성 평등과 다양성 존중을 의미하고 있는 만큼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스며들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약속큐브를 활용한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개발하고, 해마다 약속큐브 양성평등 교육과 인성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때 활용하고 있는 교구도 책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도서 『우리는 약속친구들』은 약속큐브 기호를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글과 그림으로 설명해놓은 그림책입니다. 그동안 유아와 어린이를 대상으로 약속큐브 교육을 진행하면서 활용한 학습 자료를 책으로 펴낸 것이지요. 제 생각으로는 선생님과 부모님들이 도서 『약속큐브』를 통해 약속큐브에 대해 이해하시고, 교실과 가정에서 아이들과 『우리는 약속친구들』을 함께 읽으며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약속의 작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성과나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 주세요.

2019년에 문화역 서울284 RTO 전시장에서 <약속큐브: 평화 이야기> 전시를 열었습니다. 여러 분야의 작가들과 다문화 가정 친구들, 탈북청소년들, 강원도 인제군의 어린이들이 약속큐브를 주제로 협업한 전시였습니다. 이때 전시를 보러 온 어린이들이 몸으로 약속 기호를 만드는 모습을 보고 무척 감동했습니다. 어린이들이 모여서 만든 약속 기호는 그 자체로 약속큐브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함께 사는 세상"의 모습이었습니다.


몸으로 만든 약속기호


또 2023년에는 강원도 인제군 하늘내린 센터에서 화장실 기호를 약속큐브의 남성 기호와 여성 기호로 바꾼 일이 있었습니다. 올해에는 한국여성수련원이 바꾸었고요. 약속큐브 기호가 사회적으로 약속된 기호가 되기를 바라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무척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초등학교 저학년 친구들을 대상으로 약속큐브 평화 놀이터 공모전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수상했던 1학년 어린이 친구가 화장실 성기호를 약속큐브의 기호로 바꾸어 그린 것을 보고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눈앞에서 그림 같은 일이 벌어져 신기하고 즐거웠습니다.

한 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2018년에 시카고의 윌리엄 히바드 초등학교에서 약속큐브 인성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어린이들로부터 받은 편지를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습니다. 약속큐브에 대한 어린이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요. 약속큐브 기호의 가치에 공감하고 앞으로를 응원하겠다며 먼 곳에서 전해온 편지가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한국여성수련원 화장실 기호


약속의 작가로서 앞으로의 약속큐브 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저는 이야기의 힘을 믿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약속큐브 기호의 의미와 가치를 사람들에게 설명하기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통해 쉽고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17년에 발간하였던 『약속꽃을 그려요』와 이 이야기를 원작으로 공연한 가족뮤지컬 <약속큐브>는 이러한 고민에서 나온 콘텐츠였고, 역시 이야기의 힘은 놀랍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3년 전부터 약속큐브의 가치를 담은 이야기를 창작하였고, 곧 그림책으로 만나보실 수 있게 준비 중입니다. 약속큐브가 전하는 평등, 평화, 공존의 메시지가 민들레 씨앗처럼 멀리멀리 날아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름답게 꽃 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홍성민(작가, 소셜 주얼리 디자이너)

작가 홍성민은 세계 4대 보석 디자인 콘테스트를 석권한 주얼리 디자이너이며, 예술성과 대중성을 넘나드는 창작 활동으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국내외에서 펼치고 있습니다. 경기대학교에서 예술과 주얼리 디자인을 가르쳤으며, 현재 약속큐브 디자인과 철학을 바탕으로 주얼리 디자인, 공예, 설치미술, 회화, 문학, 패션, 공연,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약속의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약속큐브는 작가가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담고 있던 질문에 답을 구하며 구축해온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졌는가’에서 시작한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사람, 관계, 환경의 조화를 이야기하는 약속큐브의 세계관으로 이어졌습니다. 약속큐브는 마음의 벽을 허물어 사람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함께 사는 지혜를 전합니다.


약속큐브
약속큐브
홍성민 저
프로그스텝(frogstep)
우리는 약속친구들
우리는 약속친구들
홍성민 글 | 이현정 그림
프로그스텝(frog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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